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빅터와 체리콤포트 (1)
빅 피터팬 Big Peter Pan 유년기
“빵은?”
“여기! 딸기랑 체리 콤포트는 여기 있고- 생크림도!”
“11인분이라 그런가, 엄청 많네.”
나이프는 무사히 이사를 완료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한 다세대 주택이었는데, 두 집을 골라잡아 인원을 나눠서 배치했다. 편의를 위해 여성조와 남성조로 나뉘었는데, 단 한 가지 문제가 된 것은-
“아침 배달 왔습니다~”
바로 밥이었다.
11인분의 밥을 한 명이 준비하기에는 아무래도 문제가 있고, 요리 담당은 각 집에 한 명씩 있으니 함께 요리하기가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결국 결론은 남성조의 주방을 요리 전용으로 쓰는 것. 빅터와 메두사(가끔은 록산느와 세월이 돕는다)는 그곳에서 요리를 한 뒤, 각자의 식탁으로 나르는 것을 반복하는 게 점심과 저녁의 일과가 되었다.
아, 그렇게 대놓고 살고 있는데 쫓기지 않느냐고?
의외로 그러지 않았다. 한 번 나이프에게 크게 데어서인지, 사람이 많은 주택가나 시내 한 가운데에서의 추격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인적이 드문 골목이나 공터에서는 종종 격전이 벌어진다는 것.
하지만 나이프는 그 정도는 떨쳐낼 정도의 전력이 있었다. 청실이나 홍실과 동행한다면 더더욱 말이다. 눈을 가리고 튀면 히어로의 추격조차 간지러울 수준이었으니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나이프의 일상은 오랜만에 평안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개인행동도 자유로웠고, 백모래가 나이프를 휘두르는 경우도 일부 산하로 들어온 다른 범죄조직을 관리할 때가 아니면 없으니 더없이….
다만, 문제가 있다면.
“심심해애애애….”
빅터는 거실 한가운데 엎어진 채로 바닥에 볼을 붙였다. 곁에서 책을 읽고 있던 오르카가 옆에 있던 책의 탑을 건드리며 가볍게 말했다.
“여기 있는 책을 읽는 건 어때?”
“그건 지루해!”
…가볍게 거절당했지만 말이다.
그래, 빅터는 심심했다. 그는 아직 도심에 적응하지 못한 시골 소년이었던 것이다. 그전까지는 산을 돌며 놀 곳을 찾거나 뛰어다니거나 오르카와 자유롭게 대련을 하고는 했는데, 도심에선 그 모든 게 금지당했다. 그래서 빅터는 다른 놀 것이 필요했다!
점토, 질렸다. 그림, 벌써 크레파스도 다 썼다. 불어팬도 질린 지 오래였다. 책은 원래 싫어했다. 애니메이션은 방금 끝났다. 숙제도 진작 다 했다. 빅터는 ‘정말로’ 할 게 없었다.
“형아는 안 심심해? 나랑 나가지 않을래?”
“빅터. 메두사 님이 금지하셨잖아.”
“으으응으으….”
심지어 메두사가 외출까지 금지해서 더더욱. 어차피 나가봤자 놀거리도 없겠지만, 금지당하니 더 서러워지는 기분을 아는가? 빅터는 어디로 튀어서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른다는 말 아래 자신을 집에 묶어 놓은 메두사를 원망했다.
“형, 형아.”
“…”
괜히 오르카의 발을 간질이며 주의를 돌리려 노력하던 빅터는 오르카의 반응이 돌아오질 않자 포기하고 드러누웠다. 이럴 때면 매번 메두사 편이 되곤 하는 오르카. 지루해 죽어가는 빅터를 보면서도 몰래 나가보자는 말 한마디 없다.
치사대마왕.
차마 책 읽는 것을 방해할 순 없어 속으로 메두사와 오르카를 와작와작 씹을 때였다.
“빅터 심심하냐?”
“라드! 어떻게 알았어?”
“징징거리는 게 방에서도 들릴 정도잖냐. 가리 형님이 시끄럽다고 안 튀어나온 게 용하다.”
그렇게 라드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빅터가 헙,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본인이 칭얼대긴 했지만 그럴 줄은 몰랐다는 몸짓이었다. 그에 작게 낄낄거린 라드가 손에 들고 있는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자, 이거 봐봐.”
“?”
