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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벽 외 조사(1)

1. 벽 외 조사(1)



허공에서 둔탁한 굉음이 울렸다. 눈을 가린 앞머리 너머로도 그 빛이 전해질 만큼 커다란 빛의 균열이 진의 손 끝부터 야금야금 삼켜온다.

“...여긴 또 어디야.”

차원을 넘는 정도로도 정신을 잃다니, 진은 제 몸상태가 믿기지 않는 듯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탄식을 뱉었다. 시야가 정돈되고 주변이 눈에 들어올 무렵, 진은 본능적으로 전투 태세와 함께 주변을 경계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진을 쫒던 악마들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평화롭고 고요한 넓은 들판과 푸른 하늘, 등 뒤로 느껴지는 푸른 기운의 정체는 거대한 숲.

“인간계인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신체는 물론 마음이나 정신 또한 맑지 않았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다 회복하겠지만 대충 보아하니 제법 시간이 걸릴 듯 했으니 진은 우선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탁 트여있는 곳은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느껴서 일까, 진은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 등지고 있던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와, 여기 인간계 맞아? 무슨 가브리엘의 숲 같잖아. 아니, 더 클지도 모르겠네. 웅장한 숲의 규모를 보며 감탄을 하던 진은 가장 커다란 나무 앞에 멈춰섰다. 이 정도면 충분 하겠지. 사람 몇을 모아도 다 두르지 못할 기둥을 가만 쓸어보고는 드디어 마음을 정한 듯 등 뒤에서 한쌍의 흰색 날개를 펼쳤다. 

한 발, 두 발, 세 발. 푹신한 흙과 잔디를 발판 삼아 도약한 진은 가볍게 날아올랐다. 몇 백년이나 비좁은 철창에 갇혀있던 탓인지 손에 쥔 자유가 더더욱 달콤했다. 아아, 그래. 이걸 기다렸어. 끔찍했던 기억은 바람에 흩날려 버리고 푸른, 울창한 숲을 눈에 담았다.

아, 이런. 길지 않은 시간동안의 활공임에도 진은 몸의 무리를 느꼈다. 이것 참, 꼴이 말이 아니네. 속으로 탄식하며 두어번 더 힘찬 날개짓을 한 뒤 진은 내려앉을 가지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

갑작스레 진을 습격한 거대한 인간은 그대로 진을 낚아채듯 물어 바닥으로 그를 끌고 내려갔고, 수많은 치아에 의해 뜯겨나간 오른쪽 날개와 팔, 다리는 바닥을 뒹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바닥으로 내리꽂혀진 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제 오른쪽 다리였다.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 진은 쌕쌕거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반대편에 널부러진 오른쪽 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를 알리 없는 거인은 한 번 더 진을 향해 그 입을 놀린다. 소름끼치는 소리가 제 귓가에 맴돌 즈음, 거인은 더이상 흥미를 잃은 듯 진을 뱉어냈다. 

끔찍한 고통이 몸을 삼켰지만 그보다 더 먼저 암흑이 진의 시야를 삼켰다.

그로부터 며칠이나 지났을까, 숲에는 새로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혹은, 원래 주인이었던 자들. 벽 외 조사 중 정비를 위해 방문한 조사병단은 숲에서 이질 적인 것을 발견하고 그 걸음을 멈췄다.

“이게… 뭘까요?”

“새의 흔적 같은데.”

“이렇게 큰 새가 있다고? 이 정도면 말보다 클거야.”

패트라의 질문에 한사람씩 말을 거들었다. 

“조류의 냄새는 아닌 것 같다. 뜯긴지는… 3일 정도 됐나.”

“어느 방향인지 알겠나?”

“이쪽이다. 멀진 않군.”

4명의 시선이 미케의 손이 가리킨 쪽을 향한다. 거인의 흔적일지도 모르겠군. 수색을 재개한다. 엘빈의 명령이 떨어지자 저마다 이것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리바이는 피비린내와 함께 수상한 인형을 발견했다. 자신보다 조금 큰 키. 등에 있는 커다란 상처와 핏자국, 오른쪽 팔 아랫부분과 발이 잘려나갔지만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거인에게 당한 인간인가? 정신은 잃은 것 같았지만 다행히도 숨은 붙어있는 모양이군. 호흡을 확인 한 리바이가 이리저리 들쑤시는 사이, 나머지 간부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살아있는게 용하군.”

“산채로 여기까지 온 건가? 기적이라 불러야겠는데.”

“먹혔다가 토해졌다고 하기엔 이 자 혼자 뿐이다.”

엘빈과 한지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리바이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했다. 분명 아까 자신이 발견한 것은 오른팔과 발이 잘려나간 인간이었는데. 

“일단 살아있으니 치료와 조사가 필요해보이는군. 데려가는게 좋을 것 같다만.”

리바이의 말에 엘빈이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무반을 불렀다.

엘빈은 신중한 사람이었다. 신중하고도 치밀한. 민간인을 태우고 들어간다면 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볼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저마다 자신의 가족을 찾아달라고 몰려들겠지. 이 자가 살아있는 것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으므로 엘빈은 굳이 어려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군복 남은게 있나? 옷을 먼저 갈아입히고 수레에 태우도록.”

조사병단의 옷으로 갈아입히기 위해 옷을 벗기는 순간, 그 장소의 모든 이들은 몸이 굳어졌다. 당연하게도 인간이라 여겼던 그는 성별을 알 수 없는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작은, 인간과 같은 크기의 몸을 가지고 옷을 입는 거인이라니. 그들은 그동안 봐왔던, 배워 왔던 것을 부정당한 듯 작지 않은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이거… 거인 맞지? 내가 모르는 새로운 거인 맞지?”

“진정해라, 망할 안경. 증거품에 침 떨어져.”

“이상하군. 거인 냄새는 전혀 없어.”

“데려가야 할 명분이 늘었군.”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수상했지만 그 뜻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새로운 정보라는 것.

“이것으로 조사를 마치고 벽 안으로 복귀한다.”

엘빈의 퇴각 명령에 조사병단은 다시 말에 올랐다. 그동안 진척이 없던 조사에 생긴 이변. 열정 한구석에 자리잡은 실망과 절망을 내쫒은 엘빈의 눈에 희망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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