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의 무지개
에메트셀크 × 아젬 드림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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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트셀크는 눈앞에서 빛나는 혼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그의 부모 중 누군가가 자신과 같은 ‘눈’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 하고. 분명 푸른 혼임에도 그 속에는 다른 색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 사이에 있어도 독보적으로 독특한 혼은 다른 사람의 혼을 조금씩 삼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내가…… 줄 수……? …………크. ……셀……. 에…… 크. 에메트셀크!”
“아.”
“내 이야기가 그렇게 듣기 싫었어? 사람이 부르는데 빤히 보기만 하고.”
“그런 거 아니야. 미안. 근데 왜 불렀는데?”
슬쩍 입술을 삐죽인 그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다시 용건을 말했다. 그가 여행을 떠나있던 사이 있었던 회의록을 달라는 말에 책상 서랍을 연 에메트셀크는 회의안을 정리해 두었던 종이 뭉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중요한 내용은 노란색으로, 네가 다음 여행 때 가봐야 할 곳은 주황색으로 강조해 뒀어. 그래도 전체 내용을 꼼꼼히 살펴. 그래야 다음 회의에서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언제는 안 그랬나. 다른 건?”
“딱히. 묻고 싶은 게 있긴 하지만 사적인 거라서 말이지. 퇴근하고 이야기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리스가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는 그의 사무실을 나갔다. 검은 가면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는 검은 로브로도 숨길 수 없는 여러 색이 섞인,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빛이 조금씩 멀어진다.
그래서 에메트셀크가 자신이 품었던 의문을 풀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미지로 남았다. 휘틀로다이우스까지 함께 퇴근해 집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꺼내니, 이리스는 자기 부모님이 그의 혼에 관해 이야기한 적도 없고, 에테르를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다만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그가 별로부터 혼을 받았을 날에 꾸었을 법한 꿈과 그가 태어나기 전날 있었던 일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날 낮별이랑 무지개가 떴었다고 해. 그리고 내 이름은 그때까지도 정하지 못하셨다나 봐. 그런데 태어나는 날이 가까워지고 그런 일이 있어서 남자아이면 아스테르, 여자아이면 이리스라고 짓기로 하셨었대. 그래서 내 이름이 이리스가 된 거야.”
“낮별이라니, 정말 신기하네. 그럼 꿈은?”
“부모님 두 분 다 같은 꿈을 꾸셨는데, 처음 보는 생명체들이 빛 덩어리를 건넸대. ‘이 빛은 종말의 그림자가 피어나지 않은 별을 위한, 우리들의 마음을 모은 희망. 부디 이 빛을 세계로…….’ 그런 식으로 말했다나. 그래서 나를 아모로트로 흔쾌히 보낸 건 아닌가 싶어.”
“정말 허무맹랑한 소리군…….”
“그렇지? 결론은, 그 사람들의 마음이 모였기 때문에 내 혼의 색이 그렇게 다채로운 것 아닐까, 하는 추측만 해봤어. 물론 그게 정말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말이지.”
입을 가리고 살짝 웃은 그는 그대로 긴 하품을 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밀린 업무를 처리했으니 피곤할 만도 하다. 그 모습을 본 휘틀로다이우스가 그를 토닥이며 얼른 잠들기를 권했다.
“응. 일단은 잘게. 너희도 잘자.”
“잘자, 이리스.”
“잘자.”
두 사람에게 가벼운 입맞춤과 함께 밤 인사를 건넨 그가 침실로 들어갔다. 어차피 그들도 들어가면 서로 끌어안고 잠들 텐데 무엇 하러 이러는지. 하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파랑. 생명이 가라앉는 명계를 가득 채운 에테르의 빛이자 생명이 떠오르는 뭍, 물질계를 감싼 바다의 색. 그 자체로 그것은 생명의 빛과 다름없는 색. 그래서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그가 이 세상의 모든 색을 푸른 혼에 담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에메트셀크는 침대로 다가가 몸을 누이는, 하늘에 떠오른 무지개를 닮은 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가 휘틀로다이우스의 말에 그를 보았다.
“그나저나, 아까 돌아오면서 들은 이야기 기억해? 도시 바깥에서는 보석에 의미를 둔다니, 신기하네. 그저 예쁜 돌인데 말이야. 오히려 돌이라서 그런가?”
