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강아지가 멀리멀리 떠나고 나는 쓰네

나의 강아지 나의 동생 나의 가장 소중한 복실복실 귀염둥이

※반려동물의 죽음과 그에 얽힌 전반적인 감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있었던 일, 느낀 바를 가감없이 적을 예정이므로 읽으시기 전 참고 부탁드립니다.


23년 4월 1일에 나는 글 하나를 썼다. (나의 모성가정폭력 탈출기) (*글리프에는 올해 3월 재업로드함)

해당 글은 거짓 없는 솔직한 심경으로 썼지만 내용의 맥락이나 상황을 고려하여 일부러 언급하지 않은 존재가 있다. 우리 집에서 십 년 넙게 키워온 강아지 쭈쭈다. 당시에는 강아지에 대한 생각이나 마음을 적으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흐려질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고, 언젠가 이 존재에 대한 모든 것을 정리하여 적을 기회가 있으리라 여겼다.

언젠가는 오늘이 되었다.

이제 적을 수 밖에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어머니는 강아지를 키워선 안 될 보호자의 가장 적절한 예시였다. 자신의 불운과 그에 따른 부정적인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서 자식들에게 내던지던 그 사람은 강아지가 상대라고 해서 자신이 화를 참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강아지에게도 똑같이 불합리한 태도를 취했고, 그 불합리함 때문에 강아지가 짖거나 으르렁대면 감히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낸다며 가차없이 체벌했다. 인간 대 인간의 체벌이라도 이해가 가지 않는데 강아지에게는 그 변덕스런 태도가 얼마나 기이하게 느껴졌을까.

이 강아지를 데려온 것도 이 아이 전에 기르던 강아지가 강아지별로 떠나니 자신이 허전해서 견딜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먼저 키웠던 아이도 두 번째로 키운 아이도 둘 다 이름이 똑같은 ‘쭈쭈’가 되었다. 당시 나는 똑같인 품종의 강아지를 데려와 먼저 떠난 아이와 이름을 똑같이 짓는 것에 대해 반대했지만 매우 당연하게도 어머니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초에 데려와선 안 된다는 오빠의 말도 있었지만 당연히 무시되었다.

결국 손바닥마냥 작고 하얀 강아지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이제 막 부드러운 사료를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시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집에 가장 오래 있던 것은 나였기에 물과 밥을 챙겨주고 돌보는 것은 나였다. 정말 귀여운 강아지였지만 서먹서먹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이미 떠나버린 강아지도 솔직히 사랑으로만 키운 게 아닌데, 까놓고 말하자면 걔도 우리 집에 와서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하다 떠난건데, 우리 집보다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한 집으로 가는 게 얘한테도 좋을텐데…. 하지만 어머니는 자신이 정한 일에 대한 반론은 인정하지 않았고 나는 한숨만 쉬며 사료를 물에 불리거나 물그릇을 갈아주었다. 배변 훈련은 어떻게 시키는지 감도 잡지 못해서 제대로 했는지 어떤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얼마간 그러다보니 강아지는 몰라보게 쑥쑥 자라서 작은 다리로 집안을 오종종 돌아다니거나 나름 강아지스럽게 (그러나 여전히 어린 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짖을 줄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은 방에 있다가 강아지가 어디 있나 싶어서 나와봤더니 안방쪽에서 부모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마 부모님이 강아지와 같이 장난을 치면서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쪽으로 걸어가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내 쪽을 등지고 있던 강아지가 문득 나를 바라보았다.

“왕(앙)!”하고 짖고는 졸졸졸 내쪽으로 달려왔다.

이럴수가. 얘가 나를 완전 가족처럼 여기고 있잖아.

우연일지도 모르고 단순히 너무 신난 와중에 나온 반응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면서 강아지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때부터 ‘쭈쭈가 떠났다고 엄마가 냅다 데려온 말티즈 강아지’는 나의 두 번째 ‘쭈쭈’가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이후로는 내가 금이야 옥이야 쭈쭈를 키우고 교육시키면서 챙겨주었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내가 해준 건 밥을 주고 물을 주고 배변 패드를 갈아주고 때가 되면 씻겨주는 정도의 일이고, 산책이나 노즈 워크, 장난감으로 놀아주기 같은 일들은 생각이 나면 해주거나 거의 해주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미 한 번 십 년 가까이 개를 키워본 자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만행이다.

그 외에 해준 것이라면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음식을 훔쳐가는 등 말썽을 부리면 베란다에 두고 혼을 내거나, 조증이 된 엄마가 불합리한 이유로 격양되어 쭈쭈를 마구 때리려 들었을 때 내가 그걸 가로막거나 대신 맞은 정도일까.

하여간 쭈쭈가 잘못을 저지르면 귀신같이 화내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러면서도 남몰래 생각하곤 했다. 쭈쭈는 분명 어머니 때문에 불안하기도 하고 무서울 테니까 내가 지켜주거나 달래줘야지. 아무 말도 못해서 서러울지도 모르니까 잘 안아줘야지. 계속 옆에 있어줘야지.

