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네이프 드림] 잠옷
호그와트 교수직이 위험하다. 아니, 위험한 건 졸업장일지도...
불사조 기사단 전원 생존 AU
슬리데린 8학년이 한 명 뿐이라 에이프릴은 기숙사를 혼자 씁니다.
맥고나걸 교장은 교직원 탑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긴 녹색 망토 자락이 바람에 펄럭였고,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치 누군가를 급히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바삐 움직이던 그녀의 발이 마지막 층의 하나뿐인 문 앞에서 멈춘다. 똑똑똑, 문을 두드린다. 안에서 구두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부스럭대는 소리가 함께 들려온다. 맥고나걸이 소매를 두어 번 매만지고 옷매무새까지 정갈히 정리한 뒤에야 겨우 문이 열린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십니까, 교장 선생님?"
문간에 선 마법약 교수가 다소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평소의 그라면 이미 일어나서 차를 홀짝이고 있을 시간인데 어째 조금 전에 일어난 것 같다. 잠옷 바지에 어울리지 않는 흰 셔츠 차림이 다소 의아하지만, 맥고나걸은 주저 없이 말을 이었다.
"벽난로로 두 번이나 연락을 드렸지만 대답이 없으셔서 말이죠.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직접 왔습니다."
"오늘은 주말 아닙니까? 게다가 아침에 회의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
스네이프가 투덜거렸다.
"회의는 없으니까요. 주말 아침부터 불러서 미안하지만, 세베루스와 개인적으로 의논할 게 있어서-."
벌컥, 갑자기 침실 쪽 문이 열린다. 스네이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안쪽을 가리려는 듯 방문을 슬쩍 닫아보지만, 이상한 기류를 눈치챈 맥고나걸이 닫히려는 문에 가만히 손을 가져다 댄다. 시선이 마주친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흐른다. 이제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슬리데린의 사감은 문을 억지로 닫고 은사의 손을 삐게 만들 것인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그 정도의 무뢰한은 아니었다. 포기한 그가 흘깃 뒤를 봤다. 침실에서 나온 건 당연히 에이프릴이었다. 누가 봐도 제 것이 아닌 회색 잠옷을, 상의만 입은... 에이프릴. 일어날 시간이 아닌지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비치적댄다.
"세베루스?"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어져서 찾으러 나온 것 같다. 그는 들릴 듯 말 듯 하게 한숨을 쉰다.
"...마저 자."
스네이프의 낮은 대답에 에이프릴은 눈을 반쯤 감은 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라색 긴 곱슬머리가 가볍게 흔들린다. 슬리퍼가 끌리는 소리가 조금씩 멀어지더니 이내 침실 문이 닫혔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 두 교수 사이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젠장. 스네이프는 입술을 깨문다. 나오지 말라고 프릴에게 미리 알려줬어야 했는데. 내가 옆에 없으면 깰 걸 알았건만. 그의 검은 눈동자에 후회가 어렸다. 그가 자책을 하든 말든, 맥고나걸은 에이프릴이 들어간 침실 문을 계속 바라본다. 스네이프가 침착하게 말을 건넸다.
"그래서, 저랑 의논하실 게 있으시다고요. 미네르바?"
그녀가 눈을 깜빡이지 않고 스네이프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네. 아~주 많네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맥고나걸이 터무니없다는 표정으로 스네이프를 한참 쳐다보다가 외쳤다.
"채비하고 교장실로 오세요. 당장!"
"...네, 교장 선생님."
세베루스는 오늘 자신의 하루가 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받아들이기로 했다.
교장실에는 당연히, 아주 단호한 표정의 미네르바 맥고나걸이 기다리고 있었다. 책상 앞에 선 호그와트의 교장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스네이프를 쏘아봤다.
누구와 만남을 가지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교내에서... 교수가 학생과... 굉장히 부적절하고... 위대한 일을 했다고 다른 일에 대해서도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며... 시기적으로도 매우... 입학 때부터 봐 온 제자를... 어떻게 교수가... 8학년이어도... 크게 실망... 아무리 성인이라지만... 타의 모범이 되어야... 제대로 듣고 있기는 한 거냐...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교장실 전체가 울리는 것 같다. 스네이프는 한참 전부터 교장실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학생 때도 이 정도로 긴 설교를 들은 적은 없는데. 아니, 이 정도로 호되게 주의를 들을 만한 일을 안 해서였나. 미네르바 맥고나걸이 이렇게까지 화낼 수 있는 사람이었군...
