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괴물,

원작 <프랑켄슈타인> 기반 괴물 x 자작 드림 캐릭터 첫 만남 서사

說話 by 傳達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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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깊은 잠에 들었던 것 같다. 끝없는 물이 폐 안으로 굽이치고, 텅 빈 몸에서 울리는 메아리가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막혀 산산히 부서져 나가는 꿈. 나는 의탁할 길이 없이 수초처럼 흔들리다가 바위에 부딪혀 먼 바다로 가루가 되어 나아갔다⋯

⋯살려 줘,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나를 반기지 않는 파도가 지평선 너머로 내 몸을 꽂아버린다 해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산단 말인가, 내 인생이 그 해답을 전부 틀어막고 있는 기분인데.

나의 마지막 기억은 컴컴한, 그러니까 어제로 추정되는 밤이다.

인생에서 인간을 추방하는 아주 단순하고도 쉬운 방법이 뭔지 아는가. 그것은 인생의 모든 선택지를 앗아가 버리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비로소 나는 삶에서 추방당한다. 바로 어제, 나의 가족들에게 뼈저리게 증명당한 사실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들이 아직 내 생각마저 앗아가 버리진 않았다는 것이다. 내 두 팔과 다리도.

다시 현재, 그토록 열렬히 삶을 쫓아 뛰쳐나갔던 내가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의식을 잃었다 깨어난 아침. 정신이 들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천장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정체모를 섬뜩한 손이 천장으로 향한 나의 손을 어루만지는 것을 보았다. 그 손은 크기도 크기였지만 하얗다 못해 투명하여, 가죽 밑으로 지나가는 혈관 같은 것들이 다 들여다 보이는 끔찍한 형체였다.

반사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켜 손의 출처를 알아보려 했지만, 이내 다른 손에 의해 어깨를 제지당하고 말았다. 이 손길은 거칠면서도 일면 부드러움을 담고 있어서, 나는 순간적으로 반항하지 못하고 순한 양처럼 다시 눕혀졌다.

“저는 당신을 해치지 않습니다. 안심하세요. 아직은 누워계셔야 좋습니다.”

거친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애써 누르고는 있지만 긴장감이 역력한 모양으로, 초조함마저 느껴졌다. 화자를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돌리자 어깨를 쥐었던 손이 이제는 나의 눈을 가려왔다.

“⋯달갑지 않은 모양새일 겁니다. 저는 그저 당신이 쉬었으면 합니다. 안심하세요.”

두 번째로 안심하라는 말을 뱉은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눈두덩이 위로 미세하게 땀이 배어나오는 너른 손바닥을 느꼈다. 이렇게까지 긴장할 일인가? 싶으면서도, 내 손을 어루만지고 있던 형체를 생각하니 어렵지 않게 이유가 납득되었다. 분명 자신의 모습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하지만 목숨을 구원받았는데 얼굴조차 모르는 것이 어느나라 예의란 말인가.

“저를 급류에서 구해주신 은인이신데,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부디 은인의 얼굴을 알게 해주시면 안될까요.”

한층 더 초조해진 기색으로, 은인은 재차 말했다.

“당신이 보면 전혀 좋지 않을 행색입니다. 어쩌면 저를 영영 인간 사회에서 추방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고요. 아니, 분명 그럴 겁니다.”

추방, 나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바로 그 추방을 어제 내가 당했지 않는가. 이런 내가 어떻게 감히 다른 인간을 추방할 수 있겠는가. 그럴 자격이나 있는지.

은인이 얼마나 끔찍한 행색을 하고 있건 간에, 내가 그를 혐오할 이유는 없었다. 나를 구명한 은혜를 보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성이 없는 동물들도 자신을 구해준 이를 알아본다 들었는데 하물며 나는 지성을 가진 인간이다. 그 또한 그럴 것이고.

이번에는 내가 그를 안심시키려 친절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안심하세요, 저는 제가 겪은 슬픔을 은인에게 겪게 할 만큼 악인은 못 되어요. 그런 악인이 되고 싶지도 않고. 부디 제가 은인의 눈을 보고 감사를 표할 수 있게 해주세요.”

