射星
삼국유사 기반 창작 서사
그날은 정말이지 온 하늘의 별이 전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타오르는 점들이 공중으로 높이 솟구쳤다가 최고점을 찍고 맹렬히 추락했다. 바람을 가르고 유성이 후두둑 낙하하면, 내 주위로 서 있던 인영들이 후두둑 형체를 잃고 바닥과 맞닿았다. 축제였다, 별들의 축제. 인간의 손으로 쏘아 올린 별들이 인간을 잡아먹는 날이었다. 재앙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던가.
왠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순간, 어디선가 어머니의 조심스러운 탄식이 들렸다.
사소한 건 생각하지 마. 하늘을 보자, 아름답잖아.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그에 맞춰 순순히 고개를 든다. 하늘을 뒤덮은 별의 이불을 본다.
있잖아, 저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별을 품은 저 너머의 곳 말이야. 나는 말이지 꼭 저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돌아가고 싶다고? 별의 이불이 움칠거린다. 그들이 원래의 궤도를 뒤틀고 파괴하며 나에게로 달려든다. 황급히 고개를 내리고 눈을 감싸 쥔다. 화끈거리는 눈은 나의 눈이 아니다. 이것은 '그'의 눈이다. '그'가 하늘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나는 뒤돌아 달리기 시작한다. 춤추는 별들을 뒤로한 채.
엄마도 머릿속에서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첫 질문이다. 어머니는 그 말에 잠시 침묵하시더니, 나를 꼭 안아주셨다. 정확히는 나의 '첫 번째' 머리를 감싸 안아주셨다. 아가, 무슨 소리가 들리든지 너는 그 말을 들으면 안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다음날 꼭두새벽부터 나를 이끌고 생전 처음 보는 신당 같은 곳에 가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무슨 기도를 하시는지 내가 알 도리는 없었다. 그저 내 질문의 결과가 이런 것이라면, 앞으로 질문은 되도록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어린 나에게 매일 새벽 이뤄지는 강행군은 고역이었으니까.
질문을 하지 않고 세상을 알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운 것이었다. 나 스스로 탐구하고, 통찰해 얻어낸 것이 맞아떨어졌을 때는 엄청난 쾌감이 몰려왔다. 게다가 나에게는 그것을 도와줄 조력자가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내 머릿속 어딘가에 존재하던 이 '누군가'는 나와 함께 성장해 왔다. 하지만 그는 나보다 훨씬 영특해서, 나의 추론이 막히거나 틀어질 때면 늘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바른 길로 이끌어 주려 노력했다. 나의 첫 질문은, 다른 이들도 모두 이런 존재와 함께하는지 확인하려는 데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곧 그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내게는 남들과 달리 머리가 둘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어깨 위로 달린 두개골이 두 개였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이런 아들을 데리고 인적 드문 산 속에 숨어버린 어머니는 늘 태몽에 대해 들려주시곤 했다. 별이 아주 빛나는 밤이었단다. 나는 그때 너를 얻으려고 매일 불공을 드렸지. 그런데 자려고 누워보니, 머리맡에 무언가 있는 게 아니겠니. 글쎄 눈알만 한 옥구슬이 네 개나 굴러와 있었단다… 그게 태몽인 걸 알고서는, 틀림없이 우리에게 총명한 아이가 와줄 거라고 생각했지.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옥구슬, 그냥 눈알이 아니었을까요. 빌어먹을 머리가 둘이나 생겼잖아요. 물론 지금 내가 가진 눈알은 끽해야 세 개지만.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이 말을 그대로 옮겼다간 또 신당에 끌려가 내내 기도를 드릴 게 분명했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어머니는 쓰게 웃었다. 머릿속에서 그가 속삭였다.
그래도 정말 총명한 아이가 됐잖아, 그렇지?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그럼 너는 내 두 번째 머리가 말하는 소리구나. 그는 작게 웃었다. 짐작컨대 동의하는 소리 같았다.
네가 높이 올라갈 정도로 총명해지면 좋겠다.
무슨 말이지?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 애도 따라서 조용해 지나 싶더니, 곧이어 한숨을 쉬듯 중얼거렸다.
돌아가고 싶어.
어디로? 되묻긴 했지만 나의 눈은 저절로 하늘을 향했다. 옆에서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 내 눈을 가렸다. 하늘을 똑바로 보지 마렴, 아가. 왜요? 가져갈 테니까. 무얼요? …. 또 침묵. 나 또한 침묵했다. 어렸을 적부터 이 질문의 답은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가만히 공포에 떠는 어머니의 두 눈동자를 세 눈동자로 들여다보았다. 어머니는 뭘 두려워하는 걸까. 세상의 많은 걸 깨우쳤지만 도저히 이것 하나만큼은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어머니의 공포, 나의 통증.
통증, 선명한 세상을 더욱 선명히 만들어 주는 것. 내가 살아 숨쉬고 있다고 단언해 주는 의식.