그리고 화면을 툭툭, 가리키는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빅터는 라드가 앉은 부엌 테이블에 다가가 앉아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환하게 밝기를 키워놓은 화면 속에는 테두리가 동글게 깎여진 네모난 상자가 둥둥 떠다니며 제품의 이름을 광고하고 있었다.
“X텐도…?”
“요새 네 또래 애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더라. 빅터 너 게임 안 해봤지?”
“게임? 응!”
“두 대 사다 줄 테니까, 오르카랑 둘이 해봐.”
“좋아! 라드형 고마워!!”
게임이라는 게 정확히 뭔지도 모르지만, 일단 빅터는 좋아하고 봤다. 일단 이 지루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 좋다는 말은 덤으로. 하지만 이 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빅터가 그 ‘게임’이라는 것에 과몰입하게 될 줄은 말이다.
“X켓몬 잡았다!”
“빅터 지금 뭐 하는 거야?”
“말도 마요. 요새 라드가 사준 게임기에 얼마나 빠져 사는지.”
온종일 저것만 한다니까요.
수업은 여성조의 방 하나에서 이루어진다. 그 짬짬이 이루어지는 휴식시간, 백모래와 메두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된 내용은 게임 하나에 집착하고 있는 빅터의 행태에 대한 걱정이었다.
빅터는 그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제 손바닥만 한 게임기에 집중했다. 태어나서 보고 경험한 것 중에 제일 재미있는 것 같았다. 애니메이션보다도! 정해진 스토리와 결말, 그리고 그가 바꿀 수 없어 손이 닿지 않는 저 화면 너머의 애니메이션보다는 빅터가 직접 헤쳐 나가며 숨겨진 것들을 발견하고 바꿀 수 있는 게임이 훨씬 재미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빅터는 집에 있는 대부분의 자유시간을 게임하는 데에 썼다. 어차피 집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건 이제 핑계가 되었고, 게임을 하기 위해서 모든 숙제를 재끼거나 요리를 대충 하는 등의 행실을 보였다. 나머지 나이프 인원들의 걱정이 따라오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빅터는 당당했다. 그럼 놀아주던가!
…사실 이젠 게임이 더 재미있어서 사양이지만. 이제 와서 나와 놀자며 빅터를 부르는 것은 그저 우스워 보일 뿐이었다. 아! 또 다른 배틀을 하기 일보 직전. 화면에 들어갈 듯이 집중하던 빅터의 목이 꺾일 때쯤 누군가가 턱, 그 굽은 목을 쳤다.
“아, 누나!”
그것은 당연히도 메두사였다. 난데없이 목을 맞고 게임기를 놓친 빅터가 볼멘소리를 내자, 잽싸게 게임기를 잡아챈 메두사가 통, 빅터의 코를 퉁겼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이건 압수야, 압수!”
“뭐어?!”
“계속 봤는데, 그러다 거북목 되겠어. 잘생기게 태어나서 그렇게 막 쓰는 것도 범죄야. 알아?”
“하지만 그거 없음 너무 심심한데.”
“너 예전엔 이런 거 없이도 잘 지냈잖아.”
그건 산에 있을 때 얘기구우우…
할 말은 많지만 차마 대꾸할 수 없었던 빅터는 불만스럽게 입을 비죽이다가 결국 메두사에게 그 입을 잡히고 말았다. 하루종일 게임 생각에 수업도 집중하지 않는다며 묵혀놓은 분노에 당한 빅터는 결국 그 수업이 끝나도 숙제를 하기 위해 잡혀 있어야 했다. 늘 숙제를 아이들의 자율에 맡겨두던 그동안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래야 할 정도로 빅터가 숙제를 삥땅 치기는 했지만.
그렇게 두 시간여가 지났을까, 빅터는 새하얗게 표백이 된 모양새로 남성조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엎어지는 빅터를 보며, 오르카는 조금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심심해…?”
“…나가고 싶어! 뭐가 있는지는 몰라도 나가고 싶어!”
그리고 돌아온 결론은 그것이었다. 심심해 죽을 것 같으니 바깥 구경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방금도 메두사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어른이랑 같이 가는 거면 허락해줄게.’
빅터는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니었다! 혼자서 도심 이곳저곳을 탐험해보고 싶었는데, 누가 어디서 쫓아올지 모른다는 소리로 자꾸만 막는 것 아닌가. 빅터는 떨치고 올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농담으로 10살 먹으면 혼자서도 잘 돌아다니게 해줄 테니 그전까지는 메두사와 손잡고 다니라는데….
