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패러디] 나쁜 주술사의 꿈 3

우리가 애가 있어서 (3)

  • 한국인 오리지널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 작중최강자라는 설정의 먼치킨물입니다

  • 후시구로 유사가족 물입니다

“속박값 하러 가자 꼬맹아.”

희령이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말과 함께 고죠를 들어 어깨에 걸쳤다. 고죠는 이게 뭐 하는 짓이냐며 버둥거리긴 했지만 술식을 돌려도 꿈쩍 않는 몸에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렇게 짐짝처럼 들리는 일도 벌써 두 번째였다. (기절 상태를 합치면 세 번째였지만 고죠는 기억하지 못했다)

거래가 성사된 뒤, 토우지는 몸 안에 있던 무기고 주령을 뱉어 희령에게 건넨 후 여전히 기절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 게토와 멀쩡한 고죠를 동시에 둘러맸다. 

“남자 기숙사는 어디냐?”

어차피 게토는 계획에 필요한 인원도 아니고 깨우면 시끄러워질 게 분명하니 재운 상태로 안전하게 기숙사 안에 던져놓는 게 베스트라는 그들의 결론 때문이었다. 고죠 또한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이었기에 딱히 반발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짐짝처럼 둘러매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내 발로 갈 수 있다고!”

스구루처럼 기절 상태도 아니고! 몸에 문제가 있는 상태도 아닌데 다 커서 이렇게 옮겨지는 게 얼마나 수치스러운데! 그러나 섬세한 남자 고등학생의 마음에 공감할 만큼 섬세한 감수성이 없는 토우지는 처절한 외침을 듣고도 그저 비웃을 뿐이었다.

“느려. 이쪽은 한시가 급하다고.”

“느려? 내가 느리다고? 그럼 그쪽은 얼마나 빠르길래…!”

고죠의 억울함은 예고 없이 출발한 토우지로 인해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고죠는 그날 전례 없는 경이로운 속도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귀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무슨 사람한테서 이런 속도가 나지?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대체 이 사람은 뭘 잡고 공중을 날아다닌 거지? 순식간에 남자 기숙사 건물까지 도착한 토우지는 완력으로 대충 아무 방의 창틀을 뜯어 그 안에 있는 침대에 게토를 던져 넣었다. 고죠는 속으로 감탄했다. 놀랍게도 그곳은 게토의 방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순식간에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왔다.

안색이 창백해진 고죠를 땅에 내려놓을 시간도 주지 않고 희령이 넘겨받았다. 무기고 주령을 토우지에게 다시 건네주는 건 덤이었다.

“무슨 물물교환 하는 것도 아니고….”

고죠의 구시렁거림에 반응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벌써 스구루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한숨을 내쉬던 고죠는 어깨 넘어 고개를 돌린 희령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실시간으로 귀가 붉게 물들고 있는 걸 본인만 몰랐다. 일부러 모른척한 희령과 달리 이런 일을 가만 지나칠 리 없는 토우지만 허리에 손을 짚고 깔깔 웃었다.

“도련님이 상당히 부끄러우신가 본데?”

수치스러웠지만 맞는 말이었기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말 그대로 지금 고죠는 엄청나게 부끄러웠다. 토우지에게 매달렸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그야 토우지는 저와 같은 남자에 키 차이도 얼마 안 나고 덩치는 비교가 안 되게 컸다. 그런데 희령은 자신보다 작고 토우지처럼 근육질도 아니며 무엇보다…여자였으니까. 부끄러운 게 당연하지 않은가?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고는 차기 당주의 위엄이 어쩌고 하며 안기는커녕 남이랑 제대로 손도 잡아 본 적 없는데. 귀를 넘어 얼굴까지 새빨개진 모습을 확인한 희령은 악당 같은 미소를 지으며 콧소리를 냈다.

“그럼 더 부끄럽게 만들어 줄까?”

