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듀스 스페이드 드림

* 드림 해적과 인어 합작 제출작.

‘아이렌은 어쩌면 인어일지도 모른다. 다만, 원래 세계에서 이쪽으로 오는 중 인간으로 변한 게 아닐까.’

그건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서 아이렌과 좀 친하다 싶은 학생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혹은 입에 담아본 농담 중 하나였다.

 

다소 엉뚱해 보이는 저 농담이 생겨난 계기는 몇 가지가 있었다.

 

일단, 아이렌이 유독 바다를 좋아한다는 점. 심심하면 학교 근처 해변으로 가 바다를 보고 오는 모습은, 단순히 바다를 좋아한다기보단 꼭 저 너머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이곤 했다.

또 다른 이유는, 별로 논리적이진 않지만……. 옥타비넬 소속의 인어들과 친하다는 점. 그러니까, 동족은 동족끼리 끌리는 게 아니냐는 뭐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 이건 다들 무어라 딱 알맞은 표현을 찾아낼 순 없어도 마음으로 느끼고 공감을 받는 내용이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애는 가끔 별로 인간 같지 않은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인간족 사람들이 수인족이나 요정, 혹은 인어들의 언행에서 느끼는 묘한 이질감. 아이렌은 그런 걸 느끼게 하는 경우가 잦았으니, 이런 농담이 그저 웃음거리처럼 느껴지지 않게 했지.

 

하지만 중요한 건, 다들 이걸 농담으로 여기지 진짜라고 믿진 않았다는 거다. 이러니저러니 하여도 아이렌은 정말 인간이었고, 그렇기에 오히려 인어‘같이’ 보인다 여겨지는 것이었으니까.

그래. 분명 모든 건 다 농담일 뿐일 텐데.

듀스는 다리 대신 비늘로 덮인 꼬리를 좌우로 움직여보고 있는 아이렌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아이렌……,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자신은 그저 아이렌의 부탁을 받아 고물 기숙사로 공책을 가져왔을 뿐인데. 혹시 제가 더위라도 먹은 걸까. 하지만 지금은 가을이지 않은가. 가을에도 열사병 같은 게 걸리던가?

아무리 마법이 일상에 녹아든 세상이라지만, 아까 교실에서 멀쩡히 두 다리로 걸어 다니던 동급생이 갑자기 인어가 된다는 건 이상하다. 혼란스러움에 표정이 휙휙 바뀌는 듀스와 달리, 아이렌은 제가 앉아있는 소파의 빈자리를 가리키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이거 진짜 같지?”

“어?”

“이 꼬리말이야.”

 

그렇게 말한 아이렌은 꼬리를 쭉 펴 보았다. 듀스는 상대의 말에 겨우 침착함을 되찾고 치마 아래로 뻗어져 나온 꼬리를 면밀하게 살폈다.

자세히 보니, 어딘가 어색하다. 제가 인어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전에 산호의 바다에 갔을 때 본 인어들은 이런 식으로 꼬리가 접히지 않았는데.

 

“핼러윈 파티하기로 했거든. 영화연구부 사람들끼리. 이건 그때 입을 의상이야.”

“아, 그래?”

“응. 이그니하이드 기숙사 소속인 부원이 만들어줬어. ‘최대한 실용성과 현실성을 살려 구현해 봤어!’라면서 자랑스러워하더라고.”

 

‘역시 그 기숙사 녀석들은 괴짜들인가.’ 듀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도공학의 힘으로 만든 분장을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아이렌이 가리킨 자리에 앉아 한참 꼬리를 살피던 듀스는 무심결에 비늘을 만져보려다가, 제 행동이 무례하게 느껴져 손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맞다, 여기 필기 공책. 잘 봤어.”

“고마워. 가져오기 귀찮았을 텐데.”

“아냐. 내가 먼저 빌려 간 거니, 직접 찾아와서 반납해야지.”

 

아, 자꾸만 대화 중인데도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듀스는 분명 가짜임을 알고 있음에도 너무나도 아이렌과 잘 어울리는 꼬리를 하염없이 힐끔거렸다.

