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싫] 빅 피터팬

5. 빅터와 초코칩쿠키 (3)

빅 피터팬 Big Peter Pan 유년기

망상요람 by Z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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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모래에게서 빅터가 정말로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메두사는 기겁하며 빅터에게 외출금지령을 내렸다. 이번에는 오르카도 옆에서 말리지 않았고, 도리어 방까지 함께 들어와 따박따박 잔소리를 늘어놓는 바람에 빅터는 반쯤 정신을 놓아야 했다. 랩터를 만났다는 기쁨이 반쯤 휘발될 정도로.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

 

지금은 외출 금지가 풀린 지 시간이 지나도 한참 지난 겨울. 벌써 이사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빅터는 그날의 기억을 종종 회상하며 더 강해질 랩터의 모습을 상상했다. 잘 상상되지는 않지만 히어로가 된 랩터가 백모래를 혼내주는 장면도. 언젠가 그것을 두 눈으로 선명하게 바라볼 날을 떠올리며 말이다.

 

그런 상념에서 벗어나 현재로 돌아오면, 빅터는 여유롭게 옷을 갈아입으며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웃옷을 입으며 내려가는 바람에 보이는 살색을 다 보고야 만 레이디가 질색했다.

 

“옷 좀 제대로 입고 내려와, 빅터.”

“귀찮아!”

“게으름뱅이야?”

“아니거든! 레이디 누나가 더더더 게으름뱅이면서!”

“빅터, 어서 가야 해.”

 

아, 레이디와 또 몇 번째일지 모를 유치한 싸움을 시작하려는 찰나 오르카가 빅터를 재촉했다. 빅터가 옷을 급하게 갈아입고 내려온 이유를 새삼 상기한 빅터는 잰 눈으로 레이디를 흘기고서야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오늘은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전투의 날이었다. 또 무전기가 울린 것이다. 현장에 나가 있는 사람은 메두사와 백모래. 지원을 나간 인원은 세월, 추가 지원 인원은… 여기 있는 전부.

 

“어이- 이제 왔냐?”

 

집으로 내려오자마자, 저 멀리서 봉고차에 타고 있는 라드가 빅터를 불렀다. 조금 붙어 다니나 싶더니 나이프 내에서는 라드와 제일 친한 사람이 되어버린 빅터였다. 주로 운동 방송을 보면서 친해졌으나, 함께 즐길 수 없다는 점이 흠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그 차에는 짙은 선팅이 되어 안을 들여다볼 수 없지만 빅터는 굳이 뺨을 대가며 안을 들여다보는 시도를 해보았다. 차 안에 타 있는 사람만 웃길 짓이었다.

 

“안너엉, 나 느께 와써?”

“아니, 이제 막 추적 중이니까 웃긴 짓 그만하고 타! 세월이 시간 끌고 있을 거다.”

 

빅터는 흠칫, 하다 고개를 끄덕이고 오르카와 함께 덜렁 봉고차에 올라탔다. 보기보다 넓은 차 안에서는 록산느가 전령으로 애용하는 새를 돌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옆에 앉아도 돼?”

“당연하죠.”

 

그에 빅터는 그 옆에 앉아 당당하게 오르카를 제 무릎에 올렸다. 이젠 제법 큰 오르카라 무릎에서 넘치곤 했으나, 빅터는 고집을 부리곤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이 따끈함에 빠져버린 걸 어떡하겠는가…. 빅터는 이미 어른이 되어도 오르카를 놓지 않을 마음이 만만이었다. 오르카가 불편하게 몸을 꿈틀거렸다.

 

“…, ~…, 또다시 A구로….”

 

아, 빅터가 일부러 인사를 건내지 않은 사람이 있다. 바로 구석에서 여러 복잡해 보이는 기기를 만지며 감자 칩을 와삭거리고 있는 가리다. 평소에 이런 일이 없으면 대게 자신의 방에 박혀 있곤 하는 이 히키코모리는, 머리에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또 무언가 엿듣고 있었다. 아마 그 소리에 집중하느라 빅터가 온 소리조차 듣지 못했을 것이다. 빅터는 그걸 알고 있었고,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또 호되게 혼나고 싶지 않았으니까….

 

“어이- 차 출발하니까 꽉 잡아!”

 

그때, 차가 출발했다.

 

부아앙-

“…!!”

“-아, 라드! 급한 건 알겠는데 좀 천천히 가십쇼! 기기들 다 쏠리잖-”

 

나이프는 범죄조직이다. 당연히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아도 별 타격이 없다는 뜻이다. 빅터는 오르카를 무릎 위에 둔 채 꽉 끌어안고 무거운 반동의 힘을 버텨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을 즐기고 있는 운전수에 감탄하면서.

