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네프릴

[스네이프 드림] 가관

장관이겠지

고증 무시했습니다...

죄송

모브의 입장에서 보는 교수님의 연애


"우와..."

온 천지가 분홍빛으로 물든 것만 같다.

"가관이다..."

그리고 오늘 생애 첫 데이트를 하러 온 이 가엾은 마녀의 머릿속은 새하얘지고 말았다.


학창시절 내내 인기라곤 없었다.

딱히 모난 구석은 없었으나 사람을 끄는 매력도 없었다. 함께 밥 먹고 같이 숙제 할 친구 정도야 있었지만 누구에게 고백을 하지도, 고백을 받지도 못했다. 크리스마스에 다들 겨우살이가 어디에 매달렸네 마네 떠들 때에도 친구들 얘기는 귓등으로 흘리고 체스나 뒀다. 나랑 상관 없는 얘기니까.

어디에나 흔하게 있을법한 존재감 없는 사람.

에밀리 그레이스 윌슨, 19세.

너무 평범한 바람에 죽음도 지나쳐 간 건지, 전쟁통에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크게 다친 곳도 없이 온전하게.

그런 나에게도 기회는 온다! 오늘은 살면서 처음으로! 내게 호감을 표시한 사람과! 데이트! 하는 날!

기분 좋게 춤을 추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데이트~ 데이트~

쨔쟌~ 그것도 머글 동네에서!

"이런 젠장!"

옷을 입으려다 말고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는다.

"이, 이거. 괜찮은 거겠지? 이 옷 안 이상하겠지? 제발! 멀린!"

쓸데없는 생각 말고 그냥 순순히 마법사 동네에서 만날 걸.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멍청한 선택을 했을까. 주변 사람들한테 데이트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을 뿐인데! 가족들도 친구들도 죄다 마법사니까 머글 동네에서 만나면 아무도 모를 줄 알았지! 걔가 머글 동네에서 자랐다는 걸 까먹다니!

"옷 이상하게 입으면 바로 정 떨어질 거 아니야!"

'마법사의 머글 복장은 엉망이지.'

분명 지난번 동창 모임에서도 나왔던 얘기였다. 취하기 전에 듣는 바람에 똑똑히 기억난다. 수영복에 트렌치코트를 입는 게 이상한 일인 줄 19년을 살면서 전혀 몰랐다. 그 위에 목도리만 안 하면 괜찮은 줄 알았다고!

일주일간 머글 잡지를 일곱 권이나 살피곤, 최대한 무난해 보이는 차림으로 -과연 무난한 차림이었을지는 아직도 미지수지만- 제 또래의 여성들이 많이 들어가는 머글 옷 가게에 가서 '그' 주문을 외쳤다.

"이 마네킹에 걸친 거 다 주세요!"

옷차림을 걱정하다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한 그때, 먼저 기다리던 사람이 손을 들어 인사하려다 잠시 멈칫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에밀리는 심장이 떨어지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를 빠르게 생각했다. 그리고 옷 가게 점원을 저주했다.

'멀린 젠장, 이거 이상한 옷이었나 봐!'

마네킹에는 유행하는 옷을 입히는 거 아니었어? 머글들은 안 팔리는 옷을 마네킹에 입히나? 왜 날 안 말렸지? 우중충하게 입어놓고 화사한 옷을 달라고 해서? 그래서 그냥 팔아 치운건가? 악성 재고라서? 에밀리의 걱정이 더 이어지기 전에 그는 다시 환한 미소로 인사했다.

"너무너무 예쁘다, 에밀리."

칭찬과 함께.

에밀리는 저주를 3초 만에 철회했다.

다 좋았다. 정말 모든 게 좋았다.

꽃이 만개한 산책로는 정말 장관이었다.

그리고 지금 목도한 모습은 아주 가관이었다.

함께 걷던 그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있잖아, 에밀리. 혹시 내가 미친 소리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에밀리는 저도 모르게 말을 잘랐다.

