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네이프 드림] 출입금지
그럼 저는 어디서 논문을 쓰나요
『 안내 사항 』
※ 호그와트 교수 출입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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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의 책가방 주인장 백 -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미간을 좁혔다.
"...교수 출입 금지?"
밤새 양피지를 들여다봤더니 무리했군. 감은 눈을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자 지친 안구가 조금이나마 활력을 찾는 것 같다. 좋아. 시선을 다시 문에 붙은 종이로 향해본ㄷ
"호그와트 교수 출입 금지라고 적혀 있네요, 교수님."
그가 읽기도 전에 안내문이 스스로 내용을 설명해왔다. 약 21년 전에 발명되어 지금까지도 잘 사용되는 중인 마법이 분명하다. 역시 마법 세계에서는 안내문이 정말 '안내' 정도는 해 주어야...
물론 그럴 리가 없었고, 그의 등 뒤에서 말을 건 것은 양손 가득 짐을 든 보라색 머리칼의 마녀였다. 오른쪽 어깨에 걸친 큼직한 갈색 가죽 가방은 머리 뚜껑을 닫지 못한 채 자신에게 주어진 7개의 두루마리를 모두에게 보이며 자랑 중인데다, 왼팔과 몸 사이에는 자기 몸통만 한 책 두 권이 간신히 걸쳐있었다. 책등은 허옇게 바랬지만 네 귀퉁이만큼은 어떤 닳음도 없이 완벽해 새 것 같은 커다란 책에는 새카만 잉크로 매우 선명하게 '호그와트 도서관'이라고 적힌 딱지가 붙어 있다.
아니, 저런 무식한 판본의 책도 있나? 그가 눈을 의심하는 사이 마녀는 어깨를 기울더니 미련 없이 바닥에 가방을 내동댕이쳤다.
"아무래도 다른 카페로 가야겠는데요."
그리곤 몸이 영 뻐근한지 어깨며 목이며를 이리저리 움직여 스트레칭한다. 아까 교내에서 마주쳤을 때 어디 가는지 물어볼 걸 그랬다. 행선지가 겹치는 줄 알았다면 가방을 들어주었을 텐데. 저런 걸 들고 여기까지 오다니 대체 미련한 건지, 꿋꿋한 건지... 긴 보라색 머리카락이 그녀가 움직이는 대로 나부끼는 것을 보며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자네는 들어가 봐. 이동해야 하는 건 나 뿐이니까."
"네? 왜요?"
"슈 양, 자넨 교수가 아니잖나."
왜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말하자 교수가 아닌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전 일개 조교일 뿐이니까요. 아무래도 교수님들과는 학문적인 소양에서도 차이가 있고..."
"그런 식으로 말한 적 없다, 에이프릴."
스네이프 교수가 눈썹을 꿈틀댔다. 다른 카페로 가실 거면 같이 가요, 에이프릴이 몸을 기울이며 채근하자 그는 바닥에 버려진 가방을 대신 집어들...
"...?"
...다가 멈칫한다. 생각보다 무겁다. 프릴이 들고 온 거라 우습게 봤는데. 머쓱함을 감추려는 듯 되려 비꼰다.
"무게가 꽤 되는데 용케도 직접 들고 왔군. 마법으로 들고 오지 않은 걸 보니 물리적으로 강해지는 게 올해 목표인 모양이지."
"아."
에이프릴은 황망한 눈으로 그를 보다가 갑자기 손을 몇 번 내젓는다.
"아니, 이유가 있어요. 지팡이로 들고 오는 게 너무 티 나면 조교로서 너무 무능력해 보이잖아요. 조교라면 일당 공중 부양 마법 정도는 맨손으로 할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가 모두에게 있을 텐데, 저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없어요. 일상 마법에 약한 거 아시잖아요. 무거운 건 늘 교수님이 들어주셨기도 하고요. 내용물은 전부 논문 사본인데, 아무리 사본이라지만 만약 공중 부양 마법을 맨손으로 쓰다가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논문이,"
평온한 목소리로 이어지던 일장 연설이 도중에 끊어졌다.
"가방을 돌바닥에 팽개쳐놓고 그런 변명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지금쯤 양피지 가장자리는 전부 너덜너덜해졌을 거다."
조금 더 힘을 주어 가방을 들며 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교가 생기면 일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관리감독할 대상만 늘었군, 드물게 자신에게 투덜거리는 그를 보며 에이프릴은 몇 해 전, 호그와트에서 일하게 됐던 날을 떠올렸다.
먹고 살길이 없었다. 마법 세계의 누구도 프릴을 써주지 않았다. 성적 때문에? 그럴 리는 없다. 8학년 졸업 당시 그녀의 N.E.W.T 성적은 최상위권이었으므로. 성격 때문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조차 오지 않았으니 그것도 아닐 터였다. 이유는 뻔했다. 그녀는 너무 유명했다.
