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14일의 추억, 12월 편

에이스 트라폴라 드림

* 트친이랑 1년 장기 프로젝트(https://1yearcollabo2.creatorlink.net) 하는데 써서 냈습니다.

“아이렌, 나 좀 안아줄래?”

 

이그니하이드 소속 급우의 그 질문은 분명 아이렌을 향한 것이었지만, 멈춰 선 것은 한 명이 아니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눈을 깜빡이는 듀스, 황당해하는 에이스, 그리고 그저 어이가 없는지 눈만 깜빡이는 그림까지.

당사자 외의 셋은 누가 봐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지만, 정작 아이렌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일 뿐 특별히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오늘 허그데이인데, 아무도 안아주는 녀석이 없어서.”

 

‘당연하지!’ ‘징그럽게 사내놈들끼리 뭘 포옹이냐!’ 여기저기서 다른 급우들의 비난이 들려오지만, 아이렌은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로 상대를 바라볼 뿐이었다.

 

“흐음.”

 

잠깐 고민하던 아이렌은 결국 상대에게 다가가더니, 가볍게 포옹하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헤헤.’ 철없이 웃는 급우는 자신보다 한 뼘 정도 작은 아이렌의 머리에 뺨을 비비며 마치 강아지처럼 치근덕거렸다.

하지만 수업이 막 마쳐 사람이 많이 남아있는 탓에, 따가운 눈총이 여기저기서 잔뜩 쏟아졌기 때문일까. 그는 오래 지나지 않아 껴안고 있던 몸을 놓아주며 물러섰다.

 

“고마워! 아, 이거 먹을래? 샘의 상점에 오늘 막 들어온 사탕인데, 맛있더라!”

“나야 주면 고맙지. 잘 먹을게.”

 

대가를 받으려고 안아준 건 아니지만, 겨우 사탕 하나 주겠다는 걸 굳이 거절할 생각도 없다. 귀여운 포장의 알사탕을 받아 주머니에 챙겨 넣은 아이렌은 자신을 기다리는 두 명과 한 마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아이렌, 너 너무 쉽게 안아주는 거 아냐?”

 

다시 교실 밖으로 향하는 사총사 중, 방금 일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낸 건 에이스였다.

아니, 사실 그건 불만이나 불평이라기보단 걱정에 가까웠다. 아이렌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특별히 공격받았다 생각하지 않고 웃으며 대꾸했다.

 

“뭐 어때.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포옹이잖아?”

“아니, 그래도…….”

 

포옹 정도는 친구끼리도 할 수 있는 거라지만, 신체 접촉이 꽤 많이 되는 스킨십이지 않나. 아무에게나 덥석 안겼다가 안 좋은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저러는 건가.

그런 걱정은 에이스만 하는 게 아니었는지, 듀스 또한 슬쩍 말을 얹었다.

 

“에이스 말이 맞아, 만약 상대가 나쁜 짓이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그래?”

“그런 간 큰 짓을 한다고? 학교 안에서? 다른 사람들도 다 보고 있는데? 우리 담임 선생님이 누군지 잊었어?”

“…….”

 

아니, 그건 물론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나중에 처벌받을 걸 각오하고도 나쁜 짓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에듀스는 물론 그림까지 그런 생각을 하며 눈치를 살피자니, 아이렌은 정말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진짜 그런 일이 생기면 당장 내가 한 방 먹일 거니 괜찮아. 애초에 불순한 의도로 요청하는 거라면 거절했을 거고. 걘 딱 봐도 사랑이 필요한 것뿐이구나 싶어서 안아준 거야.”

“그런 게 보여?”

“보통 보이지 않나?”

 

아니, 보통은 안 보이는 게 정상이다. 세상 모두가 다른 사람의 속내를 꿰뚤어 볼 수 있는 선경지명을 가졌다면, 아마 아줄의 상담 사업은 망하지 않았을까.

언젠가 불공정 계약에 속아 머리에 말미잘이 달렸던 적이 있던 세 남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입 다문 채 나란히 걸음을 옮기는 셋을 보던 아이렌은 ‘흠’하고 침음 하더니, 대뜸 멈춰서 두 팔을 벌렸다.

 

“왜, 너희도 안아줄까?”

 

이건 장난인가, 아니면 진심인가. 어느 쪽이든 부끄러움이 몰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놀림 받은 기분에 인상을 쓰는 그림과 얼굴이 빨개진 에듀스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황급히 고개 저으며 답했다.

 

“됐어, 애도 아니고!”

“뭔가 부끄러우니까 사양할게…….”

“흥, 이 몸은 그런 거 필요 없다고!”

“하하. 그래. 셋 다 귀엽다니까.”

 

역시 진지한 마음으로 물었던 건 아닌지, 연달아 거절이 돌아왔음에도 아이렌은 미련 없이 팔을 내리곤 웃어버린다.

그 시원시원한 태도에 어쩐지 기분이 꽁해진다면, 제가 너무 유치한 걸까. 자신은 애가 아니라며 거절해 놓고도, 저도 모르게 상대의 여유로움에 모난 마음이 든 에이스는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아, 피곤해!”

