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끗 차이
리들 로즈하트 드림
“선배, 혹시 수학 잘하세요?”
어느 평일 오후의 도서관. 빌렸던 책을 반납한 후 돌아가려던 리들은 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건지 어느새 불쑥 다가와 말을 건 것은 제게 익숙한 이였다. 평소보다 두 배 정도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다가온 아이렌은 인사를 할 여유도 없어 보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예의를 운운할 때는 아닌 거 같다. 그리 판단한 리들은 물었던 말에만 대답해 주었다.
“계산이라면 어느 정도 하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니?”
“그럼……. 이 문제 좀 도와주실래요?”
아이렌이 내민 건 여러 수식이 적힌 공책과 그사이에 끼어 있는 프린트물이었다. 익숙한 폰트와 형식을 보아하니, 이건 크루웰이 내어 준 과제인 모양이었다.
‘흠.’ 문제를 맞닥뜨리자 금방 진지해진 리들은 유심히 아이렌이 가리킨 문제를 살펴보았다.
“마법 약학 문제로구나. 뭐가 안 풀리는 거니?”
“여기, 농도 계산이요.”
“아하.”
“하……, 옛날부터 소금물 농도 구하는 계산 같은 게 제일 싫었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니.”
‘마법약이야 농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효과 차이가 크니 그렇다 쳐도, 소금물의 농도는 왜 구하게 된 걸까.’ 아이렌의 한탄에 반사적으로 잠깐이나마 그런 생각을 한 리들은, 이내 잡생각을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아이렌이 적은 문제 풀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여기, 계산 하나가 틀렸구나. 이 부분만 다시 계산해 보렴.”
“……아.”
금방 문제점을 찾아낸 리들 덕분에 해결책을 찾아낸 아이렌은 작게 감탄하더니 주머니에서 펜을 꺼냈다. 곧장 근처 벽에 공책과 프린트물을 대고 계산을 다시 해본 아이렌은 드디어 명확한 답이 나온 걸 보고 감탄했다.
“감사합니다, 선배!”
“뭘. 수학 문제는 이런 한 끗 차이로 틀리는 경우가 많으니, 꼼꼼하게 살펴보면 된단다.”
리들은 별거 아니라는 듯 대꾸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이 상황을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렌은 꼼꼼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자잘한 실수를 할 줄이야. 역시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는 걸까.
하지만, 완벽하지 않으면 어떠한가. 중요한 건 완벽함을 추구하는 자세와 노력 그 자체다. 눈앞 후배의 성실함과 진실성을 아는 리들은 오히려 제가 도움을 줄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아이렌은 늘 혼자서 뭐든 해결하려고 하는 탓에, 오히려 더 걱정하게 되는 때가 있는 아이였으니까.
“더 물어볼 건 없니?”
“네. 이것 때문에 못 끝내고 있던 거지, 다른 건 다 했거든요.”
“그거 다행이구나.”
“선배는 이제 기숙사로 돌아가시나요?”
“그럴까 생각 중이야. 오늘은 할 일이 많지 않기도 해서, 가서 잠깐 쉬었다가 복습해야지.”
“그럼, 괜찮으시면……. 같이 차라도 마시러 갈래요? 제가 살게요. 저를 숙제에서 구해주셨잖아요.”
숙제에서 구해준다, 라. 저렇게 표현하니, 제가 무슨 기사라도 된 기분이다. 독특한 표현으로 감사를 표하는 아이렌의 말에 저도 모르게 소리 죽여 웃어버린 리들은 어깨를 으쓱였다.
“후배에게 얻어먹을 수는 없지. 선배로서 후배를 도와주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세상에 당연한 일이 어디 있어요? 그런 식이라면 대가를 받고 도와주는 아줄 선배는 ‘선배’가 아니게 되어버릴 텐데.”
“뭐? ……후훗. 그래,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아이렌의 농담에 결국 웃음소리가 튀어나온 리들은 살며시 입을 가리고 킥킥거렸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기라도 한 건지 리들을 따라 입꼬리를 올린 아이렌은, 살며시 고개 숙여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제게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해요. 리들 선배.”
속삭임 같은 차분한 감사 인사에 반사적으로 대꾸하려던 리들은 문득 확 다가온 변화에 입을 다물어 버렸다.
바짝 가까워진 거리. 각도가 달라진 시선. 약간의 표정 변화만으로도 확 부드러워지는 인상까지.
정말 한 끗 차이로 확 변하는 상대를 향한 감상에 어쩐지 목이 메오는 리들은 마른침만 삼키다가, 문득 아까 본 약학 수식을 떠올렸다.
아, 그렇구나. 복잡한 것들이란 모두 아주 사소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달라지는 거구나.
기묘한 깨달음을 얻은 그는 이 이상 입을 다물고 있는 건 상대를 민망하게 하는 일이라 생각한 건지, 슬쩍 고개를 돌리며 신사답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공책 잘 챙기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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