은인은 잠시 침묵했다. 나는 가만히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이윽고, 천천히 나의 눈을 가리던 장막이 걷혔다. 쏟아 들어오는 빛에 흐린 눈을 깜박이고, 나의 은인을 확인하기까지는 짐작건대 10초도 걸리지 않았으리라.

그곳에는, 추방을 두려워하며 떨고 있는 한 괴물이 있었다.

그 끔찍하고 추악한 모양새를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까! 만약 거기서 두렵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일 것이다. 난생 처음 보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징그러운 것은, 침상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일순간 공포에 휩싸인 나를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듯이, 동시에 고통으로 얼룩져가는 표정으로. 거기서 괴물의 눈을 보지 않았다면, 나는 즉시 침상에서 튀어올라 문을 박차고 나왔으리라.

괴물의 눈에는 슬픔이 어려있었다. 마치 내가 어젯밤 여관에서 뛰쳐나오던 눈 같아서, 어딘가로부터 자꾸만 밀려나 절벽에 서게 된 그런 익숙한 눈 같아서, 오래오래 그 눈을 바라보았다. 흐릿한 빛을 띠던 눈이 한 번 감겼다 다시 뜨였다. 그 과정이 너무나 느리게 보였다. 마치 눈을 감았다 뜨면 눈앞의 구원자가 사라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으로.

괴물은 내가 공포를 품은 것과 별개로 당장 도망치지 않자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희망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무언가 더 말해야 하는 것인지, 괜히 더한 행동을 취했다가 내가 지레 놀라 달아나진 않을지. 나는 놀란 마음을 누르려 진정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인간이 아닌가요?”

“인간이 만들어낸⋯ 괴물입니다.”

“만들어낸⋯?”

나의 의문이 그의 고통을 상기시켰는지, 그는 다시금 고통스러운 얼굴을 해보였다. 일그러진 얼굴이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추한 모습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 나로서는 그가 고통스러워 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가 추방을 두려워하는–어쩌면 이미 당했을지도 모른다–괴물이라면, 나의 처지와도 닮아있지 않은가. 게다가, 할 말이 남아 있었다.

“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불행이 저를 넝마로 만든다고 해도 살고 싶다고 다짐하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덕분에 이렇게 목숨을 부지하게 되어서⋯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 말을 주의깊게 듣던 괴물은 안절부절 못 하며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끼어들었다.

“감사를 드려야 할 건 오히려 접니다. 당신이 제게 호의는 호의로 돌아온다는 미덕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오래도록 그것을 잊고 있었지만, 이제 당신 덕분에 인간 사회에서 추앙받는 선의와 도덕이란 것이 나에게도 미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를 피하지 않아 준 인간은 당신이 유일합니다. 이렇게 대화를 해준 인간도⋯ 오, 맙소사! 대화라니, 나는 내가 지금 어떻게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괴물은 말을 마치더니 제 얼굴을 감싸쥐었다. 분명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모양새였다. 나는 그 미숙한 행태에서 처음으로 인간적인 호감을 느꼈다.

“당신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저를 구해주시고 보살펴 주실 정도의 상냥함을 가진 당신이라면⋯ 저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걸요.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괴물은 친구라는 말을 듣자 어깨를 크게 떨며 동요했다. 꿈을 거니는듯한 음성으로 그가 읊조렸다.

“친구⋯ 한때는 나도 귀애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매몰차게 버렸지만, 나는 아직도 그들이 내 친구가 되어줬다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정말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런 진정한 친구 말입니다. 당신만 괜찮다면, 그러니까,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너무 성급한 제안이라면 지금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그 전에 하나만, 아니, 두 개만 여쭤봐도 될까요?”

“당신이 묻는데 뭔들 대답하지 못하겠습니까. 곧 친구가 될 지도 모르는데요. 어서 말해보십시오.”

“여긴 어디인가요?”

괴물은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짐작컨대 약간의 미안함이 담긴 표정이었다.