"저거 교장 선생님이야?"

호그와트 교수가 주말에 머글 동네에 있다고? 그것도 하필 스네이프가? 꽃 구경을 하러? 왜?

에밀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옆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더니 오히려 안정을 찾는 듯했다.

"다행이다. 내 눈에만 보이는 게 아니었구나... 내가 뭘 잘못 먹기라도 한 줄 알았어."

"나한테도 보여. 헛것은 아닌가 봐."

"보가트일까?"

"머글 동네에? ...습, 보가트가 맞을지도."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기울여지는 걸까. 에밀리의 얼굴은 좌측으로 대략 45도 정도 기울어 있었다. 아무래도 보가트인 것 같다. 저 말도 안 되는 차림새를 보아하니 저건 무조건 보가트가 맞다.

"왜 보가트가 회색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었을까?"

에밀리의 물음에 그가 속삭였다.

"스네이프 교수님이 까만 로브 말고 다른 옷 입으신 거 오늘 처음 봤어."

에밀리도 조그맣게 대답했다.

"나도."

심연을 바라보면 심연도 당신을 바라본다는 명언이 있다. 너무 오래 쳐다본 걸까? 이내 심연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헉.......... 윌, 윌슨..."

정확히는 심연 옆의... 아니, 심연의 일부라고 봐도 되는... 심연은 어디까지가 심연일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아무튼 그 옆에 서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2단짜리 아이스크림을 먹으려다 그대로 멈춰선 누군가와. 분명 아는 얼굴인데. 한 학년 아래였던 것 같은데. 이름이 뭐였더라. 한껏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하다가 이름이 떠오르는 대로 뱉어본다.

"에이프릴 슈?"

긴가민가 하며 불렀는데 아마 맞는 모양이다. 아이스크림을 든 팔이 힘없이 내려간다. 철퍽. 동그란 아이스크림이 콘을 떠나 곤두박질쳤다. 쟤도 흰 티셔츠에 청바지네. 저게 유행하는구나. 나도 저렇게 입을 걸.

"프릴? 떨어졌어."

멍하게 서 있던 에이프릴은 그제야 그 옆의 새카만 남자... 아니 오늘은 그렇게 새카맣지도 않은... 그래. 그냥 이름으로 부르자. 에이프릴은 얼떨떨한 얼굴로 스네이프의 시선을 따라가 본다. 그제야 제 운동화에 아이스크림이 올라 앉은 걸 본 모양이다.

"아, 새건데..."

"내가 한 입 먹었던 거잖아."

스네이프는 몸을 숙이더니 들고 있던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어 신발을 가볍게 닦아준다. 저건 아무리 봐도 여자 가방 같은데.

"아이스크림 말고 운동화요. 오늘 신으려고 새로 산 거였는데..."

에이프릴이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가방에 티슈가 있었어요? 챙긴 적이 없는데요."

"나오면서 내가 넣었어. 챙겨오길 잘했군."

에밀리는 찝찝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지켜본다. 왜 듣는데 묘하게 속이 안 좋을까. 게다가 하필 둘 다 흰 셔츠에 청바지 차림,

"오."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다. 갑자기 머리 속에서 모든 조각이 맞춰진다.

저 사람들도 데이트하러 왔구나.

주변 사람 다 마법사니까.

머글 동네로.

우리랑 똑같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늘 생애 첫 데이트를 하러 온 가엾은 마녀의 머릿속은 새하얘지고 말았다.

'이 데이트는 텄구나...'

때맞춰 꽃이 바람에 휘날린다.

"와..."

예쁘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졸업한 학교 교수님과 더블데이트로 보게 되다니... 신발까지 닦아주다니... 그 스네이프가... 아이스크림도 나눠먹다니... 떠먹여 주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어쩌면 내가 못 본 사이에 먹여줬을 수도 있겠지...

