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흔적

체르하랑- 자타의 불멸

불멸과 필멸 사이

무한한 공간을 담은 검은 눈이 달력을 응시했다. 하랑, 마나협회장의 그림자. 연분홍 색의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흔들린다. 약한 c컬 모양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말끔한 손짓으로 모양을 바꾸었다. 하랑은 인간의 몸에 신이 담긴 복합적인 창조물이다. 로제로카르타, 이 세계가 허락한 유일의 존재. 하랑은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알고 있다. 그사람, 여하단장의 생일이다. 단잠을 방해하는 빛이 따갑다. 유난히 이른 아침의 햇볕이 차갑다고 느꼈다. 옆에 있어야 할 애인의 자리에는 온기가 미약하게 남아있었다. 프시히, 먼저 일어나서 준비하나보네. 푹신한 침대의 매트리스와 쿠션을 뒤로하고 하랑은 몸을 일으켰다. 덜깬 몽롱한 상태로 일어나 느리게 간 곳은 드레스 룸이었다. 지금막 샤워를 막 마쳤는지 욕실에서 김이 새어나온다. 예쁜아, 깼어? 감고있던 눈을 뜨고 그녀의 고개가 목소리가 나는쪽으로 돌아갔다. 말랐지만 적당한 근육이 잡혀있는 그의 몸은 수건으로 하반신만 가려져 있다. 프시히는 젖은 그의 머리카락을 털고 있었다.

“주인공이 사라져서 없는 생일은 어떻게 챙겨야 할까.”

“…. 나도 몰라, 알아서 해.”

“형이라는 새끼가…. 지 일 아니라고 신경 안쓰는 것 봐라..”

“새끼? 이쁘다, 이쁘다 해주니까 아주 기어오르네.”

“흥… 대답이라도 예쁘게 해주면 내가 안했어.”

그녀의 몸은 무거운 추를 얹은듯 천근만근이다. 그날따라 시간은 좀처럼 가지 않았다. 마나의 흐름이 좋지 않아 검은 새치가 사이사이 나타났다. 쉬어라, 랑아. 하랑의 애인이 걱정하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연한 올리브색의 눈이 하랑의 흑안을 밝히며 마주한다.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하랑이 한발짝 그에게 나아갔을 때였다. 처음 갑자기 흐려진 시야에 두 손이 허공에서 허우적 거렸고, 몸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는 하랑을 본 프시히가 자신보다 작은 하랑의 손을 붙잡고 다른 손은 허리에 팔을 감아 지탱했다.

“…. 고마워요. ”

“너, 머리카락 봐라. 이정도면 쉬어야 하는거 아니냐. 들어가, 업무관련된 일은 내가 언질 해놓을 테니까.”

“그래도….”

“내가 마나협회장이잖냐, 걱정 마. 이런일 한두번도 아니고, 다들 이해해줄 거다. 급한 프로젝트도 없잖아.”

“…. 고마워요.”

프시히 레테는 익숙한 손짓으로 하랑의 팔꿈치에 혈관을 찾아 찌른 뒤 수액을 연결했다. 그녀의 둥근 이마에 프시히는 가볍게 입맞췄다. 그럼 쉬어. 얼마 전 큰 프로젝트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던 탓에 몸에 긴장이 풀린 탓일지도 모른다. 억지로라도 눈을 감고 잠을 청한 그녀는 깊고 깊은 무의식에 빠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느껴지지 않을 정도가 됐을 떄, 캄캄하고 어두운 시야에서 흐릿한 형체가 나타난다. 백발과 흩날리는 긴 옷, 안대. 안대? 처음에는 체르타라 생각했지만 여하단장은 머리가 길지 않았다. 좀 더 어둠에 눈이 적응되었을 떄 쯤 정체를 알아챘다. 프누르, 최초의 나인. 여하단의 단장자리에 앉았어야 할 주인.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텁텁한 흙냄새가 공기에 뭍어났다.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공기와 차갑기만 한 향내가 피부를 통해 와닿았다. 꿈에 누군가 나온적은 거의 없었다.

“다시 돌아가지 않고 머물거라 고집한 사람은 너다.”

“…. 또 당신이야?”

“그 애가 너를 온전히 사랑할 일은 없을거야, 체르타가 부서져버리거나 네가 죽든 파멸로 끝날 수 밖에 없는걸. 체르타 그 아이를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 놨으니까.”

“지랄도 병이다…”

“뭐라고?”

“시끄러워…. 재워줄테니까 잠 좀 그만 방해해…”

“먼지보다 약한 인간의 몸에 담은 신의 그릇인 주제에 감히 기어올라?”

“…. 내 꿈에 들어온건 당신이잖아. 아 꺼져.”

“말뽄새가 참 프시히를 닮았구나, 뚫린 입이라고 내뱉는 버릇을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주마.”

“응~ 개소리 ㄴㄴ 구라즐~”

“뭐? 무슨…”

“단장님”

“불렀느냐.”

“…. 기다리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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