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개화 開花

리들 로즈하트&실버 드림

* 전력 드림 60분 신데렐라 [43회 주제: 개화]

 

 

승마부 활동이 끝난 늦은 오후. 학교 안에 있는 마사(馬舍)에서는 말들이 내는 잡음과 학생들의 대화 소리가 뒤섞여 새어 나온다.

자신의 말을 돌봐주고 있는 학생들은 주로 오늘 동아리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말을 관리할 때 필요한 정보에 관해 떠들곤 했지만, 구석에 있는 1학년들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렌 말이야, 요즘 여기에 자주 오네.”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폼피오레 기숙사의 1학년생인 로랑이었다. 말의 갈기를 빗겨주며 가볍게 이야기를 꺼낸 그는 제 옆에서 말에게 각설탕을 먹여주는 세벡을 슬쩍 보았다.

묵묵히 할 일을 하던 세벡은 그 시선과 마주치고 나서야 동급생이 뱉은 말이 자신을 향한 것임을 눈치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 이 학교 유일한 감독생 이야기 같은 건 그리 큰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왜 로랑이 제게 이런 주제로 말을 걸어오는지 알 수 없는 그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매번 와서 뭐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게. 말을 태워달라고 하려나 싶었는데 그냥 보고 가기만 하고. 직접 타는 건 무서운 건가?”

“흥. 그 녀석은 아마 무서워서 못 타는 게 아니라 운동신경이 없어서 못 타는 거겠지.”

 

아이렌이 얼마나 몸치인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단거리 달리기는 빨라도 지구력은 떨어져 금방 지치고, 유연성도 부족하며 순발력도 떨어지는 그이지 않던가. 그런 녀석이 말을 타려면, 아마 남들보다 배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세벡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고, 그건 두 사람의 대화를 우연히 엿들은 리들 또한 마찬가지였지.

 

‘그러고 보니 최근엔 좀 자주 오는 것 같긴 하네.’

 

대화에 끼어들진 않고 그저 귀만 열고 있는 리들은 요 며칠간 유독 자주 마사에 얼굴을 비추었던 아이렌의 모습을 떠올렸다. 워낙 자연에 관심이 많아 작고 귀여운 동물만이 아닌 큰 동물도 좋아하는 그는 가끔 찾아와 말들을 구경하고 가곤 했는데. 최근에는 유독 그 빈도가 잦았던 것 같다. 당장 오늘만 해도 잠깐 들렀다가 가지 않았나. 기껏 해봐야 말들을 쓰다듬고 마사 주변을 서성거린 후 떠났지만 말이다.

 

“뭣 때문에 그리 정신 사납게 왔다 갔다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자주 올 거면 차라리 입부할 것이지.”

“글쎄다. 아마 그러고 싶어도 우리 사감이 절대 안 놓아줄걸? 영화연구부의 중요한 인재를 빼앗길 순 없다면서 말이야.”

 

로랑의 말이 옳다. 만약 아이렌이 동아리 활동을 아예 하지 않고 있었다면 자신도 입부를 권유했을 테지만, 그는 이미 영화연구부 소속이지 않던가. 듣자 하니 촬영에 필요한 잡무도 처리하고, 각본도 손보고 있다 하니 쉽게 동아리를 옮길 수 없을 거다. 아쉽게도 말이지.

 

‘다음에 오면 물어볼까.’

 

소속을 바꾸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다. 다만, 이토록 자주 드나든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테니 꼭 물어봐야지. 아이렌은 늘 남의 이야기는 잘 들어주어도 제 이야기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말하지 않는 사람이지 않나.

무언가 문제가 있다면 선배로서 꼭 도와주고픈 리들은, 그렇게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그 결심을 하늘이 알아주기라도 한 걸까.

놀랍게도 그는 동아리 활동 날도 아닌, 다음 날 휴일에 이 질문을 건넬 기회가 생겨버렸다.

 

“두 사람, 나란히 앉아서 뭘 하고 있어?”

