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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송연] Wheel of Fortune

첫업로드: 2021.12.09. 포스타입


세상에서 숨길 수 없는 것은 두 가지 - 재채기와 사랑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조인 字 자효에 한해서는 전자 한 가지만이 해당할 뿐이라고 조조군에 속한 전부가 단언할 수 있었다. 가끔은 한술 더 떠서 "조인은 사실 커다란 바위에 일만 번 기도를 올려 태어난 인조인간이라 재채기도 하지 않는다"며 어리숙한 병사들을 놀려먹는 이도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우스갯소리일 뿐. 업무 외적으로는 말수도 적고 농담도 안 통하고 사적인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더라도 조인은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 분명했다.

……아마도?

하여튼간에, 어느 친절한 이는 "그래도 사람인데, 같은 농을 반복하여 듣는다면 불쾌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으나 정작 당사자는 별다른 관심도 불만도 없는 터였다. 오히려 자신이 바위로 만들어진 편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주군의 명예를 드높이기에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이를 악물고 다친 몸에 붕대를 감으며 그리 생각할 만큼 그의 일순위는 오로지 주군 조조 字 맹덕뿐이었다. 주군을 따르기로 결심한 날부터 자신의 목숨은 그를 위해 존재할지니. '조인'이라는 인간은 '조조'를 위해 쓰일 칼이자 방패다.

그렇기에 세간의 사람들이 으레 관심을 갖는 것들 ― 재물, 색, 입신양명, 자신의 안위 등 ― 은 '조조를 위한 도구'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었다. 연애니 이상형이니 하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은 말해 무엇할까. 조가의 어른들이, 아버지가, 주군인 조조(의 경우엔 조금 과한 느낌이 있지만)가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 적당한 집안의 적당한 여자를 만나 적당한 가정을 꾸리겠지. 조인이 아주 희미하게나마 가지고 있던 연애와 결혼에 대한 로망 또한 딱 그 정도였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 강요받은 것이 아닌 조인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사사로이 자의식을 내비치지 않는 것, 홀로 눈에 띄고자 하지 않는 것, 두드러지는 개인보다 조조군의 일부가 되어 물 흐르듯 움직이는 것.

그것이 주군의 뜻을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굳이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 나설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송연을 만나기 전까지는.


"무슨 일 있으신가요?"

귓가를 울리는 낭랑한 목소리에 조인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송연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5초? 10초? 1분? 1층에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그 정도까지는 아닌가? 시간은 둘째 치고 방금까지 자신의 태도가 송연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그다지 가깝지도 않은 사람을 이렇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니 이보다 더한 무례가 어디 있단 말인가? 혹시 내게 화가 나지는 않았을지?

팝콘 터지듯 떠오르는 잡생각들을 머릿속 한쪽으로 치워두고 조인은 얼른 입을 열었다.

"아니…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오늘은 점심을 놓쳐서 배가 많이 고프거든요. 방금 저한테 뭔가 부탁하셨으면 울었을지도 몰라요. 물론 조 장군 부탁이라면 해드리긴 했겠지만!"

3주 전이었나? 처음 마주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이 여인은 무엇이 그리 반가운지 묻지도 않은 오늘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낮에 처리해야 할 서류가 얼마나 많았는지, 전화는 얼마나 많이 왔는지. 잘 올린 줄 알았던 서류에 오류가 있어 다시 올려야 했고, 또 점심을 먹을 시간이 없어 대신 커피를 마셨더니 속이 조금 쓰리다든가. 그래도 지금은 잠시 시간이 나서 도시락을 사러 나가는 길이라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발을 옮기며 송연은 말을 이었다.

"조 장군은 점심 드셨나요?"

"아, 예. 구내식당에서 먹었습니다."

"우와, 오늘은 뭐 나왔어요?"

"뭇국에 고기조림… 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맛있었겠다!"

"……좋아하십니까?"

