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지는 시간, 붉은빛으로 물든 바다 위에 거대한 배가 한 척 떠있다. SP CRUISE라고 커다란 글씨로 적혀있는 배는 어떠한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웅장한 모습으로 항구에 정착해있었다. 내일 열릴 선상파티의 준비를 모두 마친 배의 관리자들은 일찍 쉬러 들어갔고, 항구에서 배로 오르는 길만을 극소수의 관리인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귀한 손님을
사람들이 오가는 모퉁이에 햇빛이 잘 드는 작은 찻집이 있다. 이 찻집은 입구에 커튼을 친 작은 여러 개의 방이 있었는데, 한 남자가 그중 한 방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이 남자의 푸른색 머리카락을 비추었다. 혼자 앉아 있는데도 차를 두 잔 주문하여 자신의 맞은편에 한 잔을 둔 것을 보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제법 고
회의가 끝나고, 다들 각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라더는 덕개의 호위를 받으며 이미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뒤였고, 각별은 최종 회의를 위해 서류를 정리해두겠다며 서재로 갔다. 레지스탕스의 대표 두 명과 혁명단원 잠뜰은 국왕이 마련해준 마차에 올라탔다. 준비할 것이 많았다. 앞으로 닥쳐올 변화의 파도에 상황이 바삐 돌아갈 것이리라. 공룡은 왕비의 방에서
"왕실을 대표하는 짐이 단두대에 올라가는 건 어떻소?" "…!!" 찻잔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왕자의 손에 들려있던 흰 도자기 찻잔이 대리석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고, 갈색 찻물이 바닥을 적셨다. 그런데도 아무도 그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돌아보지 못했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생글거리는 웃음을 짓고 있는 국왕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잠뜰의 불안
미궁 완결 후, 이야기가 시작된 계기 미궁이 끝난 후 작중 인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뒷이야기를 상상해서 적어보는 것이 이번 합작의 주제였습니다. 본 글은 미궁 완결 시점 이후, 잠뜰이 탈출하고 연구시설이 박살 난 후 프로젝트 유출의 위기를 느낀 미스틱에서, 이전 AI core 정보 제공자들을 불러들여 계약서 내용을 모두 기억에서 도려냈을 거라는 추
-싱크홀 사건으로 무마...행방 모호.... -...정보누설 가능성은 적어.... 기억 조작은.... -...검증 필요...추가 확인 요망.... -그렇다면 D를- 안녕하세요, 덕개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Duckgae라고 써요. 아, 요즘 취업할 땐 영어이름이 꼭 있어야 한다더라고요. 현재 취업이 고민인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몇 달 전 조금 이상
각별의 집에는 오래된 장롱이 하나 있다. 그의 할아버지가 아끼던 장롱은 오래된 만큼 아귀가 다 맞지 않았고, 그랬기에 다 닫히지 않아 좁은 틈이 있었다. 언젠가 고쳐야지 생각은 했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았기에 그 장롱은 오랫동안 그렇게 아귀가 맞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그 장롱을 진작 고쳤어야 했는데. '각별아, 여기 꼭 숨어 있거라. 할아버지가 나가보
쉘터에 머물던 사람들은, 수현이 가져온 물건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수현이 가져온 것은 한 때 이 쉘터에서 머물던 덕개의 기타였기 때문이다. 수현이 자신이 간 곳에 덕개의 사진도 있었다고 말했을 때, 잠뜰이 입을 열었다. "사진은 안 가져온 거야?" 잠뜰은 득개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전쟁 중에 헤어진 동생을 추억할 물건 정도 챙겨
만약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상상하면 행복해지지만, 그럴 리 없다는 걸 알기에 더욱 잔인해지는 가정이죠. 하늘이 맑은 날이었다. 백성들의 얼굴엔 모두 기쁜 미소가 걸려있었다. 경사스러운 날이라며 집마다 국기가 게양되고, 잔뜩 뿌려진 꽃잎이 거리를 뒤덮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라더는 분위기에 덩달아 들뜬 마음이 되었다. 옆에 서 있는
우린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물속이니까 첫 호흡도 마지막 숨도 우릴 둘러싼 물에 녹아있고 떠나간 이를 그리며 흘린 눈물도 물속에 담겨있기에 이 물이야말로 우리의 삶이 녹아있는 것이리라 수면 아래로 수 백 미터나 되는 깊이에 있는 곳인데도, 신기하게 용궁은 햇빛이 잘 들어오는 곳이었다. 물결칠 때마다 용궁의 건물을 비추는 햇빛이 춤을 추듯 흔들렸는데,
"아, 또 저 소리..." 눈이 내리는 호두나무 숲의 한쪽에 있는 작은 나무 오두막. 그곳엔 호두까기 인형 덕개와, 언제부터 이 숲에 산건지 알 수 없는 요정 필립이 차와 함께 호두를 즐기고 있었다. 조용한 그들의 휴식을 방해한 건 누가 들어도 홀릴 만한 감미로운 노랫소리였다. 공방주인이 항상 찬향하듯, 신의 목소리와 같이 아름다운 노랫소리지만, 호두까기
부모님이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폭죽을 펑- 하고 터트리는 순간, 내 세상은 마치 신기루였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그저 평범한 시골아이였다. 얼굴과 옷에는 흙이 사라지는 일이 없었고, 나비를 쫓아 들판을 뛰놀던 그런 평범한 소년. 그리고 그날은 내 다섯번째 생일이었다. 평소처럼 들을 헤집고 개울을 따라 걷다 해가 산에 걸릴 때가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