빅터는 자신이 그런 애취급 당할 나이는 진작에 지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몰라, 잘래.”
“…”
무엇보다 어른과 동행할 때라곤 보통 그들의 볼 일이 있을 때뿐이라, 빅터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 몇 없었다. 신경 쓸 것도 많고. 빅터의 큰 몸은 이럴 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 도시 사람들은 얼마나 빅터의 모습에 깐깐한지. 다 큰 성인 남성이 아이와 같은 말투를 구사할 때마다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빅터가 몇 번이나 움츠러들었는지 몰랐다. 사실, 그런 이유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걸지도 모른다. 수상해 보이면 안 되니까.
결과적으로, 이제 빅터는 이불을 꽁꽁 싸맨 채 침대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오르카는 그 곁을 한참이나 지키며 책을 읽다가, 메두사의 부름에 빠져나갔다.
그렇게 눈이 가물가물하려던 찰나, 빅터는 어떤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아이의 모습이면 안 수상해 보이는 거 아닌가?
달칵,
빅터는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몰래 방을 빠져나가 현관문을 연 것이다. 몸을 반도 빼내지 않은 채 한참이나 옆집의 기미를 살피다가, 손을 뻗으면-
빅터의 허벅지께에나 오는 자그마한 인영이 생긴다.
“나 다녀와?”
“응, 놀다 와.”
그리고 호다닥 달려가는 아이. 빅터는 그 분신의 시선과 느끼는 감각들이 전부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방으로 돌아갔다. 한번 겪어본 적 있는, 눈이 네 개로, 귀가 두 개로, 코가 두 개로… 갈라지는 듯한 감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다만 자는 척은 해야 할 것이다. 분신을 만드는 것이야 쉽지만, 이것이 진짜 빅터의 감각인지, 분신의 감각인지 구분하는 것은 서툴렀기 때문이다. 빅터는 이번엔 곱게 누워 얌전히 정자세로 이불을 덮었다.
…곧 깜깜한 어둠이 아닌 새하얀 시야가 찾아왔다. 분신의 것이다.
빅터는 일단 뛰고 또 뛰었다. 일단 집 근처에서 벗어나야 나이프에게 들키지 않을 테니까. 수많은 아파트 건물들, 고층 빌딩, 처음 보는 막대한 양의 차들을 보며 한 광장에 접어들자 발걸음을 멈출 수 있었는데, 일반인이라면 두 시간은 걸어야 할 거리였다.
“…”
그런데 뭐하지? 오는 동안 풍경은 충분히 구경했다. 이제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만 하면 되긴 하는데, 이왕이면 재미있는 걸 보고 싶었다. 하지만 평생 겪어본 거라곤 연구소와 시골에서의 삶뿐인 빅터가 도시에서 노는 법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빅터는 한 횡단보도의 불이 바뀌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어떤 타이밍에 건너는지를 익혔다. 아주 어렸을 때 백모래에게 배웠던 규칙을 떠올리며.
‘자, 파란불이면 건너는 거야.’
‘선생님, 파란불이 뭐야? 어디 있어?’
‘…그러네, 여긴 없구나!’
그랬었지.
결국 횡단보도에 붙박이처럼 멈춰 서 있게 된 빅터는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로 시선을 옮겼다. 연갈색의 하의와 고동색의 조끼를 받쳐 입은 그 학생들은 머리색이 심히 눈에 띄었다. 하늘색과 분홍색이라니. 완전 솜사탕색.
교복 자체도 신기한 요소였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으레 교복을 입는다고 듣긴 했지만, 독립한 성인이나 농사짓는 노인밖에 없는 시골 촌구석에서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래서 오늘 둘 다 또 출근? 언제 쉬냐.”
“주말.”
“아무래도 주말에 쉬지 않으면 안 되지….”
아, 엿듣는 건 좀 그렇지.
빅터는 애써 시선을 돌리며 예민한 귀가 잡아채는 소리를 무시하려 노력했다. 진한 초코쿠키와 크림이 번갈아 있는 것처럼 하얗고 검은 선이 규칙적으로 이어진 횡단보도의 타일을 노려보듯이 하며.
먹을 걸 사러 가는 건 안 된다. 예전에 확인한 건데, 분신은 먹는 게 불가능했다. 거부감이 들어서 아예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뭐, 돈을 안 들고 와서 그런 것도 한몫하지만.
