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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페커미션 50. 오귀인 편견

드림 - 맥코이x시에라(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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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코이x시에라] 오귀인 편견

“나 사실은 너 진짜 싫어했어.”

“뭐?”
이맘때쯤 나타나기 시작하는 ‘비실대는 하퍼’를 수거해 와 영양제를 놔주던 맥코이는 뜬금없는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굶어서 사고기능이 저하된 건가? 아니면 빈속에 알코올이라도 냅다 부었나? 커크도 아니고 하퍼가 냅다 헛소리를 꺼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므로 맥코이의 추측은 상당히 타당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맥코이가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을 하건 말건 하퍼는 주절주절 말을 이었다.

“첨엔 도서관 붙박이가 나 말고 또 있네, 정도였는데, 왜, 작년 1학기에 같이 들은 수업 있잖아.”

“뭐, 연방 지성체의 사회와 문화?”

“그거랑 기초 유기화학.”

“아.”

“유기화학이야 선택필수였으니 들은 건데, 지사문은 솔직히 학점 따려고 수강한 거거든.”

“지사문을?”

“응. 우리 부모님 둘 다 스타플릿 장교셨으니까. 아, 한 분은 현역이고. 어쨌든 부모님 직업이 그러니깐 밥상머리에서 맨날 듣는 이야기가 뭐겠어? 그래서 거저먹을 수 있겠다 싶었거든.”

“부럽네, 그거.”

“부럽기는! 둘 다 레너드 네가 1등 했잖아!”

“내가? 그랬던가?”

맥코이의 덤덤한 반문에 하퍼의 눈썹이 순식간에 위로 휙 솟구쳤다.

“너 진짜 재수 없다.”

“아니, 보통 학점에 신경 쓰지 몇 등을 했는지는…….”

“신경 쓰거든?”

“안 써! 너 이번 학기 무슨 수업에서 몇 등 했는지 일일이 기억하냐?”

“…….”

맥코이는 조용해진 하퍼의 어깨를 가볍게 붙잡고 뒤로 밀었다. 생각에 빠진 하퍼가 순순히 의무실 침대 위로 눕는 걸 보며 맥코이는 머리맡의 서랍에서 담요를 꺼내 하퍼의 몸 위로 덮어주었다. 환자가 헛소리를 하든 말든 의료진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환자의 거처를 결정할 권리와 의무가 있었다.

“그대로 누워서 30분은 쉬었다가 가. 갈 때 포도주스랑 쿠키 좀 먹고 가고.”

“아니지, 그렇지만 너도,”

“씁. 의사 처방이야. 잠이 오든 안 오든 최소한 30분은 눈 감고 누워있어.”

“너도 매번 2등이라는 걸 확인받으면 1등이 궁금할걸?”

“엉?”

쉬는 게 불만인 게 아니었던가. 맥코이가 인상을 찌푸리고 하퍼를 보면 얌전히 눕고 눈까지 감은 채 입만 잘도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지, 라는 건 처방에 따른 반발이 아니라 몇 등 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반박인 모양이었다.

“교수한테 그걸 물어봤어?”

“내가 직접 물어본 건 아니고, 지사문 교수한테 퀴즈 문제에 이의제기하러 갔을 때 알았어.”

“어떻게?”

“교수가 그러더라고. 수강생 전체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문제 자체에 의문점을 가지다니 매우 훌륭한 자세라고 말이야. 그래서 물어봤지, 최상위권이면 몇 등이냐고.”

“흠.”

“물어봤더니 난 2등이라는 거야. 레포트도, 중간고사도, 퀴즈도.”

“아하. 궁금해질 만 하네 그래. …설마?”

설마 그때마다 1등을 한 게 본인이었단 말인가? 학점만 잘 나오면 아무래도 좋았던 맥코이는 이제야 안 사실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본인을 가리켰다. 물론 눈을 감은 하퍼는 보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욱 빨리 맥코이는 손을 내리고 표정을 가다듬었다. 묘한 데에서 경쟁심이 있는 하퍼의 성격상 자신의 비언어적인 것까지 보면 훨씬 더 분해할 테니 말이다.

“그래! 대체 1등은 누구냐고 하니까 너라고 했다고. 그것도 전부 다.”

“어…. 그랬냐.”

그래도 그렇지, 1등을 하든 2등을 하든 학점은 같을 텐데 그게 그렇게까지 짜증이 날 일인가? 번번이 2등이라는 걸 알면 좀 아쉬울 수야 있겠다지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면이 있다는 점에서는 커크와 비슷하지만, 학점경쟁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성격이었다. 맥코이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완전히 다른 두 사람과 붙어 다니니 심심할 일은 없지 않나. 맥코이는 제 목표와 관련 있는 과목 외엔 과락만 겨우 면하는 커크와 무언가에 집중하면 번번이 이 꼴이 되는 하퍼를 섞어서 반으로 나누면 참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남의 학점이나 남의 건강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매번 어디론가 튀어 나가는 인간을 잡을 필요도 없고 반대로 매번 영양실조까지 가는 인간을 건져 올 일도 없고…….