“뭐……. 그냥 돌이라도 눈에 즐거우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으니까. 아모로트 내에서도 그런 걸 수집하는 광물 마니아들이 있잖아. 알티마원에 가도 그걸 이용한 작품들이 많고.”
“그건 맞지. 흐음, 그럼, 이리스의 혼을 닮은 보석도 있으려나? 늘 자기 혼이 어떤 색인지 궁금해했으니 보여줄 수 있는 보석이 있다면 좋을 텐데.”
그 말에 동의나 부정을 표하지 않았다. 말이 떠오르지 않아 할 수 없다는 것에 가까웠다. 확실히, 보는 눈을 가진 자신과 휘틀로다이우스를 부러워하던 그는 에메트셀크가 에메트셀크이기 전, 약간의 지혜를 사용해 그가 보는 에테르의 빛을 보여주었을 때 무척이나 감탄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혼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더없이 아쉬워했다. 물론 자신이 그 색을 최대한 흉내 낼 수는 있겠지만, 쉬이 표현할 수 있는 빛도 아닌지라 시도했다가 포기하기도 수천 번이었다. 심지어 예술의 정점에 있는 알티마에게 부탁했을 때조차 도무지 그 색이 나오지 않아 결국 그조차 포기했을 정도니, 말은 다 했다.
하지만 별이 긴 시간 끝에 만들어 낸 광물이라면 어떨까. 무지개라는 태초부터 존재해 온 자연 현상이 그녀의 혼과 같다면, 광물 또한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에메트셀크는 그것을 생각에서 그쳤다. 위원회는 단 한 사람을 위해 시간을 일부러 쓸 수 있을 만큼 한가한 위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는 것은 우연히 기회가 생긴다면 이용해도 괜찮다는 소리였다. 며칠 뒤 에메트셀크는 명계를 관찰하던 중 필요한 자료가 생겨 이게요름원을 향하다가 마침 그곳을 찾는 외지인을 만났다. 어차피 목적지도 같겠다, 그는 갑작스러운 동행자와 함께했다.
“그런데, 거기서 뭘 찾으려고?”
“제 친구가 광물을 좋아하는데, 필요한 자료가 있다고 해서요. 그래서 대신 그 자료를 복사하러 왔습니다.”
“광물이라.”
그렇다면 파다니엘원에도 관련 자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던 그는 문득 얼마 전 휘틀로다이우스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무지갯빛을 품은 광물의 존재 여부.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여행자에게 물었다.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런데, 광물 중에 파란색에 오색 빛이 섞인, 그런 것도 있나? 투명하다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오색 빛 보석이라, 오팔이라고 하는 보석이 있다고는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표본이 있다면 친구에게 보여주고 자료를 구해볼 수도 있을 것 같군요. 수집 목적인가요? 아니면 선물?”
“아는 녀석에게 선물하려고. 그런 데 관심이 있는 녀석은 아니지만. 대충…… 이런 느낌이려나.”
청명한 하늘에 떠오른 무지개를 잘게 부수어 담은 듯한 푸른 구슬은 보는 위치에 따라 속에 보이는 빛이 달라졌다. 물론 이리스의 혼은 동시에 여러 빛이 보이면서 푸른빛을 잃지 않았으니, 그것이 성에 찰 리 없었다. 만들고도 “이게 아닌데.” 하며 중얼댔지만, 상관없다는 듯 그것을 받아 간 여행자는 구슬을 돌리며 관찰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오팔과 비슷한 느낌이군요. 안내해 주신 보답으로 친구에게 부탁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 혹시…… 원석 그대로 선물하실 예정입니까?”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 녀석이 워낙 험하게 다녀서 가지고 다니다 흘리거나 망가뜨릴 게 분명하거든. 그러니 차라리 집에 두는 게 낫지. 자, 여기가 이게요름원이야. 자료 검색은 저쪽 기기를 이용하거나 그 옆에 있는 사서에게 물어봐. 여기서 자료를 받고 나서 파다니엘원으로 가볼 생각이면 저쪽 복도로 가면 돼.”
여행자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듣고 손을 흔들며 자리를 뜬 에메트셀크는 그 일을 잊어버렸고, 다시 기억해 낸 것은 며칠 후였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사무실 책상 위에는 두툼한 편지 봉투가 서류 사이에 있었다. 딱히 편지를 보낼 사람은 생각나지 않고, 굳이 있다고 하면 이리스건만 이리스는 돌아와서 쌓인 이 야기를 풀면 풀었지,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 아모로트에 있으니 굳이 편지를 보낼 일도 없지 않은가.
