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잠들기 전에

아줄 아셴그로토&쟈밀 바이퍼 드림

* 전력 드림 60분 신데렐라 [42회 주제: 잠들기 전에]

 

 

팔랑팔랑. 일정한 간격으로 페이지를 넘기던 오른손이 우뚝 멈춘다.

폐점 시간이 가까워진 모스트로 라운지의 구석 테이블. 왼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하품한 아이렌은 자꾸만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기 위해 제 얼굴 여기저기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피곤해.’

 

요 며칠 제대로 못 자긴 했지만, 그게 이렇게 피곤할 일인가.

제 젊음을 맹신하고 있는 아이렌은 자신이 졸린 이유를 그저 ‘공부하기 싫어서’라고 생각했기에, 돌아가서 잘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다시 책에서 요약 노트에 필기할 거리를 찾아내려 했다.

하지만 그 동작은 너무나도 느릿느릿하고 힘이 없어 보는 이까지 졸릴 지경이었으니. 결국 지나가던 플로이드는 보다 못해 히죽거리며 말을 걸었다.

 

“아기새우야, 자는 거 아니지?”

“예…….”

“흐음. 그럼 492 곱하기 23은?”

“……그건 제가 가장 뇌 활동이 활발할 시간에도 암산 못 해요.”

“아하하!”

 

저렇게 야무지게 대답하는 걸 보니 당장 쓰러져서 잘 만큼 졸린 건 아닌 모양이다. 역시 웬만해서는 긴장을 놓지 않는 제 아기새우가 기특해서 소리 내어 웃은 그는 아이렌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잠이 오면 조금 괴롭혀서 깨워주면 되는 거겠지. 어차피 아이렌은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으니까, 약간만 놀려줘야겠다.

그리 생각한 플로이드였지만, 안타깝게도 모스트로 라운지의 점주는 직원의 근무 태만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플로이드! 빨리 뒷정리나 하십시오!”

“엥, 하기 싫은데.”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문 닫는 시간이 늦어지겠군요. 내일은 휴일이라 다들 얼른 돌아가고 싶을 텐데 말입니다. 당신도 포함해서요.”

 

다른 건 몰라도 본인도 늦게 퇴근하는 건 싫은 걸까. 플로이드는 아줄의 말에 더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삐죽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쳇.’ 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혀를 차며 사라지는 거구의 동급생을 노려보던 아줄은 방금 플로이드가 앉았던 자리를 제가 차지했다.

 

“아이렌 씨, 그만 돌아가서 주무시는 게 어떻습니까?”

 

어차피 가게도 곧 문을 닫고, 시간도 많이 늦었으며 꾸벅꾸벅 졸기 직전이니 그냥 자는 게 나을 것 같다. 공부는 내일도 해도 되지만, 수면 부족은 나중에 큰 빚으로 돌아오는 법이니까.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수면도 중요함을 아는 그는 고개를 가만 두질 못하는 아이렌을 좋은 말로 달랬다.

 

“어차피 저희도 곧 문을 닫으니까, 여기서 더 버티셔도 소용없습니다.”

“……걷기 싫다.”

“예?”

“그냥 여기서 자고 싶어요…….”

 

이런. 역시 많이 졸린 게 틀림없다. 아까 플로이드랑 대화할 때 까지만 해도 최대한 자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젠 그냥 여기서 눕고 싶어 하지 않나.

반쯤 감긴 눈으로 웅얼거리는 아이렌의 무방비함은 참으로…… 보기 좋지만, 어쨌든, 여기서 자게 둘 수는 없다.

온화하지만 견고한 방어력을 가진 평소의 무표정과는 다른, 조금만 건드려도 솔직한 감정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부드러운 무표정을 뚫어지게 응시하던 아줄은 조심스럽게 상대 등을 토닥여 주었다.

 

“제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가죠.”

“업어 주실 거예요?”

“네?”

 

그러니까 지금, 아이렌이 제게 업어달라고 한 건가? 아주 사소한 일도 부탁하는 걸 꺼리는 이 여자가, 그런 걸 부탁한다고?

‘정말 잠들기 직전이구나’ 아줄은 그리 판단하고 어찌 답해야 하나 망설였지만, 그 짧은 사이에 아이렌이 고개를 저어 버렸다.

 

“농담이에요, 혼자 갈 수 있어요…….”

“…….”

 

이게 무슨, 돈두르마 줬다가 뺏기 같은 상황이지.

눈앞에서 좋은 기회를 놓치고만 아줄은 황당함에 얼이 빠졌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임기응변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아이렌은 졸려서 오락가락하는 상황. 평소와 달리 어리광 같은 말을 하고 그걸 번복하기까지 하는 걸 보면, 아직 승산은 있다.

 

“아뇨, 업어드리겠습니다.”

“예?”

“가죠. 짐은 제가 나중에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어어…….’ 졸음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진 아이렌은 뭐라 더 대꾸하지도 못한 채, 아줄의 손에 이끌려 그의 등에 업혀버린다.

아. 저렇게나 아이렌에게 뭐라도 챙겨주고 싶은 것인가. 혼자서도 척척 상대를 업어 드는 아줄을 힐끔 본 제이드는 웃음을 꾹 참으며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아줄. 무리하지 마시죠.”

“어이가 없군요. 제가 설마 아이렌 씨도 못 업고 갈 것 같습니까? 저도 운동이라는 걸 합니다만?”

“아, 예. 그렇지요. 예.”

“…….”

