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ZZERO
오르카는 그 ‘애’를 처음 봤던 날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아니, 그 ‘애’가 태어나던 날을. “-개체 출산했습니다!” “실험체가 애가 있어서, 실험하지 말자고? 언제부터 실험체한테 그리 공감하셨어 그래?” “어미 개체 실험 속행. 새끼도 좀만 더 크면 곧-” 만삭의 몸으로 잡혀 온 실험체는 삶의 의욕이 없어 보였다. 새끼 가진 어미가 으레 보이
비일상적인 날이었다. “흐윽, 윽….” “형, 형아?” 피, 익숙하다. 엉망진창, 실험 중이라면 익숙하다. 쓰러진 사람? 죽어 나가는 실험체 정도야 익숙하다. 하지만 오르카는 숨이 넘어가도록 히끅대며 숨을 참아내야 했다. 저를 꼭 안아 들고 있는 흑표범 혼혈의 품에 파고들며. 그야, 저벅, 저벅, 저벅…. “산 사람이 있었네.” “메,
그렇게 몇 달이 또 지났을까, 백모래는 그들을 불러 모았다. “새로운 동료를 구할 거야!” “? 동료는 여태까지 구해왔잖아요. 또 무슨 특별한 게 있나요?” 그리고 그것은 매우… 새삼스러운 말이었다. 여태 백모래는 다양한 범죄조직에서 다양한 멤버를 동료로 포섭해왔기 때문이다. 그 방식이 설득인지, 폭력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중 대표적인 인물
그런 날이 얼마나 반복되었을까. 계절이 흘러 빅터는 5살이 되었고, 9살의 오르카는 언제나 어휘력이 훌쩍 늘어난 빅터와 함께였다. 오늘 아침도 백모래에서 수업을 들은 두 아이는 백모래와 함께 집을 나섰다. 레이디도 마찬가지의 수업을 듣긴 했으나, 여느 때처럼 집에서 놀 계획이란다. 랩터네를 만나는 것에는 영 흥미가 없는 모양이라 오르카는 더 채근하
1년이 지났다. 그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생일’이란 것에 관심이 생긴 빅터에 의해 1년간 모든 나이프 일원들의 생일을 놓치지 않고 축하했으며, 빅터는 6살이 되었고, 레이디는 8살, 오르카는 10살이 되었다. 그동안 잘 먹고 잘 큰 레이디와 오르카는 제법 소년의 태가 났다. 빅터야 뭐, 늘 그대로니까. 아, 세월이 드디어 노인 태를 벗고 30대
“랩터 누나는 살아 있어.” “뭐?!” “다리를 다쳤다고 하긴 하는데….” “뭐어?!” “그래서 보스가 랩터 누나를 다치게 했다고 후야 님을 죽여버렸어.” “뭐어어?!” 그렇게 얼마나 부둥켜안고 울었을까, 결국 진정한 오르카는 다시 평소처럼 돌아와 상황을 알려주었다. 큰 폭발이 있었고, 그에 하필 근처까지 왔던 랩터가 휘말렸다고. 그 결과는 아직
“…난 모르겠어.” 하지만 끝내 빅터는 답할 수 없었다. 이미 마음의 거리가 저만치는 멀어진, 가족과는 거리가 먼 사이를 ‘우리’라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이 사람도 필요하고 이 애들도 다 내 동료라서 말이야. 두고 갈 수가 없겠네.’ 사이비 교단에서 주교와 있었던 대화가 불현듯 떠오름과 동시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우
“정보는 구했나?” “죄, 죄송합니다. 국경을 넘어야 해서… 사소한 목격 정보밖에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쾅! 그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혈이 흘러내리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붉은 머리를 소유한 여자가 비싼 보석으로 장식된 탁자를 강하게 내리쳤다. 그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그것이 쩍- 하고 힘겹게 입을 벌리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그 결과를
“이사 가자.” 아침 식사 자리에서 메두사가 그렇게 선언했다. 지난 일의 연장선인 모양이었다. 레이디는 ‘이사’라는 생각에 들떴는지 벌써부터 몸을 들썩이고 있었는데, 오르카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의 이사 과정이 어떤지에 대해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결국 따라가는 구나.’ 정도의 생각이 전부. 그렇게 제각각의 반응을 보
쿠키를 만드는 건 쉬운 편이다. 빵처럼 발효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스콘처럼 함부로 주물럭거리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저 재료를 다 때려 넣을 뿐이라고 빅터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빅터의 철학대로 완성된 초코칩쿠키는 늘 호평이었다. 그리고 빅터가 그런 쿠키를 만드는 날은 주로, “또 그 연구소 놀러 가게?” “응! 마일로 형 보러 갈 거야!
