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 맛 영구 메모리
오르토 슈라우드 드림
* 24년도 오르토 생일 기념 글
“작은 도련님, 즐거워 보이시는군요.”
시끌벅적한 담화실 안. 오늘의 주인공인 오르토를 축하하는 목소리들 사이, 르니안의 무미건조한 감상이 이데아의 귓가를 스친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동생과 기숙사생들을 바라보고 있던 이데아는 머쓱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수많은 축하 속에서 기뻐하는 동생을 보는 건 기쁜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이 왁자지껄한 파티 분위기는 그에겐 영 적응이 되지 않는 탓이었다.
“뭐, 보통 생일이라는 건 즐거운 날이니까. 졸자에겐 그렇게 큰 이벤트는 아니지만.”
“동의합니다. 자신도 출고 일자 같은 건 큰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요.”
“푸핫! 출고 일자라니, 매정한 비유구려.”
하지만 딱히 그 표현을 지적할 생각은 없다. 따지고 보면 맞는 말 아닌가. 인간이란 결국 단백질과 칼슘으로 된 기계나 다름없다. 오히려 부품 교체가 힘든 걸 생각하면, 기계만도 못하다 할 수도 있지.
의미가 모호한 웃음을 흘리던 이데아는 제 옆에 자리 잡고 앉는 르니안을 힐끔 바라보았다. 잠깐 나갔다 돌아온 그의 품에는 낯선 종이상자가 오도카니 놓여있었다.
빛나는 금안이 바라보는 곳을 눈치챈 르니안은 상대가 묻기 전에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러고 보니, 레르네가 선물을 전달해 달라고 했습니다.”
“레르네가?”
그가 오르토에게 생일 선물을 주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레르네는 자신들의 먼 친척이자 오르토의 정혼자 비슷한 존재였으니까. 아니, 과거형으로 말하기도 좀 그럴까. 적어도 당사자들은 아직도 이 약혼이 유효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한쪽이 더는 살과 뼈로 이뤄지지 않은 존재가 된 와중에도 여전히 결혼을 생각하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애정인가.
동생들의 깊은 감정을 곱씹던 이데아는 자연스럽게 옛날 일을 떠올리다가, 문득 오싹함을 느끼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깐, 그거 혹시.”
어쩐지 레르네가 뭘 보내온 건지 알 거 같다. 제발 제 예상이 틀렸길 바라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 레르네는 오르토의 생일에 ‘그걸’ 만들지 않았나.
질색하는 이데아의 얼굴을 빤히 보던 르니안은 조각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얼굴로 종이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건, 손바닥 두 개를 합쳐놓은 크기 정도 되는 케이크였다.
쨍한 하늘색 크림과 초콜릿으로 장식된 수제 케이크를 보고 정신이 아찔해진 이데아는 반사적으로 몸을 떨었다.
“히익.”
“상당히 솔직한 반응이군요, 도련님.”
“미, 미안하오.”
“괜찮습니다. 레르네의 케이크가 객관적으로 끔찍하다는 걸 부정한다면, 자신이 버그 걸린 게 아니겠습니까.”
“아니, 끔찍하다고 할 것까지야. 그냥…… 좀 별로인 거지.”
자신도 솔직하다곤 생각하지만, 역시 르니안이 더 가차 없는 거 같다. 당사자가 여기 없다 해도 여동생이 만든 케이크를 대놓고 끔찍하다고 하다니. 그야말로 매정한 객관성 아닌가.
어쩌다 보니 레르네의 케이크를 변호한 이데아는 마른침을 삼킨 후 오르토에게 온 선물을 살폈다. 맛은 어떤지 지금 당장 알 수는 없었지만, 이번에도 겉모습만큼은 썩 그럴싸해 보였다.
“근 2년간은 안 보내더니.”
“아마 눈치가 보인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는 걸 저희 부모님께서 좋게 보시진 않았으니까 말입니다.”
“아하. 지금은 코벤에 있으니까, 보는 눈이 없다 이건가.”
