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팁 전력

진혼곡

뜰팁 전력 '악기' | Brahms' Lull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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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터에 머물던 사람들은, 수현이 가져온 물건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수현이 가져온 것은 한 때 이 쉘터에서 머물던 덕개의 기타였기 때문이다. 수현이 자신이 간 곳에 덕개의 사진도 있었다고 말했을 때, 잠뜰이 입을 열었다.

"사진은 안 가져온 거야?"

잠뜰은 득개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전쟁 중에 헤어진 동생을 추억할 물건 정도 챙겨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는 의미였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현은 냉정하게 말했다.

"가져왔어야 하는 거야? 가방 공간만 차지해서 안 가져왔어."

쉘터의 사람들 사이에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그럴 거면 괴로운 기억 안 떠올리게 아예 기타도 가지고 오지 말던가, 그 말이 잠뜰의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죽은 놈은 죽은 놈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정적을 깬 건 득개였다. 잠뜰은 그 말에 놀라 득개를 쳐다보았다. 득개의 얼굴은 친형제를 생각하며 말하고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다.

"굳이 가져와서 무슨 의미가 있어."

"..."

쉘터 사람들은 한동안 조용하다, 그 말이 맞다며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 중이다. 죽은 자는 마음속에 묻고, 산 자는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야 했다. 그게 현실이었다. 현실인데, 그런데도, 잠뜰은 평소 즐기던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 보다 입안이 썼다.

때마침 라디오에서 소리가 들려, 화제는 그 쪽으로 집중되었다. 모두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라디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득개는, 수현이 벽에 기대어 세워 놓은 기타를 한 번 보더니, 다른 이들을 따라 라디오 소리를 들으러 갔다.


그날 밤은 득개가 보초를 섰다. 겨울밤은 춥고, 길었다. 적들도 이런 날엔 활동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몇시간 째 아무도 오지 않았다. 조금 지루하다고 느낀 득개는, 주변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쉘터 안에서 어떤 물건을 꺼내 들고 나왔다. 낮에 수현이 가지고 온 동생의 기타였다. 

득개는 눈이 덮인 쉘터의 앞마당에 앉아, 익숙한 손놀림으로 기타를 조율했다. 항상 그 녀석이 음을 잘 맞춰두었었는데, 사람 손을 안 탄 지 좀 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벌써 동생 녀석이 떠난 지 그렇게 시간이 지났나, 득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율을 마친 득개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현을 튕겨보았다. 동생만큼은 아니지만, 득개도 기타를 칠 줄은 알았다. 항상 해맑던 그 녀석이, 전쟁이 일어난 뒤 우울해 하는 날이 많아졌을 때, 득개가 기타를 가르쳐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우울한 생각은 하지 않게, 동생이 좋아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여 동생을 위로하고자 한 것이었다.

'잘하네, 형! 그럼 곡 하나 연주해볼까? 이건 어때?'

'너... 내 나이가 몇인데 자장가를 연주하라고 하는 거냐?'

'쉬운 거부터 시작하자 이거지~이다음에 더 어려운 거 알려줄게.'

그러나 득개가 그다음 곡을 배울 일은 없었다. 피난 중에 동생과 헤어졌고, 수소문 끝에 다시 찾은 동생은, 같이 사는 이들의 실수로 죽었다는 절망적인 사실로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득개는 기억을 더듬어 동생이 가르쳐준 대로 기타 현 위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겨울 밤공기로 차가워진 기타 현의 차가움이 손 끝에서 느껴졌다. 

'자장가 가사도 가르쳐 줄까?'

'솔직히 말해. 너 그냥 나 놀리고 싶은 거지?'

'하하, 너무 그러지 말고~내가 부를 테니까 따라 해봐, 알겠지?'

'그래... 너 마음대로 해라...'

'부른다! 잘 자라, 아이야. 너의 단잠은 축복이 될 것이니....'

"봄날의 나비들을 꿈꾸며

햇빛밝은 아침을 꿈꾸며

온밤 깨지 말고 자거라.

이제 널 놓아줄 테니 쉬거라."

노래를 부를 때 마다 내뱉는 숨이, 찬 겨울 공기를 만나 하얗게 서렸다. 기타는, 그 기타를 연주하던 동생을 닮아 맑은 소리가 났다. 그렇지만 이제 동생은, 그가 사랑하던 기타를 다시는 연주할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

"잘 자라, 아이야...."

차가운 겨울밤, 기타 소리에 맞춰 누군가가 부른 자장가가 울려 퍼졌다. 아니, 그것은 자장가가 아니었다. 떠난 이를 위해 부르는 진혼곡이었다. 가사 사이사이에 울음이 묻어있는, 그래서 긴 겨울밤을 더 애태우는 슬픈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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