 

토요일 아침. 어제 제 말의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던 탓에 걱정되어 마사를 찾아온 리들은 건물 바깥쪽에 쪼그려 앉아있는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하고 물었다.

한 명은 자신과 학년과 동아리가 같은 실버. 다른 한 명은 모두의 관심을 받는 중인 승마부의 깜짝 손님. 평소 면식이 있는 걸 넘어 나름 친한 걸로 아는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댄 채 마사의 나무 벽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들 선배, 안녕하세요.”

“그래. 좋은 아침이구나, 아이렌. 오늘은 동아리 활동도 없는데 여긴 무슨 일이니?”

“오늘 드디어 꽃이 폈겠구나 싶어서 왔어요.”

“응?”

 

리들의 반문에 아이렌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그저 벽과 땅이 만나는 지점을 가리킬 뿐이었다.

손짓을 따라 시선을 옮긴 그는 눈에 들어오는 작은 보라색 꽃을 발견하고 한탄했다. 두 사람이 바라보고 있던 곳에는, 언제 뿌리를 내린 건지 모를 제비꽃이 피어있었다.

 

“언제였더라? 말을 구경하러 왔다가 우연히 꽃대가 올라온 채로 있는 걸 발견했거든요. 언제 개화하려나 궁금해서 자주 왔다 갔다 했는데……. 어제 보니, 슬슬 필 것 같아서 와봤어요.”

“……그런 거였구나.”

 

말하자면, 말도 구경할 겸 꽃이 피는 걸 보고 싶어 왔다는 것인가.

아이렌의 눈동자 색을 꼭 닮은 자그마한 보라색 꽃을 지그시 응시하던 리들은 아무 말도 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는 실버 쪽으로 주의를 돌렸다.

 

“그럼, 실버는 어쩌다가 여기에?”

“아이렌이 이 꽃이 피는 걸 기다리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나도 혹시나 해서 와봤던 것뿐이야.”

“……알고 있었다고?”

“음. 언제나 내 말과 인사한 후 여기 와서 제비꽃을 보고 가는 걸 봤으니까. 아마 오늘쯤 필 것 같아서 확인한 후 연락을 줄까 했는데, 와보니 이미 아이렌이 있더군.”

“그랬, 구나.”

 

아, 섬세하기도 하지. 평소엔 동아리 활동에 집중하느라 다른 건 신경 쓰지 않는 듯했는데, 아이렌의 행동은 언제 저렇게 자세히 관찰한 걸까. 리들은 평소엔 무던해 보이기만 하던 실버의 예리한 관찰력과 세심함에 저도 모르게 입을 삐죽였다.

그가 제 마음이 왜 뾰족해졌는지도 알지 못하고 있는 와중. 활짝 핀 제비꽃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둔 아이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리들 선배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나는 내 말을 보러 왔지.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확인만 하고 가려고 했어.”

“그래요? 그럼, 혹시 이 이후 별다른 일정이 없다면 실버 선배랑 같이 브런치 먹으러 갈래요? 이왕 만난 김에, 셋이서 식사해요.”

“셋이서?”

 

그래도 되는 건가. 실버랑 단 둘이 가지 않아도, 자신도 끼어도 되는 건가.

괜히 눈치가 보이는 리들은 슬쩍 실버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동급생은 제가 끼는 걸 전혀 신경 쓰지 않는지 오로라 색의 눈동자를 느리게 깜빡일 뿐이었다.

 

“……좋아. 그럼 금방 다녀오도록 하지. 두 사람 다 잠깐만 기다려 주렴.”

“네. 다녀오세요, 선배.”

“기다리고 있겠다, 리들.”

 

두 사람의 대답을 들은 후, 저도 모르게 말도 하지 못하는 제비꽃 쪽으로 시선을 돌린 리들은 서둘러 마사 안으로 향했다. 기분 탓일까. 활짝 핀 꽃에서, ‘얼른 다녀와요’라는 목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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