의아한 표정으로 봉투를 뒤집어 보니, 발신인에 쓰인 이름은 모르는 이의 것이나 수신인은 분명 자신의 좌명인지라, 외부에서 견해를 구하는 이라도 있나 싶어 자리에 앉아 편지를 뜯어보았다. 편지 봉투를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마법이 걸린 작은 상자였다. 한 손으로도 쥘 수 있을 만큼 작은 상자는 뚜껑이 투명했고, 그 안에는 물방울 모양으로 연마된 푸른 보석이 장식된 은귀걸이 하나가 들어있었다.
에메트셀크는 그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보랏빛을 어우러지도록 푸른 도화지에 뿌린 듯한 수채화를 투명한 보석으로 만든 듯한 그것은 그야말로 맑은 하늘의 무지개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었기에 잠시 감탄을 내려놓고 함께 들어있는 편지를 꺼냈다.
평안을 바라는 인사로 서두를 뗀 편지의 다음 문장은 보낸 이의 친구가 에메트셀크와 그의 절친이라 알려진 아젬의 사역마에게 신세를 졌기에 보답으로 선물을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에메트셀크는 그제야 며칠 전 외지인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편지를 보낸 이는 제 수집품 중 가장 품질이 좋은 것이라며 틀림없이 마음에 들 것이라는 말과 함께, 친구가 그의 말을 듣고 들른 파다니엘원에서도 좋은 자료를 받게 되어 보답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험하게 다닌다는 사람은 분명 아젬일 것 같아 귀걸이에 보존 및 보호 마법을 걸었으니, 파손이나 관리는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말과 인사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에메트셀크는 편지를 내려두고 다시 귀걸이를 보았다. 그때 그 여행자는 아젬을 만난 적이 있기라도 한 걸까. 그래서 그 혼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걸까. 무지갯빛의 귀걸이를 보던 에메트셀크는 눈을 잠시 감았다가 떴다.
자신이 그토록 찾던, 아젬의 혼을 닮은 돌이 제 손에 있었다. 에메트셀크는 어쩐지 이리스를 손에 쥔 듯한 느낌이 들 지경인 그 돌을 보며 상자를 손에 꼭 쥐었다.
어쩐지 평소보다 많게 느껴지는 업무를 마칠 즘 문이 열리고 휘틀로다이우스와 아젬이 들어왔다. 오색찬란한 푸른 혼이 에메트셀크의 곁으로 와서 한껏 끌어안겼다가 그의 책상을 보았다.
“일 많아? 오늘은 우리 먼저 돌아갈까?”
“아니. 이것만 하면 끝나니까 기다려. 그리고 여긴 엄숙한 장소라고 몇 번을 말해.”
“퇴청 시간인데 어때서 그래.”
그리 말하면서도 아젬은 불만 없이 떨어져 손님을 위해 마련된 테이블로 가 앉고 휘틀로다이우스와 조용히 담소를 나누었다. 에메트셀크는 두 사람을 보다가 눈을 내려 다시 문서를 보았고, 펜을 움직여 몇 마디의 문장을 더 적은 후 제 이름을 서명하고 잉크를 말린 후 봉투에 문서를 넣어 봉인하고 제 인장을 찍은 후 서랍에 넣어두었던 귀걸이 상자를 꺼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자.”
“응. ……손에 든 건 뭐야?”
“가서 보여줄게.”
기뻐할 얼굴을 생각하니 절로 피는 웃음을 참고 무뚝뚝하게 답한 그는 너무하다며 투덜거리는 아젬, 이리스를 보다가 흘러내린 하늘색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고 사무실을 먼저 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대화가 끊기지 않았다.
할 말이 그리도 많았느냐 묻는다면, 그랬다. 아젬, 이리스의 여행담은 며칠을 들어도 바닥나지 않았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십 년도 아모로트를 떠나는 이이니 당연하다. 오늘도 귀갓길을 그의 이야기로 색칠한 채 집으로 돌아온 에메트셀크는 씻으러 가려는 그를 불러 잠시 시간을 달라고 했다.
