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범고래의 작은 빅터
빅 피터팬 Big Peter Pan 프롤로그
오르카는 그 ‘애’를 처음 봤던 날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아니, 그 ‘애’가 태어나던 날을.
“-개체 출산했습니다!”
“실험체가 애가 있어서, 실험하지 말자고? 언제부터 실험체한테 그리 공감하셨어 그래?”
“어미 개체 실험 속행. 새끼도 좀만 더 크면 곧-”
만삭의 몸으로 잡혀 온 실험체는 삶의 의욕이 없어 보였다. 새끼 가진 어미가 으레 보이곤 하는 경계 어린 태도도 보이지 않았으며, 양육의 의사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실험 도중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그 애에겐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태어나자마자 더러운 먼지와 약물 위를 구를 일은 없었으니까.
그나마 3년. 그 애가 보호받을 수 있던 기간이자, 실험 전의 유예기간이었다.
“흐아아앙!!”
그래서일까, 소독된 격리실에서 태어난 아이는 한없이 생명력이 가득해서.
우울과 체념, 무기력과 절망 따위의 검고 질은 감정이 실험체와 연구원을 가리지 않고 전염시키던 연구소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맑고 순수한 울음소리로 제 존재감을 알렸다.
그토록 살고자 하는 울음소리도 참 오랜만이었고,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리도 처음이었다. 덕분에 오르카는 짙은 짜증과 함께 잠에서 깨야 하는 날이 늘었다. 그 정도로 울음이 많았다. 그 어미가 제 아기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이제 와서 생각해 본다.
그 애는 마침내 어미의 눈이 저를 향할 때까지 울고, 울기를 반복했으니까.
-하지만 어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고, 그마저 불가능하게 되었다.
“새끼 개체 나이가 얼마쯤이지?”
“이제 만으로... 3년입니다.”
“괜찮은데. 이제 슬슬 내 프로젝트를 진행해봐야겠어.”
언제까지 소장 좋을 일만 할 순 없잖아. 그렇지? -선배님은 잘하실 겁니다.
오르카가 우연히 그 말을 들은 것은 막 실험이 끝나 무기력하게 격리실에 끌려 들어갈 때였다. 격리실 밖의 공기는 늘 그랬듯 유난히 거칠고 고통스러웠으나 ‘새끼’라는 말이 유난히 귀에 잡힌 것이다.
그리 많지 않은 어린 실험체 중에 그들이 말한 ‘새끼 개체’가 누군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오… 오오!!”
“결과가 좋은데?”
“이렇게 한 번에 성공한다고?”
“아냐, 다른 개체는 죽었어. 역시 개체값의 문제인가….”
그 천진하던 울음소리는 갈수록 굵은 고통으로 물들어 붉게 깨졌다. 오르카의 위치에선 잘 보이지도 않았건만, 그 머리통이 매일매일 눈에 띄게 커지는 것에 저절로 시선이 사로잡혔다.
하루 뒤에는 한 뼘이나 키가 크고, 또 몇 날 뒤에는 오르카보다 머리 두 통은 더 커졌다. 어느새 다 큰 성인과 다를 바 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는 어린애처럼 눈물을 퐁퐁 흘리고 있었으나, 성숙한 피부는 그에 붉게 달아오르지도 않았다.
그때부터,
그 애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콰장창!
“-개체 탈출했습니다!!”
“스트레스 지수 확인 안 한 새끼 누구야?!”
수북한 검은 머리칼과 은회안은 거친 맹수의 그것이며, 강인한 몸체는 격리실을 산산이 부수고도 상처 하나 남지 않았다. 근육질의 팔과 다리는 실험복 위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라, 오르카는 순간 솜털이 쭈뼛 섰다.
단 1년 사이에, 오르카가 기억하던 그 작고 여린 아이의 흔적은 단 한 개도 남아있지 않았다.
“…”
이제 그 애라 불러야 할까, 그것이라 불러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오르카가 그와 눈이 마주친 것은 우연이었다. 아니, 운명일지도. -아니, 같은 흑백의 검정에 친숙함을 느꼈다던 빅터를 생각하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오르카는 그것을 몰랐다. 그저 불안한 예감이 들었을 그 찰나에,
쿵, 텅텅-
성큼성큼 오르카의 격리실로 다가오더니, 부들부들 떠는 커다란 손으로 차가운 유리면을 잘게 두드리는 것이다.
“…나, 추워.”
추워, 추워….
아, 너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차가운 연구소에서 태어난 아이는 그 누구도 감히 겪지 못할 거대한 성장통을 겪으며 고작 춥다는 말밖엔 하지 못했다. 지금 오르카를 감싸는 그 모든 감정. 벗어날 수 없을 거란 짙은 절망감과 실험의 공포와 고통, 메두사가 있고 나서야 깨달은 외로움이라는 감정도, 전부….
‘…추워.’
그 짧고 초라한 말조차 어미에게 배웠겠지. 그 역시 매일 밤 그 애를 껴안고도 새우잠을 청하며 벌벌 떨 정도로 추위를 타던 실험체였으니. …어쩌면 고작 춥다는 말 한마디가 어미의 유일한 유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오르카는 유리면에 닿은 그 손바닥을 따라 그대로 손을 붙였다.
“나도.”
“…!”
“-잡아!”
그게 그 애에게 있어서는, 그저 대답 없는 메아리만을 반복하던 이 세상과의 첫 소통이었다.
“짜잔, 오늘의 밥 나왔습니다~”
“맛있게 먹을게~ 빅터 없었으면 어떻게 먹고살았을지 모르겠다니까.”
“히히, 내가 좀 하지?”
“오르카는?”
