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빅터와 딸기생크림케이크 (1)
빅 피터팬 Big Peter Pan 유년기
“정보는 구했나?”
“죄, 죄송합니다. 국경을 넘어야 해서… 사소한 목격 정보밖에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쾅!
그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혈이 흘러내리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붉은 머리를 소유한 여자가 비싼 보석으로 장식된 탁자를 강하게 내리쳤다. 그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그것이 쩍- 하고 힘겹게 입을 벌리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그 결과를 만든 팔의 옹골찬 근육은 붉은 정장 위로도 여실히 비치고 있어, 충분히 그럴만한 힘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의 부하는 보기에 불쌍할 정도로 비굴한 자세로 그 앞에 머리를 박고 꿇어앉았다. 뒷일이 무척이나 무섭지만, 비위를 맞춰봤자 그 결말이 어떨지 알고 있는 자의 모습이었다.
“그거라도 지껄여 봐.”
“예. 정신연령이 많이 떨어져 보일 정도로 모자란 인물이며, 같은 실험체 출신의 보스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정보는 차후에 거래로 포트에 넘기지. 다음.”
“그… 연구소가 터진 직후 마을에 등장했다고 합니다.”
“연구소? 내가 지원하다가 불 난 거기?”
“예.”
“하, 그 년놈들 짓이었군.”
손해가 막심했지.
짧은 한숨을 뱉은 캐리엇, ‘괴력’의 히어로가 주름진 얼굴에 혈관을 불뚝이며 손을 꺾었다. 자연스러운 손 풀기 같은 움직임에, 부하는 잔뜩 긴장한 듯이 등을 떨어야 했다. 그 등 위로 짙은 시가 연기가 훅, 풍겼다.
“야.”
“넵.”
“연구소 세워 봐. 똑같은 걸로. 이 나라에.”
“알겠습니다.”
비싼 미끼 좀 써보자고. 그놈들이 맞는지 확인해보게.
-그가 짧고 선명하게 중얼거리는 말이 새하얀 연기처럼 퍼져나갔다.
그 이후의 일상은 거짓말처럼 평화로웠다. 열심히 공부하고, 점심을 먹으면 숙제하고.
다만 그 뒤의 시간이 붕 뜨는 바람에 할 것이 없어진 빅터로서는 하루종일 메두사나 레이디, 세월이나 오르카를 달달 볶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아아아- 레이디 누나아, 나랑 놀아주라!”
“싫어! 또 쌈박질이나 하자고 할 거지? 귀찮거든-”
“그럼 오르카 형은? …어디 갔지?”
“도망갔겠지. 참고로 난 싸움 못한다, 꼬맹이.”
진작에 빅터를 떠나 방으로 도망친 오르카는 세월의 말에 뜨끔, 어깨를 움츠리며 읽던 책을 내려놓았다. 빅터의 꼬장 아닌 꼬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오르카도 이해하는 게, 그동안 빅터의 눈높이에 맞춰서 맘껏 달리고, 싸우고 놀아주던 아이들이 없어지지 않았는가.
사실 이건 백모래의 잘못이나 다름없었지만… 당연히 백모래는 책임지지 않았다. 빅터가 그에게 조르기는커녕 그의 눈치를 슬슬 살피고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달달 볶이는 건 나머지 나이프 멤버들. 메두사의 한숨이 점점 높아져만 갈 때쯤이었다.
“보스? 누구야?”
“빅터 집에 있었네? 다들 불러와 봐. 소개할 사람이 있어!”
허구한 날 집에 고양이를 들여와 하루종일 껴안고 살던 사람이 웬일로 밖에 나가나 싶더니, 처음 보는 사람을 소개해주겠다며 나이프를 불러보았다. 그렇게 방에 숨었다는 걸 들킨 오르카는 응징으로 빅터의 품에 달랑 들려 안긴 채 밖으로 나가보아야 했고, 그렇게 마주한 사람은-
“안녕하십니까!”
군기가 바짝 든 양아치였다.
아니, 양아치 맞나? 어쨌든 백모래가 들여왔으니 그쪽으로 일하는 사람을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르카가 말한 것은… 외관이다. 껄렁하게 민소매를 입은 팔뚝에 가득한 문신. 피어싱이 박힌 눈썹과 귀며 입술. 머리카락은 수더분하게 더러운 주황색 염색모였다.