꽃잎이 나부끼고 세상이 분홍빛으로 물들자 웅성거리던 구경꾼들이 조용해진다. 짧은 정적을 틈타 마음의 소리가 흘러나온다.

"가관이다..."

흡. 에밀리는 깜짝 놀라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 면전에다가 대고 가관이라니. 충격적인 일이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놀랄 일은 아니지 않나. 아닌가? 아니지 않은 게 아니긴 하지... 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아니, 슬리데린의 에이프릴 슈라는 애가 스네이프 교수님을 따라다니다가 죽음을 먹는 자가 돼서 교수님 목숨을 구해줬다는 얘기는 유명해서 알고 있긴 했는데. 그렇다고 데이트... 를 하고 있을 줄은 솔직히 아무도 모르지 않았을까? 이거 지금 나만 아는 거야? 나만 아는 건 아니고 내 옆에 얘도 아는구나. 둘이라 다행이다. 나 혼자 봤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어주겠지. 근데 둘이 말한다고 믿어줄까? 쌍으로 거짓말 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에밀리의 머리가 미친 듯이 굴러가는 동안 스네이프도 드디어 두 사람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는 당황한 듯 어색하게 일어나더니 짐짓 태연하게 이쪽을 향해 말을 건넸다.

"오랜만이군. 2년 만인가? 졸업하고선 처음 보는 것 같군. 둘을 이런 데서 동시에 만나게 될 거라곤 생각한 적 없는데. 윌슨 양, 그리고-"

스네이프가 뒷말을 잇기 전에 에밀리가 선수를 쳤다.

"죄송해요 교수님. 제자분이랑 데이트하시는데 저희가 방해해버렸네요."

"컥."

그 말에 갑자기 사레들린 스네이프가 몸을 숙였다.

"괜찮아요, 세브?!"

에이프릴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등을 연거푸 두들겼다. 한참동안 토닥인 후에야 좀 나아졌는지, 스네이프가 에이프릴을 손짓으로 안심시켰다.

"괜, 괜찮아. 괜찮아. 그만해도 돼, 프릴."

"아... 서로 애칭으로... 부르시는구나..."

"허억."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말했던 걸까? 겨우 진정됐나 싶었는데 이젠 놀란 에이프릴이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던 말이 고의였는지 아닌지 에밀리 본인조차 알 수 없었다. 스네이프가 숨을 제대로 못 삼키는 에이프릴을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두 팔을 조심스럽게...... 잡고. 와............ 속 안 좋아. 이제 다 모르겠다. 도망가자.

"죄송합니다. 두 분이서 오붓한 시간 보내세요! 저흰 가 볼게요!"

그 말을 끝으로 에밀리는 데이트 상대의 손을 잡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전임 마법약 교수이자 전임 어마방 교수이자 전임 호그와트 교장이자 현직 마법약 교수이면서 동시에 교감이기도 한 사람과 그 연인... 으로 생각되는 사람이 안 보일 때까지.

이후 에밀리의 데이트는 망했다.

교수의 데이트 장면을 목격할 거라는 예상을 하고 밖을 나서는 사람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을까. 장담하는데 이런 일 앞에서는 누구든 본인 할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덜 울창한 반대편 산책로로 걷는 동안 두 사람은 설렘 따위는 전혀 없이 스네이프의 차림새와 그의 데이트 장소 선정 센스에 대해 한참을 토론했다. 전임 교장을 향한 욕설을 참으며 얘기하느라 에밀리는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대화 주제를 바꿀 수도 없고! 하필이면 내 첫 데이트 날! 두 번째면 또 몰라! 에밀리는 파란 하늘을 보며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그런데 에밀리 넌 그런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말을 정말 잘 하더라."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에밀리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 뭐라고?"

"아까 스네이프 교수님을 마주쳤을 때 말이야. 말을 정말 잘 하더라. 난 호그와트 시절부터 네가 말을 잘 하는 멋진 애라고 생각했거든."

그가 쑥스러운지 소매를 매만졌다.