 

아이렌만 아니었다면 지팡이로 한 대 쳐줬을 텐데. 제이드가 맞아줄 가능성은 없지만, 그래도 휘둘러 보기라도 했을 텐데.

가자미 눈으로 제이드를 한 번 노려본 아줄은 업은 자세를 한 번 고친 후, 그대로 모스트로 라운지 밖으로 나섰다.

 

“진짜 업어 주실 줄은 몰랐는데…….”

“많이 피곤해 보이셔서 업어드리는 겁니다.”

“……고마워요, 선배.”

“후후, 이 정도는 별거 아닙니다.”

 

오히려 제게 의지해 줘서 고맙지. 굽히는 법을 모르는 아이렌의 어리광을 볼 수 있는 건 특권이니까. 덕분에 몸은 조금 힘들지 몰라도,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그렇게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를 얼마나 걸었을까. 목을 껴안고 있는 팔이 조금씩 힘이 빠지는 걸 보니, 이대로라면 고물 기숙사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완전히 잠들어 있을 것 같았다.

아줄은 상대의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서 걸음을 옮기며, 이후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머릿속에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주무시기 전에 씻어야 할 텐데, 도착해도 바로 침대에 눕혀 드리면 안 되겠군. 아니,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직접 옷을 갈아입히거나 씻기는 건 아무래도 좀……. 아니, 마법으로 하면 되는 건데 상관없나? 아니, 그래도…….’

 

역시 도착 후엔 깨워야 하려나. 하지만, 괜히 깨웠다가 다시 잠들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아이렌이 편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아줄은, 고물 기숙사의 정문 앞에서 멈춰 섰다. 어디서 많이 본 인물이, 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아이렌을 업고 나타난 아줄과 눈이 마주친 쟈밀은 많은 의미가 담긴 한탄을 내뱉었다.

황당함. 당혹감. 그리고 약간의 불편함과 의아함까지.

수많은 감정이 섞인 한 마디와 바다에서 민물고기라도 본 듯 자신을 보는 시선에 단번에 기분이 상한 아줄의 미간 또한 사정없이 구겨지고 말았다.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아이렌에게 돌려줄 게 있어서 왔다만……. 너야 말로,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는데.”

“모스트로 라운지에서 졸고 계시길레 바래다 드리러 온 것뿐입니다.”

“아, 그래?”

 

별일 없었다는 걸 듣고 나니 더는 신경 쓸 게 없다고 생각한 걸까. 금방 여유를 되찾은 쟈밀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아줄의 뒤로 다가가 아이렌을 가져가려 했다.

 

“뭐, 뭐 하는 겁니까?”

“뭐 하긴. 이 녀석이 완전히 잠들기 전에 잘 준비는 해야 할 거 아냐?”

 

당연히 준비는 해야지. 이대로 자는 건 불편할 테니까.

하지만 그건 직접 데려온 제가 할 일이거나, 아니면 아이렌 스스로 해야 할 일이지 쟈밀이 해야 할 일은 아니지 않던가?

 

“아니, 그러니까 당신이 왜?”

“네가 하게? 이 녀석 잠옷은 어디 있는 줄 알고 갈아입히게?”

“그, 그건……. 잠깐. 당신은 그럼 어디 있는지 안다는 겁니까?”

“아니까 이러는 거겠지?”

“당신이 어떻게 아는 겁니까?!”

“글쎄다. 어떻게 알까?”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제이드를 데리고 오는 건데. 그러면 제가 아이렌을 지키는 사이, 여러모로 상대에게 유감이 많은 제이드가 법적으로 문제가 가지 않을 선에서 상대를 처리해 주지 않았을까? 어쩌면 범법적 방법을 쓸 수도 있지만, 거기까진 제 알 바 아니다.

혹시라도 상대가 깰까 봐 강하게 저항하지도 못하는 아줄은 여전히 제 목을 안은 채 졸고 있는 아이렌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아이렌 씨는 못 줍니다! 저리 가세요!”

“이상한데, 언제부터 이 녀석이 네 거였지?”

“그런 식이라면 당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아이렌 씨는 ‘제게’ 업어달라고 부탁한 겁니다. 쟈밀 씨가 대신 할 이유는 없다는 겁니다.”

“뭐?”

 

아이렌이 그런 부탁을 직접 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아줄이 이렇게나 버티는 게 이해가 간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쟈밀이 대꾸할 말을 잃은 순간. 아줄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아이렌을 다시 업었다.

그러나 그도 대업을 완수할 수는 없었으니. 왜냐하면…….

 

“……저기, 잘 준비는 제가 할 수 있어요.”

 

소란에 잠이 깨버린 아이렌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대꾸했기 때문이었다.

‘아.’ 얼빠진 소리를 동시에 말한 쟈밀과 아줄은 언제 싸웠냐는 듯 입을 딱 닫아버렸다. 자신과 눈을 맞추지 못하는 두 남자를 보며 어깨를 으쓱인 아이렌은 잠이 완전히 깨진 않은 몸으로 아줄의 등에서 내려왔다.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아줄 선배. 선배도 얼른 주무시러 가세요.”

“크흠. 그러겠습니다.”

“쟈밀 선배도……, 안녕히 주무세요.”

“음, 그래.”

 

게슴츠레한 눈으로 인사한 아이렌은 자꾸만 하품이 나오는 입을 가린 채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덩그러니 남겨진 쟈밀과 아줄은 한참 서로를 노려보더니, 인사도 없이 그 자리에서 흩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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