사실 라드는 평소에 꽤나 젠틀한 운전수다. 백모래가 쫓기고 있기 때문에 급하게 가기 위한 엑셀을 밟은 것 뿐. 하지만 그렇다는 건, 돌아갈 때도 동일할 것이라는 얘기… 뒷일이 깜깜하다. 빅터는 차라리 눈을 질끈 감고 손잡이를 잡았다. 그 와중에 그들은 정말 빠른 속도로 현장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OO빌딩 지하 주차장에서 폭발이 일어나-]

[지반 침하의 위험이 있으니 근처의 거주민들은 급히 대피를-]

 

세월이 시간이 끌고 있다는 것이 진실인지,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주목하고 있는 곳은 불과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는 폭발 현장. 전자상가에 진열된 TV는 하나같이 같은 뉴스 장면을 틀어놓고 있었다. 바로 세월의 것.

빅터도 으아, 탄식하며 폭발 현장의 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열심히 파란 머리를 찾았다. 하지만 그런 머리색이 얼마나 흔한 세상인가. 결국 찾는 것을 포기하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 차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때, 빅터는 쫓기는 어떤 사람의 긴 노란색 생머리가 휘날리는 것을 포착했다. 빅터가 아는, 지금 상황에서 쫓기고 있을 법한 비슷한 생김새의 그 여성은 단 한 명뿐이었다.

 

“메두사 누나다!!”

“…이 근방에서 추격하고 있습니다. 지금 채가면 될 것 같습니다만.”

“그럼 차 문 연다. 바로 잡아 태워, 알았지?”

“응!”

 

마침 메두사는 저에게 쏟아지는 공격을 벗어나며 추격자들의 발을 묶어놓고 있었다. 발목과 손목에 천이 감겨 있고, 메두사의 옷이 짧아진 것을 보면 특유의 섬유를 조종하는 특기였다. 그 사이에 피를 잔뜩 묻히고 있는 백모래는 앞서서 뛰어오고 있었고, 곧 봉고차와 가까워졌다. 덜컹, 봉고차의 문이 열리자 오르카가 백모래를 낚아채 차에 태운다.

 

“-이야, 다들 구하러 와줘서 고마워?”

“…아닙니다.”

“아니에요! 무사히 오셔서 다행입니다!”

“저희를 책임질 보스가 죽으면 안 되니까요.”

“얼마나 도발하신 겁니까? 도청하느라 귀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얼마나 소리를 지르던지….”

 

안 그런 척 다들 걱정한 건지, 말이 한두 마디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조용하게 말하는 오르카, 제법 호탕하게 웃는 라드부터, 냉정하게 말하는 록산느. 요즘 점점 투덜거림이 많아지고 있는 가리까지. 나름 재미있는 조합이라 생각하며 빅터는 조금 웃었다.

 

뭐, 어쨌든.

 

빅터는 여전히 문밖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메두사가 아직 추격조를 떨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빅터조차 꽤 힘을 줘야 뜯어지는 메두사의 특기는, 이렇게 다수를 제압할 때 유용했지만-

 

“원거리에서 공격해!”

“총 든 놈들 뭐해! 당장 쏴!”

 

굳이 접근할 필요가 없는, 원거리 공격조의 공격을 받을 땐 무력했으니까.

 

“메-두우-사 누나!”

 

결국, 그때 날다람쥐처럼 뛰어드는 것이 빅터였다.

빅터는 메두사를 향해 쏘아지는 수중 감옥이나, 불줄기 같은 것들을 아슬하게 피해 가며 메두사를 채갔다. 그의 손에는 달랑 단검이나 하나 잡혀 있을 뿐이었으나, 메두사에겐 그만큼 안심되는 지원군이 아닐 수 없었다.

 

“누나, 괜찮아?”

“잘 왔네, 우리 빅터.”

“그럼 지금 바로 던질게!”

“뭐? 자, 잠깐- 으악!”

 

…이럴 땐 아닌 것 같지만.

곧 배신당한 듯한 얼굴로 집어 던져진 메두사는 무사히 봉고차 안에 탑승했다. 메두사를 가볍게 받아낸 백모래는 하하 웃으며 빅터를 향해 손짓했다. 먼저 간다는 신호였다. 종종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빅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뒤이어 이어지는 사격을 피하기 위해 우로 굴렀다.

 

“이크!”

