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생일 연성

값어치

레오나 킹스카라 드림

* 24년도 레오나 생일 기념 연성. 선배 평생 스무살로 건강하세요(대체)

인간들은 모두 저마다의 가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겐 어찌 되어도 좋은 가치가 다른 이에게는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이념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꼭 지키고 싶은 것이 인류 보편적으로는 가볍게 여겨지는 일도 있었지.

그리고 대부분은 사람은 제가 메긴 가치를 다른 이들도 인정해주길 바라고, 인정하지 않더라도 그 원리를 이해하길 바라는 법이었다.

하지만 범인(凡人)이 넘치는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뛰어난 이가 추구하는 가치는 쉽게 수용되지 못하는 법. 모난 돌이 정 맞고,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아무리 뛰어나도 인정받지 못하며, 인간들이 정한 규칙으로 자연의 섭리와 같은 우수함을 가진 존재를 억제하려 한다. 그것이야말로 인세(人世)의 본질.

 

그렇기에, 세상은 불공평하다.

 

타고난 우수함과 제 손으로 선택한 적 없는 탄생 배경. 그런 것들 탓에 레오나는 이 진리를 아주 잘 알고 있었고, 덕분에 머리가 어느 정도 큰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었다.

웬만한 놈은 이해하지도 못하고, 듣는다고 하여도 받아들이지 못할 거 같은 말을 내뱉는 건 에너지 낭비다. 그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하지만 저 태도는 다르게 해석하자면, 말이 통할 상대라면 입을 열 가치는 있다는 뜻과도 같았지.

제 방에서 드러누워 있던 레오나는 가까이 다가왔다가 멈춘 발소리에 감았던 눈의 한쪽만 떴다. 왼쪽 눈동자만 굴려 바라본 옆자리에는, 작은 상자를 들고 있는 아이렌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무시고 계시는데 제가 깨운 건가요?”

“뭐, 그렇지.”

“아, 죄송해요.”

 

멋쩍어하는 새하얀 얼굴이 퍽 우습다. 차라리 말만으로 미안해하는 거였다면 아무 생각도 안 들었을 텐데, 진짜로 죄책감을 느끼고 사과하니 오히려 이 상황 자체가 무언가 하나의 촌극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뭐,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제가 아는 아이렌은 이런 여자였으니까.

아이렌은 남을 귀찮게 하는 걸 무엇보다도 꺼리는 사람이었다. 다른 이들은 이걸 ‘그 애는 예의가 바르니까 그런 거다’라고 추측했지만, 레오나의 생각은 좀 달랐다.

 

‘아마 저 녀석도, 세상 모든 것들이 자신을 귀찮게 하니 자신이라도 남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기 싫은 거겠지.’

 

흔히 역지사지라고 하던가. 제가 당하기 싫은 건 남에게도 싫을 테니 하지 않는다. 뭐 그런 정신으로 눈치를 보는 게 아니겠나. 어찌 보면 멍청할 정도로 착해빠진 배려였고, 다르게 보면 싫은 짓을 하지 않음으로 적은 만들지 않으려는 현명한 태도였다.

……뭐. 정리하자면 그는 저렇게 구는 아이렌이 싫지 않다는 게 핵심이겠지. 무엇보다, 뻔뻔할 때는 제대로 뻔뻔하게 굴 줄도 알았으니 어디 가서 등쳐 먹히고 오는 일은 없지 않겠나. 자진해서 간이랑 쓸개를 내어줄 때는 있을 거 같지만 말이다.

 

“사과는 됐고. 뭐하러 왔지? 생일 선물이라도 주러 왔나?”

“잘 아시네요.”

“뭐, 이것저것 받았으니까.”

 

애초에 다 보이게 뭔가 들고 왔는데, 이정도도 예측하지 못하면 이상하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도로 삼킨 레오나는 오른손을 슬쩍 내밀었다. 몸도 일으키지 않고 선물만 받아 가려는 태도는 예의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아이렌은 그런 건 신경쓰지 않았다.

커다란 손에 조심스럽게 선물이 든 상자를 올린 아이렌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설명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수인용 귀마개에요. 뭘 사드릴까 싶어서 이것저것 검색했는데, 이런 게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선배는 자는 데 방해가 없는 걸 가장 좋아하실 것 같아서 이걸로 골랐어요. 후기도 좋더라고요. 아무래도 수인족들은 오감이 더 민감하니까 정말 모든 감각을 차단하고 싶으실 때는 필요하시지 않을까 싶었죠”

 

말하는 것 좀 보아라. 누가 보면 방문판매원인 줄 알겠다.

레오나는 조곤조곤 빠르게 이어지는 말에 집중하다가 늘어지게 하품했다. 선물을 고른 이유 자체는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해 주길 바란 건 아니었던 탓이었다.