TV에서나 나올 법한, 글이나 만화로 나올 법한 전형적인 양아치였다. 오르카는 반사적으로 빅터의 눈을 가렸다. 검은 물이 들까 걱정하는 학부모의 모습이었다.
“후야가 없어서 그동안 시내도 못 가고 불편했잖아~ 이참에 또 다른 멤버도 영입하면 좋을 것 같고. 좋지? 이름은 라드라고 해.”
“오토바이, 자동차, 트럭, 버스, 헬기, 비행기! 다 맡겨주십쇼! 라드라고 합니다!”
“그럼 다들 소개들 하고 있어~ 난 또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어서.”
어?
나이프 멤버들은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굳었다. 다들 소개하려고 데려온 사람이 막상 자리를 비우면 어쩌란 소리란 말인가 싶은 마음을 공유하고 있었다. …빅터는 모르겠지만.
사실 백모래의 외출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그냥 노는 것처럼 보여도 각종 인력을 동원해 랩터의 정보를 찾고 있었으니까. 공항에서의 모습이 마지막인 걸 보면 분명 해외로 나른 건 확실한데, 정보가 없다며 슬퍼하던 백모래를, 오르카는 밤에 몰래 본 적이 있었다.
하기야, 해외로 가는 건 방법이 없다. 비행기를 운용할 돈이야 만들면 되지만, 그걸 운전해줄, 비밀을 엄수할 운전자는 더욱 없다. 이제야 라드를 채용했으니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 외에도 나이프를 의식하기 시작한 국가와 견제 조직 등, 좀 더 복잡한 어른들의 사정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오르카도 알 수 없었다.
이제 곧, 이사 가려나?
오르카가 정확한 직감을 느낄 때였다.
“…양아치 같아.”
갑자기 레이디의 촌철살인이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이 공간에는 조금 빡친 얼굴의 라드, 태연한 기색의 레이디와 세월, 슬쩍 땀을 흘리고 있는 오르카와 메두사가 남았다.
빅터는 뭐 했냐고?
“안녕! 난 빅터야. 만나서 반가워!”
…같은 전형적인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어느새 두 눈에서 오르카의 손을 뗀 채였다.
그런 정상적인 자기소개가 인상 깊었는지, 라드는 눈에 띄게 기뻐하며 빅터에게 악수를 요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그에 빅터 역시 반갑게 손을 내밀었고, 신나게 위아래로 흔들리는 손은 이제 흥겨워 보일 지경이었다.
“아이고, 형님! 반갑습니다!”
대사는 에러였지만.
단숨에 빅터의 표정이 아리송해진다. 어딜 보나 다 큰 성인이 저에게 노골적인 존댓말을 쓰는 게 처음인 탓이리라. 오르카는 이 환장할 족보 브레이커를 허탈하게 바라보며 그다음으로 나올 대사를 점쳤다.
“나는 형이 아니-”
“난 메두사야. 여긴 세월. 그리고 여기 애들은 레이디랑 오르카. 우리 설명은 들었던가?”
“아뇨, 누님. 전 스카웃된 게 전부인뎁쇼. 하하… 저 지금 개털이라서요. 어쩌다 보니.”
그리고 빅터의 대답을 메두사가 자연스럽게 잘라가고 나서야, 오르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예정된 혼란을 뒤로 미루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상황이 정리되지 않았는가. 라드는 메두사가 순식간에 화제를 돌린 것에 성공적으로 납치되고 있었다.
나이프가 주로 얘기를 나누는 곳은 부엌의 테이블이었다. 매번 간식시간에 모여 이런저런 화제를 나누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 정도로 부엌의 참석률이 좋느냐, 하면 대답은 당연히 YES. 다들 단 것을 좋아라하며 잘 먹는 사람만 모여 있다 보니 매일같이 간식용 케이크를 사거나 차려먹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은~ 환영의 딸기생크림케이크!”
그리고 오늘의 케이크는 딸기생크림인 모양. 빅터는 금방 커피를 올리고, 케이크와 빵 칼을 가져와 케이크를 나누기 시작했다. 라드가 헤, 하는 얼굴로 그것을 쳐다보는 사이에 메두사가 짧게 설명했다.
“뭐, 자세한 건 말해봤자 이해 못할 거고. 간단한 것만 얘기할게.”
“넵.”
“우린 실험체였고, 쟤 7살이야.”
“…네?”
“형님 아니라고. 더 늦기 전에 정정해주는 거야. 고마워하도록 해.”
