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0 3천자 가챠타입
FF14 HL NPC 드림
그 사람,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자기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벌떠벌. 내 정체를 알면 돌이킬 수 없으니까, 알려줄 수 없다고 했던가. 그것도 뭐, 언제나처럼 가볍게 던진 말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당신이 없어도 우리는 바빠요. 죽은 클랜원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새 클랜원을 받으러 가는 게 무슨 망자들의 행진 같네요. 가끔 아, 또 죽었구나. 아, 또 들어왔구나. 덤덤해지는 내게 진절머리가 났다.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장례식 비용을 대는 것뿐이다.
그 사람이 있었을 때는, 클랜원이 덜 죽었다. 딱히 그런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보고 싶다던가, 그런 건 아니다. 보고 싶은지 보고 싶지 않은지 고르라면 ‘보고 싶지 않다’에 가까울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둠을 되찾은 때였던가. 처음으로 본 밤하늘은 어떠냐고 수작을 걸었더랬다. 실은 심장이 떨려 어쩔 줄 몰랐는데 당신 앞이라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그러자 별에는 이름이 있다. 짝이 있다. 물어보지도 않은 소리를 멋대로 떠들기나 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건 다 어떻게 알았나 싶지만.
“설레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는데 그 말이 뇌리에 턱 꽂혔다. 맞다. 그야 하늘은 항상 밝은 줄만 알았으니까…내가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도 평범하게 감동한다. 평범하게 놀라워하고. 그러지 않는 것은 오로지 당신 앞이라. 나는 심호흡을 한 뒤, 최대한 무뚝뚝하게 답했다.
“아뇨.”
그 사람이 처음 나타났을 때와 보이지 않게 된 순간을 비교하면, 너무 많은 것이 바뀌어서 내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맞나 싶다. 마치 우리 세계가 그의 존재로 인해 바뀐 것 같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 그냥 우연일 것이다. 실력 좋고 성격 이상한 모험가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그 사람이야말로 우리 세계를 구한…아니, 이 이야기는 그만두자. 너무 허황되서 웃음이 나올 것 같으니까. 클랜 입구에 거꾸로 매달려 구애하는 남자가 영웅이라면 내 전 재산을 율모어 부흥을 위해 기부하고 말지.
내가 매력 없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사람에게 구애도 받았고, 그 사람도 나 좋다고 달라붙은 거 보면 뭔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거겠지. 하지만 거기까지였을까. 누군가를 한 곳에 붙잡을 수는 없었던 걸까. 멍청한 생각을 한 것 같아 볼을 탁탁 친다. 정신 차려야지.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그 사람, 객사했을지도.
어딘가 먼 곳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쓸쓸하다고 생각하면서도…펜을 놓지 않는다. 대죄식자의 몰락, 마물들은 잦아들고 사람이 번성하는 시대. 그래도 사람은 죽는다. 늙어서 죽건, 물려서 죽건, 꿰여서 죽건, 맞아서 죽건. 모든 죽음에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을 모조리 의미 없이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 클랜장이지만.
쓸쓸히 죽었을지도 모를 그 사람을 생각한다. 사실 멀쩡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다른 여자를 꾀면서, 다른 일을 하면서, 다른 곳에서 분방하게 살아갈지도 모르지만. 나와 크리스타리움따위 잊고…그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세상이 조금 평화로워졌다는 것 빼면 예전과 다를 것 없는…
“자일.”
아.
“자일, 남은 녀석들을 부탁한다.”
다를 게 없다고.
당신이 없어도 우리는 바빠요. 죽은 클랜원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새 클랜원을 받으러 가는 게 무슨 망자들의 행진 같네요. 가끔 덤덤해질 수 없는 내게 진절머리가 났다. 나라도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똑바로 돌아가지 않는 판이야. 나도 알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미 죽은 사람들의 장례식 비용을 대는 것뿐이라는…
생각보다 많이 죽었다. 빈 인원을 어떻게 구해보겠다며 수장님은 입바른 말을 지껄이셨으나, 뒤에서 자기 탓이라고 한탄하는 목소리를 나는 들었다.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봤다. 그렇게 후회하는 건 처음 봤다. 문득 그 사람이 있으면 조금이나마 달라졌을까, 생각했다. 세상은 평화로워지고 있다는데 왜 나의 세상은, 왜 이리 나약해지고 있는지.
“피곤해?”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가 드디어 미쳤나 싶었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에서 그 사람의 이름을 더듬어 찾는다. 디안, 입은 움직였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디안, 그래도 이번에는 뭔가 말했다. 그가 질리지도 않고 수작을 걸었던 어느 날처럼 깜깜한 밤이었다. 나는 환상이라 확신하며 중얼거렸다.
“머리 텅 비우고 달려 나가는 기분은 어떤가요.”
“응, 엄청 상쾌해. 그렇지만 이왕이면 실내 운동을-”
“나도 그런 거나 할 걸 그랬나?”
“칼 하나 들고 있어도 휘청일 것 같은 우리 자일 아가씨가?”
나는 쪼그려 앉은 채, 고개를 들지도 않고 목소리만을 쫓았다. 그는 아마 벽 뒤에 있을 것이다. 내가 문을 열고 나가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도와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의지하면 아마 평생을 그럴 것만 같았다. 평생 의지하며 쫓으며 떠나지 말아 달라고 하는 쪽이 우리일 것만 같은. 그리고 그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저 사람에게도.
“당신은 자유롭네요.”
“원한다면 같이 갈래? 대환영인데.”
“그럴 수는 없죠. 저는 여기 사람이에요. 여기 살아야죠.”
“그렇네, ‘여기’ 사람이지. 그러니까 이 세상에 살아야지.”
내가 무심코 말한 여기라는 말을, 그는 유난히 강조한다. 마치 다른 세상에라도 데려가 줄 것처럼 말하네.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죽은 자의 세상에서 넘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영혼과 대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확인하자는 명목으로 밖에 나가볼까.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가 바랐던 나는 이리 간단히 무너질 사람은 아니었다.
“언제 가실 건가요.”
“곧 갈 거야. 다른 곳으로 가야지.”
“그럼 빨리 가세요. 저도 일해야죠.”
“힘들면 언제든 불러.”
“그럴 리가 없잖아요.”
“네 마음속에서라도 부르면 달려갈게.”
“달려오지 마세요.”
“좋아, 그러면 세상을 또 구하러 가볼까!”
“허풍은…”
인기척이 사라진 순간, 문을 벌컥 열었다. 아무도 없었던 게 정답이라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거리. 나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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