채도가 낮아 얼핏 보면 검은색으로도 보이는 짙은 보라색 비늘. 얼핏 보면 진짜 같아도 실제 어류의 것보다는 반짝이는 꼬리지느러미. 그리고 하반신에 딱 붙어 드러나는 유려한 곡선까지.

자석에 끌리는 쇠붙이처럼 계속 고개를 숙이는 듀스를 본 아이렌은 불쾌해하지 않고 킥킥 웃었다.

 

“듀스도 입어볼래?”

“어? 이, 이걸?!”

“아니. 다른 옷 있어. 원래 내가 하려던 코스튬 말이야.”

“원래 하려던 거라니……, 인어로 분장하는 거 아녔어?”

“응. 사실, 이 꼬리는 부탁한 적이 없거든. 그 녀석이 멋대로 만든 거라……. 잠깐만.”

 

남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이런 걸 만들다니. 대체 뭘 하는 녀석일까.

듀스는 황당해하면서도, 상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했다. 제게 뛰어난 기술력이 있고, 아이렌 다리를 인어 꼬리로 바꿔 볼 기회가 생긴다면, 거절당할지 모른다 해도 일단 시도해 보고 싶지 않겠나.

 

“자, 여기.”

 

듀스가 얼굴도 잘 모르는 이그니하이드 학생에게 공감하는 사이. 아이렌은 손을 뻗어 소파 뒤에 있는 종이가방에서 코트 하나를 꺼냈다. 일상복과는 달리 제복에 가까운 디자인의 코트를 얌전히 받아 든 그는 곧 이게 어떤 코스튬인지 금방 눈치챘다.

 

“이건……. 해적 옷이네?”

“내가 입었을 때 조금 컸으니 듀스에게도 맞을지 몰라. 한번 입어봐.”

“으음. 그래.”

 

이런 거라면 얼마든지 입을 수 있지. 교복 자켓을 벗은 듀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걸쳐보았다. 무릎 조금 아래까지 내려오는 코트는 그에게 딱 맞아, 꼭 맞춤복같이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잘 맞는 건 치수뿐만이 아니었으니. 아이렌은 썩 잘어울리는 모습을 한 듀스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감탄했다.

 

“와, 멋있다.”

“정말?”

“응. 하하, 역시 옷걸이가 좋아야 옷이 사는 건가.”

 

저렇게까지 칭찬해주니 쑥스럽다. 금세 얼굴이 달아오른 듀스는 슬그머니 제 자리에 도로 앉았다. 딱히 다리가 아픈 건 아니었지만, 굳이 비어있는 아이렌의 옆자리를 가만히 방치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해적 옷을 고른 거야?”

“얼마 전에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 있거든. 해적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였는데, 꽤 인상 깊게 읽기도 했고 마음에 드는 캐릭터도 있어서 해적으로 해야지 싶어진 거지.”

“그래? 어떤 소설이었어?”

“음. 간단하게 말하자면……. 마법이 사라진 세계에서 한 남자가 인어 종족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서, 인어가 되는 방법을 찾기 위해 해적이 되어 닥치는대로 인어들을 사냥하고 다니는 이야기야. 그러다가 어느 인어와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 소설이지.”

“아하.”

 

로맨스 소설이라. 그런 건 읽어볼 일이 없지만, 내용만 들어 봐서는 일반적인 러브스토리와 달리 그리 밝은 내용은 아닌 거 같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아이렌도 재미있게 읽은 게 아닐까.

하지만 책 그 자체보다는 제 옆에 있는 동급생의 마음이 더 궁금한 듀스는 더 자세한 줄거리는 물어보지 않았다.

 

“아이렌이 마음에 든 캐릭터는 해적인 거야?”

“해적은 맞는데 주인공은 아냐. 주인공의 동료였지.”

“주인공은 싫어?”

“완전 질색이었어. 그런 인간상 싫어하거든. 소설은 재미있었지만, 주인공 같은 사람은 싫어.”