밤이면 나는 어머니의 눈을 피해 밖에 나오곤 했다. 어머니는 평소 내 생각과 행동을 존중해주는 편이었기에, 총명한 아들 행세를 하면 이 숨 막히는 산골 생활도 할 만했다. 그러나 머리가 커 갈수록 나의 삶이 피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머리가 하나밖에 없는 저 산짐승들도 하루에 천 리를 내달리며 온 산을 유람할 텐데. 머리가 두 개인 나는 방 한 칸에 갇혀 속절없이 시간을 죽인다는 사실이 핏줄이 터져버릴 것같이 답답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소심한 반항으로 이따금 눈을 들어 하늘을 보기 시작한 것은. 광활한 하늘을 눈에 담기만 하면, 누군가 내 눈을 금속 흉기로 잘게 쑤시는 듯한 환상통에 시달렸다. 그래서 실은 찰나도 견디지 못하고 고작 힐끔 쳐다만 보는 것이 다였다. 그래도 그게 좋았다. 내가 그 지긋지긋하게 누런 천장 아래에만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느껴져서. 숨만 붙어있는 것이 다인 흉물이 아니라, 고통을 느끼며 눈물 흘릴 줄 아는 인간답게 느껴져서. 하지만…
왜 너만 이런 통증을 느낄까?
나도 그걸 생각 중이야. 조심스럽게 답했다. 어머니는 하늘을 볼 때 아파하지 않는데, 왜 나는 이렇게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살아야 하는 걸까. 내가 뭘 잘못했으면. 역시 머리가 둘로 태어난 것이 죄인가. 하지만 그만큼 총명해진 건데. 매일 밤마다 고민해 봤지만 헛수고였다. 하늘을 바라보는 행위와, 내 눈이 아픈 것이 어떤 연관이 있단 말인가. 어머니가 매일 지성으로 기도드리던 신이 정말 있다면야 내 통증 하나 어떻게 못하겠는가. 하다못해 과거에 다쳐본 적이 있던 것도 아닐 텐데…
만약 네 눈이 정말 세 개가 아니라 원래 네 개였다면 어떨까? 그 태몽처럼 말이야.
덥석, 등 뒤에서 가녀린 손이 나를 잡는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푹 숙인다. 어머니의 손이 내 양어깨를 쥐고 다시 그 퀘퀘한 방 안으로 들여보낸다. 바람이 차, 아가. 잠이 안 오니? 나는 잠시 침묵했다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눈이 이상해요. 막 누가 찌르는 것처럼 아파요. 꼭 예전처럼요. 어머니는 삽시간에 굳어 나를 바라봤다. 방 안이 너무 어두워서 어머니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불 좀 켜주세요. 어두워요. 어머니는 미동도 없이 나를 봤다. 그렇게 얼마간 서로를 바라봤던가. 어머니와 그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나가자.
도망쳐.
밤에 산을 돌아다니는 건 미친 짓이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신당으로 가는 산길을 정신없이 밟으며 든 생각이다. 인생에서 제일 끔찍한 것은 새벽 산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순위가 바뀌는 소리가 들렸다. 야간 산행이 곱절로 끔찍하다. 어머니의 눈에는 그 무겁다는 머리를 두 개나 달고 힘겹게 달음박질치는 당신 아들의 모습 따윈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계속 앞만 보고 나아갔다. 어머니, 힘들어요. 어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대답이 없는 김에 생각을 하기로 했다. 이미 말을 듣지 않는 나의 폐는 내버려두고, 제멋대로 엉킨 호흡 사이로 뇌를 굴렸다. 사실 예전에 눈이 아팠던 적은 없다. 그저 그의 말을 듣고 떠본 것뿐이다. 태몽이 사실이라면 눈이 네 개여야 할 텐데 여태 난 내가 눈이 세 개라는 사실에 아무런 이의도 없었으니까. 어머니의 반응으로 미루어 보아 나는 예전에 사고로 눈을 하나 잃었던 걸까. 그렇다면 왜 그것을 숨기는 걸까. 왜 나는 이 밤중에 산을 타야 하나. 애초에 왜 어머니는 나와 관련된 문제라면 신당에 가는 거지.
신당에 있는 게 너의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 믿는 거지.
그러니까 왜. 신당에 있는 게 부처님도 천지신명도 아닌데 뭘 믿고. 애초에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지 않나. 내 머리는 아직 두 개고, 눈은 하늘을 볼 때마다 아프고, 너의 목소리는 계속 들리고, 나는 세상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이렇게까지 절박하다면 해결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니잖아. …아니 잠깐.
우뚝, 다리의 움직임을 멈췄다. 그 여파로 나를 단단히 붙들고 가던 어머니는 나를 놓치고 저만치 앞으로 가 버렸다. 나는 산길을 벗어나 수풀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안절부절 못하며 다시 돌아왔다가 나의 부재를 알아채고 놀란 목소리로 속삭이듯 외쳤다. 아가, 어디로 갔어. 다쳤니? 그새 머릿속에서는 나의 생각을 확인해 주듯 그가 가설을 정리해주고 있었다.
