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우구사니 外] 무제

호우키 국(伯耆国)의 상점 거리는 날을 가릴 것 없이 붐비곤 했다. 행인이라고 해 보았자 심신자와 그를 따르는 도검남사들, 그리고 정부 소속으로 보이는 이들뿐이었지만 그래도 인파는 제법이었다. 머릿수가 모이다 보면 이런저런 필요랄 것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상가가 생겨나는 것이다. 평범한 인간의 인지를 아득히 뛰어넘은 곳이지만 이런 모습만큼은 현세의 분주함을 닮아 있다. 지금도 단도들 몇이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 틈을 비집고 뜀박질을 하는 중이다. 웃음 소리가 멀어지고, 그새 발을 밟힌 누군가가 투덜거린다.

그런 거리 한쪽, 조금 한적한 구석에 와가시야*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와가시야라고 해도 화과자만을 파는 곳은 아니다. 본격적인 좌석도 마련해 두었으니 찻집을 겸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터다. 거기에 최근엔 커피까지 내리기 시작해, 단골로 하여금 이제는 간판을 바꾸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 그 가게의 간판이 바뀌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간판의 글씨는 주인이 직접 쓴 글씨니까, 바꿀 생각은 없어.

말하자면 점장 역─ 스스로를 그렇게 소개한 도검남사가 팔짱을 꼈다.

이 와가시야는 어느 혼마루의 주인이 낸 가게였으니까.

심신자가 상점 거리에 가게를 내는 것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다. 애초에 심신자라고 해서 모두가 정부에 소속되어 있거나 혼마루의 주인으로서 일하고 있지도 않다. 시간 정부의 편에 서서 역사수정주의자들과 싸우고 있는 이들일지라도, 그들에겐 취업 규칙도 겸업 금지의 약정도 없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심신자들이 제 할일만 제대로 하고 있다면 그 밖의 일엔 간섭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게다가 어차피 이 곳에 가게를 낼 거라면 조금이라도 영력에 소질이 있는 편이 좋았다. 방문하는 이들이라곤 모두 그런 부류의 손님들일 테니까 말이다. 격 높은 신이거나, 혹은 신의 말석이거나, 또는 그런 신을 섬기고 부리는 자들이거나. 

다만 그런 부류라고 해도 정말로 까다로운 손님은 몇 없다. 애초에 그렇게 성미가 급한 이가 상점 거리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 가게까지 찾아들 일이 많지 않다.

이런 일은 정말로 드물다는 이야기다.

미지근한 백차를 뒤집어쓴 남자의 머리칼 끝에서 물방울이 돋고 있다. 살짝 젖어 콧등이며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은 옅은 풀색이었다. 같은 빛깔의 눈을 깜박이며 남자는 입을 열었다.

이런, 이런.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다기며 그릇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던 손님용 탁자 위는 이미 엉망이었다. 금방이라도 날을 빼어들 듯 발도 자세로 일어선 눈앞의 한 자루 때문이다. 매고 있던 앞치마에 적당히 손을 닦으면서, 우구이스마루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뭐, 일단 진정하는 게 좋아.

진정할 수 있겠냐!

느긋한 목소리를 받아친 대답에는 경계가 잔뜩 서려 있다. 한껏 사나워진 눈초리로 이쪽을 노려보는 도검남사의 이름은…… 그렇지, 카슈 키요미츠다. 대체로 이 검은 자신의 주인을 과보호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구이스마루는 카슈 키요미츠를 설득하는 것을 빠르게 포기하고, 대신 그의 주인으로 보이는 심신자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남자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질렀다, 표정엔 그렇게 쓰여 있다.

주인이 독을 삼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흥분한 카슈 키요미츠를 자리에 앉히는 데 오 분─ 이건 생각보다 빨랐다. 남자가 일단 앉자, 라고 이야기하자마자 냉큼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으니까─. 갑자기 안색을 바꾸며 기침을 한 건 차나 다과에 든 독 때문이 아니라 팥소에 들어 있던 팥 껍질이 목에 걸려서였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는 데 오 분 정도. 그리고 아무리 긴급한 사태라고 해도 남의 가게에서 함부로 소란을 피우는 건 곤란하다고 설교하는 데 또 십 분 정도. 도합 이십 분 정도가 지나서야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된 것이다.