"미쳤다고 어둠의 표식 있는 사람을 직원으로 쓸까."
...아주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여러 사정과 누군가의 생명을 구한 공로를 인정해 무죄방면 되었다지만 그런 집단 출신을 누가 써주는데? 지나가던 니즐이 웃을 일이다.
불행히도, 그녀에게는 부모나 이름 모를 친척이 그린고트에 남긴 대단한 유산 같은 것이 없었다. 대단하다는 말을 뺀다 해도 아무튼 없었다. 머글 세계의 유산이라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미비했던 행정은 그녀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아낼 길을 영원히 없애버리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사망했다'는 것만큼은 정확하게 남아 일말의 희망도 허용치 않은 게 참 야속했다. 그것도 같이 사라졌으면 참 좋았을 텐데. 기약 없는 희망 속에서라도 살 수 있도록.
부모가 지어줬을 리 없는 이름과 그때 태어나지 않은 게 분명한 '생일'을 부여받은 1980년 4월 23일생의 에이프릴 슈는 가족도 돈도 친구도 뭣도 없는, 그냥 아무것도 없는 마녀1이었다. 그래도 지팡이는 있네. 지팡이에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꼬아 돌리며 멍하니 생각한다. 벌써 1년이다. 졸업 후 오갈 곳이 없어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길에 나앉게 생긴 에이프릴이 담임 교수의 호의로 스피너스 엔드에 눌러앉은 지가 벌써 1년 째였다. 음. 좋아. 때가 된 거지.
"지팡이를 포기하자."
어차피 지은 잘못—죽음을 먹는 자가 되었던 것—도 있고, 여기서 밥 벌어 먹고 살길은 요원해 보인다. 마법 세계와의 연을 영원히 끊고 머글 세계에서 편입해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행동으로 나타내고자 지팡이를 부러뜨리려 해 본다. 이쯤 하면 우지끈 소리가 날 때도 된 것 같은데 지팡이의 내구성이 상당한지 우지끈은 커녕 쩌적하고 금 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 올리밴더 씨, 지팡이 너무 튼튼한 거 아니에요? 운동을 좀 할 걸...!
한참을 낑낑대다 짜증스레 벽에다가 지팡이를 집어던져 버리려는 그때, 창문 너머로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운다. 뭐, 뭐야. 웬 부엉이? 나한테 편지를 쓸 사람이 없을 텐데... 부엉이를 살짝 쓰다듬어주고—원래는 그러면 안 되지만 지금 그녀에겐 심리적인 안정이 필요했다— 편지를 뜯어본다.
에이프릴 슈,
월례 회의 결과 호그와트에서 조교를 구인하기로 했다.
특정 과목이 아니라 학교 전체의 일을 돕는 조교를 말이다. 교수를 도와 수업을 준비하고 과제를 채점하는 일을 비롯해, 학사 일정 관리나 성적 처리 같은 행정적인 부분도 맡으며, 교수가 자리를 비우는 경우에는 수업을 대신 할 수도 있는, 우수한 졸업생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는 결론이 나오자마자 그런 조건의 지원자는 절대 찾을 수 없을 거라고 혀를 찼다. 그 정도의 능력을 갖추었으면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학생이 있을 리 없으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이 단 한 명 떠오르더군.
에이프릴 슈.
너는 마법약과 어둠의 마법 방어법을 포함한 여러 과목에서 8년 내내 두각을 보였지.
나는 네가 이 일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네가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면 조교직을 고려해볼 것을 권한다. 호그와트는 안정적인 직장이고 매끼 식사와 머무를 곳이 제공된다. 네가 바라던 대로.
호그와트에서 일한다는 걸 단순히 입에 풀칠이나 할 기회로 여기지 마라. 그건 그 자체로 보증수표야. 누구든 널 신뢰하게 될 거다. 네 왼팔에 붙은 꼬리표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이 제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길 바란다.
세베루스 스네이프
편지의 겉봉투를 그제야 살핀다. 보낸 사람, 스네이프 교수. 받는 이, 에이프릴 슈. 초록색 밀랍으로 단단히 봉해져 있던 편지. 이건 정말로 스네이프 교수님이 보내신 거야. 에이프릴은 놓친 말이 있을세라 서너 번을 꼼꼼히 다시 읽었다. 칭찬이 나오는 부분에선 매번 입술을 깨물었다. 마지막 단락을 볼 때는 정말로 계속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편지를 내려놓고 턱을 만지작거린다. 늘어난 학생 수를 감당하기 힘들었구나. 전쟁이 끝나서 다들 안심하고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켰을 테니까. 휴학했다 복귀한 애들의 수업 진도도 맞춰줘야 하고. 심지어 몇몇 교수들은 아직도 재판마다 증인으로 불려 다니기까지 했다.