딱히 반기는 내색을 하는 것도 아닌데 자신만 보면 살갑게 말을 걸어오는 송연, 그리고 그가 하는 모든 사소한 이야기들을 귀 기울여 듣고 답하는 저 자신. 둘 중 누가 더 신기한지 조인은 알 수 없었다. 가족이나 친척들을 제외한 누군가가 그렇게 가볍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기에 당황한 감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늘 참새처럼 종알거리는 송연이 부담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조금 편안한……. 오랜 겨울 끝 시린 살갗 위로 살포시 내리는 봄 햇살이나 봄바람 같기도 하고. 어쩐지 가슴께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을 보니 그가 좋은 사람이라서, 그래서 이렇게 조용히 듣게 되는 거겠지. 그저 그 뿐일 것이다. 송연이 최근 먹고 싶다는 메뉴를 머릿속에 새기며 조인은 틀렸을 지도 모르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다음에 시간이 되면 그 가게에 가보려고요. 꽤 괜찮나봐요! 앗, 벌써 1층이네."

"아."

아, 라니. 어쩔 줄 모르고 짧게 내뱉은 탄식이 바보같이 들리진 않았을까. 앞서 내리는 송연의 표정을 슬쩍 살폈지만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과 마찬가지로 약간의 들뜬 즐거움이 가득했다. 다행이다. 하지만 한참 잘 듣고 있던 재잘거림이 끊긴 것이 못내 아쉬운지, 조인은 목적지를 잊은 듯 여전히 송연을 따라 관청 로비를 걸어 나갔다.

"조 장군은 어느 쪽으로 가세요?"

"아… 주차장에 가야 합니다. 차를 쓸 일이 있어서."

"네! 전 이쪽으로 가야 해서요. 그보다 내려오는 동안 제가 너무 떠든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전혀요."

"다행이다~ 그럼 다음에 또 봬요. 수고하세요!"

관청 앞의 번화가를 가리키며 송연이 작별 인사를 건넸다. 작고 따스한 여인은 그렇게 손을 흔들며 돌아서는데, 여전히 무거운 발걸음은 떨어지지 못하고 제자리에 붙박여 있을 뿐이었다. 뭔가, 뭔가 더. 더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 따라가서 붙잡아야 하나? 무엇 때문에? 뭐라고 하면서? 천하의 조자효가 언제부터 이렇게 충동적인 인간이었단 말인가? 하지 말자, 하지 마. 아무 말도, 아무것도. 왜냐하면 이것은 계획에 없었던 일이고, 원인도 대책도 모른 채 섣불리 움직이는 것은 절대 현명하거나 이성적이라고 할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러니까 절대로 아무것도…….

"저, 혹시,"

"네?"

실바람처럼 부드럽게 흩어지는 회색 머리카락 뒤로 햇살 같은 미소가 여리게 방긋. 봄은 아직 멀었건만 아지랑이 피어나듯 일렁이는 마음에 잠시 넋이 나가기라도 했는지. 조인은 자신도 모르게 송연을 불러세우고 말았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제 주군의 명예와도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오로지 조인, 조자효. 자신의 선택이 굳게 다물린 입술을 열고 고장 난 라디오처럼 의도치 않은, 하지만 의도하고 싶었던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주말에 시간 괜찮으십니까?"

흐음, 옅은 신음과 함께 커다랗고 동그란 눈동자가 옆으로 도로록. 고민하는 듯한 송연의 표정에 조인은 잠시 후회했다. 역시 말하지 말 걸 그랬나? 허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당장이 아니면 영영 안될 것이다. 이 순간 해야만 하는, 할 수 밖에 없는.

그러니까 송연을 볼 때마다 느끼는 이 모든 감정들은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음, 이번 주말……."

재채기처럼 숨길 수 없는 것이라서,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런데 주말엔 왜요?"

"아, …그러니까."

"……?"

"아까 말씀하신 가게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아~"

지금 송연을 붙잡는 것이 맞는 선택일 것이다.

"음…. 네, 좋아요! 그럼 시간 정해서 또 연락 주세요."

태어나서 아마도 처음 그렇게 느낀 인간 조인 字 자효는 조금씩 송연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로지 조인, 조자효, 자의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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