어깨에 걸쳐있던 몸이 떨어져 나와 공중에서 순식간에 자세가 바뀌었다. 고개를 들면 희령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이는 자세. 희령의 두 팔은 각각 고죠의 어깨와 종아리 안쪽을 들고 있다. 세간에서 흔히 공주님 안기라 부르는 자세였다. 그즘 되니 콱 기절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토우지는 더 큰 소리로 웃었고 주머니에서 핸드폰까지 꺼내 찰칵 소리를 내며 여러 장 촬영했다. 고죠가 뭐라 소리치든 말든 흔들림 없는 자세로 브이 포즈까지 취해준 희령은 손가락을 접은 후 빙긋 웃으며 말했다.

“무하한 둘러.”

살갗 다 찢길지도 모르니까.

펑, 과장 없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땅을 박차 하늘을 날았다.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와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홍성궁 앞까지 도달한 후, 간신히 땅을 밟게 된 고죠는 난생처음 멀미라는 감각을 느끼며 쉬지 않고 헛구역질을 반복했다. 주저앉은 고죠의 등을 아프지 않게 두드려 주는 사람은 예상외로 토우지였다.

“귀한 경험 한 줄 알아라. 메구미가 봤으면 넌 지금쯤 머리카락 다 뜯겼어.”

대체 아까부터 말하는 그 메구미는 대체 뭐지? 생각에 심화를 더하기도 전에 다시 한번 구역감이 올라온다. 금방 진정될 줄 알았더니 영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고죠를 보던 희령은 애가 이렇게 비실대서 어디다 써먹지, 라는 본인이 들으면 굉장히 억울해질 생각을 하며 하얀 머리카락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그 손길 한 번에 씻은 듯이 몸 상태가 개운해졌다. 고죠는 다들 이래서 반전술식에 목을 매는 거구나, 하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바소 비틀린 깨달음을 얻으며 벌떡 일어나 씩씩한 발걸음으로 홍성궁 안으로 진입하는 길을 앞장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결계의 중심에 가까워지는 탓인지 주위에 묘한 긴장이 감돌았다. 뒤에 있는 두 사람은 전혀 못 느끼는지 아니면 느껴지는데도 신경을 쓰지 않는 건지 태연한 기색이었다. 고죠는 습관인지 멍한 얼굴로 손목에 걸린 염주를 굴리던 희령에게 물었다.

“당신도 천여주박이지?”

희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비밀도 아니라는 듯 주저하는 기색 하나 없이.

“그런데 어떻게 술식을 쓰는 거야?”

처음에는 주구에 새겨진 술식을 쓰는 줄 알았다.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세상에는 술식을 강제 해제 시켜 버리는 주구도 존재한다는 글을 어느 문서에서 읽은 기억이 있으니까. 희미하지만 주력이 느껴지는 염주. 분명 저게 원인일 거라 생각했지만 육안이 돌아온 이후 파악한 염주의 술식은 그런 게 아니었다. 

저장과 방출. 다시 말해 휴대형 창고. 염주가 가진 술식은 그게 전부였다. 혹시나 저 안에 들어있는 다른 주구가 원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 의심 또한 입구에서 희령이 자신에게 술식을 사용한 순간 사라졌다. 주구나 주물에 기대지 않은 오직 주술사의 순수한 술식으로 흘러들어온 주력. 일반 주술사라면 모를까 고죠는 그 흐름을 구별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주술사의 주력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긴 했지만 주구나 주물에 의한 주력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주술사가 아니라니. 거짓말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아이러니했다. 실제로 희령의 몸 안에는 한 치의 주력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바로 옆에 서 있는 고릴라와 똑같은 완벽한 주력 0의 천여주박이다.

충격적인 사실에 걸음조차 멈춘 고죠를 희령은 마찬가지로 흥미롭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신기하네. ‘이건’ 육안에도 안 보이나 봐.”

그리고 앞서 나가기 시작하는 두 사람을 황급히 쫓아가며 고죠는 잔뜩 성이 난 어린아이처럼 외쳤다.