"호호호."
한창 질책을 듣는 중에 갑자기 들려온 작은 웃음소리에 스네이프는 고개를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귀를 의심했겠지만, 그는 아니었다. 스네이프는 그게 어느 초상화의 소행인지를 바로 알아차렸다. '덤블도어...'
"자네 그렇게 움츠러든 모습은 부임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구만."
얼핏 눈에 띈 전 교장의 초상화가 그를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부아가 치밀어올랐지만, 한창 혼나는 중인 스네이프는 한 마디도 받아칠 수 없었다. 대신 그는 가만두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덤블도어의 초상화를 노려봤다. 그리고 맥고나걸은 시야가 넓었다.
"알버스. 지금 중요한 얘기 중이니까 자리를 비켜줘요. 아니면 덤블도어 교수님께서도 한 말씀 거드시던지요."
알버스 덤블도어의 초상화는 인자하게 웃는 낯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는 옆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인생에 남을 정도의 긴 훈계를 듣는 중인 제자와 눈을 마주치는 것을 잊지 않은 채로. 저 마법사가 진짜...!
"세베루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죠? 제 잔소리를 피할 방법이라도 구상하고 계신 건 아니겠죠?"
"그럴리가 있습니까. 교장 선생님."
이대로라면 프릴의 졸업장이 위험하다. 내 교수직은 그렇다쳐도 에이프릴의 졸업장을 날릴 순 없는데. 호그와트 막내 교수는 억지로 태연한 척 했다. 오전시간 내내 아주 탈탈 털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스네이프가 풀려난 건 도저히 오지 않을 것 같던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그 무렵 에이프릴은 느즈막히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침실의 주인이 머리맡 탁자에 놓아 두었던 홍차 한 잔과 스콘 몇 개를 모두 먹어치운 후였다. 창문으로 밝은 햇빛이 들어온다. 지하에 있는 슬리데린 기숙사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혹시 호숫가가 보일까 싶어 일어서는데 갑자기 눈 앞에 집요정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에이프릴 슈."
에이프릴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렸던 모양이지만 큰 보람은 없었다.
"어후..."
에이프릴은 숨을 급히 들이켰다. 한 걸음만 더 가까웠다면 실수로 찰 뻔 했다. 머리에 끈을 동여맨 작은 집요정을 심호흡을 하며 바라본다. 가슴을 쓸어내린 에이프릴은 침착하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집요정은 울망거리는 커다란 눈으로 에이프릴을 올려다봤다.
"오, 링키는 그런 말을 처음 들어요. 링키는 아주 기뻐요. 링키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시다니..."
에이프릴은 작은 집요정이 진정할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붙였다.
"제게 볼일이 있으세요?"
감격해있던 링키는 그제야 무언가 생각난 듯 두 손을 꼭 모았다.
"링키는 교장 선생님의 부탁을 받고 왔어요. 링키는 에이프릴 슈를 교장실로 안내해야 해요."
응? 스네이프 교수님도 아니고 맥고나걸 교수님께서 왜 부르시는 거지? 무척 당황스럽다. 곰곰히 생각하다가 링키에게 조심스레 물어본다.
"혹시 교장 선생님께서 저를 왜 부르는지 아시나요?"
"죄송해요. 링키는 그건 듣지 못했어요. 링키 생각에는 교장 선생님께서 무척 화가 나신 것 같아요."
"화가 나셨다고요?"
에이프릴이 황당하다는 듯 눈썹을 올렸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떠오르는게 전혀 없었다. 맥고나걸 교수님이, 아니 맥고나걸 교장 선생님께서 집요정이 보기에도 화난 것 같은 상태로 나를 부르신다고? 뭔지는 몰라도 대단한 노여움을 샀나본데... 혼란스러운 얼굴로 일단 옷을 갈아입는다. 교장실에 가야 한다면 교복을 입는 게 낫겠지. 어차피 어제 여기 입고 온 게 교복이라 다른 선택지가 없다. 아니면 입고 잤던 회색 파자마를 입고 가던가. 프릴은 바보가 아니었므로 초록색 포인트가 들어간, 늘 입던 그 교복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대충 벗어뒀던 것 같은데.'