애한테 형님형님하면 자존심 상하잖아. 안 그러니?
“-네에에에에?!”
그 뒤로 약 30분간, 라드는 나이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도 연신 현실을 부정했다. 거짓말이라던가, 요즘 애들이 발육이 좋아서라던가…. 하지만 레이디와 오르카의 정상적인 발육을 보고 현실을 자각한 모양이었다. 슬슬 시끄러웠는지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레이디에겐 다행히도, 점점 조용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마지막이라는 듯이 물었다.
“저, 지, 진짜로….”
“응, 형아!”
“-하씨, 개쪽팔려….”
최종적으로는 침몰. 오르카는 아까까지 형님, 형님하며 빅터에게 말을 걸려던 라드를 떠올리며 한 번 그의 입장을 생각해봤다.
스카웃되어 새로 들어오게 된 정체 모를 조직, 몸치가 제법 있는 선배가 보여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살갑게 굴었는데 나이는 한참 아래라고 한다. 선배인데 동생. 그리고 이미 모양 빠지게 형이라고 불렀음….
음, 창피하려나.
“-야, 앞으론 제대로 형님이라고 불…”
“빅터, 또 포크 구부러졌다.”
“아, 실수. -응? 형아 뭐라고 했어?”
“아닙니다, 동생님.”
그때, 오르카는 뒤늦게 라드의 재빠른 태세 전환을 목격했다. 오르카의 편견과 짐작대로 양아치가 맞기는 했는지, 상당히 걸은 목소리로 저를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한 것이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죽여주는 깡패 조직이 아닐까.
하지만 그랬던 라드는 실험체라는 빅터의 비상식적인 출신에 굴복했다. 일상처럼 포크를 구부려버린 빅터를, 메두사가 굳이 지적하자 순식간에 ‘동생님’이라고 칭한 것이다. 그것이 조금 웃겨서, 오르카는 피식 웃어버렸다. 레이디나 세월은 이미 쿡쿡 웃고 있었다. 결국 여성진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된 라드는 차마 화도 내지 못하고 부들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눈치 없는 빅터는 그런 라드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가자!”
“예, 예?”
“왜 존댓말 써? 그리고 라드 방 골라야 해! 1층엔 방 없으니까, 음, 2층으로! 방이 3개 정도 있을 거야! 화장실 딸린 방 쓸래?”
“어, 이왕이면…?”
차게 식은 커피잔, 비어있는 접시. 모두의 간식 시간이 끝난 타이밍이었다. 레이디는 하품했고, 메두사는 웃는 눈길로 멀어져가는 빅터와 라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르카는 조금 의아한 마음에 슬쩍 물었다.
“저 사람이… 마음에 들어요, 메두사 님?”
“-뭐? 아하하!”
그리고 이어지는 거친 쓰다듬. 오르카는 그것을 퍽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조금 부끄러워하면서도 가만히 버티고 앉았다. 그 사이에 메두사는 어이가 없었는지 꽤나 오래 웃고 있었다. 결국 메두사가 웃음을 그치는 것보다 백모래가 부엌으로 들어오는 게 더 빠를 정도였다.
“메두사 왜 이래? 허파에 바람 들었어?”
“아하하! 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보스.”
“그럼 뭔데?”
“아니, 오르카가… 제가 라드를 마음에 들어 하냐고 묻는데 어떻게 안 웃어요?”
“와, 나이프 안에서 사랑? 난 찬성이야!”
“이 사랑에 미친 놈이.”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자리에 앉던 백모래의 머리가 테이블에 박혔다. 이제는 익숙한 폭력의 현장이었다. 오르카도 이젠 백모래가 어지간해서는 하극상을 받아준다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에 마음을 놓았다. 도리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메두사의 대답이었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이, 곧 오르카에게 고개를 돌린 메두사가 답했다.
“그냥, 웃기잖아. 평범하게 서열질하는 남자 깡패 같은데, 이제 빅터의 힘을 보고 찍소리도 못할게.”
너나 나도 비슷하다는 걸 알면, 이제 다른 애들에게도 함부로 못 대하겠지?
아, 오르카로서는 생각해보지도 못한 관점이었다. 남자들 간의 기 싸움이 소위 ‘서열 질’이라는 말로 불린다는 것도, 빅터를 이용해 일종의 기선제압을 했다는 것도.