마냥 걸을까? 근처에 지나왔던 강을 구경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빅터는 그런 커다란 강과 다리를 구경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이왕이면 거리에서 보이던 자전거를 타는 것도 좋겠다. 근처 어디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지? 빅터는 자전거를 빌리는 데에 돈이 든다는 것조차 생각하지 못한 채 난생 첫 자전거 시승식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야, 쟤….”
“가라, 히어로.”
“이 새끼가 이럴 때만.”
…학생들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채로.
객관적으로 봤을 때, 빅터는 누가보다 미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쯤이나 되어 보이는 아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횡단보도만 노려보고 있는 상황이 정상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빅터는 그 사실을 몰랐고, 결국 보무도 당당하게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누가 보기엔 미아의 지름길행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얘야, 잠깐만. 엄마는 어디 계시니?”
“길을 잃었으면 그 자리에서 기다려야지.”
…그러니, 포트의 예비 히어로와 냅킨의 부서장이 그를 가만두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는 소리다.
“…?”
빅터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눈을 마주친 분홍 머리의 여학생이 흠칫거리는 게 그대로 보였다. 그것이 의아했으나, 빅터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혼자 나왔어요.”
“…가출?”
뒤따라온 하늘색 머리의 남학생이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빅터의 눈높이에 맞춰 앉아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집 나오면 고생이다. 보니 뭐 들고나온 것도 없어 보이는데 얼른 들어가서 따뜻한 집에서 잠이나 자라. 혼나기라도 했느냐, 부모님도 널 위해 한 말일 테니 잘못했다 하고 들어가라….
그것이 시끄러웠던 빅터는 결국 귀를 막았고, 되바라진 꼬맹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저 꼬맹이가 진짜…”
“애랑 싸우지 마라, 유치하게.”
“-그럼 왜 혼자 나와 있어?”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구경하러 나온 거예요!”
“아, 진짜? 그래도 혼자서는 조금….”
“그래도 심심하고, 다른 가족들은 바쁘고, 자꾸 혼자 나가지 말라고 하잖아요. 난 다 컸는데!”
잠시 정적.
세 사람은 ‘이걸 어떻게 하냐’는 의미가 담긴 시선을 나누며 빅터를 애잔하게 바라보았다. 어딜 봐도 다 컸다는 말을 믿지 않는 기색이었다. 아차, 그제야 자신이 어린 모습이라는 걸 깨달은(정신적으로도 다 컸다고 하기는 무리가 있다) 빅터는 조금 당황했으나, 애써 태연함을 유지했다.
“유다, 네가 맡아줄래?”
“내가?”
“우린 출근해야 되잖아.”
“…집에 데려다주기만 하면 되니까.”
그때, 빅터에게 말을 걸던 남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난데없이 빅터를 떠넘겼다. 빅터는 아무래도 괜찮다는 자신을 억지로 맡기려는 것에 조금 불만을 느꼈으나, 어쩌면 마일로와 같은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에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남학생을 반짝거리는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것 같지만, 일단 집에 쉽게 가줄 생각은 없으니 어찌 되었든 괜찮을 것이다. 놀자고 졸라봐야지.
결국, 그 학생은 빅터의 눈빛 공격과 친구들의 권유에 못 이겨 혼자 남아버렸다.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한동안 맴돌았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당연히 빅터였다.
“난 빅터! 형아는요?”
“…유다.”
“우리 그럼 뭐 하고 놀아요?”
“곱게 돌아갈 생각은 없는 거냐?”
“응!”
하아, 무거운 한숨을 뱉은 유다는 빅터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로 걸어갔다. 그 방향은 빅터가 지나왔던 방향의 주택가였기 때문에 빅터가 버티고 섰으나….
힘으로 졌다?
“형아아, 나 집 가기 싫다고오오오!!!”
질질질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빅터에겐 충격이었다. 여태 힘 조절할 일만 있었지, 힘으로 누구에게 지는 일은 겪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아무리 분신이라 힘이 좀 약하다지만, 그마저도 성인 남성쯤은 인형처럼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걸 이길 수 있는 힘이라니, 특기인 걸지도 몰랐다!
세상엔 그런 특기가 참 많구나.
‘괴력’이 특기인 히어로 캐리엇을 떠올린 빅터는 유다도 비슷한 종류의 특기를 갖고 있다는 생각에 어쩐지 위협을 느꼈다.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어진 것이다.