“짜잔~” “헬기다!” 끝내준다! 빅터는 집에 돌아오자 보이는 커다란 헬기의 모습에 눈을 반짝이며 폴짝 뛰었다. 오르카는 그 전에 빅터의 품에서 내려온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가만히 서서 헬기를 구경했다. 빅터의 장래 희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참고로 이전엔 자동차가 주인공인 만화영화에 나오는 스포츠카였다. 그런데 (원래도 조촐한 나이프이긴
백모래에게서 빅터가 정말로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메두사는 기겁하며 빅터에게 외출금지령을 내렸다. 이번에는 오르카도 옆에서 말리지 않았고, 도리어 방까지 함께 들어와 따박따박 잔소리를 늘어놓는 바람에 빅터는 반쯤 정신을 놓아야 했다. 랩터를 만났다는 기쁨이 반쯤 휘발될 정도로.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 지금은 외출 금지가 풀린 지 시간이
빅터는 마일로를 찾아가기로 한 아침부터 열심히 쿠키를 구웠다.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재물용이니까 아아주 많이. 덕분에 요즘 들어 빅터를 살살 건드리던 사소한 고민들은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다. 다만 수업을 듣지 않은 빅터에 대한 오르카의 잔소리가 유난히 귀를 두드리고 있을 뿐이다. “빅터, 그러니까 숙제는 꼭 해야-” “그럼 다녀와서 할게!”
어느새 해가 넘어간 한겨울. “나도 킥보드 타고 싶어어-!” “빅터, 가져도 네가 더 빠를 거야….” …빅터가 지금 이러고 있는 이유는, 평소의 텐션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마일로의 위로를 받은 뒤 빠르게 회복한 빅터는 평소대로 생기발랄하게 나이프 아지트를 휘젓고 다녔으며, 심지어는 TV를 보다가 불어펜과 킥보드 광고를 보고는 순식간에 꽂혀버린
쾅, 새벽에 때아닌 폭발이 일어나고, 그에 한 대의 차가 거의 뒤집히듯이 하며 거칠게 도로를 가로지른다. 그만큼 큰 폭발이라 그 주변의 모두가 잠에서 깨고 신고를 하느라 난리였다. 아직 제대로 냅킨이 설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은 포트에게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곳곳에서 난동을 피우는 깡패며 각종 폭주족, 그리고 시위 단체를 가장한 불법 조직
아프다. 빅터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치료해준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 같은데, 아직 그 치료인력이 오지 않을 정도로 짧은 순간 만에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구속복은 입고 있었다. 그 상태 그대로 바닥에 던져져 있었던 모양이라 피가 잘 흐르지 않는 데다가, 갈비뼈의 부상이 심상치 않았다. 빅터는 폐가 날카로운 것에 찔리는 감각에 고통스
“빵은?” “여기! 딸기랑 체리 콤포트는 여기 있고- 생크림도!” “11인분이라 그런가, 엄청 많네.” 나이프는 무사히 이사를 완료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한 다세대 주택이었는데, 두 집을 골라잡아 인원을 나눠서 배치했다. 편의를 위해 여성조와 남성조로 나뉘었는데, 단 한 가지 문제가 된 것은- “아침 배달 왔습니다~” 바로 밥이었다.
하얗게 달빛이 나리는 밤, 그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남자가 흑백의 여성과 아이를 동반하여 빌딩 숲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곳은 시골의 한 작은 읍내. 산과 빌딩이 잘 어울려 있는 곳. 그리고 온갖 기담이 가득한 곳이기도 했다. 그 한 가운데서 노란 머리의 장발 여성이 먼저 질문했다. “보스, 그래서 빅터는 왜 두고 나온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