사실 빅터는 아직도 자신이 뭘 했는지 모를 것이다. 그저 평소처럼 실수를 했을 뿐이니까. 다른 점이라고 꼽자면 메두사가 굳이 콕 지적을 했다는 점.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것을 말이다.
언제 널 이렇게 비틀어 버릴지 모른다는 경고인가?
라고, 받아들이게 만들려던 의도 아닐까. 오르카는 문득 몸을 떨던 라드의 모습을 기억하며, 어쩐지 조금은 그가 불쌍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저희는 그럼 이쪽 상가로 가볼게요, 보스.”
“응, 이따 봐~”
운전 담당을 영입하기가 무섭게, 나이프는 시내 나들이를 왔다. 그동안 미뤄왔던 일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백모래의 볼일이 그랬고, 아이들을 위한 교재가 그랬고, 장난감이며 옷을 사달라는 빅터의 조름이 그랬다
그래서 빅터는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새 옷을 살 수 있으니까! 그동안 레이디가 메두사와 함께 외출해서 사 온 색색의 원피스를 자랑하는 게 얼마나 부러웠던가. 세월과 함께 유니폼처럼 입고 다녔던 흰 후드티도 이제는 안녕. 이제 빅터는 다른 옷을 입을 수 있게 된다.
검정 후드티, 빨강 후드티, 회색 후드티… 다 후드티인 것은 기분 탓일 거다. 아마도.
…그런데,
“어, 엥?”
빅터는 길을 잃고 말았다.
아니아니, 빅터로서도 할 말이 있었다. 사실 빅터는 시내까지 내려와 본 것이 처음이었다. 늘 아이들과 놀거나 구멍가게를 터느라 바빴지, 메두사와 함께한 쇼핑 시간은 도리어 적은 편이었으니.
따라서 처음 와보는 시내는 사람들의 생기와 활기로 시끌벅적했고, 빅터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이렇게 많은 개성들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다양한 머리색, 다양한 영물과 혼혈, 다양한 연령대가 그저 반가워 눈이 돌아갔다. 그 어떤 장난감보다 재미있고 나비의 날갯짓보다 신비롭다고, 빅터는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에 시선을 빼앗긴 빅터의 느린 발걸음을 메두사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고, 결국 빅터는 손을 놓고야 말았다. 그렇게 메두사, 오르카와 떨어져 버린 것이 벌써 한참 전이었다. 이미 그들은 저 멀리 보이는 코너를 돌고도 남았으리라….
“이럴 땐… 어떡하지?”
호두과자 트럭 앞에 멍하니 선 빅터는 한참 동안 기억을 더듬었다. 이때를 예견한 건지, 메두사가 빅터에게 미리 했던 잔소리가 떠올랐다.
‘…니까 손 꼭! 확실히 잘 잡고. 혹시나 길 잃으면 그 자리에 그대로…’
“아!”
“이제 주문 좀 하는감?”
“네? 네….”
빅터는 용돈으로 호두과자나 먹으며 맘 편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방금 갓 구운 따끈따끈한 호두과자를 입에 넣자 바삭한 겉면 안에서 뜨거운 속이 흘러넘친다. 에퉤퉤, 혀가 다 데여 뱉을 뻔한 것을 겨우 참은 빅터는 결국 혀를 빼물며 식히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
그때, 빅터의 시야 안으로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우당탕,
“깜짝이야!”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린다. 그에 곧 나타나는, 사람을 피해 가는 하얀 손. 결벽적인 색상의 하얀 바지 또한 제게 발을 놀리고 있었다. 결국 드러나는 하얀 정장과 머리카락은 그가 종이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한 듯한 인상을 줬는데, 빅터가 아는 그 좁은 세상에 저런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백모래!
“보스?”
백모래는, 쫓기고 있었다.
그를 쫓는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옷을 입고 있어 딱히 경찰이라고도 할 수 없는데, 서슴없이 폭력적인 특기를 쓰거나 둔기를 휘두르는 것으로 보아 그것을 허락받은 집단인 것 같았다. 뭐, 그러니까… 저 모습은,
마치 범인을 쫓는 히어로 같은 모습이라고, 빅터는 말하고 싶었다.
-히어로?
“젠장, 왜 이렇게 빠른 거야?”
“더 빨리 뛰어! 히어로가 가오가 있지-”
히어로다!
빅터는 잠시 혹했다. 지금 당장 히어로에게 협조해 백모래를 잡아넣으면 나이프 멤버들은 자유니까. 물론, 당장 살길을 찾아봐야 하니 조금은 힘들겠지만… 무서운 사람에게 억지로 끌려다니는 것은 사양이었다.