“이 꼬맹이, 힘은 또 엄청 세네!”
“난 못가아아!”
“너네 집 가는 거 아니라고!!!”
…못 이기면 뭐 어때!
빅터는 화악, 웃으며 힘을 풀었다. 그 바람에 어이가 없어 휘청거린 것은 유다였으나, 빅터는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로 얌전하게 유다를 따라갔다. 메두사나 세월이 보면 어이가 없다 못해 가출할 광경이었다.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을 좋다고 따라간다니.
하지만 이곳에 나이프는 없었고, 두 사람은 무사히 주택가의 놀이터에 도착했다. 정신없이 뛰어가는 것에 집중하던 빅터는 슬쩍 곁눈으로만 훑어보고 재미없겠다며 넘겼던 곳이었다. 당연히 반응은 안 좋을 수밖에.
“에, 여기 재미없을 것 같은데.”
“놀이터 한 번도 안 와봤냐? 여기 오면 꼬맹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데. 와 봐. 비장의 수를 보여주지.”
“…?”
그렇게 정확히 30분 뒤,
“와하하하아악-!”
“이래도 더 돌아? 그만 좀 하지-?”
빅터는 뺑뺑이에 매달려 짜릿한 속도감을 즐기고 있었다. 동그란 모양의 돌아가는 회전판, 그 위에 올라가 겨우 난간 하나에 몸을 지탱한 채 유다의 괴력으로 돌아가는 놀이기구의 속도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빅터는 가벼운 편이었고, 유다는 고작 애 하나의 무게와 놀이기구의 무게에 쩔쩔맬 정도로 힘이 약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놀이기구는 누가 보면 ‘저거 큰일 나는 거 아냐…?’ 싶을 정도로 뺑뺑 돌고 돌았고, 빅터는 그것이 취향 저격이었다.
“나 그럼 다음은 뭐해요? 저건 뭐야?”
“뭐, 그네? 그건 이거보다 재미없을 텐데.”
광란의 뺑뺑이는 20분하고도 10분을 더 타고 나서야 끝이 났다. 빅터는 자연스럽게 그네에 배를 깔고 타려다가 유다의 지적을 받고 곱게 자리에 앉았다. 어느새 가방까지 한 구석에 내려놓은 유다는 그 옆의 그네에 앉아 시범을 보여주었다.
발을 모으고, 뻗는 힘으로 몸을 앞으로 민다. 그럼 더 강한 힘으로 뒤로 빠지고, 그럼 더 강한 힘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에 가속도가 붙고, 또 붙고….
“우와!”
그리 정신없이 타고 있으려니 빅터는 이미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네의 줄을 잡은 손을 놓으려는 것을 유다가 기겁하며 말렸고, 빅터는 결국 일어서서 그네를 타는 법까지 섭렵했다. 놀이터가 재미없어 보인다는 과거의 망발은 어느새 취소한 지 오래였다.
“이제 그만 집에 좀 가라….”
하지만 평범한 남고딩에게 생기발랄한 아이를 놀아주는 일을 맡기는 것은 꽤나 고된 일이었기 때문에, 유다는 꽤 지친 기색이었다. 빅터는 그 모습에서 마일로를 떠올리고는 선심 쓴다는 듯이 말했다.
“내일 나랑 축구해주면은!”
“축구~?”
“나 축구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캐치볼도 안 해봤고, 음, 놀이터도 처음이고….”
빅터는 자연스럽게 하고 싶었던 것들을 줄줄 외기 시작했다. 구기 종목은 대부분 해본 적이 없다. 빅터의 놀이에 어울려줄 만한, 힘을 견딜만한 사람이 나이프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힘 조절을 하자니 재미가 없고, 애초에 공이 없다. 결국 빅터는 운동 경기나 보면서 축구의 존재를 익혀야 했다.
그런데 여기 빅터의 힘을 받아주고도 남을 사람이 있으니!
그것을 들은 유다의 표정이 묘해졌다. 빅터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너… 집에서 맞기라도 하냐? 아님 감금에 방치?”
“?”
당연히 고개를 저었다. 둘 다 사전적 의미는 알고 있으나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빅터는 방치되기보다는 온갖 나이프 멤버들을 쿡 찔러보며 반응을 이끌어내는 편이었고, 맞는다는 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빅터는 당당하게 사실을 말했다.