너와 관련된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뭔지도 모를 존재에게 뭔지도 모를 기도를 올리러 간다. 이건 하늘을 보지 말라던 말과 상통할까. 적어도 하늘이 아닌 존재를 믿는 건 분명하지. 총명한 아이라고 좋아하면서도 능력을 펼치게 두지 못하고 산속에 가둬두는 것, 과도하게 보호하는 것, 심지어 예전에 눈을 잃었다던 사고도 말하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연결되려면 어떤 사건이 발생했던 걸까?
나는 조용히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니, 나에게 무슨 짓을 했어요? 어머니는 숨을 멈췄고 그는 웃었다. 아무래도 정답인가 보다. 어머니가 나에게 어떤 잘못을 해서, 그래서 나는 이렇게 태어났고, 눈까지 잃었고… 어머니는 죄책감에 목을 매다는 것보다야 나를 가둬두고 예뻐하고 싶었겠죠, 자신에게 벌을 줄 세상과 하늘이 두려워서 자신과 나를 산속에 밀어넣고, 무슨 문제가 생기면 이상한 존재에게 절이나 올리면서 당신의 과오를 안주삼아 반쪽짜리 위안이나 받고…
그만해! 어머니가 새된 비명을 지르면서 나를 덮쳤다. 나는 웃었다. 어머니는 나를 죽이고 싶어도 안되겠죠. 내 머리통이 두 개라 목을 조르려면 어머니의 그 작은 손으로는 역부족일 테니까. 빨리 말하기나 해요,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나의 세 눈동자가 번득이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울음에 가까운 비명을 토해내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실수야, 그냥, 나는 자식이 가지고 싶었어. 부처가 꿈에 나타나서 이목구비의 수만큼 콩을 베개 밑에 넣고 자라고 말했을 때, 드디어 내 지성이 하늘을 감동시켰구나 싶었어. 그래서 작은 욕심을 부려본 거야. 나는 그저 콩을 두 개 더 넣고 잔 죄밖에 없어, 그런데 눈이 네 개가 될 줄은 몰랐다고. 진짜야.
그래서요? 나는 되물었다.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럼 눈 하나는 어디 간 거야. 왜 난 하늘을 보면 안 되는 거냐고.
하늘에서 시켰어. 내 욕심 때문에 하늘에서 눈알 두 개가 사라졌다면서, 네 눈 두 개를 찔러서 멀게 하라고 했어. 그래서 나는 하나를 찔렀다가… 네가 너무 아파해서 차마 하나 더 찌를 수가 없었어. 나는… 그저 네가 하늘을 보면 금방이라도 하늘에서 눈알 하나를 마저 가져갈까 봐 그랬어.
끝까지 욕심 부리지도 못하고, 냉철하지도 못하고, 그런 주제에 겁만 많구나.
탄식하는 목소리를 향해 물었다. 그럼 너는 내 두 번째 머리가 아니라 하늘에서 잃어버린 내 세 번째 눈이구나. 그는 또 웃었다. 도망가자, 여길 버리자. 머릿속이 웅웅거렸다. 이번만큼은 그의 말인지 나의 생각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더 이상 그 괴상한 신당에 끌려가고 싶지 않다는 것. 나는 그대로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산속을 헤쳤다.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 아가… 그러고 보니 저 사람은 내게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다. 자신의 죄책감에 이름이 붙을까봐.
그렇게 달려 나온 후로는, 더 이상 하늘을 봐도 눈이 아픈 일은 없었다. 눈알을 파고들어 오던 차가운 금속의 통증과 미세하게 떨리던 끄트머리를 상기하기에는 이미 충분히 생동감 있는 삶을 되찾았으므로. 별이 쏟아지던 그날, 나 대신 적장(敵將)이 쏟아지던 불화살에 한쪽 눈을 잃었다는 소식만 알음알음 전해 들었을 뿐이다. 아, 그토록 돌아가고 싶다던 그는 마침내 하늘로 돌아갔다. 나에게 세 번째 눈을 남기고, 누군가의 두 번째 눈을 제물 삼아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제 나는 하나의 총명한 인간이 되어 이 빛나는 눈들로 당당히 별을 마주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는 활을 들어 밤하늘을 조준한다. 마치 나를 향해 쏟아질 것 같던 별들은 고요하게 나를 마주 본다. 어머니 머리맡에 있었다던 옥구슬들도 저렇게 빛이 났나요. 하늘에 옥구슬이 있다면 별들이겠죠. 하늘에 저렇게 눈이 많이 박혀 있는데, 나 하나쯤 세 개라고 이상할 것도 없겠네요, 그렇죠?
나는 대답을 듣는 대신 별을 향해 화살을 쏘아올렸다. 화살촉이 달빛을 받아 최고점에서 빛났을 때, 나는 비로소 홀가분한 기분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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