 

…하지만 그것은 그쪽의 유도로, 빅터라 구른 방향에는 이미 특기자가 포진해 있었다. 특기인지 뭔지 웬 기다란 천이 빅터의 얼굴을 덮는가 싶어, 빅터는 다시 뒤로 달음박질쳤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늦은 움직임이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순식간에 얼굴까지 다가온 나이프가 빅터의 볼을 잘게 긁었다. 피가 튀었으나, 큰 고통을 느끼지 못한 빅터는 도리어 눈을 치켜뜨며 다가온 전투원의 명치를 쳐 기절시켰다. 이내 허벅지가 크게 팽창하며, 빅터가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그를 놓친 순간, 그는 이미 히어로의 뒤에 서 있다.

 

“컥,”

“뒤에 있다! 당장 잡아.”

 

늘 그렇듯, 압도적으로.

 

순식간에 5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뒤를 습격당해 기절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10명은 메두사에게 묶인 것이 이제야 풀려서 갓 뛰어오고 있었다. 빅터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상대할 자세를 잡았다.

이런 실전이 익숙해진 지가 언제더라. 첫 실전의 날부터 유난히 쫓겨 다니는 일이 많아진 백모래의 일부터 더듬어 봐야 했다.

 

백모래는 A국으로 찾아오긴 했지만, 목적지까지 살펴보긴 했지만 딱히 랩터의 행적을 짚어내진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어쩐지 백모래가 알려주지 않았다. 빅터에게만 참 의문스러운 태도였다. -다만 무슨 비밀 놀이를 하는 것처럼 원년 멤버를 번갈아 대동하며 ‘용한 무당’에 대한 조사를 하기는 했지만, 별 수확은….

덕분에 백모래와 나이프 원년 멤버 4인방은 꽤나 많이 돌아다녔고, 더 많이 쫓겼다. 중요한 것은- 추격이 점점 집요해졌다는 것. 점점 포위망이 좁아지나 싶더니, 이젠 시내에 나오기만 해도 쫓아오는 것이다. 한 번은 아지트가 있는 시골에서 한밤의 총격전이 벌어진 뒤 겨우 탈출한 적도 있다. 진작 가리나 록산느를 영입하지 않았다면 서로 소통이 불가해 한 명은 그대로 끌려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빅터는 싸웠다.

거의 얼떨결이었다. 아무리 자기합리화 겸 핑곗거리를 만들었다지만 이렇게나 많이 대치하게 될 줄은 빅터도 예상치 못했다. 게다가 히어로라는 사람들이 노리는 것이 생포인지 시체인지 모르지만, 공격이 너무 치명적이었다.

사실 그것은 빅터의 무력에 대응하기 위해 더 날카롭게 벼려진 공격이었지만, 빅터에겐 본능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생명의 위협이었다. 빅터는 갈수록 손대중을 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진심이 되어서 싸우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전투는…

 

“정보대로 특기는 없는 걸로 확인됩니다!”

 

재미있을 리가 없었다. 그 어릴 적, 아이들과 했던 장난 같은 대련과는 달리.

 

“젠장, 저게 다 순수 신체 능력이라는 거야?!”

 

그때, 빅터의 상념을 막기라도 하듯이 추가 인원을 태운 차가 총을 꺼내며 빅터를 향해 달려왔다. 앞, 뒤로 적을 둔 빅터가 한 선택은 바닥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것.

 

쾅!

순식간에 아스팔트가 그 속을 드러낸다. 차체의 바퀴는 그에 막혀 헛돌고, 바닥이 흔들려 달려오던 이들도 휘청거리며 중심을 찾느라 바쁘다. 그때 빅터가 할 일은 간단했다.

 

“흐, 흐에엑!”

 

콰드득, 차 문을 열고 간단히 털자 그 안에 있던 내용물(?)이 후두둑 털려 나온다. 빅터는 차 안에 더 남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요리조리 살피다, 그것을 어느 골목으로 턱, 세로로 세워 가져다 놓고 좁은 골목길을 막는다. 벽의 틈 사이에 잘 박혀버린 차는 연신 진동을 멈추지 않았다.

 

“야, 야, 저거 잡아!”

“차 터뜨리면….”

“그랬다간 건물도 무너진다고 짜샤!”

 

휘익,

그리고 그 뒤로 넘어간 빅터. 이것은 강화된 혼혈 인간인 빅터만이 할 수 있는 묘기에 가까운 움직임이었으니, 다른 이들이 쉬이 따라올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눈에 익은 비행 인원은 이미 바닥에 잘 누워있기도 하고- 빅터는 이어서 긴 골목길을 이리저리 꺾으며 뛰었다.

