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속에서
쟈밀 바이퍼&제이드 리치 드림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특유의 기척이 있다.
알기 쉬운 용어로 말하자면 ‘존재감’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건 무생물에도 적용되는 말이지 않은가. ‘인기척’이라는 고상한 말도 존재하지만, 그건 일부러 드러내는 쪽에 가까우니 완벽한 표현이라곤 할 수 없었다. 쟈밀이 생각하는 생물 특유의 기척은 그것보다는 좀 더 고차원적인 무언가였으니까. 아무리 숨죽여 감추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고, 때로는 어떠한 이끌림마저 느끼게 하는. 심장을 가진 것들만이 서로를 향해 느낄 수 있는 동물적인 감각. 그게 쟈밀이 생각하는 ‘특유의 기척’이었다.
‘저건…….’
해가 다 진 오후. 노을이 사라지고 밤하늘이 덮쳐오는 시간. 바쁘게 기숙사로 돌아가던 그는 불이 꺼진 교실 안에서 움직이는 인기척을 느끼고 멈춰 섰다.
무언가. 커다란 존재감이 꿈틀거리고 있다. 크기나 대략적인 형태를 보면 사람인 것 같긴 하지만, 확신은 할 수 없다. 낮이라면 뭔가 보였을 것 같은데, 주변이 어두워지는 시간대라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아무도 없는 저런 어두운 곳에서 뭘 하는 걸까.
그냥 지나쳐도 되는 움직임에 굳이 이런 호기심이 드는 게 이상하다. 쟈밀은 안 그래도 바쁜 자신을 자꾸만 거슬리게 하는 여섯 번째 감각에 미간을 찌푸렸다가, 결국 어둠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이렇게까지 신경 쓰인다면, 별일 아니더라도 확인하고 가는 게 미련이 남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여기는…….’
교실 가까이 다가간 쟈밀은 그제야 불 꺼진 이 교실이 1학년 A반 교실임을 눈치챘다.
아, 그래서 거슬렸던 것인가. 직감적으로 무언가 알아버린 쟈밀은 저 자신의 기척은 최대한 죽인 채, 교실 가득 들어찬 그림자 속에서 움직이는 무언가에 집중했다.
‘아.’ 교실 창문을 통해 거슬리는 대상의 정체를 확인한 쟈밀은 소리 없이 작게 탄식했다.
암흑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올리브색과 금색의 오드아이는 책상에 엎어져서 잠들어있는 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왜 거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이드는 아이렌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 무방비하게 잠든 상대를 관찰하고 쓰다듬으며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기분 나쁜 녀석.’
딱히 무언가 대단한 부도덕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쟈밀은 절로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그저 숨이 섞일 정도로 가까이 붙어서 머리카락을 만지고, 호흡을 따라 들썩이는 등을 손가락 끝으로 더듬고, 눈 한 번 안 깜빡이고 상대를 관찰할 뿐이지만…….
‘……아니, 충분히 음습한 행동인 것 같은데.’
하나하나 나열해 보고 나니 충분히 부도덕한 것 같다. 만약 이 상황을 발견한 게 자신이 아니라 교사였다면, 충분히 풍기문란의 죄를 물을 수 있지 않았을까?
쟈밀은 도무지 깨어날 것 같지 않은 아이렌의 모습을 입술만 물어뜯으며 바라보다가, 결국 충동적으로 교실 문을 열었다.
“너 뭐하냐?”
웬만하면 제이드와는 1대 1로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이대로 아이렌을 두고 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리 밝지 않은 빛이 교실 안으로 쏟아져 내리자 반사적으로 두 눈을 가늘게 뜬 제이드는 검은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상대를 지그시 노려보다가, 작게 탄식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쟈밀 씨?”
“그건 내가 먼저 물었던 것 같은데.”
“제가 무얼 하든 쟈밀 씨와는 상관없는 일이지요.”
“아, 그래? 그럼 나도 똑같이 대답해 주면 되겠네.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만약 저기 아이렌이 잠들어있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느 한쪽이 매지컬 펜을 뽑아 들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다. 제이드도 분명 그리 생각하고 있겠지. 쟈밀은 애써 제 쪽을 노려보는 시선을 무시하고 아이렌에게 다가갔다.
“아이렌, 잘 거라면 기숙사로 돌아가서 자.”
“……으음.”
조금만 힘주어 흔들자 아이렌은 금방 눈을 떴다.
아. 다행이다. 만약 깨워도 못 일어날 정도로 깊게 잠들었다면 싸움이 났을 텐데.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쟈밀은 스르륵 일어나 자리를 뜨는 제이드를 붙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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