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는 삼 년 만에 돌아온 자의 눈 속에서 신을 본 유일한 자였다. 어릴 적 손에 쥐어진 성서에서 믿음을 배운 그녀에게 그자 곧 신의 증거였으니, 신은 갈라진 보름달 아래 그의 모습을 빌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아, 신이시여. 제가 무릎을 꿇고 경배하길 원하시나이까. 참회하길 바라시나이까. 그를 보고 악마의 존재를 맹신한 자 많겠으나 신을 본 자는 그
룽게는 제네바의 이름 높은 프랑켄슈타인 가문의 가신이었지만 처음 프랑켄슈타인의 성에 당도했을 땐 기억력이 조금 좋을 뿐인 작은 남자아이였다. 까마득한 수의 해가 성의 가장 높은 탑 끝에 걸렸다가 호수 아래로 잠기는 동안 그는 자랐고, 늙어갔다. 정원사 밑에서 갈퀴질을 하던 아이가 풋맨의 정장을 걸치고, 마침내 개인실을 허락받으며 경칭으로 불리기에 이르는 시
그는 자수하였다. 결정한 이상 행동은 빠를수록 좋았다. 그러나 그가 자수하기 전까지 그는 이 모든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과 같았다. 생각에 행동이 수반되었을 때 그 순간 드디어 그것은 결정되었고 확정되었다. 생각에서 그치는 결정은 실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것과 같았다. 실체가 없으니 그것이 정녕 실존하느냐는 지적에 반박할 말이 궁해진다. 그러므로 그는
1. 프랑켄슈타인 아이에게 제대로 다루지 못할 위험한 도구를 들려줄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이 창조한 생명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신에겐 더는 창조할 자격이 없어 그 자격을 압수해야 한다. 그런데 신의 권능을 어떻게 압수할 수 있을까? 이 땅에 깊고 넓게 뿌리 내린 종교에서 신의 도구는 말씀이었다. 그는 그것으로 태초의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하니, 그 입을 막
*24년 ㅇㅇ 페어 첫공 감상문에 가까운 단문*폰 화면에 맞춰져 있습니다 앙리 뒤프레는 제 인생이 축복 받았다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저주를 받았다고 여기지도 못했다. 부모 없이 생존한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의사로 큰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운이 좋다 여길 일들이 그 이유를 제외하고도 꽤 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몰랐다.그러나 빅터 프랑켄
이제 정말 돌아갈 수 없겠지. 묵묵히 설원을 걷던 괴물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서더니 핏덩이가 끈적하게 엉겨 고약한 냄새가 나는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나아가기를 멈추자 바람이 선명하다. 코트 깃을 세워 뺨을 가렸다. “…….” 내 얘기 듣고 있어? “어차피 나는 며칠 뒤에 죽을 거야.” 질문에 알맞은 대답은 아니었으나, 그들은 서로 몰이해의 영역으로
아주 깊은 잠에 들었던 것 같다. 끝없는 물이 폐 안으로 굽이치고, 텅 빈 몸에서 울리는 메아리가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막혀 산산히 부서져 나가는 꿈. 나는 의탁할 길이 없이 수초처럼 흔들리다가 바위에 부딪혀 먼 바다로 가루가 되어 나아갔다⋯ ⋯살려 줘,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나를 반기지 않는 파도가 지평선 너머로 내 몸을 꽂아버린다 해도, 살고 싶었다
형의 말도 안 되는 요청에 반문해보았지만 슬프게도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었다. “그래. 네가 말한 대로다.” 형은 진심으로 동생에게 방해꾼 아무나 하나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게 부탁일까? 내가 거절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안 하고 툭 내뱉은 것이? 나는 살인자다. 많이도 죽였고 그 중에는 꼭 죽어 마땅한 사람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사람처럼 말하는 괴물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비밀은 단 한 명에게라도 털어놓는 순간 온세상 모두가 알게 되니까.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영원히 침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딱 한 명에게만 말하기로 했다. 그렇게 선택한 상대가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말은 그 누구도 믿지 않으니까. 어머니는 ‘미친 사람’이었고 모든 사
“저 퍼시에요. 오랜만입니다, 어머니. 아일랜드에 오자마자 바로 여기 왔어요. 어머니도 많이 야위셨군요. 형이 굶기는 건 아니죠? 정말? 형이 잘 대해주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당연히 어머닐 믿죠. 어머니가 저에게 거짓말을 하겠어요? 셋 중 절 가장 사랑하시는 것, 다 알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국 땅을 여행하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겪었답니다. 하하, 사
퍼시가 사람을 무참하게 죽인 지금 괴물은 이 순간이 왜 이렇게 슬픈지 알 수가 없었다. 눈물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지만, 뱃속 깊은 곳에서 절규가 메아리치다가 간신히 혀 끝에서 멈췄다. 어쩌면 예상한 게 맞았기 때문일까? 퍼시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자’였다. 아마 지금 퍼시의 눈빛으로 보건데, 퍼시는 가책의 눈물을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 이야기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괴물의 짧은 삶은 계속 이어지다가 퍼시를 만난 순간까지 도달했다.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이제 새로 시작될 이야기들만 남았네. 앞으로 뭘 할 생각이지?” “내 창조주를 찾아갈 것이다.” “부모와의 상봉이라, 대개는 나쁘지 않지.” “‘대개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란 자가 너를 반길지 모르겠단 뜻이지. 널
괴물이 바란 이야기는 좀 더 대화에 가까웠다. 보통 사람들이 삶을 지나치며 흘리고 가는 그런 대화들. 하지만 곧이어 괴물은 그것이 지나친 욕심이었음을 깨달았다. 괴물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산 적 없었고, 그런 화젯거리가 있을 리가 없었다. 괴물이 들려줄 수 있는 것들은 그날따라 유달리 낮은 음조로 읊조린 이름 모를 새들과, 인간들의 고함, 마음을 맴도는 증오
괴물이 구한 사내는 고급 옷을 입은 호리호리한 청년이었다. 그 뻣뻣하고 일하기 힘든 고급 옷 때문에 그는 더 허우적댔을 것이다. 완전히 물에 젖은 붉은 머리칼은 해초처럼 구불거리며 양 뺨과 이마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마구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는 날카로운 인상의 눈이 괴물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의 눈빛이란 게 이토록 형형할 일이었던가? 여름 초목
복수하기 좋은 날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오늘은 어쩌면 그날인지도 몰랐다. 창백한 햇살이 살갗을 간질이는 동안, 이름 없는 괴물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한 남자를 눈에 담았다. 괴물이 인간들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 뒤 처음으로 마주친 인간이었다. 괴물은 한 인간의 죽음을 냉엄하게 내려다보려는 대신, 인간을 구하고 싶어서 꿈틀거린 손가락을 먼저 느꼈다. 말도
때때로 이름 없는 것은 저 자신의 불행을 원했다. 그것은 실밥을 제거하지 않으면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 같은 것으로, 원인과 결과가 한데 뒤섞여 더 이상 시작점을 알 수 없게 된 불덩이였다. 얼기설기, 그러나 꽤 정성스레 꿰인 실은 한때 누군가의 희망이자 생명이었으나 이제는 그 쓰임을 다하고 고작 이물질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였다. '그'는 자신이 그것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