 

“빅-터! 여기야!”

 

아까와는 아예 종류가 다른 승용차에 타고 있는 메두사와 오르카가 보인다. 빅터는 후다닥 달려가 몸을 실었다. 이제 차를 몇 번 갈아타고 오래 달리기만 하면 오늘의 일과도 끝이었다! 다만…

 

“메두사 님, 운전을 배우셨었나요…?”

“으응? 라드한테 배웠지~ 음, 어제?”

“…?”

“그래서 너희만 태우잖아. 나머지는 다 라드 차에 있어.”

 

빅터는 오르카와 눈을 마주했다. 아직 어린 빅터라도 어제 운전을 배운 사람에게 차를 맡기는 것이 얼마나 위협적인 일인지를 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라드의 과격 운전을 경험해야 할 저쪽 차량을 걱정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첫 운전으로 다이나믹한 주행을 할 메두사의 차량에 탄 저희들을 걱정해야 할까.

 

빅터는 그게 고민이었다.

 


“하~아, 위험했네. 이번엔 진짜 잡히는 줄 알았지 뭐야.”

“그러니까 보스, 변장이라도 하라구요.”

“눈에 안 띌 줄 알았는데, 이 얼굴이 가려지기는 너무 출중했나 봐.”

“이 화상아.”

 

메두사의 주먹이 다시 한번 백모래의 머리에 작렬했다! 하지만 나이프의 모두가 그 행동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빅터와 오르카는 그저 소파에 자리를 찾아 주저앉아 있을 뿐이지만.

그만큼 오늘의 일은 특별할 것 없는 헤프닝이었다. 이내 모든 멤버가 제 자리로 흩어질 준비를 할 정도로

하지만 백모래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자자, 아무래도 얘기할 게 있어.”

“?”

“‘히어로’라는 인간들한테 우리 정보가 털린 것 같거든?”

“네? 우리 정보라면….”

“실험체 정보 말이야.”

 

그때, 빅터는 곁에 앉아 있는 오르카의 몸이 잔뜩 굳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긴장을 풀라며, 빅터가 은근슬쩍 어깨를 주물거려도 풀리지 않았다. 그만큼 중요한 얘기인 것 같아서 빅터는 이해하진 못해도 귀를 쫑긋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은 각자 어울리는 자리에 앉은 다른 나이프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나보고 그러더라고? ‘보고받은 그 실험체인 게 확실하다’라고 말이야.”

“아! 나보고도 ‘정보대로 특기는 없다’고 하던데.”

“하긴, 저한테도 그랬어요. ‘기록과는 달리 특기가 존재한다’고…. 그야 그렇겠죠. 전 연구소에서 눈에 띄게 특기를 사용한 적이 없으니까.”

 

백모래, 빅터, 그리고 메두사의 증언이 속출하자 분위기가 침중해졌다. 그들의 정보가 털렸다는 것은 곧, 그들의 능력에 대한 정보도 털렸다는 소리니까. 이제는 정체불명의 조직이라는 키도 사용하지도 못한다. 모든 걸 오픈하고 시작하는 게임인 것이다.

…이미 정보가 털려 몇 번이나 쫓긴 바 있던 범죄자 주제에 실험체와 관련된 정보 역시 은밀하길 바란 것도 죄이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우리 대중에 알려지진 않았잖아?”

“…저도 보스가 찾아와서야 알았잖습니까. 록산느나 라드도.”

“게다가 실험 정보 같은 고급 비밀이 그런데 이렇게 빨리 알려졌다는 게 이상해.”

 

아무래도 정보원을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어때?

 

백모래의 결론에, 침묵이 이어졌다. 그 말은 곧, 포트를 쳐야 한다는 말과 같다는 걸 모두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빅터도 어렴풋이 그를 알아채고, 어른들의 눈치를 살폈다. 애초에 자신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할 뿐인 그의 처지란.

…물론 그렇게까지 비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진 않지만, 어쨌든 비슷하게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응? 록산느, 왜?”

“이미 정보가 털린 건 털린 거고…. 정보원을 알아내느니 그냥 이 상황에 대응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하지만 결론이 쉽게 날 것 같지는 않았다. 특히 록산느나 가리 같은 경우는 어쨌든 마찰이 싫은 기색이었다. 빅터는 이 지난한 대화 끝에, 그 흐름을 더 이상 쫓아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어렵게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결과에 몸을 맡기기로 한 것이다.

 

“난 말야… 내 실험에 대한 기록이 남는 게 싫거든.”

“아…”

“‘나’ 같은 게 또 만들어진다고 하면 소름이 끼쳐서.”