맥코이가 불가능한 일을 상상하는 동안 하퍼는 눈을 감은 채 말을 줄줄 이었다.

“그래, 너였다고. 심지어 기말까지도 2등이었어! 진짜 신경 써서 공부했는데!”

“……거, 유감이다.”

“진짜 재수 없어…….”

말은 재수 없다고 하는데 표정은 미소를 띤 것으로 보아 지금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 알 수 없는 이유로 미움받는 것보다야 알 수 없는 이유로 미움받다가 마는 게 더 좋은 거 아닐까. 맥코이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레너드, 너 지금 이해는 안 되지만 옛날 일이라니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었지.”

“…초능력이 있던가 네가?”

“내가 벌칸은 아니지만 한 가닥 좀 하거든.”

맥코이쪽에서 어이없는 건지 황당한 건지 모를 숨소리가 나자 하퍼가 눈을 감은 채로 낄낄거렸다.

“심지어 유기화학도 2등이었어!”

“뭐야, 그것도 알아본 거냐?”

“당연하지. 유기화학에서라도 이기지 않으면 정말 빡칠 것 같았거든.”

“…….”

“그리고 정말 빡쳤지.”

음. 하고는 하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맥코이는 사실 1년 전에 수업 두 개에서 내내 1등을 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할지 그걸로 친우의 공분을 샀었다는 것에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용케도 우리랑 다니네.”

“왜냐면 다음 학기에 같이 들은 수업에서는 다 이겼거든.”

“…….”

맥코이는 생각을 고쳤다. 그는 하퍼에게 진 것을 슬퍼해야 할지 친우의 마음이 풀렸다는 것에 기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맥코이로서는 학점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 이상 신경이 도무지 쓰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뻐하기로 했다. 학점은 그대로인데 하퍼가 이기는 걸로 저를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면 뭐, 나쁘지 않은 일 아닌가. 맥코이는 하퍼가 자신을 적대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아니, 상상의 도입부에 들어가기도 전에 바로 때려치웠다.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그건 정말이지, 끔찍했다.

잠깐, 끔찍하다고.

“음……?”

“음? 뭐, 왜? 환자라도 들어왔어?”

“어, 아니. 별거 아냐.”

“실없긴. 뭐 어쨌든, 신기하네. 작년엔 너 진짜 싫었는데 이렇게 빨리 베프도 되고…….”

“그러냐.”

“…하긴, 알아보니 사람이, 안 나빠서…, 하암…, 더 싫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퍼의 말이 점점 더 작아지더니 깊은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겠지만, 피로가 꽤 쌓였는지 잠에 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 녀석 대체 얼마나 안 먹고 안 잔 거지,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린 맥코이는 담요를 고쳐 덮어주고는 병실의 빛을 줄였다. 그대로 병실을 나가서 환자가 오길 기다리는 대신 맥코이는 가만히 하퍼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안 먹고 안 자서 창백하다 못해 푸르기까지 한 피부는 검은 머리카락과 대조되어 더욱 희었지만 보통은 저 뺨에 건강하게 혈색이 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은 눈을 감고 있지만 눈을 뜨면 지혜로운 태양빛 눈동자가 또렷하게 빛난다는 것도.

베프라. 맥코이는 그 말을 입속에서 굴려보았다. 베프, 베스트 프렌드, 가장 친한 친구. 어쩐지 혓바닥이 까끌까끌했다. 무언가 표면이 울퉁불퉁한 것을 입안에 넣고 굴리는 느낌. 요철이 맞지 않는 톱니바퀴가 억지로 삐걱거리며 튕기듯 돌아가는 것 같은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이게 대체 뭐지. 찝찝하면서 불편한 이 감각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제 감각을 더듬어 나가던 맥코이는 호출소리에 황급히 병실을 나섰다.

젠장, 재학생 병동에 인원 좀 늘려줬으면. 거의 반사적으로 투덜거리며 접수실로 나간 맥코이는 대체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팔다리에 찰과상을 입은 커크를 보고 깨달음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친구는 무슨 얼어 죽을 친구란 말인가. 커크나 하퍼나 둘 다 자기가 건사해야 할 인물인 것을. 친구가 아니라 숫제 보모다, 보모.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건사할 놈이 하나 더 늘었으니 언짢을 만도 했다.

맥코이는 껄끄러운 마음을 가득 담아, 사정없이 커크의 팔을 잡아채곤 소독응고제를 뿌렸다. 일부러 환부에 닿을 때 아픈 걸로 골라서, 언젠가 이 자식과 함께 함선에 오른다면 넉넉하게 주문을 넣어두리라 다짐하면서.

“또냐? 이번엔 또 뭔 짓을 했길래 이 꼴인 거냐, 어?”

“악! 거기 쓸린 데야!”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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