아니면 히어로에게 도움을 청해볼까?
백모래가 위협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어린애인 자신들은 아직 아무 죄도 지은 적이 없다고. 그러니 보호해달라는 말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빅터는 뛰어들었다.
“앗, 조력자인가!”
“공범 이놈아. 그 공항 사진에서 못 봤어?!”
“아야! 머리 좀 그만 때려요! 더 멍청해져!”
…빅터가 공항 테러 작전에 백모래와 메두사를 따라갔었다는 사실은 철저히 잊은 채로 말이다.
“와, 빅터. 도와주러 와준 거야?”
“에….”
결국 두 사람은 같이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나란히 달리는 둘 뒤로 날개가 달린 히어로와 총을 쏘는 히어로, 그리고 야구 배트를 휘두르는 히어로 셋이 부지런히 쫓아오고 있었다.
탕!
“이크,”
“헉!”
둘 사이로 총알이 날아들었다. 그것이 위협용인지 사살용인지 아니면 사실은 마취탄인지 빅터는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백모래가 실상 어떤 종류의 범죄자인지 실감한 탓이다.
빅터는 여태 백모래가 한 짓의 무게를 딱 본인의 양심만큼만 느껴왔다. 그 이상은 실감하지 못해 사실은… 어느 정도는 묻어두고 살았다고 양심선언을 해보겠다. 그런데 영화에서나 나오던 총을 마주하자니- 무거웠다, 무거웠다! 백모래가 저지른 죄의 무게가, 너무나도!
그래서 빅터는 원망스럽게 소리쳤다.
“그러게 공항은 왜 간 거야, 보스!”
“하지만 내 사랑이 가는 걸 두고 보기만 할 순 없는걸!”
사실 지금도 갈 방법을 찾다가 라드를 영입한 건데.
영 얄밉게만 보이는 백모래의 대답에, 빅터는 드물게 어이를 잃어버렸다. 놀랍게도 백모래는 7살짜리 어린애의 어이없다는 눈길을 받게 된 것이다.
“…나 그렇게 한심해?”
같잖게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에 더 깊은 어이없음을 느낀 빅터는 백모래가 지금 높은 확률로 공항에 간 자신이 아닌 랩터를 놓친 자신을 자책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정답이었다. 제법 합리적인 이유에서의 짜증이 절로 치밀었다.
아, 느려!
심지어 백모래는 빅터보다 한참은 더 느렸다. 빅터는 드물게 짜증을 내며 외쳤다.
“보스, 느려! 잡히겠어!”
“이게, 최대야!”
“!”
일부러 놀리고 있는 줄 알았는데, 설마 이게 최대라니!
빅터는 큰 충격을 받았다. 생각해보니 여태 나이프의 다른 사람이 뛰는 걸 본 적이 없다. 함께 뛰어놀아 준 것은 산에서의 아이들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고로 그들이 얼마나 느린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는 뜻이다. 빅터는 잠시 고민하다, 호두과자를 위로 던지고 백모래를 공주님처럼 안아 들었다.
“!!!”
턱, 턱,
빅터에게 안정감 있게 안긴 백모래, 그 위로 알맞게 떨어진 호두과자 봉지에서 아직도 고소한 빵 냄새가 진동했다. 그리고-
쿠궁,
힘 있게 지면을 박차자 그 자리에 남는 선명한 균열. 이미 빅터는 빛처럼 쏘아져 나간 지 오래였다. 그렇게 순식간에 멀어지는 상대를 향해 어떤 히어로는 총을 쏴 갈겼으나, 조용한 골목만 시끄러워질 뿐. 덕분에 히어로들은 다시 이를 악물고 달려야 했다.
“빅터, 이쪽!”
“응!”
그러거나 말거나, 빅터는 품에 안겨 호두과자나 먹고 있는 백모래의 지시를 받아 이리저리 골목을 꺾고 있었다. 더러운 쓰레기장도 있었고, 가게 뒷골목도 있었으며, 부랑자의 거리도, 폐차장도 보였다. 하지만 그게 어디든 빅터가 알 바는 아니었고, 그들은 바람처럼 거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빅터!”
그리고 드디어 만난 메두사와 오르카. 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둘은 달리고 있고 둘은 달리는 차 안에 있다는 점일 거다. 우스운 재회를 나눈 나이프는 창문 너머로 자초지종을 나눴다.