 

아, 배고프다. 저녁은 언제 먹는 걸까. 차라리 손이 빠른 내가 어른들이 얘기하는 지금 먼저 해두고 있으면 대화가 끝나자마자 밥을 먹을 수 있고 좋지 않을까….

 

“별로 인간성은 없는 이유라 놀랐어? 하지만 실험의 ‘완성작’이 나오는 게 싫어. 그게 진짜인 것 같잖아?”

 

그건 나한테 꽤 굴욕적인 일이라….

오르카 형은 아까부터 얼굴색이 새파랗네. 저게 그렇게 진지해야 할 얘기인가? 난 아무래도 잘 모르겠는데. 물론 나도 내 실험을 다른 사람이 당한다고 생각하면 싫다. 그,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프고 힘들었던 것 같은데… 그게 또 일어나면 슬프잖아.

 

“그러니까 정보를 제공한 사람을 찾아가서 우리의 실험기록을 완전히 폐기하고, 죽여야지.”

 

…죽여?

 

빅터는 다시 백모래가 입에 담는 ‘죽인다’는 말에 몸을 움찔 떨었다. 나이프에서 지내고 있노라면 백모래의 살인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빅터는 영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백모래와 메두사가 피를 묻히고 있을 때면 묘하게 눈을 피하는 것을 보며, 메두사는 은근히 웃고는 했다.

이미 그들의 방식을 막을 수 없다는 건 빅터도 이젠 잘 알고 있다. 빅터 자신이 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위라고 해봤자 절대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것 정도. 하지만… 그것만으론은 이리도 가슴이 서늘할 때가 있었다.

 

자신이 보는 모든 것이 방관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일까.

 


 

“안녕~?”

“배, 백모래 일당이 나타났습니다!”

“뭐? 당장 다 집합하라 그래!”

“지금 각각 현장에 나가 있어서 당장은 힘들-”

“젠장!”

 

고작 스무 명 남짓하게 남아있는 로비. 가리의 정보에 따르면 전체가 대략 80명인 와중에 나이프가 일으킨 사건, 사고에 자리를 비운 히어로가 40명이다. 당연히 의도한 바이며, 백모래를 비롯한 나이프의 멤버들이 상대하기엔 적당한 인원만이 남아 있었다.

 

“빅터, 나랑 같이 시간 끌기야~”

“응, 보스.”

“가리는 메두사랑 오르카랑 같이 가서 정보 가져오고.”

“알겠습니다.”

“라드랑 록산느는 알지? 주변 엄호.”

“예!”

“…네.”

 

순식간에 나이프의 멤버들은 각자 제자리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포트의 히어로들이 그들을 막아섰지만, 그것을 막아내지 못할 정도로 만만한 나이프가 아니었다. 결국 막힘없이 제 방향으로 사라지는 이들을 막아내지 못한 채, 그들은-

 

기분이 가라앉은 빅터를 상대해야 했다.

 

“저, 저게 빅터…. 난 처음 봐.”

“나도. …우리,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남는다. 그 소리에 빅터는 움찔, 몸을 떨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아직 사람의 피를 묻혀본 적이 없건만 남의 살인에 익숙해진 것만으로도 양심에 금이 가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달려들지 못하고 어정쩡한 대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백모래는 어떤 남자와 대치하고 있었다.

 

“오, 그쪽이 서장? 세이지라고 했나.”

“그런 너는 백모래가 맞군.”

 

잠시 동안의 침묵.

그리고 거짓말처럼 서로를 향해 달려든 백모래와 단체의 서장을 시작으로 마구잡이식 전투가 시작되었다. 주로 백모래를 습격하는 히어로들을 막아내는 것이 빅터의 역할이었다.

총, 칼, 그리고 특기를 이용한 공격까지. 모든 것이 빅터를 위협했다. 그중 제일 위협적인 것을 말하자면 불을 이용한 공격. 아무리 몸이 단단한 빅터여도 불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끈한 열기가 끼쳐오는 방향을 바라보자 타오르는 불처럼 주황빛의 머리카락을 띠고 있는 하얀 정장의 히어로가 보였다.

 

“불은 통한다! 그를 엄호하며 기회를 노려!”

 

빅터는 더는 생각할 새가 없었다. 아크로바틱한 동작으로 등을 뒤로 눕혀 칼이며 발차기를 피하고, 그대로 백 텀블링을 하며 공중에 뜨자 그 자리로 뒤늦게 총탄이 쏟아졌다. 한 템포만 늦었다면 총알받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중도 마찬가지. 그 동선을 노린 듯이 불꽃이 빅터를 맞이했다. 후끈한 열기가 훅, 끼쳐오는 것에 빅터는 한쪽 눈을 찡그렸다. 마치… 불로 만든 그물 같았다. 결국 마치 높이뛰기를 하듯 공중을 딛고 그 줄을 넘었다.