“다 나보다 약한데!”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힘으로 빅터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나이프 내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 백모래도 빅터와의 팔씨름에서 지는 것이 일상이었다.
빅터 나름의 변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시골에서 살아서, 내 또래도 없었고- 놀이터도 없었고- 음, 그랬는데.”
“…그러냐.”
그에 유다는 팍 걱정이 식었는지 무표정이 되었다. 그리고는 빅터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말하는 것이다.
“축구고 뭐고, 그냥 가끔 보면 해줄 테니까 매일은 안 된다.”
“진짜요?”
“어, 그러니까 집 가자. 데려다줄 테니까.”
“으음….”
빅터는 잠시 고민하듯 고개를 기울이다, 먼저 도망치듯 멀어져갔다. 뒤에서 유다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쫓아왔지만, 빅터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일반인을 대놓고 나이프의 아지트로 데려갈 순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것은 빅터의 분신. 그 자리에서 사라지면 끝일 일이다.
“담에 봐요!!!”
“야!!!”
그래서 빅터는 저 멀리 멀어진 유다에게 활기차게 웃어주고는 공원의 수풀 사이로 숨었다. 탁탁탁, 그를 지나치는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그리고-
빅터는 그 자리에서 기체로 화했다.
“-야, 어디 갔는지 봤어?”
“아니…. 여기쯤 있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졌네. 특기인가?”
“빅터한테 특기가? 그냥 닮은 애를 착각한 게 아닐까.”
“그럴지도. 일단 부서장님께 보고하자.”
“그래서, 냅킨에 주의해야 할 사람이 있다고요?”
“응. 여기 사진 봐.”
아이들이 잠든 야심한 시각, 아이들을 제외한 어른들은 전부 모여 백모래가 나눠준 사진을 들어다 보았다. 사진 속에는 갈색 교복을 입은 분홍 머리의 여고생이 다양한 각도에서 찍혀 있었다. 누가 보면 스토커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으나, 나이프의 목적은 그와 달랐다.
“그냥 평범한 여고생으로 보이는데, 뭔가 특이한 점이 있습니까?”
“가리, 좋은 질문이야. 아주 중요한 점이 있지.”
“이 여자애가 냅킨의 부서장이라는 점 말고도요?”
“누님, 진짜요?”
“그렇다더라고. 왠진 나도 모르지.”
백모래는 저들끼리 숙덕이며 떠드는 멤버들을 보다 큼큼, 헛기침을 하는 것으로 시선을 모았다. 이제 말할 것은 나이프 내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 어쩌면 나이프에 있어서 커다란 위협이 될 사람이니까.
“빅터가 이길 수 없는 상대야. 절대로. 아마 우리 정도는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을걸?”
“정말요?”
“말도 안 돼. 청실이랑 내가 있어도?”
“…저야 큰 전력이 안 되니 그렇다 쳐도요.”
“록산느, 네가 유일한 카운터일걸? 자신감을 가져! …안 통하겠지만.”
그래, 다나는 나이프 정도는 한 번에 다 쓸어버릴 수 있는 전력을 가졌다.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 강인한 육체, 건물 정도는 간단히 부술 수 있는 규모의 괴력. 그 정도라면 나이프의 공격은 간지러울 수준으로 피할 수 있으며, 다나의 주먹 한 방에 나이프는 풍비박산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 그의 특기는-
“특기가 금강불괴거든. 어떤 무기도 그에겐 통하지 않아. 게다가 괴력은 빅터를 능가하고도 남고.”
“허어….”
“사기네요. 세상은 역시 불공평해요.”
“야, 우리 능력도 사기는 사기거든?”
라드가 말도 안 된다는 듯 탄식을 뱉었다. 청실과 홍실은 제 손에 들린 실을 보며 말했다.
“우리 함정으로 감각을 빼앗겨도 사기일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무기가 안 통하잖아? 해봤자 그 상태에서 잡아 질식시키거나… 내장은 약하려나.”
“이 야밤에 토 나오는 얘기는 하지 말라고요, 보스!”
나이프는 대응책이 나오지 않는 다나의 특기에 대해 한참을 쑥덕거렸다. 독을 먹이자, 콘크리트에 재워서 바다에 던져버리자, 아니다, 무조건 죽일 필요는 없다….
“그냥 인질을 잡아서 히어로를 그만두게 하면 되는 거 아녜요?”
“오! 그럴까?”