다행히 걱정한 만큼 심하게 구겨지진 않았다. 넥타이부터 스타킹까지 차곡차곡 접혀 한 쪽 구석에 있던 걸 보니 아마 그가 개어 둔 모양이다. 머리에 가볍게 빗질까지 마치자 링키가 손을 내밀었다. 무의식적으로 그 가는 손을 잡자, 정신을 차렸을 때 에이프릴은 교장실 책상 앞에 서 있었다. 링키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레 이름을 불러본다.
"링키?"
"왔군요, 에이프릴."
링키 대신 익숙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맥고나걸 교장이 여태까지 에이프릴이 봐왔던 것 중 가장 엄한 눈으로 자신의 앳된 제자를 보고 있었다. 에이프릴은 당황해 시선을 이리저리로 옮기다가 어쩔 수 없이 맥고나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어요."
맥고나걸이 너무 매섭게 쳐다보는 통에 눈을 마주치기가 부담스럽다. 책상 뒤편의 벽으로 눈길을 향하다가 긴 은발 노인의 초상화와 시선이 겹친다. 덤블도어의 초상화가 젤리를 집어들고 빙긋 웃고 있다. ...왜 저렇게 기분이 좋아보이지? 그녀의 생각은 곧바로 들려온 맥고나걸의 이야기에 툭 끊겼다.
"당신이 스네이프 교수의 침실에서 나오는 걸 목격했습니다, 슈 양."
"...네?"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그걸 어떻게,
"오늘 아침에요. 부인할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겁니다. 제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요."
에이프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아침에 그가 침대에 없었던 게 기억난다. 그를 찾으러 침실을 나갔던 것도 같다. 더 자라고 하길래 다시 잤는데... 설마 그 때 교장 선생님이 보고 계셨다고?
"설명해 보세요."
맥고나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스네이프 교수는 변명도 해명도 안 하더군요."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불려온 이유를 깨달았다. 더 캐물을 수 없어서 날 부르신거야. 상황을 확인하려고. 큰일났다. 이대로라면 스네이프 교수님의 교수직이 위험하다. 내 졸업장은 그렇다쳐도 교수님의 직업을 날릴 순 없는데.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자신의 침묵으로 오해를 사게 되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가 에이프릴에게 해가 될까봐 일부러 말을 아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네이프 본인이 만든 자백제를 스네이프에게 먹일 수도 없다. 스네이프라면 베리타세룸을 사용하더라도 오클러먼시로 막아낼테니.
에이프릴이 말문을 열지 않자 맥고나걸이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만약 최악의 경우, 즉 호그와트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손을 댄 거라면..."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에이프릴이 큰 소리로 외쳤다. 아주 간절한 목소리다.
"제가 다 설명할 수 있어요. 제가 말씀드리게 해 주세요."
맥고나걸이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렇게 하라는 뜻이었다.
"그런... 생각하시는 그런 부적절한 일은 없었어요."
에이프릴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차분히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요 며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어요. 계속 악몽을 꿨거든요. 전쟁 때의 모습이 자꾸 재현돼서... 그... 끔찍했잖아요."
에이프릴은 다쳤던 스네이프를 떠올리다가 자기가 손톱으로 계속 목을 긁고 있다는 걸 깨닫고 관둔다. 목에 붉게 손톱자국이 남았다. 손을 잠시 내려다보다 피가 맺히지 않은 걸 확인하고 주먹을 꼭 쥐어 내린다.
"벌써 2주째라 혼자서는 도저히 잠을 청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어제 스네이프 교수님을 찾아갔던 거예요. 전에 악몽을 꿀 때 교수님께서 자주 도와주셨던 게 생각났거든요."
죽음을 먹는 자들을 속이기 위해 두 사람이 아주 가까이 지냈을 때의 얘기다. 맥고나걸도 그 사정은 알고 있었다. 에이프릴은 교장이 딱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이는 것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교수님은 제게 숙면에 도움이 되는 차를 건네주셨고, 주의를 돌릴 수 있도록 책을 한 권 주셨어요. 졸려질 때 쯤에 기숙사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아마 책을 읽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던 것 같아요."