 

평소와는 다른 싸움이었다. 그동안 빅터의 비상식적인 움직임과 힘에 대응하지 못해 어물쩍거렸던 것과는 달리, 철저한 훈련을 한 것처럼 순차적으로 빅터를 노렸던 것이다. 하긴, 그럴 만한 시간이야 충분했다. 벌써 몇 번이나 부딪쳐왔으니.

 

하지만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마첸티표 수제 폭탄!”

“힉!”

 

빅터는 저가 건물 한구석으로 몰려있다는 걸 깨닫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되레 히어로들 쪽으로 도망가야 했다. 궁! 하는 폭음이 들리며 순식간에 건물 기둥이 와삭, 하고 금이 갔다. 폭탄이라기엔 귀여운 위력, 빅터라면 갈비뼈 몇 대가 나갈 뿐의 공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을 뻔했어. 나, 히어로에게.

 

빅터는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폭탄이라는 이미지는 그만큼 빅터에게 공포를 줬다. -언젠가 히어로에게 구함을 바랐던 적이 있던가. 하지만 지금의 히어로는 빅터의 적이었다. 심지어 목숨을 위협하는…. 하지만 멀었던 현실의 히어로보다 만화영화가 가까웠던 빅터에게 히어로를 적으로 여기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머리로는 적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점점 가까워져 가는 히어로들은 하나같이 빅터의 목숨을 노렸다. 그에 빅터는 본능적으로- 지금 빅터를 둘러싸 포위한 모두가 그들이 언젠가 저를 구해줄 히어로들이라기보단… 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 시야가 점점 좁아져 간다.

 

쾅!

“라이!”

 

자비 없이 뻗어진 손이 한 히어로의 머리를 잡고 그대로 바닥에 찧는다. 한순간에 기절한 사람은 머리에서 피를 흘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빅터는 그 사람을 방패삼아 등에 두른 채 발을 뻗었다. 총구를 겨눈 사람들은 큭, 소리를 내며 무기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에 달려드는 사람들은 모두 근거리 공격계뿐. 빅터는 그것들을 옆으로 뛰어넘어 가뿐히 회피한 채 사각지대를 찾았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빅터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한순간에 무릎에서 힘이 빠졌다. 아, 그는 그렇게 손수 피를 묻히고 만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구명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어 본능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그는….

 

“…!”

 

하지만 다행히, 그 사람은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끝내 그것을 확인한 빅터는 그를 안전한 자리에 놓아두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이곳이 전장의 한 가운데임을 잠시 잊어버리고서.

 

부웅!

-그 결과, 무릎 꿇은 빅터의 머리 뒤로 두꺼운 둔기가 날아들고 있었다. 빅터가 자신이 한 짓에 한동안이나 충격을 받고 있던 그 몇 초는 그에게 치명적이었다.

 

아, 그것이 뒷머리에 임박하기 직전의 순간,

 

퍽!

“아야, 빅터. 정신 차려야지?”

“보, 보스?”

 

보스가 왜 여기 있지?

빅터는 제 앞으로 쏟아지는 하얀 머리칼에 멍하니 생각했다. 그 하얀 머리칼 사이로 흘러내리는 빨간 액체가 제 얼굴로 뚝, 뚝 떨어지는 순간에도 상황파악을 못 한 채 가만히 무릎을 굽힌 채일 뿐이다. 그렇게 상황 파악을 위해 머리가 느리게 흘러가고….

 

“…보스! 괜찮아?!”

“난 괜찮은데…. 정신 차려야 하지 않겠어, 빅터?”

 

나 때문에…!

뒤늦은 죄책감에 황급하게 외쳤으나, 상황은 그를 따라주지 않았다. 백모래가 버티고 서있던 자리에 다시 주먹이 날아들자, 빅터는 백모래를 한 손으로 가볍게 잡아들고 그 자리를 피해야 했던 것이다. 다시 등을 맞대고 선 두 사람은 짧게 대화를 나눴다.

 

“미, 미안해. 나 때문에.”

“빅터, 이 사람은 우리를 위협하는 적이야. 똑바로 뒤를 확인해야지.”

“그건….”

“-뭐, 괜찮아.”