쭈쭈를 어머니에게서 지키기 위해 독립을 못했다거나 자취를 할 수 없었다는 변명은 아니다. (애초에 독립이 되지 못한 건 내가 취직이 되지 않아서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한 탓이다) 그보다는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죽음 이후의 사건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할 때에 영문도 모르고 어머니 앞에 오도카니 남겨질 쭈쭈를 생각하면서 어떤 충동을 견뎌내곤 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다시금 서두로 돌아가서, 겨우 어머니에게서 떨어져나왔을 무렵 나에게는 「본가에서 쭈쭈를 데리고 나와 둘이서만 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그러려면 1. 취직을 하고 돈을 모은 다음 2. 강아지와 함께 살 수 있는 방을 찾아야 했다. 당시 나는 어머니와 분리되는 게 시급했고 이후로 지방에서 취직할 지 수도권으로 올라가야할지도 고민중이었기에 냅다 자취방에 강아지를 데리고 올 순 없었다. (애초에 금지되어 있었음) 그리고 강아지를 데리고 병원에 다닐 때의 의료비나 사료값 등등을 취준생인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했다. 그래서 나는 취직이 되고 재정 상황이 좀 더 안정되면 반려동물이 가능한 방을 찾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올해 1월, 겨우 이사를 하고 쭈쭈를 본가에서 데려왔다.

난생 처음 보는 공간에 와서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던 쭈쭈는 어디에 볼일을 봐야 할지 알 수 없었는지 원룸 중앙에 실례를 했다. 나는 집에서 받아온 배변 패드로 그걸 전부 흡수시킨 다음 화장실에 가져다 두고 괜찮아 괜찮아~하며 쭈쭈를 쓰다듬어 주었다. 집에서는 어머니가 자꾸 배변 패드 위치를 바꿔서 혼란스러워하던 쭈쭈는 내가 그렇게 쓰다듬어준 뒤로 절대 배변 실수를 하지 않았다.

복실복실 귀여운 내 동생.

식탐 굉장한 내 동생.

(대체 세상 어느 말티즈가 비닐팩 쌀 포장을 뜯고 쌀을 훔쳐먹니)

말도 잘 듣고 똑똑한 내 동생.

이제 무섭게 화내는 사람도 없으니까 누나랑 같이 산책 잔뜩 하면서 맘 편히 지내자.

같은 해 5월, 동물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았을 무렵 쭈쭈의 심장이 심각하게 좋지 않다는 소견을 받았다. 지어준 약을 먹고 심장에 좋은 사료로 바꿔야하는 건 물론이고 앞으로 일절 산책을 시켜선 안된다고 했다. “나이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잘못하면 산책한다고 흥분해서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 바람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너무 무서워서 쭈쭈를 안아들고 돌아온 뒤에 울적한 기분으로 앉아있었다. 이제 맘껏 산책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산책 자체를 하면 안된다고?

그래도 약을 열심히 먹고 산책처럼 흥분할 일을 줄인 덕인지 8월에는 심장의 불균형한 모양이 제법 안정되었고 다른 수치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앞으로 밥이랑 약 잘 먹고 체중 조절만 잘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이 얼마나 기쁘고 좋았는지.

쭈쭈는 추석 연휴가 끝난 9월 20일에 갑자기 강아지별로 떠났다. 목요일 새벽부터 기침을 심하게 해서 병원에 데려갈까 하다가 내가 안아서 달래주니 조금 잦아든 것 같아 주말에 가자고 미루다가, 금요일에 근무하면서 그래도 역시 걱정되니까 어제 알아본 다른 병원에라도 가보자, 하고 문을 열고 들어오니 가만히 쓰러진 채 떠나있었다. 기겁을 하면서 안아드니 팔다리는 이미 경직되어 차갑고 혀는 삐죽 튀어나와 파란 빛을 띄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울었고, 소리 질렀고, 믿을 수가 없어서 몇 번이고 쭈쭈의 이름을 불렀다. 어제 병원으로 걸어갈 수 있었는데, 괜찮을 거라고 멋대로 믿는 바람에 쭈쭈가 죽었어. 혼자서 계속 기침하고 괴로워하다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쓸쓸하게 떠나버렸어.

삼십 분 정도를 그러다가 도무지 믿을 수 없어서 쭈쭈를 살짝 눕히고 귀를 대보았다.

작게 심장 고동소리가 들렸다.

살아있어. 나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 살아있는거야. 내가 빨리 병원에 데려가야 해.

얼른 데려가면 괜찮을 거야. 이렇게 운다고 너무 시간 낭비했어 빨리 가야 해.