“보스 왔네~ 응, 형은 과일 씻으러 갔어.”
세 머리통이 깔끔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시작한다. 테이블 위에는 가지 그라탱이며 커다란 스테이크, 감바스 같은 음식들이 먹음직스럽게 세팅되어 있었다. 오르카는 청포도와 사과 같은 것들을 씻어 들고 오며 그 일상적인 광경을 새삼스레 뜯어보았다.
스트릿 풍의 낙낙한 후드티, 그리고 검은색의 조거팬츠를 입은 그 애는 이제 장난스럽게 웃으며 오늘의 점심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처음 격리실을 깨고 저를 찾아왔을 때와 같이 위험하고 치명적인 분위기는 단 한 개도 느껴지지 않았다.
“웅!! 옴념염여 뇸염!”
형!! 어서 와서 먹어!
지금도 입에 포크를 박고 부산스럽게 저를 향해 팔을 흔들고 있는데, 대체 어느 부분에서 압도적인 감각과 공포를 느끼겠는가. 그러기에 오르카는 이미 훌쩍 큰 범고래 혼혈이었다.
“빅터, 생일 축하합니다.”
“냠.”
꿀꺽!
입에 청포도 알이 물린 ‘빅터’의 눈이 순식간에 반짝반짝해진다. 이 아이의 눈에 여전한 순수와 순진이 빛을 낼 때면, 그 은회안이 마치 우주 속의 한 가운데를 비춘 달빛인 것만 같다. 어딘가 한구석을 잃은 오르카의 검고 깊은 눈과는 다른 신비함이 담겨 있었다.
“-고마워, 오르카 형!”
“어머, 선수 치는 거야? 축하는 저녁에 다 같이 하기로 했는데.”
“그, 그건 절대 아닙니다….”
“난 지금 선물 있어!”
“고마워 보스!! …어, 또 고양이 털이야? 엄청 폭신하네.”
귀엽지? 응. 근데 나도 고양잇관데? 에이, 고양잇과인 거랑 진짜 고양이 털은 다르지. 그런가? 어쨌든 고마워!
백모래와 빅터는 금세 저들의 세상에 빠져서는 남들은 이해 못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중에 제일 정신연령이 잘 맞는 둘이었다…. 정말 변하지 않는 두 사람을 보며, 오르카는 속으로 소리 없이 웃었다.
“정말 웃기다니까~”
마찬가지로 두 덤앤더머를 웃기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메두사가 피식 웃더니 슬며시 종이 가방을 꺼낸다. 그 내용물을 생각하며, 오르카는 끝내 입을 가리며 웃고 말았다. 같이 서점을 방문했던지라, 메두사의 선물이 뭔지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내 선물.”
“누나? 와아!”
“설마 나만 선물을 안 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그건 당연히 아니지! 뭐야, 봐도 돼? …동화책? 신데렐라? 인어공주?”
에엑!
자신을 특별히 애 취급한다는 걸 곧잘 알아챈 빅터는 이내 또 이런 생일선물이냐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그야, 메두사의 짓궂은 생일선물은 이젠 당연한 연례행사였으니까. 나이를 먹어도 애 같은 빅터의 정신연령에 맞춰준다며 놀이 연령 5살 대의 장난감이나 책을 사준 것이다.
그런 것치곤 작년의 레고는 잘 갖고 놀았지만.
…방년 18세의 빅터를 다시 한번 본 오르카는 슬슬 고개를 저었다. 저보다 몇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좋게 말해 순수하고, 나쁘게 말해 유치한 동생이었다.
“어쨌든, 생일 축하해 빅터.”
“이익, 누나도 다음 생일에 기대해! …고맙긴 하지만!!”
“그래 놓고 잊을 거 다 아는데?”
“~! ~…~!! !!!”
결국 한참을 약 올라 하는 빅터를 달래는 건 오르카였다. 생일선물이라는 미끼를 드리우며….
“형, 형은 저런 생일선물 주는 거 아니지?”
“그건 아니지만…”
“아니지만?”
“빅터가 좋아할진 모르겠습니다만,”
밥을 다 먹으면 보여주겠습니다.
그러면 형의 말을 잘 듣는 동생, 빅터는 조금 차분해져서 밥을 먹는다. 어제와 같은 오늘, 그런 일상의 모습이다. 나이프라는 집단은 이렇다. 범죄 조직이라는 말이 우스울 정도로 긴장감이 없는 사람들의 집합.
물론 그중에서 제일은 빅터다. 18살, 한창 게임에 열 올리는 나이. 심지어는 SNS로 오프까지 한다고.
누가 보면 범죄와는 연이 없는 평범한 일반인으로 볼 법한 모습이었다. 그에 지레 찔리는 것은 언제나 오르카였다. 오르카는 새삼 그 괴리감을 떠올리며 괜히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
“…아닙니다.”
핸드폰으로 짹짹이를 틀어놓고 밥을 먹던 빅터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고개를 돌린다. -하기야 빅터는, 범죄자라기엔 평범한 고등학생에 가깝다. 셋 중 제일 양지에 나와 있는 아이일 테니, 틀린 말도 아닌가.
오르카는 제 동생이 내내 그 순수를 유지하기를 바랐다. 저 밖에 있어 주기를 바라왔다. 그것을 지켜주는 것이 제 최소한의 양심이라 생각하며. 그들이 언젠가 잡히더라도 빅터는 평범한 일반인의 삶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오르카라는, 가족이라는 족쇄를 끊고 훨훨 날아가기를 바라며.
그러니까, 넌 그대로만 있어.
“형, 밥 다 먹었으면 나 선물!!”
그렇게 크지만 작은 아이인 빅터의 생일, 5월 6일의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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