 

날아드는 총칼, 각종 공격계 특기의 향연 속에서 두 사람은 순간순간 짧게 대화를 나눴다. 그럴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그들에겐 있었다. 그래서 빅터는 의문을 가졌다. 보스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걸까? 하는 작은 기대감이 일었다.

 

“뭐든 우리가 대신해줄 테니까. 빅터는 아직 어린걸.”

 

내가 지켜줄게.

 

콰직,

차마 알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백모래의 하얀 정장 바지에 피가 튀었다. 빅터는 차라리 그것이 물감이라고 믿고 싶었다. 분명 어린 빅터를 배려하는 달고 다정한 말이지만, 잔인한 말이기도 했다.

 

원래는 네 몫이었을 살인의 업을 지겠다.

 

그것은 결국 그가 빅터로 인해 사람을 죽이게 된다는 것 아닌가. 그 사람은 빅터 때문에 죽는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에 빅터는, 빅터는….

 

“…으응.”

 

그런 애매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화르륵!

“지금 한눈팔 시간이 있냐, 빌런 새꺄!”

 

그때, 다시 빅터를 노리는 화염이 날아오자 빅터는 공중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그 자리로 달려오는 것은 공중에 발판을 만들어 발을 디딜 수 있는 히어로였고, 빅터의 멱살을 강하게 붙잡아 들어 올렸다.

 

“쏴!”

 

요란한 발포음, 빅터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듯 얼굴을 찡그리며 저를 붙잡은 히어로를 뒤로 던졌다. 총탄의 일부를 맞았는지 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에 반해 빅터는 총탄 하나하나를 눈으로 보고 피해내고 있었다. 몸을 숙이고, 무너진 책상을 방어막으로 써서 그것을 피하고, 쏘기 전에 총을 꺾고, 떨고 있는 히어로를 기절시키고….

 

“보스, 임무 완료야~”

“메두사! 빅터, 그럼 가자!”

 

그때, 이곳이 싸움터가 아닌 것 같은 태연한 얼굴로, 온통 피를 묻힌 메두사와 가리가 등장했다. 그의 손을 잡고 있는 오르카의 얼굴도 빅터의 것만큼이나 창백했다.

 

슉,

빅터는 제 뒤에서 오르카를 향해 날아가는 단도를 느끼고 즉시 잡아챘다. 형인 오르카를 노렸다는 분노에 꽈득, 소리와 함께 단도가 종잇장처럼 우그러지자 뒤에서 히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에 개의치 않고 주먹을 들었지만….

 

어쩐지 여전히 무서워서.

 

“끅,”

 

그 히어로의 것인지 빅터의 것인지 모를 단말마와 함께 히어로는 기절했다. 이미 나이프는 뒤쪽 출구로 뛰어가고 있었다. 제일 뒤에 남은 빅터만 모든 공격을 받아내가며 그를 따라가야 했다.

 

탁,

“빅터… 늦었어.”

“…헤헤, 미안.”

 

그렇게 출발한 차 안. 모두는 피와 먼지로 엉망이었다. 땀이라곤 하지 않겠다. 다들 대단한 위인들이라 싸움을 곧잘 했으니까. 이 중에 제일 부상이 심한 건 빅터 대신 맞는 바람에 머리에서 피가 뚝뚝 흐르는 백모래일 정도였다.

 

“추격 붙어옵니다! -가리 형, 부탁해요!”

“네.”

 

빅터는 죄책감에 손을 꼼지락거렸다. 아프지 않게 대신 맞아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지만 죄책감이 더 크게 자리했다. 빅터가 정신을 놓지 않았다면 백모래가 아플 일이 없었을 것 아닌가. 결국 그 죄책감도 백모래에 대한 걱정에서 나온 것.

 

빅터는 백모래를 걱정하고 있는 자신에게 벼락같이 소리쳤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삑, 삐빅,

[-C조, 상황은?!]

[두 블록 뒤에서 추격 중입니다- 앗, 사라졌다!]

“B구역 두 블록 앞에서 우회전 확인.”

[B조, 당장 따라가! C조도 우회전한다!]

 

그 와중에 가리는 훌륭하게 히어로의 무전을 도청, 목소리를 따라 하며 잘못된 정보를 흘렸다. 그 자체가 정보 수집과 조작이 주 종목인데다, 목소리를 순식간에 바꿀 수 있는 특기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라드, 이제 바꾸십쇼.”

“라저!”

 

그에 반해 라드의 능력은 환상을 덧씌우는 것. 막상 만지면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지만, 만지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라드는… 절대 추적되지 않는 운반업체로 일했다고 한다. 당연히 1인 기업이었고.