그 무렵 소식을 듣고 달려온 부모님의 차로 동물병원에 달려갔다. 하지만 그건 쭈쭈의 고동소리가 아니라 내 귀에서 들리는 내 고동소리를 착각한 거였고, 쭈쭈는 이미 사후경직이 진행되어서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었다. 수의사를 선고를 들은 나는 깨끗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병원로비에서 절망했다. 딱 하루, 딱 하루만 먼저 이 병원에 올 생각을 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여기로 오기만 하면 됐는데 멍청한 자식이 대체 뭘 생각한 거야. 내가 안아주니까 괜찮아졌다고? 이 동물 의료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빌어먹을 년이….

추석이 오기 전에 깨끗하게 목욕을 시켜주어서 쭈쭈의 몸에서는 귀엽고 따스한 냄새가 났고 미용을 한 지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 자라난 털도 복슬복슬하고 모든 감촉과 냄새가 어제랑 똑같은데 내 강아지는 죽어버렸다. 내 동생을, 무서운 엄마에게서 떼어내어 이제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게 해주겠다고 맹세했는데 전부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거진 12년. 약 4380일에서 17분의 1 정도인 250일밖에 지내지 못했는데. 적어도 다음달의 내 생일은 처음으로 둘이서만 자정을 맞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년에 쭈쭈를 데려온 기념일이 되면 다른 집처럼 쭈쭈 생일을 챙겨볼까 상상했는데.

장례식을 하고 돌아오는 내내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동글동글 귀엽던 내 동생은 작은 유골함이 되었다.

쭈쭈를 늘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이 지옥같은 집에 떨어진 강아지를 하다못해 편들어주는 사람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취를 하게 되면서 그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독립을 하고 데려왔을 때에는 이제야 자신이 정말로 쭈쭈의 가족이 된 것 같아서 기뻤다. 나를 본 강아지가 기쁘게 짖던 순간에 느낀 감정을, 그때부터 이어진 일들을 이제 돌려줘야한다고 생각했다. 마음껏 장난치고 마음껏 먹고, 불합리한 일로 혼나거나 맞지 않고 오롯이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그리고 쭈쭈가 멀리 떠난 이제야 알아차린다. 사실은 내가 쭈쭈를 지킨게 아니라 쭈쭈가 나를 지켜주고 있었던 거구나. 죽음을 생각하고 때로는 허무를 따라가고 싶었을 때 작은 내 동생이 나에게 하염없이 부어준 사랑과 믿음이 나를 계속 여기에 남아있게 했던 거구나. 고마워, 너무 고마워. 누나도 쭈쭈를 사랑해. 내가 너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쭈쭈도 내 사랑을 의심하지 않아줄 거지. 우리가 함께 있었던 시간이 너무 멋지고 좋았다고 여겨줄 거지. 야 근데 우리 솔직히 산책도 하지 않게 된 사이 치고는 여기서 꽤나 재미나게 지냈다 그치?

사랑하는 내 동생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어도 주말이 끝나면 출근해야한다. 주인이 없는 사료와 샴푸와 간식과 목줄도 정리해야한다. 분명 다른 강아지에게,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으며 떠나보내야 한다. 사실 진짜로 힘든 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보다 강아지가 자꾸 툭툭 건드리고 찢으려 해서 묶자마자 버려야했던 종량제 봉투를 하루쯤 현관에 나둬도 아무 문제 없다는 걸 깨달을 때다. 쭈쭈가 사라졌는데 그 부재로 인해 내가 무언가를 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이해하는 기분이라니.

그래도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정신의학과 약을 챙겨먹고(물론 용량이 늘었다), 유골함 옆 디지털 액자에 떠오르는 쭈쭈의 얼굴을 보고 귀여워! 나 예뻐! 를 말해주다가 침묵하고, 그딴 선택을 내린 나를 저주하고, 그래도 우리가 서로를 좋아한건 사실이지 같은 생각을 하다가 귀여운 강아지를 떠올린다. 강아지는 강변길을 신나게 달려간다. 꼬리를 번쩍 세우고 하얗고 복실한 털을 햇빛으로 받아내며 반짝반짝하게 빛난다. 천국인가 어딘가를 향하는 강아지는 너무너무 신이 나고 아마도 강아지가 제일 좋아하는 누구는 그 뒤에서 강아지를 천천히 따라갈 것이다. (그리고 이미 앞서 가있던 또 다른 강아지는 어딘가에서 이제야 오냐는 듯 쳐다보겠지)

언제 어떤 때라도 사랑이 있으면 환히 웃어주었던 강아지.

먼저 떠나버렸고 제대로 사랑해주지 못했던 어른스런 강아지.

너희 덕분에 너무너무 행복했어.

잔뜩 사랑해줘서 고마워. 다른 어딘가에서도 그만큼 사랑받기를.

끝.

여담)

사실 쭈쭈가 꿈에 한 번이라도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근데 며칠 전 꿈꿨을 때 꿈에 쭈쭈가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이름만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영 기억이…

쭈쭈 보고 맨날 바보 강아지~ 바보바보~ ㅋㅋ~ 이랬는데 진짜 바보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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