“소중한 가족이 죽으면 실의에 빠져서 그만둘 수도 있죠. 남은 가족이라도 지키고 싶은 게 평범한 인간의 심정일 테니까요.”
그때, 뾰족한 수로 나온 것이 바로 가족을 이용한 협박이었다. 백모래는 가만히 나이프 멤버들의 의견을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괜찮은 방법임을 인정한 것이다.
만약 그들이 다나의 성질머리를 알았다면 절대 이 방법을 채택하지 않았겠지만, 불행히도 나이프와 직접적으로 충돌하지 않는 냅킨의 부서장이라는 위치가 있었기 때문에 계획은 순조롭게 세워져 갔다.
“안 그래도 다나가 건드린 우리 밑에 조직들이 꽤 화가 나 있거든.”
“그럼 걔네들더러 시킬까요?”
“응. 잘할걸?”
“그럼 딱히 저희가 나설 필요가 없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우린 그냥 지켜보자고.”
그렇게 빠르게 결론이 났고, 나이프 멤버들은 제 자리로 뿔뿔이 흩어졌다. 백모래만 거실의 소파 한복판에 남겨두고. 그런 그의 얼굴 옆면에 달빛이 고스란히 비치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저 웃기만 하고 있는 연한 미소가 서늘해 보일 지경이었다.
“사랑에 방해가 되는 건 미리미리 치워둬야지….”
백모래가 들고 있는 종이 위에는 몇 개의 이름들이 낙서처럼 이리저리 칠해져 있었다. 랩터의 이름과 건방진 꼬맹이라고만 표시한 ‘영매사?’라는 의문. 거기에 그들을 좇고 있는 포트의 존재였다. 그 옆에는…
직, 지익-
‘귀찮으니 빨리 치울까.’
“보스, 안 자요?”
“아니~ 나도 자야지!”
팔랑, 종이가 쓰레기처럼 바닥에 나뒹굴었다.
유난히 어두운 달밤이었다.
“…그래서 거의 매일 본다고?”
[-어. 매일 나와서 기다리는데 뭐 어쩌겠냐. 이 형아가 좋다는데.]
허,
멋진 휴일 아침, 다나는 나름 유이한 친구 중 하나인 유다와 아침부터 통화를 하고 있었다. 주된 주제는 요즘 들어 유다와 종종 만나고 있다는 되바라진 꼬맹이. 매일 유다의 하굣길에서 기다리고 있는 바람에 꼼짝없이 1시간은 놀아주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다나는 기막히다는 의미를 담은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렇게 시간이 남아도냐?”
[그건 아닌데, 1시간 정도야… 보기 어려운 애도 아니고. 학교 얘기만 해줘도 껌뻑 죽는다고, 걔.]
“흐음….”
다나는 제 감이 경고음을 보내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느껴지는 의심에 우려를 거두지 못한 채 고개를 까딱거렸다.
냅킨의 부서장, 다나는 나이프에 대해 제법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정보 중에는 나이프의 행동대장 ‘빅터’에 관한 것도 있고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빅터와 똑같이 생긴, 더 어려 보이는 모습의, 같은 이름의 꼬맹이가 등장한다면 당연히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새로운 특이사항. ‘그에겐 특기가 있다.’
그 가능성을 80퍼센트 정도는 확정을 해둔 상태에서, 다나는 덧붙여 물었다.
“걔 집에 데려다주기는 했고?”
[아니, 그거 말인데… 집에 데려가면 안 된다는 듯이 자꾸 도망친단 말이지. 학대라도 당하고 있는 거 아냐?]
“그냥 너랑 어울리는 걸 들키기 싫은 것 같은데.”
[그니까, 나처럼 훤칠한 형이랑 같이 노는 게 뭐 어때서 싫어하냐고! 이상한 부모인 게 틀림없-]
말도 안 되는 소리.
다나는 유다가 왁왁하는 소리를, 핸드폰의 수화기를 손으로 막는 것으로 무시했다. 그 꼬맹이가 빅터일 확률을 속으로 1퍼센트 정도 올리면서 말이다.
꼴에 양심이라도 있는 건가.
하지만 일반인을 끌이기 싫어 그들의 아지트로 이끌지 않았다기엔 그들은 이미 많은 일반인을 희생시켰다. 그동안의 폭발 사고로 죽어간 일반인들만 몇인가. 그들이 죽인 히어로보다 폭발 사고사한 일반인들이 몇 배는 많았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인질로 잡힌 일반인들만 해도 한 트럭이고. -물론 그들은 목숨을 건지기는 했으나….