에메트셀크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이리스와 달리 휘틀로다이우스는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는 표정을 짓고 그러면 자기가 먼저 씻겠다며 잠옷을 들고 냉큼 욕실로 들어갔다. 어어, 하며 휘틀로다이우스를 보던 이리스가 머쓱한 표정으로 에메트셀크가 내민 손을 잡고 따라왔다.
그를 옥상으로 데려간 에메트셀크는 그녀의 눈에 약간의 술식을 걸어 아모로트를 떠도는 에테르를 보게 해주었다. 짙은 밤하늘에 다양한 색의 에테르가 흘렀다. 그것을 보며 감탄을 뱉은 이리스의 눈은 그녀의 혼만큼, 하늘을 따라 흐르는 에테르들만큼 다채롭게 빛났다. 그것을 보던 에메트셀크는 다시 그를 불러 술식을 풀어주고 광구를 만들어 주위를 밝힌 후 들고 왔던 상자를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새하얗고 잔 흉터가 가득한 손바닥 위에 작은 무지개가 들렸다.
“이게 뭐…… 와, 예쁘다! 이렇게 예쁜 보석은 처음 봐!”
“며칠 전에 자료를 찾으러 온 외지인을 마주쳐서 안내해 준 적이 있는데, 그 사람 친구가 광물 수집가라 해서 물어봤었는데 그때의 보답이라며 우편으로 보내줬어. ……늘 궁금해했지? 네 혼의 빛깔.”
“이게 내 혼이 품은 색이라고? 세상에…….”
이리스는 에메트셀크가 처음 그의 혼을 보고 그랬던 것처럼 넋이 나가 보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린 에메트셀크는 그의 후드를 넘겨 벗겨준 후 오른쪽 옆 머리를 귀 뒤로 넘겨 귀가 드러나게 한 후 귀걸이를 꺼내 직접 귀에 걸어주었다. 굳이 에테르를 보려고 하지 않아도 그를 본다면 언제든 혼을 볼 수 있을 만큼 다채로운 보석을 보던 에메트셀크는 무지개의 이름과 혼을 가진 이가 품에 안기자, 순간 숨을 멈추고 끌어안았다.
“고마워, 에메트셀크. 너무 기뻐.”
그의 말을 증명하듯, 그의 혼은 평소보다 더 찬란한 오색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이 너무나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워, 에메트셀크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고 그 무지개를 끌어안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영원히 그의 품에서 빛날 것만 같던 무지개는 어느 날 그를 떠났다. 종말 대책 회의 중 ‘별의 의지 창조 계획’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가면을 바닥에 내던지고 회의장을 나간 이를 뒤쫓아 갔을 때, 이리스는 회의를 위해 뺐던 귀걸이를 그의 왼쪽 귀에 걸어주었다.
그때 그는 울고 있었다. 혼조차 슬픔에 젖어 색채를 잃었다.
“미안해, 에메트셀크. 난 이 의견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어. 비켜.”
“……이리스. 제발 냉정히 생각해 봐.”
“비키라고 했잖아! 제발 날 막지 마. 나한텐 시간이 없어.”
에메트셀크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절망에 빠진 얼굴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손의 힘을 풀고 비켜서서 도시 밖으로 에테르의 흐름을 이었다.
“……조심해. 영감에게는 널 찾지 못했다고 말할 테니……. 반드시 무사히 돌아와라. 도시 밖으로 나갈 생각이겠지. 타고 가. 걱정하지 마, 도시 바깥으로 연결했으니까…….”
붙잡고 싶었다. 귀에 걸린 보석을 처음 보았던 날처럼 손에 가둔 채 떠나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지개를 손에 쥘 수 있던가. 한 걸음 두 걸음 떨어진 이가 그가 만들어 낸 흐름 속으로 사라졌다. 단지 그뿐인데 색으로 가득 찼던 세계가 황폐해진 기분이 들었다. 에메트셀크는 탄식하며 자리에 서서 가면을 벗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눈가가 시큰댔다.
그의 무지개는 다시 떠오르는 일이 없었다. 세계는 갈라지고, 그 찬란했던 혼도 갈라져 희미해졌다. 유일하게 그때의 색채를 품은 귀걸이를 손바닥 위에 둔 채 바라보던 에메트셀크는 그것을 다시 어딘가로 감추고 팔로 눈을 가렸다. 꿈에서라도 그 빛을 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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