“잠깐! 이거? 그게 뭔데! 육안에도 안 보인다는 건 또 무슨 소리냐고!”

“영업비밀이다 꼬맹아.”

*

“그럼 텐겐님이랑 육안 소유자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라도 알려줘!”

터널을 빠져나와 텐겐이 머무는 거처와 바로 앞인 큰 나무뿌리 앞에 도달하기까지 희령은 고죠의 물음에 그놈의 영업비밀이라는 말 만 반복하며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럴수록 오기만 들끓게 만든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지 모르겠지. 정확히는 관심이 없겠지. 짧은 시간 내 희령의 성격을 조금이나마 파악한 고죠는 이것마저 답해 주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기세로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희령과 토우지는 정신 나간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고죠를 내려다봤다. 솔직히, 다 큰 애가 할 짓이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장난감 사달라고 조르는 어린애보다 훨씬 더 간절히 바라는 게 있는데 아무것도 답해 주지 않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했다. 그래서 자존심을 버리기로 했다. 그깟 자존심이 밥 먹여주나, 본인은 현재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으로 말라 죽을 거 같은데.

하지만 그런 고죠 사토루가 간과한 점이 있었으니.

“아-. 안 되겠다. 도련님은 여기 실아. 나랑 토우지는 집에 갈게.”

그들은 어린애, 특히 생떼를 부리는 어린아이를 다루는 데 굉장히 익숙하다는 점이었다. 텐겐의 거처를 코 앞에 두고 정말 뒤도 안 돌아보고 왔던 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을 황망히 바라보던 고죠는 서둘러 일어나 외쳤다.

“일어났어! 일어났다고!”

일행은 그제야 가던 길을 멈추고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팔짱 낀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희령을 보고 고죠는 왜인지 모르게 키는 자신이 더 크지만 작아지는 기분이 들어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고 희령은 눈치를 보는 고죠에게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식으로 남의 집 앞 마당에서 행패를 부리면 잘 못 했어? 안 했어?”

“…잘 못 했습니다.”

“또 이럴 거야? 안 그럴 거야.”

“안 그럴게요.”

“잘했어.”

찡그린 인상에서 차분한 인상으로 돌아온 희령은 팔짱을 풀어 고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자기 잘못을 반성할 줄 아는 아이에게는 상을 줘야지.”

그러고는 뜬금없이 고죠의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어깨동무를 한 자세 그대로 걷기 시작했다.

“일단 첫 번째, 주력이 없는데 왜 도구 없이 주술을 쓸 수 있냐.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건 영업비밀이라 지금은 안 돼. 네가 더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달라진 게 없는 대답에 고죠가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그런 고죠를 위로하듯 희령이 어깨를 아프지 않게 두드려 왔다.

“하지만 두 번째, 텐겐과 육안의 관계성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답해줄 수 있어.”

“진짜?”

옛날 옛적 대충 한 천년쯤에 미치광이 주술사 하나가 살았는데. 주술사는 다 미쳤는데? 그래 나도 알아 미친 도련님아. 아무튼, 그중에서도 제일 미친놈이 하나 있었는데. 그 자식은 죽지 않는 텐겐의 술식을 이용해서 이루고 싶은 원대한 어쩌고 목표가 있어. 그걸 위해선 텐켄이 인간의 육체를 넘어선 무언가로 변해야 하는데. 너도 알겠지만 성장체라는 대체 육신이 있잖아.

“그게 뭐야”

토우지가 여태까지 가장 큰 한숨을 내쉬며 타박했다. 넌 대체 아는 게 뭐냐. 고죠가는 애를 뭐 이리 곱게 키웠어. 성장체에 대한 설명은 미간을 짚은 토우지가 대신했다.