 

아이렌은 정말 싫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몸서리친다. 이렇게까지 질색하는 아이렌은 처음 본 듀스는 놀랍다는 듯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어떤 점이 그렇게 싫었어?”

“제 불행을 세상과 환경 탓으로만 돌리고 스스로 돌아보지는 못하면서, 타인이 가진 건 집요하게 탐하는 게 끔찍했어.”

“그건……, 확실히 싫을 만하네.”

“그렇지? 세상에서 자기만 불행하고 불만족스러운 줄 아나.”

 

책 내용을 곱씹을수록 지긋지긋하다는 듯 고개를 저은 아이렌은 제 다리를 감싸고 있는 가짜 꼬리를 검지로 쓱 문질렀다. 비늘끼리 부딪치며 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자연의 소리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전혀 소음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행복의 형태는 비슷해도 불행의 형태는 다양하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제가 가진 불행만 대단한 것이라 여기는 부류는 늘 조심하는 게 좋아.”

“음, 예를 들면?”

“뭐……. 사람은 제가 이해받지 못하는 사실 자체에 한탄하는 사람이 있나 하면, 제가 몰이해 당하거나 불쌍하게 여겨지는 걸 즐기는 저열한 족속도 있는 법이거든.”

 

마치 손톱의 거스러미를 뜯는 것처럼 습관처럼 비늘을 건드리는 아이렌은 제가 책에서 느낀 감상과 평소 생각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자신을 불쌍한 처지로 만들어서 강자들의 시선을 끌고 연민을 받아 자존감을 채우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 가장 위험하지. 제 불행은 세상의 관심을 받아도 될 정도로 대단한 것이라 여기는 이와 제게 닥친 고난을 이겨내려는 이가 어떻게 같겠어? 전자의 경우는 지극히 자기애에 빠져 남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거고, 후자는 필연적인 고통마저도 즐기려 노력하는 이일 텐데.”

“그 책의 주인공은 전자였나 봐?”

“응. 그래서 좋아하던 인어한테 차여.”

 

이 정도 내용은 딱히 스포일러가 아니라 생각한 걸까. 아무렇지 않게 듀스의 물음에 답한 아이렌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과 고민을 안고 있는데 자신의 고통은 모두의 동정과 연민을 받을 일이라 여기는 존재와, 모두가 고통을 안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그걸 극복해야 할 것으로 여기는 존재는……. 말은 통해도 평생 교류할 수 없을걸. 그 해적과 인어도 딱 그랬지.”

 

암담한 표정으로 말하는 아이렌은 비늘을 가지고 장난치는 걸 그만두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누가 보면 책을 읽은 게 아니라 진짜 그쪽 세계에서 모든 비극을 보고 온 줄 알겠다. 너무나도 실감 나게 말하는 아이렌의 모습에 이끌린 듀스는, 이내 그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과연 제가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체 무엇이 아이렌을 이렇게 진심으로 한탄하게 만든 건지는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 소설, 나도 읽어보고 싶네.”

“빌려줄까? 난 다 읽었어.”

“그러면 고맙지.”

“좋아. 그럼 책 가져올게, 조금만 기다려.”

 

치마 속으로 불쑥 손을 넣은 아이렌은 스타킹을 벗듯 인어 꼬리를 벗어버렸다. 딱히 살결이 드러난 것도 아닌데 흠칫 놀라 시선을 피한 듀스는 빳빳하게 선 코트 깃에 제 얼굴을 파묻었다.

아. 이렇게 있으니, 희미하게 아이렌이 평소 뿌리는 바디 미스트 향이 난다.

저 혼자 느끼는 민망함에 어찌할 줄 모르는 듀스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두 다리로 일어나 걸어 나가는 아이렌의 등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파티 때는 인어가 될 거야 해적이 될 거야?”

“고민 중이야. 그 꼬리, 볼수록 신기해서 마음이 기울고 있거든.”

 

확실히. 너는 인어가 더 어울리긴 해.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삼킨 듀스는 제 것이 아닌 코트의 옷자락을 꼭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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