“빅터, 어딜 갔나 했더니 보스랑 쫓기기라도 한 거야?”
“말도 마, 메두사. 히어로가 우릴 쫓아왔어. 왜 타국까지 온 건진 모르겠지만…. 빅터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잡힐 뻔했다니까?”
아니면 대낮의 거리에서 살인이 일어났겠지.
메두사는 알만하단 얼굴로 고개를 돌려 빅터를 바라보았다. 빅터는 지레 찔려 뜨끔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와, 빅터 대단한데? 달리는 차랑 속도가 비슷해!”
그 와중에 차를 운전하고 있던 라드는 호칭 정리를 끝낸 빅터에게 말을 걸며 질린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빅터는 그게 꼭 자신이 숟가락을 접을 때의 표정과 닮아있어 푸핫, 웃고 말았다.
-어쨌든 빨리 타라며, 메두사는 차 문을 열었다. 달리는 차의 문을 열어버리는 것에 라드가 기겁했지만 그를 들어주는 사람은 네 명 중 아무도 없었다. 곧 빅터가 백모래를 던지다시피 차에 욱여넣고 본인도 올라탄 것이다. 특유의 대단한 순발력과 민첩함에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이야, 고마워!”
“…이런 할리우드 액션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요, 보스….”
“보스, 내 호두과자는?”
“다 먹었는데?”
“그걸 왜- 아야야,”
“요요요 말썽쟁이야.”
내 차….
라드가 중얼거렸으나 빅터에겐 들리지 않았다. 메두사에게 귀를 꼬집힌 채 내내 잔소리를 듣느라 풀이 죽어버린 것이다. 손잡으랬지, 한 눈 팔리지 말랬지, 그 자리에서 기다리랬지… 이럴 때마다 메두사의 목소리가 천둥이라도 되는 것 같아, 빅터는 침울해졌다.
“됐어, 메두사. 날 구해줬으면 잘한 거지.”
“그래도,”
“그보다 중요한 얘기가 있어.”
“뭔데요?”
그 잔소리가 쭉 이어져 결국 아지트에 도착하고 나서야 빅터가 파김치처럼 늘어져서 엎어졌을 때, 드디어 백모래가 메두사를 말려주었다. 하지만 이미 타이밍은 늦어서, 빅터는 소파에 길게 엎어져 거의 울다시피 하고 있었다.
“빅터….”
그것을 곁에서 토닥이며 위로해주는 것은 오르카였으나, 이런 날만큼은 그도 들리지 않아 빅터는 훌쩍댔다. 하지만 메두사는 나름 엄한 보호자였고,
“엑!”
태연하게 빅터의 다리 위에 앉았다.
“-우리 꼬리 밟힌 것 같아!”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아무래도 공항에서 사진이라도 찍힌 모양인데? 완전 범죄자 취급이었어.”
“에휴… 그러게 경찰에 잡혀갔던 상황에서 공항은 좀 조심하자고 제가 말을,”
아무리 푹신한 소파여도 다리가 눌리고 있자니 불편하다. 빅터는 발끝을 동당거리며 항의했으나 메두사는 당분간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괜히 그사이에 낀 오르카만 고생이었다. 빅터는 결국 오르카의 허리를 폭 껴안고 포기했다.
“그럼 당분간 모습을 숨겨야겠네요.”
“그러니까- 서로 연락할 수단을 만들어야겠어!”
“네?”
“그동안 너무 원시적으로 살았잖아~ 혹시나 모르니까 서로 상황을 알릴 수단이 있어야지.”
“에, 보스 그거 무조건 잡히니까 구하러 와달라는 말 같은데.”
“오늘따라 똑똑한데, 빅터?”
아, 그제야 빅터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빅터의 위에 앉아 있던 메두사가 백모래에게 (또) 주먹질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다시 다소곳이 앉은 빅터는 이제 그만 찡찡거리기로 했다….
-그나저나 연락할 수단이라. 빅터는 TV의 드라마나 예능 속에서도 종종 등장하던 핸드폰을 떠올렸다. 슬라이드 하거나 폴더를 올리면 번호판이 나오고, 번호를 누르면 원하는 사람과 언제 어디서든 통화할 수 있는 거라면 꽤 좋은 물건이 틀림없었다.
일단 얻으면 메두사 누나랑 오르카 형아 번호 먼저 저장해야지.
