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꽃샘추위

쟈밀 바이퍼 드림

* 전력 드림 60분 신데렐라 [45회 주제: 꽃샘추위]

 

 

“너, 여기서 뭐 하고 있냐?”

 

어느 한가한 휴일 오후. 기숙사 일과는 관계없는 카림의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쟈밀은 담화실에서 수상한 이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모여서 간식을 먹고 있는 1학년 학생들 사이. 마치 자신도 이 기숙사의 학생인 듯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아이렌은 자신을 발견한 쟈밀에게 눈인사한 후 답했다.

 

“너무 추워서 놀러 왔어요. 여긴 따뜻하니까요.”

“오늘 기온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 그런데, 너 오늘 시내에 볼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냐?”

“내일 가면 돼요. 급한 일도 아니고.”

 

상당히 유연한 상대의 대처를 들은 쟈밀은 저도 모르게 한쪽 눈썹만 까딱였다.

개인 사정이나 주변 환경 때문에 일정을 바꾸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일반적이고 당연한 대처였지. 하지만 제가 아는 아이렌이란 여자는, 미리 짜놓은 일정에 타격이 가지 않도록 계획을 세웠다면 어지간하면 지키는 여자였다. 얼마 전에는 비가 심하게 내리는데도 기어이 ‘살 책이 있어요!’라면서 시내로 나갔다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추위 때문에 일정을 취소하고, 심지어 스카라비아 기숙사로 오다니.

무언가 이상하다 싶어진 쟈밀은 팔짱을 낀 채 슬그머니 상대를 추궁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건 알았지만, 아예 안 나갈 줄은 몰랐네.”

“추워서 그런 것도 있지만, 사실 제가 안 나가는 건 모두를 위해서라고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흐흠.’ 또 무슨 궤변을 늘어놓으려는 건지, 제비꽃색 눈동자가 짓궂게 빛난다.

동급생들이 나눠준 과자를 야금야금 먹고 있는 그는 쟈밀이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이유를 입에 올렸다.

 

“제가 살던 나라에는 꽃샘추위라는 게 있었거든요. 봄에 잠깐 차가운 고기압이 내려와 추워지는 걸 말하는 단어인데, 꽃이 피는 시기에 추워진다 해서 꽃샘추위라고 해요.”

“……그래? 그래서?”

“그러니까, 저는 추위가 심해지지 않도록 여기 있을래요. 꽃이 없으면 바람도 시샘하지 않겠죠.”

 

제가 농담해 놓고도 민망하다 느낀 걸까. 그렇게 말한 아이렌은 킥킥 웃으며 슬쩍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러니까, 자기가 꽃이다. 이건가?’ 원래라면 시답잖은 농담 말고 진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그냥 1학년 녀석들의 다과회에 끼고 싶었던 게 아니냐고 물었을 쟈밀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저 농담이 괜히 귀에 맴돌아,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안 어울리는 비유군.’

 

여성을 꽃으로 비유하는 것 자체가 진부하다느니 어쩌니 하는 문제를 떠나, 애초에 아이렌은 정말로 자신이 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 학교의 유일한 여학생인 것과 별개로, 그는 특별히 제 외모를 특장점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본디 치장에도 관심이 없기도 하고, 나풀거리는 긴 치마와 땋은 머리카락의 청순함 따위는 싹 잊게 하는 거침없는 언행이 매력인 녀석인데. 꽃은 무슨. 아마 본인도 이 농담이 안 어울리는 비유인 걸 아니까 저렇게 웃은 것 아니겠는가.

‘허튼소리 하지 말고, 무슨 일 있냐.’ 본래라면 그리 말해야 하지만, 아짐가의 일로 소소한 스트레스를 받고 돌아온 쟈밀은 이 안 어울리는 비유를 굳이 지적하지 않고 저 좋을 대로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면 여기 있으면 안 되겠네.”

“예?”

“추위에 약한 꽃을 내버려 두면 쓰나. 온실에 고이 넣어둬야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은 쟈밀은 성큼성큼 후배들에게 다가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아이렌을 일으켜 세웠다. 얼떨결에 단호한 손길에 이끌려 일어난 아이렌은 갑자기 진지하게 제 농담을 받아치는 쟈밀을 보며 당황했지만, 진짜 당황스러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혹여나 다리도 달려있고 말도 하는 이 170cm짜리 꽃이 도망가지는 않을까 하는 쟈밀이, 마치 짐짝이라도 들 듯 아이렌을 어깨에 걸쳐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 잠깐. 선배? 저기요?”

 

아, 이럴 때는 이 녀석 치마가 무릎 아래로도 한 뼘 이상 내려오는 길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다리만 잘 잡으면, 옷이 들춰질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는가.

떨리는 동공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1학년들을 스윽 훑어본 쟈밀은, 별다른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아이렌을 제 방으로 들고 가버렸다.

 

‘보는 눈들이 많으니 치워둬야지.’

 

물론 저 중에서 아이렌을 건들만한 녀석은 없고, 아이렌도 그냥 아는 얼굴들 사이에 끼여 과자나 먹으려고 앉아있던 거겠지만, 그래도 굳이 저 사이에 아이렌을 두고 싶진 않다. 모처럼 여기까지 기어들어 와 줬으니,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좋지 않겠는가.

어느새 말로도 행동으로도 저항하지 않는 채 얌전히 들려가는 아이렌을 힐끔 본 쟈밀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은 깊고도 달콤해서, 근심 걱정만 담겨있는 건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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