"근데 어떻게 말을 붙여야 할지 몰라서 몇 년을 고민하다가 바보같이 그대로 졸업해버렸어."

학교 다닐 때부터 좋아했다고? 뭔가를 깨닫고는 에밀리의 목소리가 신난 듯 높아진다.

"아. 그래서 지난번에 리키 콜드런에서 만났을 때...!"

해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적어도 에밀리가 다니던 시절에는 래번클로와 그리핀도르는 딱히 세기의 라이벌 같은 관계는 아니었다. 그러니 그다지 친해질 일도 없었다. 서로에게 별로 관여하지 않으니까. 7년 동안 매일같이 마주쳐서 그냥저냥 얼굴과 이름을 아는 사이. 그 정도 관계로 졸업. 그리고 몇 달 전, 리키 콜드런에서 그와 마주쳤다. 오랜만에 래번클로 친구들을 만나러 간 참이었는데, 우연히도 그리핀도르 졸업생 몇 명의 모임과 겹쳤다. 눈이 마주치자 엄청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응, 내가 많이 반가워했지? 너랑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사실 그 모임에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었거든. 그런데 거기에 네가 있더라고. 정말 운이 좋았지."

"그럼 데이트 신청하던 편지에 '이게 내가 그리핀도르로서 발휘하는 최대의 용기'라고 썼던 게 진심이었단 말이야?"

"난 모든 편지에 매번 진심만 담았어."

그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바닥을 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기회를 놓치기 싫었거든."

"'거절할 거면 이 편지 끝단의 No에 체크를 해서 돌려보내 달라'던 것도 진심이었다고?"

"그것도 진짜였는데... 장난처럼 보였구나. 미안."

술집에서 만났던 후로 둘은 빠르게 친해졌다. 처음엔 간만에 만난 동급생에게도 편지를 보내주는 넉살 좋은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몇 달 동안 계속 편지를 주고받다 보면 아무리 연애 경험이 없는 에밀리라도 깨닫게 된다. '아, 얘 진심이다.' 최근에는 부엉이가 하루에도 여러 번 오가곤 했다. 두 집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서 망정이었지, 아니면 마법부 동물복지국에서 부엉이 학대라고 잡아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직 이해가 안 가. 넌 호그와트 때부터 인기 많았잖아? 체스 마스터라고 전교에서도 유명했으면서 대체 왜 날?"

"네가 크리스마스에도 체스만 할 정도로 좋아한다고 하길래 마법사 체스 대회에 나올 줄 알았거든. 그래서 방학 동안 급하게 체스도 배우고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네가 안 나오더라고... 그러다 우연히 그 해 마법사 체스 대회 우승자가 되고 만 거야. 그 후론 안 했지. 네가 없으니까."

기억났다.

얘는 2학년 때 딱 한 번 우승한 후로 체스를 안 했다.

그래서 체스 마스터였어.

마스터하고 두 번 다신 안 해서.

"어쩐지, 너 체스 잘했지 않냐는 얘기할 때마다 답장에서 묘하게 언급을 안 하더라니."

"너 때문에 시작했던 거라고 쓰기가 너무 쑥스러워서 그랬지..."

에밀리와 눈이 마주친 그가 살짝 웃었다. 귀까지 새빨개진 채로. 여전히 시선은 땅을 향해놓고.

...어?

지금 분위기 좀 괜찮지 않나?

에밀리가 웃음을 터트리며 그를 툭 건드렸다.

"너 얼굴이 새빨개."

데이트는 안 망했다.

...언젠가 청첩장을 만들게 된다면,

스네이프 교수님이랑 슈에게도 부엉이를 보내야겠다.

끝.


사진 출처: Susanne Jutzeler, suju-foto, https://www.pexels.com/ko-kr/photo/2099737/

약간 이거 같죠

내가 에밀리였으면 그 자리에서 토했다

아...

멀린 맙소사 내게 왜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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