…하지만 이런 게 올 줄은 빅터도 예상치 못했다.
“무전기?”
“응!”
그건, 손바닥 크기만 한 무전기였다. 빅터는 호기심에 이것저것 버튼을 만져보려다 압수당했으나 저게 군인이나 경찰들이나 쓰는 신기한 물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헤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자자, 그럼 소개해볼까?”
“…가리입니다. 상관 쏘고 도망치다가 스카웃됐습니다.”
아마도 이 장난감의 주인은 지금 백모래가 소개하고 있는 갈색 더벅머리의 남자인 모양이었다. 빅터는 신기한 눈으로 그를 살폈으나, 두꺼운 안경에 우중충한 검정색의 츄리닝이나 입고 있는 남자는 어딜 보나 경찰이나 군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손을 번쩍 든 빅터는 질문했다.
“군인이었어, 경찰이었어?”
“따지자면 군인 쪽입니다.”
“어머, 우리 따지자면 국가 쪽 인사랑 연이 많네.”
어쩐지 얼어있던 분위기는 금방 깨졌고, 빅터는 곧 가리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라드보다는 1살 형이었고(라드가 슬퍼했다), 편부가정이나 지금은 집을 나옴, 정보 수집과 조작이 특기… 빅터는 왜인지 TV에서나 보던 천재 해커의 이미지가 떠올라 눈을 반짝였다.
“형, 형아가 무전기 준 거야?”
“…? 네.”
“설명하기도 귀찮네. 빅터 이리와 봐.”
“…?”
하지만 뭔가 물어보기도 전에 메두사에게 끌려간 빅터는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빅터의 스케치북에 양쪽에 끈을 묶은 메두사는 그것을 빅터에게 걸어주고, 한 페이지에 글을 썼다.
‘저는 7살입니다.’
“앞으로 누구 새로 올 때마다 이거 쓰고 다녀, 알았어?”
“으, 응?”
알았어! 빅터는 그걸 보고 푸핫,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빅터와 메두사를, 가리는 어이없다는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르카는 그에 고개를 끄덕여주었고, 빅터는 해맑게 웃으며 달려와 물었다.
“그래서, 진짜 형이 준 거 맞아?”
“예, 뭐. 아무래도 까다로우니까 직접 조작했습니다. 위치추적 안 되고, 범위 넓고… 근데 이 말은 이해합니까?”
“아니!”
“…여튼 좋은 겁니다.”
그렇구나!
빅터는 고개를 흔들거리며 무전기를 이리저리 살폈다. 함부로 이것저것 누르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 가져온 오르카의 무전기였다. 정작 그는 빅터의 바로 옆에서 감시하고 있는데도 영 불안한 모양이지만, 빅터는 자신이 있었다.
동그랗고 반질반질한 버튼이 한 개, 찌그러진 사각형 모양의 버튼이 여러 개. 또 번호와 특수문자가 적힌 버튼이 12개… TV 광고에서 나오던 핸드폰과 모양이 비슷하면서도 달라 호기심이 들었으나, 빅터는 버튼을 누르고 싶은 유혹을 참았다.
“여기 초록 버튼은 뭐야?”
“제 쪽에서 위치 추적을 할 수 있는 버튼입니다.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서… 쫓길 때면 누르면 됩니다.”
“오오!”
왠지 첩보작전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이프가 그 쫓겨야 하는 악당 조직이라는 점이겠지만, 빅터는 거기까지 생각이 뻗어갈 정도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은 아니었다.
어쨌든 신이 났던 빅터는, 단숨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간식을 준비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빅터는 지난번 시내에서 메두사가 딸기와 생크림을 잔뜩 사 왔다는 걸 알고 있었고-
“형아, 딸기케이크 좋아해?”
“좋아합니다만….”
“그럼 만들어줄 테니까, 쓰는 법 알려줘!”
그것이 대화의 마지막.
빅터는 가리의 대답조차 확인하지 않고 주방으로 달려갔다. 결국 자리에 남은 것은 오르카 몫의 무전기와 가리, 오르카. 가리는 정말 저거 믿어도 되냐는 눈빛으로 오르카를 지그시 쳐다봤지만, 그래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오르카조차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프는 오랜만에 원년 멤버끼리 나들이를 왔다.
