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이여, 노래하소서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노래하소서

*[블라인드 - 황금사과]의 2차 창작물로, 공식과 무관합니다.


아현은 조롱 섞인 웃음을 던지며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머리가 멍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의자에 기대 있었다. 모든 진실이 너무도 가혹하게 들어왔다.

역겹다. 역겹기 짝이 없구나.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은 악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모자랄 지경이었다.

수현, 라더, 덕개, 공룡, 잠뜰, 수희. 그리고 아현. 얽혀있는 우리의 모든 관계가 혐오스러웠다. 아, 그깟 욕심 탓에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죽었구나.

차마 그들을 가만히 둘 수 없다.

인간 답지도 않은 너희가, 과연 살 가치가 있을까?

완벽한 계획은 스스로 세워졌다. 미끼가 되어줄 신화 속 무대.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금빛 사과. 이젠 그들에게 어울리는 마지막을 만들어 줄 차례였다. 한때 전지전능하다 불리던 신들의 최후.

한낱 알량한 말 때문에 나를 배신한 수희. 네가 사랑하던 모든 사람들이 사라진 세상 속에서, 네가 살아갈 수 있을까?

이젠 어떻게 되든 상관 없었다. 잃을 것도 없다. 황금 사과를 두고 주인을 논하던 이들은 곧 죗값을 치르게 될 터이니.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광기 어린 나직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세준아.

악인들의 황금 사과여.

고작 전리품 취급을 받아야만 했던 나의 친구여.

천사의 탈을 쓴 가증스러운 악마들이여, 그대들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하지. 마지막이 될 당신들만의 성대한 무대.

아킬레우스는 신화 속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작은 허술함에 의해 끝내 목숨을 잃은 그의 불행한 운명을.

끝나지 않을 황홀한 교향곡이 울려 퍼진다. 아, 어쩌면 떠나는 이를 향한 장송곡일지도 모른다. 참담한 비극이자 완벽한 승리를 다룬 극의 막이 내려가고 있었다.

"그럼 다들, 지옥에서 보자고?"

여신이여,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노래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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