"옷은 어떻게 된 거죠? 잠옷을 상의만 입고 있던데요. 슈 양의 잠옷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으음, 그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에이프릴은 간밤의 일을 가까스로 더듬고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 응접실의 소파에 기댄 채 졸음에 빠졌던 프릴은, 자신이 몽롱한 의식 속에 푹신한 침대로 옮겨졌음을 느꼈다. 전신을 감싸는 폭신한 감각에 살며시 눈을 떠보니 스네이프가 조심스레 이불을 덮어주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마음도 생기지 않아 그대로 스르륵 잠에 든다. 무슨 꿈을 꿨는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그러다가 어느 순간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이마엔 식은땀이 흘렀다. 소매로 땀을 훔쳐본다. 와이셔츠며 가디건까지 옷이 온통 축축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침대 옆에 스네이프가 서 있었다. 비명소리를 듣고 온 모양이었다.
"옷이 불편해서 그럴 수도 있어."
스네이프가 자신의 잠옷을 건넸다. 그가 입은 것과 같은 회색 파자마였다.
"교복이 수면을 취하기에 적합한 옷이라고는 볼 수 없겠지. 자네한텐 크겠지만 갑갑하지는 않을 거야."
똑같은 잠옷. 그가 건넨 옷을 받아들고 가만히 바라보는 프릴에게 스네이프가 말을 덧붙인다.
"같은 디자인이라 신경 쓰이겠지만, 그냥 입어. 세탁된 게 그것 뿐이니까."
그리고는 에이프릴이 갈아입을 수 있게 침실을 비워주었다.
잠옷은 당연히 컸다. 상의는 품은 맞지만 소매가 넉넉했고, 하의는 끈을 조일대로 조여 흘러내리진 않았지만 밑단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옷을 갈아입은 에이프릴이 문을 열자 스네이프는 소파에 앉아 논문을 펼치고 있었다. 열린 침실 문을 흘깃 본 그가 중얼거린다.
"못 입을 정도는 아니군."
에이프릴이 멍한 얼굴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
"제가 소파에서 잘게요."
"됐다. 어차피 이걸 다 보려던 참이었어."
그는 논문을 들고 일어났다.
"넌 누가 있을 때만 잘 수 있잖아. 침대로 가지."
에이프릴은 스네이프가 지켜보는 가운데 다시 잠을 청했다. 옷이 편해져서인지, 혹은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다음에 꿨던 꿈은 생생히 기억난다. 꿈 속에서 프릴은 커다란 뱀이 누군가를 무자비하게 물어뜯는 모습을 무력하게 보고 있었다. 뱀의 공격을 받아내는 그 사람은, 당연히... 프릴은 그 참혹한 광경을 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자꾸만 시선이 그를 향했다. 분명 그가 이미 공격당해 다쳐있는 모습만 봤었는데. 이건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일인데, 마치 실제로 보는 것처럼 생생했다.
'이건... 내가 겪은 적 없어. 이건 해리가 말했던 일일 뿐이야. 난 이런 광경을 본 적 없어. 이건 꿈이야. 그래, 꿈이야. 가짜야!'
그 순간 프릴은 온 힘을 모아 겨우 꿈에서 깼다. 잘 자는 것 같았던 프릴이 별안간 일어나 앉자 스네이프는 읽던 논문을 양피지 더미 사이에 밀어놓고 조심스레 침대로 다가갔다.
"프릴. 괜찮아?"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그를 바라보는 분홍빛 눈동자는 공포에 차 있다. 스네이프는 몸을 굽히고 침대에 걸터앉아 에이프릴을 끌어안았다. 그의 체온을 느끼자 프릴은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지만, 이내 구토감에 휩싸여 스네이프의 상의를 온통 더럽히고 만다.
"죄송해요, 이러려던 게 아닌데..."
당황한 프릴이 그를 밀어내고 손으로 입가를 닦는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한 얼굴로 프릴의 안색을 살피더니 손수건을 불러내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또 나쁜 꿈을 꿨군."