그렇다 해도 이렇게 바로 만들어서 보내다니. 참으로 행동력 있지 않은가. 여전히 하이드 부부가 알게 된다면 이 상황을 좋게 여기지 않을 거 같지만, 그건 자신들 형제와 르니안만 입 닫으면 문제 되지 않을 테니 괜찮다.
‘맛은 둘째치고, 겉보기는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 다행인가?’
놀란 마음이 조금은 진정된 이데아는 처음 레르네가 케이크를 만든 날을 떠올렸다.
제 동생이 지금의 모습으로 재탄생한 이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휴머노이드를 자신의 친구이자 정혼자로 받아들인 레르네는 매년 오르토의 생일에 작은 케이크를 만들어 선물해 왔다.
휴머노이드는 케이크를 먹을 수 없는데 왜 그런 의미 없는 짓을 하는 걸까. 이데아와 르니안은 그걸 궁금해했지만, 레르네는 오히려 연장자들의 의문이 이상하다는 듯 이렇게 대꾸했다.
‘오르토 도련님은 못 드시니까 만드는 거야. 드실 수 있다면, 내가 만든 건 못 드리지.’
제 오라비인 르니안에게 그리 대꾸한 레르네는, 오직 상대가 기뻐하길 바라며 수제 케이크를 선물했다. 무언가를 먹는다는 행위 자체는 할 수 없을지언정 선물을 받고 기뻐할 줄 아는 지능은 내장되어있던 오르토는 레르네의 그 성의에 기뻐했고, 항상 케이크의 사진을 찍어 자신의 메모리 안에 저장해 두었었지.
그리고 두 동생의 행복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이후 찾아오는 건, ‘최악은 아니라도 객관적으로 맛있다고 할 수 없는’ 케이크의 처리 시간이었으니.
차마 음식을 그냥 버릴 수 없어 반쯤 강제로 수제 케이크를 나눠 먹었던 르니안과 이데아는 언젠가부터 오르토의 생일이 가까워지면 이렇게 빌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제발 케이크를 만들지 않기를’, 혹은, ‘만든다면 작년보다는 좀 더 잘 만들었기를’ 말이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레르네의 케이크는 그래도 매년 조금씩이나마 발전해, 최근에는 평균 근처까지는 가는 맛은 보장하게 되었다는 걸까. 3년 전에는 여전히 파는 것에 비하면 형편없어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닌 케이크를 구웠는데. 올해는 과연 어떨까.
이래저래 걱정하느라 머리가 아파진 이데아는 결국 한숨과 함께 이 일을 최대한 가볍게 넘기기로 했다.
“뭐어……. 오르토는 좋아할 테니, 상관없겠지.”
“작은 도련님이 좋아해 주시면 다행입니다. 케이크 처리는 기숙사생들에게 담당토록 할까요?”
“오르토가 허락한다면.”
어차피 제 동생이라면 많은 이들이 함께 기뻐해 주었으면 할 테니 기꺼이 나눠 먹는 걸 허락할 테지. 레르네의 케이크를 먹었을 때 행복해질지 불행해질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오르토는 이 케이크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르니안! 그건 뭐야?”
자신들의 대화가 들린 걸까. 기숙사생들과 놀던 오르토가 슬쩍 다가와 케이크에 관심을 보인다.
르니안은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지금 케이크를 전달하자 생각한 건지, 특별한 이벤트도 없이 담백하게 선물을 내밀었다.
“좋은 질문입니다, 작은 도련님. 레르네가 케이크를 보내왔습니다.”
“와, 정말?!”
역시나, 오르토는 이 선물을 대단히 기뻐했다. 제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기쁨 표현을 동원해 들뜬 마음을 표현하는 동생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데아의 입가에 따스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옛날 생각나네.’
역시 생일이라는 건, 마냥 나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저 미묘한 맛의 케이크도. 이제는 없으면 어색하지 않을까. 그래도 역시, 저 케이크는 안 먹을 거지만.
새삼스럽게 레르네가 고마워진 그는 패드를 꺼내 기뻐하는 오르토와 케이크를 전달하는 르니안의 모습을 찍었다.
나중에 감사 인사를 전하는 메시지를 쓸 때, 이 사진을 꼭 첨부해야지.
그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대의 보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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