-나이프에 들어와선 그 특기로 빅터를 놀려먹기 바빴지만. 용돈이랍시고 줘서 받아 들어 더듬더듬 살펴보니 먹고 나온 껌 종이 쓰레기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쨌든 가리가 두 번쯤 히어로들을 혼란에 밀어 넣고, 라드가 특기로 세 번쯤 차의 모양을 바꾸고 나서야 그들은 완전히 안심할 수 있었다. 물론 차에 탄 그 순간부터 긴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빅터가 침묵을 지키니 다들 조용해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 역시, 깬 사람은 빅터였다.

 

“그… 보스, 역시 미안. 나 때문에.”

 

어쨌든, 사과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먼저 나선 것이다. 그에 메두사가 먼저 반응했다.

 

“뭐야, 보스가 웬일로 다쳤나 했더니 빅터 대신 맞은 거야? 그거야말로 웬일이네.”

“빅터 정신 놨습니까? 여태 어째 잘한다 싶었습니다. 알만 하네요.”

“…가리, 말이 심해요.”

 

가리의 말에 빅터는 괜히 입술을 비죽였다. 빅터의 입장에서는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는데, 그를 몰라주는 것 같아 속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딱히 대거리를 할 수도 없었다. 빅터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당연하다는 듯 범죄를 저지르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빅터가 조용해지자, 가리는 미안해졌는지 쳇,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나이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본거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포트의 간부야.”

“포트?”

 

나이프의 멤버를 모으더니,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것에 빅터가 반문했다. 그에 생뚱맞다는 얼굴을 하는 것은 나머지 멤버들이었다.

 

“…아무도 빅터한테 히어로 조직 이름 안 알려줬어?”

“아무래도? 빅터 녀석은… 상관? 없기는 하죠, 보스?”

“쟤도 재미없는 얘기는 안 듣잖습니까.”

“흠흠, 어쨌든. -빅터, 포트는 히어로 조직의 이름이야.”

“!”

 

빅터는 머리 위로 느낌표를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며. 슈퍼맨은 슈퍼맨이고, 배트맨은 배트맨인데, 포트? 되게 주방 같다. …아무래도 이 공간에 있는 모두가 동의할 생각이었다.

 

“간부면… 전 히어로쯤 되려나요?”

“지금도 가끔은 현역일걸. 캐리엇이라고.”

“와우, 실험 관련 정보를 갖고 있으려면 그래도 ‘그’ 연구소 관련인사라는 거 아닌가? 뒤가 구린 인간이었네.”

“히어로라고 다 깨끗한 건 아니지 않을까요.”

 

결국 딴생각을 시작한 빅터는 사탕을 입에 물고 있는 세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세월이 슬쩍 빅터를 보는가 싶더니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주었다! 빅터는 그에 조금은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사탕을 받았다. 작은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쟨 신경 쓰지 말고 얘기 계속해요. 어린애잖아.”

“음, 뭐. 어쨌든- 마침 근처에 있잖아. 캐리엇 연구소.”

“아- 빅터가 종종 다니는?”

 

슬쩍, 제 이름이 거론되는 것에 눈을 잠깐 돌렸다. 오르카가 왠지 또 새파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른들끼리 얘기만 하고 있으면 이런다니까. 그나저나 캐리엇 연구소? 연구소면 마일로 형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안 가봤는데… 기다리려나?

 

“그래. 일단 거기를 털어봐야겠어. 하필 생명공학 연구소인 게 의미심장하잖아?”

“‘그’ 간부가 운영하는 곳이면- 그리고 ‘그’ 캐리엇이라면 보안이 대단할 텐데요.”

“일단 그냥 훼방을 놓는 게 목적이니까 너무 힘줄 필요는 없을 거야. 잘 부탁해, 가리~”

“하…. 해보겠습니다.”

“쩝, 거래되는 게 있으려나.”

“…너무 사심을 채우는 거 아닌가요, 라드.”

 

-큰일 났다. 그동안 매일 나와서 기다린 건 아니겠지? 빅터는 뜬금없는 위기감에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얼마나 방치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요 근래 백모래를 구해오고 그다음 작전을 짜서 오늘 다녀오기까지… 거의 일주일이었다!

그동안의 만남은 매일 만나는 것까진 아니어도 늘 같은 시간에 만나는 것이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그러니 약속 시간에 나와서 상대가 나오지 않으면 돌아가면 끝, 이라지만… 바람맞는 게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란 걸 빅터도 잘 알았다. 그걸 연속으로 일주일, 아니 주말을 빼면 닷새씩이나.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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