에이프릴이 손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 괜찮아요. 그런데 교수님 옷이..."
프릴이 침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스네이프의 표정에는 별 변화가 없다.
"신경 쓸 것 없어."
스네이프는 상의 단추를 풀어 세탁물 바구니에 넣는다. 다행히 머리카락에는 묻지 않은 모양이었다. 새 잠옷을 꺼내지 않는 걸 보니 갈아입을 옷이 따로 없는 것 같았다. 마지막 남은 잠옷에 내가 화려하게 흔적을 남겼구나... 정신이 아찔하다.
"이제 속이 좀 나아졌나? 몸도 가벼워졌으니 편히 잘 수 있겠군."
그는 프릴을 다시 침대에 눕혔다. 그가 손짓했고, 의자와 탁자가 침대 옆으로 끌려온다. 그는 탁자에 놓인 양피지 중 하나를 골라 읽는다. 프릴은 자신의 곁에서 논문을 읽는 그를 바라본다. 그가 침실에 밝혀 놓은 어스름한 불빛에 그의 모습이 흔들려보인다. 그를 향한 설렘으로 조금 전의 불안감을 잊고 다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었다. 창 밖에서 환하게 햇빛이 들어오는, 맑은 아침.
"그러니까, 한 벌을 나눠입은 게 아니라 똑같은 잠옷이 두 개라는 말인가요?"
맥고나걸이 에이프릴에게 물었다.
"네. 바지는... 커서 흘러내린 것 같아요. 아마 이불 사이 어딘가에 박혀 있지 않을까요."
뭐라 말하기 힘든 표정의 맥고나걸이 그녀를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다.
"...후."
관자놀이를 꾹 누른다.
"일단 알겠습니다."
거짓말은 아니라고 판단한 건지, 맥고나걸은 에이프릴에게 교장실에서 나가도 좋다는 손짓을 보냈다. 에이프릴은 맥고나걸이 자신을 얼마나 쉽게 놓아준 건지 전혀 느끼지 못한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교장실을 나섰다.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 덤블도어의 커다란 초상화가 조금 전보다 더 기분좋은 웃음을 띈 것 같았다.
"그럼 교수님은 아예 밤을 새신 건가?"
기숙사로 돌아가려던 에이프릴이 중얼거린다. 그녀는 곁에 있던 누군가가 사라지면 빈자리를 느끼고 잠에서 깨는 타입이었다. 맥고나걸이 찾아올 때까지 스네이프는 침실에서 나가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프릴의 옆에 그가 누웠던 흔적은 없었다.
"말도 없이 그러실 분이 아니기도 하고..."
에이프릴의 얼굴에 문득 걱정스러운 기색이 떠오른다.
"그럼 나 때문에 밤새 침실 탁자에서 시간을 보내신거야?"
그건 너무 죄송한데. 제대로 못주무셔서 피곤하시겠는걸. 이따가 교수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겠다. 프릴은 그렇게 다짐하며 호그스미드로 향했다. 사과의 의미로 건넬 초콜릿이라도 준비할 요량이었다.
비록 그를 다시 마주하는 건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후, 왜 처음부터 제대로 말하지 않았느냐고 스네이프가 맥고나걸에게 2차로 탈탈 털린 후가 되겠지만... 어쨌거나 달콤한 초콜릿은 몇 시간 후라도 지친 스네이프의 심신에 위안이 되리라.
사진 출처: Vlada Karpovich, https://www.pexels.com/ko-kr/photo/5357353/
뭐 어쨌든 에이프릴은 성인이니까 그렇게까지 큰 문제로는 안 번졌겠죠. 일단 아무 짓도 안 했고(제일 중요)... 18살이니까 갓성인도 아니고... 프릴이 악몽에 시달리는 것도, 그걸 스네이프가 달래주는 것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거고요.
시리우스가 ㅈㄴ 뭐라했을 것 같긴 하다... 네가 그러고도 교수냐고... 딸 뻘이랑 미쳤냐고... 그런거 아니라고 둘이 열심히 해명해도 귓등으로도 안 들음
스네이프가 그럴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서 덤블도어의 초상화는 그저 웃기만 했을 것 같아요. 덤비 등장 아이디어를 주신 소중한 지인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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