정말 죄송하게 되었다고 고개를 숙이는 손님과 영 떨떠름한 얼굴로 따라 인사하는 한 자루를 배웅하면서 우구이스마루는 생각한다. 오오카네히라가 오늘 가게에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네, 하고.

그런 일이 있었어?!

오늘의 개점 당번은 우구이스마루와 주인, 이렇게 한 자루와 한 사람이었다. 마른 걸레로 유리창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며 우구이스마루는 태평하게 대답했다.

아아, 그랬지.

정말로 싸움이 났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 다치치도 않았다. 결국 오해 아닌 오해도 풀렸으니 아무래도 좋은 일 아닌가. 일찌감치 그렇게 결론을 내린 우구이스마루였지만, 그의 주인은 어딘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말수도 적고,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없는 이가 이렇게까지 동요하는 것을 보면. 우구이스마루는 주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가게의 평판을 걱정하고 있나?

그런 건 아니지만.

선반 위의 다기를 정리하던 주인이 몸을 돌려 우구이스마루를 바라보았다. 단정한 얼굴에는 걱정하는 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럴 때의 모습은 평범한 또래 같다고, 우구이스마루는 생각했다. 물론 그녀는 어엿한 한 사람의 심신자이자, 한 혼마루의 주군이자, 어떤 와가시야의 주인이지만 말이다. 

우구이스마루가 놀랐을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네.

그런 말을 꺼내는 마음은 분명히 잘 우려낸 차처럼 맑겠지. 우구이스마루는 눈을 내려뜨며 웃었다. 

아아, 정말로 상관없어. 같은 상황이었더라면 나도 똑같이 했을 거니까.

무슨 뜻이야?

주인이 위험해졌다고 생각하면, 체면이나 다른 사람의 사정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고 칼을 빼들었을 거란 뜻이지.

천천히 눈을 깜박이던 주인이 무어라 대답하려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현관에 달려 있는 종이 맑은 소리로 울렸다. 아직 개점도 한참 전인데 벌써부터 들이닥치는 이가 있다니. 우구이스마루는 네에, 하고 소리 높여 대답하며 걸어나가는 주인의 뒤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계산대 앞에 서 있는 이는 도검남사로, 심신자를 대동하지 않은 홀몸이었다. 우구이스마루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 검은…… 며칠 전 여기서 소동을 일으킨 카슈 키요미츠였다. 겉모습만으로는 '같은 검'들 사이의 개체차를 판별해내기 힘들다는 게 정론이지만, 한 번 자신의 앞에서 살기를 드러낸 상대를 잊을 리가 없지 않은가. 불편한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카슈 키요미츠가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받아, 이거.

불쑥 내민 것은 후로시키*로 꽁꽁 감싼 단지였다. 무엇인지도 모를 물건을 주인에게 받아들게 할 수는 없었기에, 우구이스마루는 앞으로 나서서 단지를 받아든다. 상대가 보는 앞에서 포장을 풀어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보란 듯 매듭을 풀었다. 안에 든 것은 말린 찻잎이었다. 그것도 꽤 질이 좋은 차. 우구이스마루는 제 주인과 마찬가지로 의아함을 숨기지 않은 얼굴로 카슈 키요미츠를 바라보았다.

아, 정말…… 모양 빠지게, 이게 뭐야.

그렇게 투덜거린 카슈 키요미츠가 말을 이었다.

사과의 선물이야, 주인으로부터. 저번에 실례했잖아.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우구이스마루는 단지의 뚜껑을 잘 닫았다. 저쪽의 혼마루에도 또 다른 자신이 있는 걸까? 취향에 맞는 차를 가져오다니, 이렇게 되면 화낼 수가 없어진다. 애초에 화가 난 것도 아니었지만. 분명히 사과했어, 난? 그렇게 귀엽지 않은 말을 남기고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가는 카슈 키요미츠와, 그런 검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다음에도 또 오세요, 그렇게 인사하는 주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도 느긋한 하루가 될 것 같다.


레니와(twitter @itksldhk) 님의 썰을 빌려 적은 짧은 이야기입니다. 허락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와가시야 : 전통 화과자(和菓子, 와가시)를 파는 가게로, 특정 상호명은 아닙니다.

* 후로시키(風呂敷) : 물건을 싸는 데 사용하는 일종의 보자기. 선물용으로는 염색하거나 수를 놓은 것도 자주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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