아, 라드가 운전을 하니까 원년 멤버끼리는 아닌가. 아아, 다른 범죄 조직을 방문하러 가는 거니까 나들이라고도 할 수 없을까. 스스로에게 두어 번의 태클을 건 오르카는, 조직의 모두가 두려움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대상 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빅터를 바라보았다.
“하하, 오셨습니까? 자리를 준비해뒀으니 어서….”
“…”
“‘그런’ 자리는 필요 없으니까 여기서 얘기해볼까?”
“앗, 넵. 야! 술… 아, 아니요? 커피, 도 아니요? 그럼 주스… 가져와라 얘들아!”
그야, 빅터의 체구와 인상이 평균보다 좀… 있는 걸 어쩌겠는가. 게다가 초면에 무력 행사도 좀 했었다. 지금보다 더 어릴 적의 빅터는 지금보다 더 막가파였고, 아무 생각 없이 말을 잘 들었으니까. 하라는 대로 건물을 제대로 부숴놓았던 것이다. 덕분에 지금 이 공간은 없는 숨도 죽인 듯한 침묵에 빠져있었고, 나이프는 융숭히 안내받고 있었다. 그에 라드는 휘파람을 불었다.
“와우, 나 때는 각 잡고 머리 박아야 했던 사람들인데. 기분 죽인다.”
“기분이 죽여?”
“빅터, 좋다는 뜻이야. 그리고 조용.”
그 속없는 대화에, 오르카는 빅터의 허리춤을 찔러 지적했다. 분위기를 지켜야 할 상황에서 너무 떠들고 있었으니까. -마침 그 타이밍에 슬쩍 뒤를 돌아보는 백모래에, 두 사람은 결국 히끅 소리가 나게 놀란 채 입에 지퍼를 달았다. 오르카는 한숨을 쉬었고.
오르카는 오늘의 볼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렸다. 외국행 비행기를 탔던 랩터의 행방이었던가. 그때 랩터를 놓치긴 했지만 어떤 편명이었는지는 알아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워낙에 큰 나라였기 때문에…
이렇게 품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쓸 만한 정보가 있다고?”
“예, 예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열 몇 살짜리. 거기다 하얀 머리의 남자애와 동행… 아주 특정하기 쉬운 정보 아닙니까?”
“음~ 말이 너무 긴데.”
“큼, 크흠.”
전형적인 조폭의 거두 같은 인상에, 손가락 마디마다 금반지가 자리하고 있는 두꺼운 손가락에서 몇 장의 사진이 넘어온다. 오르카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진짜다.
“아아… 확실해.”
그리고 백모래는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 듯한 눈을 하고선 소중하게 사진을 챙겼다.
“그런데 정… 말 아쉽게도, 저희가 포착했을 땐 이미 다른 지역으로 가던 중이라.”
“행선지는 알고?”
“네! 길이 갈리기는 하지만, 다른 길은 들어가는 족족 사람이 죽어 나간다는 흉한 소문의 산이라, 뛰어난 영매사를 불러다 조치를 하지 않는 이상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향한 곳은 이곳… 마침 좋은 재활시설이 있다고 하죠.”
“재활이 목적이면 오래 있겠네.”
“아마 그렇겠죠.”
음, 잠시 고민을 하던 백모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주섬주섬 사진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있는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보관할 요량인 듯싶었다. 오르카는 초상권 침해라는 단어를 잠시 떠올렸으나, 백모래가 들어먹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아서 그저 입을 다물었다.
“그, 가시려거든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만….”
“아, 그래? 그거 고맙네. 마침 더 알아보기가 귀찮은 참이었거든.”
쫓아가려는 건가? 그런데 쫓아간다는 건 잠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다는 걸까? 아니면 아예 이사?
빅터의 몸이 옆에서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랩터를 쫓아가려는 지금의 상황이 그리 달갑지 않을 거라고, 오르카는 짐작했다.
오르카가 그러든지 말든지, 백모래는 깔끔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정말로 용건이 그것뿐이었다는 태도였다. 이럴 거면 나머지 멤버는 왜 끌고 왔는지… 오르카로선 모를 일이었다.
그때, 백모래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이 정보가 틀리면 기대해.”
“!!!”
정말로 뭔가 있나, 싶을 정도의 허세 아닌 허세였다. 물론 오르카는 저게 허세가 아님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 조직에 뭔가 구린 구석이 있는지는, 또 그것을 백모래가 알고 있는지는 잘-
“가자, 얘들아. 이사 준비해야지.”
모르겠다. 오르카에게 백모래는 너무 어려운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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