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방안에서 두 명의 남자가 의미 없는 대화를 하고 있다. 한명은 1990년대 사람이 입을법한 옷과 필기용 수첩을 가지고 있었고, 귀에는 특이하게 토끼 귀가 달려있었다. 또 사람의 모든 것을 안다는 듯한 호박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한 남자는 1×××년, 조선에서 입을 법한 진짜 같은, 그러나 너무나 사실적인
*[겨울신화]의 2차 창작물로, 공식과 무관합니다. 겨울 신. 당신은 그대의 최후를 알고 계셨는지요? 저는, 당신을 수천 년간 지켜봐 왔던 저는. 당신의 운명이 이토록 무정할 줄은 몰랐습니다. '겨울'이라는 이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정하던 당신이 인간에게 그리 잔인한 일을 벌일 것을 예상하지 못하였으며, 당신의 그러한 행동 또한 인간을 너무도 믿었기에
여로고등학교 정문 앞. 한 흑발의 남자가 누군가를 기다리듯 서 있다. 황금빛 눈동자는 기다리는 사람을 찾는 듯 부지런히 움직인다. 아니, 다시 보니 주변에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지는 않은 지 경계하는 눈빛이다. 눈가에 피곤함이 짙게 묻어있었다.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에 남자의 하얀 토끼 귀가 쫑긋했다. 고동색 자켓에 하얀 크라바트를 단정히 메고, 검은색
푸른색의 고급진 무늬로 장식된 벽에 붉은 융단이 깔린 방, 이곳은 에투알의 왕비 엘레나가 지내던 방이다. 그녀가 세상을 뜬 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방의 모습은 그녀가 떠난 그 날로부터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시간을 멈추어 둔 것 같은 그 방의 한 벽면에는, 벽 전부를 덮을 만큼 커다란 그림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갈색 머
누눙님 AU <DIE ALMOND > 3차 창작 https://nunungflo.postype.com/series/637897/die-almond 사람을 속이는 건 쉽다. 진심이라는 것은 웃음이라는 가면만으로도 손쉽게 가려지는 얄팍하고 보잘것없는 것이다. 속이는 상대가 어린 나이일수록 더욱 쉽다. 별거 아닌 조잡한 가면을 쓰더라도 상대는 고맙다며
다 함께 여행을 떠난 그 날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 이별을 장식할 졸업식 날이 왔다. 공룡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교실 문을 열었다. 언제나 교탁에서 저들을 맞이해주던 그들의 선생님은, 졸업식에 오지 못했다. 공룡은 빈 교탁에서 애써 시선을 돌리고 자리로 향했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그제야 공룡도 제 책상 위에
Special thanks to 파트너 그림러 하양(@__White1_)님 "기사님, 저희 여기서 내려요!" 눈 덮인 산 아래에 시골 마을버스 한 대가 멈췄다. 오래된 차의 문이 열리고 다섯 명의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저마다 한껏 기대에 부푼 듯 큼지막한 가방을 하나씩 손에 든 채였다. 시골 버스가 떠나며 내뿜은 매연으로 잠시 모두 콜록거리다
"내 이야기로 책을 썼다면서요?" "...왔어?" 희끗희끗한 머리의 노인이 꿈토끼의 방으로 들어왔다. 수현은 그녀의 방문에 조금 놀랐지만, 그저 미소 지어주었다. 흘러간 세월을 짐작하게 하는 주름진 손으로, 그녀는 책상 위에 놓여있던 책을 펼쳤다. "좋네, 이 다 늙은 할망구의 청춘이 담긴 책이라니. 이제 내 청춘은 이 안에서만 볼 수 있잖아요?"
황혼기 1. 해가 지고 어스름해지는 무렵. 2. 사람의 생애나 나라의 운명 등이 한창인 고비를 지나 쇠퇴하여 종말에 이른 때. 깊은 밤이다. 잠뜰의 집에 머물던 봄의 신 수현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중간에 잠이 깨어 잠시 밤공기라도 쐬고자 나온 것이다. 하얗게 눈이 쌓인 마당에 서서 그는 겨울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뱉은 숨이 찬 밤공기를 맞
인간에게 너무 정을 주지 마십시오. 사람은, 쉽게 죽으니까요. 날이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봄은 계절신의 전당에 앉아 지나가는 계절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붙잡으려 하지도 않고, 소중히 추억하려 하지도 않은 채, 단지 흘러가게 두었을 뿐이다.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려보니 겨울이 급히 전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품속엔 한 어린
"..그래서 이 문장을 해석해보면, '길을 잃었었던 그는,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길을 찾을 수 있었다.'란다. 주의해야 할 문법은..." 녹음이 짙어가는 여름. 여로 고등학교 1학년 1반에선 영어 수업이 한창이다. 붉은 색 펜으로 중요하다고 별표 표시를 하던 잠뜰은, 조금 어두운 표정으로 방금 수현이 해석한 문장을 다시 읽어 보았다. "자, 그럼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