“멋대로 당신을 데려와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물에 젖은 당신을 챙겨줄 사람이 주변에 보이지 않았기에 데리고 올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알아주십시오. 국경의 날씨는 밤에도 꽤나 쌀쌀합니다.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탈이 날 것 같아서, 당신을 구해낸 지점에서 멀지 않은 숲에 들어와 낡은 오두막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비어있더군요. 당신의 옷을 말려주고 싶었지만, 차마 옷을 벗길 수는 없어서 불가에서 당신을 끌어안고 계속 앉아있었습니다. ⋯맹세합니다, 옷을 말리는 행동 외에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옷과 머리가 마르자마자 당신을 여기에 눕혔습니다.”

“절 안고 계속 불가에 앉아계셨다고요? 힘드셨을 텐데, ⋯고마워요,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그렇게까지 해주시다니.”

“사실⋯ 의도가 있었던 것은 맞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해야만 인간이 나에게서 도망치지 않아주는 게 아닐까 하고⋯ 미안합니다. 나는 당신을 구한 것이 아직 내게 남아있는 고결한 이성과 본능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군요.”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이익을 위해 행동해요. 선의만으로 행동할 수 있다면 성자겠죠. 성자를 존경하긴 하지만, 내 주변인들은 전부 그와는 동떨어져 있는 걸요. 그러니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의도가 적중했네요. 축하해요.”

이런 대화 속에서 괴물도 나도 긴장이 풀렸다. 괴물은 시종일관 이러한 대화가 감개무량하다는 표정이어서, 나는 미소를 머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잊고 있던 현실이 몰려오는 바람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곳이 강과 가깝다면 가족들이 금방 들이닥치겠네요. 저는 사실 팔려가던 몸입니다. 어젯밤에서야 그 사실을 통보받았죠. 여행이라고 생각했던 길에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나요. ⋯그래서 말인데,”

나는 결심을 굳혔다. 가족들에게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내 인생을 바칠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가난이 우릴 씹어먹는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우뚝 서서 삶과 맞서고 싶었다. 추위에 떨고 굶주림과 싸우더라도 결코 내가 나로서 존재한다는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일신의 안위에 그것을 전부 팔아버린 나의 가족들, 돈이면 그것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래의 남편까지도, 버리고 도망치고 싶었다. 나를 위해서.

그러니 필요했다. 그 행복의 가치를 잘 알면서도 나를 이해해주고, 나의 선택을 지지해주고, 내 여정에 끝까지 함께해 줄 동행. 설령 세상이 또다시 나를 절벽으로 내치고 파도에 꽂아버린다고 해도, 그것을 나누며 버텨줄 친구가.

“이름이 무엇인가요? 나는⋯ 당신이 날 데려가 주었으면 좋겠어요, 계속. 그러려면 당신이 누군지 더 알아야 할 테니까.”

그것이 내 눈앞의 괴물이 될 거라는 생각은 단 한순간도 해본 적 없었지만, 왠지 이만한 동행을 구할 길은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예감이 나를 지배했다. 나는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담아 그를 바라보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끝없는 시련 뒤에 심심찮게 기적이 내리기 마련이니까. 어쩌면 그가 나의 기적이 아닌가.

괴물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격렬한 기쁨과 혼란에 휩싸인 채 주먹을 꽉 쥔 그는 연신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강렬하게 내 얼굴에 못박혀 있었다.

나는 그가 진정될 때까지 그의 손을 양손으로 덮어주었다. 마치 그가 천장으로 향한 내 손을 어루만져 주었듯이, 무언가를 갈구하는 나의 손을 따듯하게 해주었듯이. 나도 그에게 온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세상에 혼자인 것은 없으니까.

이윽고 괴물의 주름잡힌 입술이 조심스레 열렸다.

“내게 이름을 지어준다면, 당신과 기쁜 마음으로 동행하겠습니다.”

나의 눈이 정확히 그의 눈을 정조준했다. 환희, 나는 그것을 읽어냈다.

“가능하다면, 당신의 이름도 알려주십시오.”

“피아, 피아 밀러에요.”

밀러라는 건, 이제는 없어질 지도 모르는 이름이지만. 덧붙이며 나는 그에게 눈동자로 똑같은 환희를 되돌려 주었다. 함께 가요, 나의 괴물. 나는 손에 힘을 주었다. 엉성하게 맞잡아오는 손에는 분명 온기가 깃들어 있었다. 아직 잃지 않은 온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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