 

‘자는 데 방해가 없는 걸 좋아한다, 라.’

 

저 말 자체는 틀리지 않는다. 제게 수면이라는 건 단순히 생명 활동 중 꼭 필요한 행위 외에도, 온전한 혼자만의 휴식이라는 가치도 있었으니까. 부조리한 세상과 단절되어, 머리를 굴리지 않고 육체와 정신을 쉬게 해주는 고마운 행위를 방해받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하지 않겠나.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한다. 쓸데없이 깨우러 오는 것들이 귀찮아 죽겠다. ‘낮잠이나 잘 때가 아니다’라는 말은 지긋지긋하다 못해 무감각하며, 이 모든 걸 그저 나태로 치부하는 생각은 화도 나지 않고 우습기만 하다.

비록 러기의 부탁으로 자신을 깨우러 오는 일이 있긴 해도, 제가 생각하는 수면의 가치를 존중해 주는 건 기특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든 레오나는, 특별히 가시 돋힌 말도 하지 않고 얌전히 선물 상자를 챙겼다.

 

“잘 쓰도록 하지.”

“그러면 선물해준 저도 기쁘죠. 그런데, 계속 주무실 건가요?”

“그렇다만.”

 

설마 생일파티는 어쩌고 여기서 자고 있냐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지금까지 대화의 흐름과 맞지 않음을 알면서도, 레오나는 반사적으로 그런 생각부터 했다. 아무래도 사람은 아무리 명석하다 하여도 제가 자주 겪어온 전개부터 떠올릴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렌은 레오나가 생각한 최악의 물음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옆에 있어도 되나요?”

“……왜?”

“그냥, 선배 얼굴 보고 있고 싶어서요. 오래 있진 않을게요.”

 

다른 이가 이런 소리를 했다면 ‘헛소리 말고 목적이 뭐냐’라고 했겠지만, 아이렌이 말한 거라면 저게 정말 목적일 것이다. 저 녀석은 자신의 얼굴을 퍽 좋아하니까.

잠깐 고민한 레오나는 한쪽만 열어둔 눈꺼풀을 닫았다.

 

“알아서 해.”

“고맙습니다.”

“네 녀석은 시끄럽지 않으니, 쥐 죽은 듯 조용히 있을 거라면 상관없어.”

“그래도요. 원래 성가신 것들은 아무리 가만히 존재하고 있기만 해도 그저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거슬릴 때가 있잖아요. 나를 방해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냥 같은 공간 안에 두기 싫은 존재도 있는 법이죠.”

 

그것참, 잘 알지 않나.

레오나는 제 머릿속을 그대로 읊은 것 같은 아이렌의 대꾸에 두 눈을 떴다.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짙은 녹색 눈동자에 잠깐 숨을 참은 아이렌은 눈치라도 보는 건지 가만히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왜 그러세요?”

“너한테는 내가 어지간히도 편한 존재인가 보군.”

“예?”

“네 말대로, 성가신 것들은 가까이 있기도 싫지 않나? 그런데 숨죽이고 조용히 있다가 그냥 가야 하는데도 굳이 옆에 있겠다고 하다니. 이상하다 싶어서.”

 

얼핏 들으면 시비 거는 듯한 말투지만, 아이렌은 알고 있었다. 레오나는 신랄하게 빈정거리는 말투로 중요한 걸 물어보는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경솔하게 굴지 않고 마른침을 서너 번 삼킨 아이렌은, 속삭이는 것 같은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편하게 생각하지는 못하죠. 그건 불경한 일이라고 보는데요.”

“어째서지? 내가 선배에 연상이라서?”

“그건 아니고요. 경애하는 대상을 편하게 여기려는 행동 그 자체가 불경한 거겠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려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경애니, 존중이니 하는 말을 늘어놓은 아이렌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러자, 아래로 길게 땋아 내린 검은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스르륵 움직였다.

 

“그리고 숨소리를 죽이고 꼼짝도 하지 않는 건 힘들지만, 선배 옆자리의 가치를 생각하면 별거 아닌 대가죠.”

“하.”

 

그래. 그걸 듣고 싶었다. 이 여자의 안에서 제 가치는 어느 정도인지 말이다.

다른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상관없다. 남들이 뭘 안다고, 그딴 것에 신경 쓰느니 다른 일에 에너지를 쓰는 게 현명하지.

하지만 아이렌의 의견은 궁금하다. 세상의 기준 같은 건 관심도 없고, 언제나 지성체들의 상식에 물음을 던지면서도 진정 무엇이 옳고 가치 있는지 끝없이 자그마한 머리통으로 생각하는. 대화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존재에게라면, 제 가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여간 입만 살아선.”

“칭찬 감사합니다.”

 

그래, 저 정도 가시는 있어야지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제 주관대로 살아가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린 그는 근처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을 느끼며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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