“성장체는 텐겐의 술식 초기화를 위한 제물이다. 죽지 않을 뿐, 늙어가는 몸뚱아리를 방치하면 변해버린 텐겐이 지금처럼 인간을 위해 결계술을 펼치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어. 그래서 오백 년에 한 번씩 적합한 인간과의 동화로 새로운 육체를 얻어 술식 효과를 초기화시키는 거지. 자아를 잃은 괴물이 돼버리면 곤란하니까.”

“그렇구나! 메탈그레이몬이 된다면 괜찮지만, 스컬그레이몬이 된다면 곤란하니까!”

토우지는 더 이상 말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인상을 찡그린 채 고개만 끄덕거렸다. 짧은 강의가 끝나자 희령은 하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방금 설명한 거처럼 텐겐은 인간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오백 년마다 성장체라는 존재와 동화를 진행해. 그게 미치광이 주술사 입장에서는 매우 곤란한 일이지. 텐겐이 계속 인간으로 남아 버리면 자신의 목표는 영영 이룰 수 없는 게 되어버리니까. 미친놈 입장에는 성장체가 가장 걸림돌인 거야. 그럼 성장체만 죽여버리면 되겠구나, 어차피 동화 전 성장체는 그냥 인간일 뿐이니까. 그런데 여기서 변수, 육안의 술사가 등장해 버려. 나? …그래 뭐, 이 시대의 육안은 너니까 너라고 하자. 결론만 얘기하면 네가 그 미친 주술사를 죽였어. 동화가 일어날 때마다라고 했으니까 아마 두 번 정도일까? 자, 잠깐. 두 번이나 죽였다며 그런데 그놈이 아직도 살아있는 거야? 이유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놈은 죽여도 죽지 않는 거 같아. 아마 술식 중 하나같은데, 뇌를 갈아 끼우더라고.

희령이 입으로 달칵, 소리를 내며 행동까지 재연해 주자 그 모습을 상상한 고죠는 소름이 돋아 양손으로 팔을 매만졌다.

“거기서 나는 추측한 거야. 텐겐과 성장체 그리고 육안 소유자 사이에는 알 수 없지만 일종의 인과관계 같은 게 존재하지 않을까, 하고.”

“그럼 살인마 얘기는 뭐야? 희령 당신이 해 준 얘기들, 전부 그 살인마한테 들은 거라며?”

“그 살인마가 바로 그 미친 주술사새끼다.”

“이해가 안 되네, 그 자식은 뭣 하러 이 미친 고릴라 아내를….”

고죠의 말은 끝맺음 되지 못했다. 한 번 당해봤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감각. 온몸의 힘이 사라져 무력해진 고죠 사토루는 자신이 서 있는 곳을 확인했다. 텐겐이 거처를 지키는 특별한 결계의 코 앞이었다.

“일섬.”

나지막하게 읊조린 희령의 손에는 딱 봐도 특급으로 보이는 단도형 주구가 들려있었다. 단도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고죠 사토루의 목. 예리한 칼날을 연약한 살결에 살짝 가져다 댔을 뿐인데 붉은 피가 흐른다. 칼끝이 누르는 곳은 정확히 급소였다. 이대로 조금만 힘을 주기만 해도 고죠 사토루는 죽는다.

토우지 또한 처음 보는 형태의 주구를 꺼내 들어 경계 태세를 갖췄다.

“도련님, 아까 그 미친 주술사 새끼가 왜 내 아내를 죽였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열어주지 않으면 강제로 밀고 들어가기라도 하려는 듯. 사나운 기세의 토우지는 아득 이를 갈았다.

“우리도 그게 궁금해서 온 거야. 왜 하필이면 그 좆같은 새끼가 내 가족을 건드렸는지.”

사나운 토우지와 상반되게 희령의 기세는 시리도록 고요했다. 육안이 없어도 고죠는 이 감각을 안다. 해일이 일어나기 직전, 바다는 파도 하나 없을 정도로 잔잔해진다. 희령의 기세는 그것과 같다. 재해의 시발점. 차가운 목소리가 궁 안을 가득 채웠다.

“문을 열어 텐겐, 인과가 최악의 형태로 끊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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