 

농구부 동아리 활동이 끝난 후. 힘겨운 모의 시합에 지쳐 경기가 끝나자마자 자리에 주저앉은 에이스는 이마의 땀을 손목밴드로 훔쳤다.

헤어밴드를 아무렇게나 잡아당겨 벗은 플로이드는 녹초가 된 에이스를 보며 비아냥거렸다.

 

“누가 보면 꽃게만 뛴 줄 알겠네.”

“선배는 거의 후반만 뛰어다니셨잖아요! 나머지는 거의 걸어 다니셨으면서!”

“……꽃게야, 지금 나한테 소리 지르는 거?”

 

‘아. 잘못 건드렸다.’ 흰자가 훤히 드러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플로이드를 보고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 에이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뒤로 뺐다.

다행스럽게도 이 위기 상황은 씻으러 가는 쟈밀에 의해 중재되었다.

 

“그만둬, 플로이드. 후배 잡을 시간에 씻고 와.”

“뭐야? 바다뱀 군에게 잔소리 들을 이유 없고.”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플로이드는 에이스를 쥐어짜는 것보다 쟈밀과 함께 씻으러 가는 걸 선택했다.

홀로 남은 에이스는 슬슬 하나씩 사라지는 부원들을 바라보다가 결국 바닥에 드러눕고 말았다.

 

‘죽겠네, 진짜…….’

 

곧 로열 소드 아카데미의 농구부와 친선 경기가 있다곤 하지만, 이렇게까지 고되게 훈련 시킬 줄 누가 알았겠나. 아직도 팔다리가 저린 에이스는 땀이 식을 때까지 누워있다가, 씻긴 씻어야 한다는 생각에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에이스, 어디 아파?”

 

그때. 뒤늦게 농구부 구경이라도 하러 온 구경꾼이라도 온 건지, 부원 외의 누군가가 체육관에 발을 들인다.

익숙한 목소리에 멈칫한 에이스는 어색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옆구리에 노트를 끼고 나타난 아이렌은 걱정스레 상대를 훑어보고 있었다.

 

“어, 언제 왔어?”

“방금. 괜찮아?”

“아니, 뭐……. 피곤할 뿐이니까. 괜찮아.”

 

하필 이렇게 엉망진창일 때 오다니, 어쩐지 부끄럽다. 에이스는 최대한 멀쩡한 꼴을 갖추고자 어차피 축축하게 젖어 땀 흡수도 안 되는 손목밴드로 계속 얼굴과 목을 훔쳤다.

 

“플로이드 선배 보러 온 거야?”

“꼭 플로이드 선배만 보러 온 건 아니고. 너도 보고 쟈밀 선배도 보고. 지나가는 김에 들린 거야.”

“그래?”

“응. 오늘은 늦게 와서 연습 보는 건 놓치고 말았지만.”

 

아이렌이 늦은 게 아니다. 워낙 힘든 연습이라서 부원들이 앓아눕지 않게 일찍 끝난 것뿐.

하지만 이런 걸 구구절절 설명하기엔 제가 너무 지쳤다.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어쩐지 점점 힘에 겨워지는 에이스는 저도 모르게 몇 시간 전 이야기를 떠올렸다.

 

“저기, 아까 그거 유효해?”

“뭐 말이야?”

“그…….”

 

아까는 그렇게 단칼에 거절해 놓고, 지금 와서 다시 안아달라는 소리는 못 하겠다.

민망함과 힘듦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에이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아하.’하고 작게 감탄사를 내뱉은 아이렌이 성큼 다가와 팔을 벌렸다.

 

“그럼, 자.”

“나, 안 씻어서 땀범벅인데……. 괜찮아?”

“괜찮아. 자.”

 

평소라면 그래도 씻고 나와서 안기겠다고 했을 텐데, 지금은 어디든 기대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다. 에이스는 결국 본능에 이기지 못하고 아이렌의 품에 쓰러지듯 안겼다.

향수라도 뿌린 걸까. 아니면 샴푸 향이 아직 남아있는 걸까. 아이렌의 품에선 포근한 향기 풍기고 있었다. 따뜻한 체온과 기분 좋은 체취에 더욱 나른해진 에이스의 입에선 절로 투정이 튀어나왔다.

 

“아, 피곤해…….”

“피곤해?”

“응.”

 

아까 선배들에겐 이런 투정을 부려도 욕을 먹을 뿐이었지만, 아이렌의 반응은 확실히 달랐다.

부드럽게 에이스의 젖은 몸을 토닥여 주던 그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이대로 우리 기숙사로 데려가 줄까? 가서 푹 자. 저녁도 만들어 줄까?”

 

이건, 엄마 같은 건가 여우 같은 건가.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은 다정한데 귓가에 닿는 목소리는 묘하게 달콤해서 제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열이 빠졌던 얼굴이 다시 붉게 달아오른 에이스는 상대의 어깨에 기대어 웅얼거렸다.

 

“……나는 정말 널 알다가도 모르겠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냐, 아무것도.”

 

선배들이 씻고 나올 때까지 이러고 있어야지. 이렇게 사이좋게 껴안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으니까.

이 정도 욕심은 부려도 되리라 생각한 에이스는 더는 말을 잇지 않고 가만히 품에 안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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