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지타임

BLACK DRESS

가비지타임 최종수 드림

요즘 범죄추리물을 많이 봤더니 쫑귤도 드라마 한 편 찍게 해주고 싶네요. 이를테면 잠복 수사용 야상을 입은 형사 최종수랑 남편이 살해당해 검정색 원피스 입은 강규리요. 근데 이제 그 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이미 강규리가 범인이라고 확신한 최종수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겠죠. 남편을 잃고 검정을 두르자 사람을 죽여놓고 상복 입는 여자는 처음 봤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했어요. 그러자 강규리는 고개를 똑바로 들고 말하는 거예요. "그냥 평소 취향인데요? 좋아해요, 까만 원피스." 어이가 없죠. 미친년인가? 남편이 죽었는데 취향껏 차려입기나 하고. 하긴 누가 상복을 입는데 목이 깊게 파인 옷을 입겠어요. 그러나 최종수가 당황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네요.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던, 아니 어렸던 시기에 마음을 훔쳐가서는 돌려주지 않은 그애와 이런 식으로 마주할지는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게 마지막인데, 설마하니 경찰과 용의자 겸 피해자의 아내로 만날 줄이야. 게다가 어딘가 달라진 태도가 싫었어요. 그래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까만 원피스를 좋아한다는 말에 처음으로 옛날 얘기를 꺼냈네요. "너 원래 그런 거 잘 안 입었잖아. 거짓말 하지 마." 그랬더니 그 여자가 태연하게 하는 말이, "남편이 좋아해서요." ...그 말은 거짓이 아니네요. 형사일을 하고 있으면 그정도는 알 수 있어요. 울컥 치미는 짜증에 최종수는 팔짱을 끼고 강규리의 틀어올린 머리부터 쭉 훑어보더니 혹평을 내리고는 휙 가버리네요. 존나 안 어울려.

그 뒤로 최종수는 계속 반말하는데 강규리는 끝까지 존댓말을 고수할 것 같아요. 사실 이렇게까지 수사가 길어지는 건, 모든 정황 증거가 규리를 가리키고 있는데 범행 동기가 없기 때문이에요. 인근 주민들에게 물어봐도 '아~ 그 부부 항상 신혼 같았다니까.' 같은 반응만 돌아와서 애매해졌거든요. 근데 최종수만 꿋꿋하게 규리가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는 규리가 "형사님, 정말 제가 사람을 죽였으면 좋겠어요?" 라고 물어볼 것 같아요. 그때 최종수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네요.

하나는 쟤한테 형사님이라고 불리는 게 싫다는 거, 나머지 하나는 '아무나 말고 그…'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죠. 대체 누구를 지목하려고 했길래. 여전히 머릿속에선 기억 속 흰 교복 셔츠가 잘 어울렸던 그애가 웃으며 '내가 사람을 죽였으면 좋겠어?' 라고 물어요. 그래, 강규리 걔는 눈이 옆으로 길쭉해서 웃으면 더 가늘어졌는데 답지 않게 동그랗게 뜬 눈을 보니까 거북해지네요. 그래서 최종수는 시선을 피하고 말았어요. "마음대로 생각해. 네 말대로 나는 형사고, 범죄자는 누구든 잡아넣는 게 일이니까." 그렇게 멋대로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뜨자 그곳에 홀로 남겨진 규리가 못 박힌 듯 우뚝 서서 중얼거리네요.

…근데 종수야, 형사가 범인한테 속마음을 들키면 어떡해.

그 다음날, 아침 뉴스에는 긴급 속보가 흘러나와요. 속보입니다. 지난 밤, 서울시 OO구 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경찰 조사 중 도주... 피해자는 30대 남성으로... 포털 메인에도 별다를 것 없는 내용이 휙휙 스쳐지나갔어요. 턱을 괴고 화면을 바라보던 최종수는 딸깍 기사를 클릭하죠. 역시나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들었던 내용이 단어만 바꿔가며 나열되어 있네요.

서울시 OO구 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경찰 조사 중 도주를 시도했으나 잠복해 있던 경찰에게 붙잡혀 송치되었다. 피해자는 30대 남성으로 가해자와는 다름 아닌 가족 관계로 드러나 사건 관계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무감한 눈으로 드르륵 스크롤을 내리는 최종수가 마지막 한 문장을 읽어내리자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오죠.

- 강규리 기자

그 다섯자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최종수는 빙글 의자를 돌렸어요. 뒤통수에 깍지를 끼고 한숨처럼 중얼거리네요. 하여튼 손이 더럽게 빠르다니까. 말 그대로예요. 어젯밤, 유력 용의자 중 한 명이 도주하다 그 자리에서 구속되었고 범행 동기와 수법이 밝혀지며 사건이 종료되었어요. 범인은 40대 남성, 그 무엇도 규리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죠. 당연해요. 그 사람은 규리의 아주버님, 그러니까 피해자의 형 되는 사람이니까요.

동생이 죽었다는 말에 찾아와서는 범인으로 몰리고 있던 규리를 두둔하는 척했지만, 형사 최종수가 강규리를 의심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자 교묘하게 모든 상황들이 규리를 향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말하자면 최종수의 감정을 이용한 거네요. 사실 그 감정은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였지만요. 덕분에 돌아가는 상황에서 규리는 진범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라고 특정해냈고, 억지를 부렸을 뿐 규리가 사람을 죽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은 종수가 규리의 생각을 믿어준 덕에 입을 맞춰 틈을 주었다가 범인을 잡았다는 결말이에요.

내내 상복처럼 짙은 검정 드레스를 입고 있던 규리는 다음날 아침, 자택에서 철수하는 경찰들 사이 최종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넬 때는 출근할 때 입는 새하얀 셔츠 차림이었어요. 그 모습에 종수도 미련없이 발걸음을 돌렸네요. 여전히 남편이 죽은 사건을 직접 보도한 규리가 독한 여자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다시는 마주할 일 없겠지. 내가 경찰이고 네가 범인이 아닌 이상. 아무리 보고 싶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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