그렇다면 그것은 빅터 개인의 사상인가, 신념? 가증스러운 짓이다. 만약 그에게 멀쩡한 양심이 있다면 진작에 나이프를 나와 제 죄를 고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심리였다.
“다나야!”
“야, 잠깐만. 엄마 부른다.”
[엉야. 기다려주마.]
그때, 다나는 엄마가 부르시는 목소리에 방을 빠져나가야 했다. 한창 아침 식사를 한 뒤 뒷정리를 하고 있던 엄마느님께서는 단호하게 다나에게 명을 내렸다.
“얘, 사촌 동생 데리고 영화관이라도 다녀와라. 작은엄마가 시간이 없다고 이랑이 맡기고 가지 않았니.”
“뭐어? 내가 왜?”
“이 가시나가, 하라면 해! 애 좋아하는 만화영화 개봉했다 하는데. 얼른 다녀와!”
다나는 결국 순식간에 옷을 껴입고 현관문에 서 있게 되었다. 핸드폰 너머로 사정을 알아서 알아들은 유다는 이미 문자로 [힘내라ㅎ]라며 얄미운 문자를 남긴 지 오래. 그 옆에는 올망졸망한 눈을 크게 뜬 사촌 동생이 다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차마 7살배기의 눈빛을 실망시킬 수 없었던 다나는 혀를 차며 길을 나섰다.
영화관은 다나가 사는 주택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 있어 가기 어렵지는 않았다. 아이와 심심한 안부 인사를 주고받다 보면 도착할 정도. 그 정도로 가까웠고 조그마했다. 솔직히 다나는 평소엔 이런 구석탱이의 영화관보다는 더 먼 시내에 있는 커다란 영화관을 주로 이용했으나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타기는 더욱 귀찮았으니 넘기기로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할 줄이야.
“‘기동전사 X담’ 어린이 하나요!”
“보호자는 없니?”
“없는데… 어, 누나!”
“혹시 이 아이의 보호자 되시나요?”
“?”
다나는 빅터가 자신을 알아볼 줄은 결코 알지 못했다. 졸지에 자신이 빅터의 보호자가 되어 영화를 결제하게 될 줄도! …물론 빅터는 돈을 주고자 했지만 어쩐지 어린애의 코 묻은 용돈을 빼앗는 기분이 되어 받지 않았다.
그래, 솔직히 당황했다. 다나는 자신이 쫓는 악당(으로 추정되는)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볼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상황에서 증거도 없는 심증으로 악당을 잡겠다며 소란을 피울 수도 없었다. 다만 문자로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수밖에.
[서장님, 빅터에게 특기가 없는 게 확실합니까]
그에 대한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직은 확인되지 않았지?]
결국 이를 밝혀낼 사람은 심증을 갖고 있는 다나뿐일 수밖에. 다나는 속으로 궁리를 하며 어느새 사촌 동생과 떠들고 있는 빅터와 함께 상영관에 들어갔다.
“어제는 말이지, 청실이랑 홍실이랑- 아, 청실이랑 홍실은 같이 살고 있는 사람 이름인데-”
일반인에게 다 불어라 불어. 이미 다나 안에서 저 아이가 빅터일 확률은 100퍼센트를 뚫은 지 오래였다. 청실과 홍실은 얼마 전의 격전에서 처음 확인된 나이프의 멤버였던 것이다. 감각을 일정 시간 빼앗을 수 있는 사기적인 특기를 갖고 있다고 했었지. 현장에 가지 않은 다나로서는 뒤늦게 전달받은 사항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빅터는 생각보다 아이를 잘 보고 있었다. 어느새 다나는 애 보기를 애에게 떠맡긴 채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었는데도 별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동생이라도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연구소 실험체에게 동생 같은 게 있을 리가- 아, 오르카가 있나.
사실과는 반대인 생각을 하며, 다나는 멍하니 만화영화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에도 빅터는 사촌 동생과 속닥이며 떠들고 과자를 나눠먹고 있었다. 참으로… 아이다운 모습이었다.
“다들 나만 두고 가버려서 말이지… 심심해서 와봤어.”
“오빠 왕따야?”
“아니거든! 그냥 다들 할 일이 있어서 그래.”
그 터무니없는 실험 내용이 절로 생각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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