맥고나걸은 교장실보다 마법부에 있을 때가 더 많아 보였다. 시리우스나 루핀도 곧잘 소환됐다. 스네이프는 해리와 다른 기사단원들의 증언만으로는 불충분했는지 하다 하다 학교에 붙어있는 덤블도어의 초상화까지 재판에 증인으로 불려오는—물론 초상화를 마법부 직원이 들고 재판장까지 갔다는 얘기다—마경을 겪고서야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그래 놓고도 '어둠의 마왕'의 추종자 잔당에 대한 재판이 진행될 때면 어김없이 증인으로 불려가곤 했다. 에이프릴도 가끔 불려갔지만 죽음을 먹는 자 내부 사정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기에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가끔 재판장 한가운데 자리한 피고가 자신에게 뱉는 욕설을 들을 수 있었을 뿐. 배신자라던가 변절자라던가... 아니, 나는 댁들이랑 같은 마음이었던 적이 없는데 어떻게 배신자라는 거지? 우린 처음부터 의견이 달랐어요 미친놈아...
나는 그렇다 쳐도, 전쟁 중에도 불사조 기사단 활동으로 목숨을 걸고 바쁘게 움직였을 사람들을 전쟁 후에도 오라 가라 하다니. 마법부는 상당히 갑갑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O.W.L이며 N.E.W.T는 일정 변경 없이 시행되는데 교수들을 계속 불러대면 대체 진도를 어떻게 나가라고. 중얼거리며 입술을 씹었다. 조교... 조교라. 교수들이 하기엔 좀 자질구레한 일을 해주면서 가끔 수업 땜빵도 될만한 지식의 소유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에이프릴을 위한 자리.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리고 깃펜에 잉크를 담뿍 묻힌다. 잉크를 적절히 덜어낸 뒤 평소보다 더 신경 써서 유려한 필체로 편지 뒷면에 답신을 써 내려갔다.
저요. 제발 저요. 저 아니면 안 돼요. 제발요 교수님! 제가 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부엉이는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답장을 물고 호그와트로 날아갔다.
그게 조교 생활의 시작이었지. 미소 짓던 에이프릴은 스네이프의 탐탁지 않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프릴이 시선을 피하려는 듯 재빨리 눈동자를 굴리자 그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하나 봅니다, 슈 양."
"제 생각엔 다른 카페로 가도 곧 출입 금지 될 것 같은데요."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전혀 좋은 생각이 아닌데. 왜 그렇게 생각하지?"
죽치고 앉아서 논문을 보고 있어서? 지혜의 책가방 홍보 멘트라면 스네이프도 똑똑히 기억했다. '도서관이 지겨우신가요? 커피 향기와 함께 시험을 준비하세요!' 여긴 원래 그러라고 있는 카페잖아. 에이프릴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오랫동안 앉아서 책 펼치고 공부할 수 있다는 걸 세일즈 포인트로 잡긴 했죠. 근데..."
말끝을 잠시 흐린다.
"교수랑 조교가 테이블에다 온갖 논문을 올놓고 수업 진도 얘기를 하고 있으면 애들이 못 오잖아요. 분명 호그와트 학생들이 주 고객일 텐데요."
젠장. 스네이프는 미간을 꾹꾹 눌렀다.
"...가게 주인이 드디어 수입 감소의 원인을 찾아낸 거군."
아주 제대로 찾은 모양이다. 손님이 점점 줄어들어 엊그제까지만 해도 텅텅 비어있던 가게였는데, 지금은 입구 너머 큰 창으로 오색... 아니 사색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청춘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교과서에 지대한 흥미를 가진 것 같았다. 아니면 입장을 허락받지 못한 마법약 교수와 눈이 마주치는 참사를 겪고 싶지 않았거나. 아무도 창밖 풍경을 보지 않는 기현상을 관찰하던 에이프릴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교수님. 저희 그냥 교수님 사무실에서 마저 쓰죠."
스네이프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학교 밖에서 단 거 먹으면서 논문 쓰려던 것 뿐인데, 젠장...'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한 그 바람은 다행히 '밖'에서 말고는 대체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교직원이지만 교수는 아닌 에이프릴이 버터 베리 케이크와 마카롱 4구 세트를 구매해 나오는데 무사히 성공한 덕분이었다. 스네이프 교수님은 좀 그렇지만 조교님은 교수가 아니니까 들어오셔도 되지 않냐는 어느 3학년 학생의 순수한 질문과, 입을 틀어막으려는 무수한 학생들이 일으킨 테이블 무너짐 사건을 뒤로 하고...
그들은 밝은 햇살 대신, 또 축축하고 어두컴컴한 마법약 교수의 사무실에서 논문을 썼다.
꾸덕하고도 달콤 상큼한 디저트와 향긋한 다즐링이 함께 하는 오후였다.
사진 출처: Wolfram K, https://www.pexels.com/ko-kr/photo/804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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