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우리의 정의란 무엇인가 上

미스터리 수사반

"보고서 올리고 왔어요!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다."

"으아아~이게 얼마만의 정시 퇴근이냐!"

공룡의 기지개를 피는 소리가 들리는 곳, 이곳은 어느 평일 오후의 미스터리 수사반이다. 며칠 동안 연이어 일어난 사건들을 전부 해결하고 보고서까지 마무리한 지금, 그들에겐 정말 간만에 휴일이 찾아온 것이다. 다들 서로에게 수고했다며 퇴근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막내인 덕개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두 손을 치며 말했다.

"아 맞다, 선배님들! 내일 일정 없으시죠?"

"특별히 없긴 한데…. 왜 그러나, 덕 경장."

"저희 예전에 겨울 산장 살인 사건 때 잡은 범인이요, 내일 그 사건 법정에서 1심 판결 난대요."

서류철을 정리하던 잠뜰의 손이 잠시 멈췄다. 잠뜰 뿐만 아니었다. 겉옷을 챙기던 각별도, 가방을 챙기던 수현도 덕개의 말에 잠시 하던 일을 멈추었다. 반면 라더와 공룡은 흥미로운 소식을 들었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아, 그 우리 개고생했던 사건 말하는 거지? 눈 오는 날 며칠씩 잠복하고, 산에서 넘어져서 구르고 했던 거."

"범인 놈도 쓰레기였었고… 체포할 때 몇 대 더 팼어야 하는 건데."

"라더 경장님이 패는 거면 전치 몇 주 정도로는 안 될 텐데요."

"하여튼!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잡은 놈 마지막은 보러 가야 하지 않겠어요? 여쭤 봤는데 여섯 명 전부 방청할 수 있게 해준다 하셨어요. 다 같이 가요, 네?"

"그래, 금쪽같은 휴일이어도 그 녀석 재판은 보러 가야지."

라더와 공룡은 흔쾌히 가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덕개는 경사님들과 경위님은 어떻게 하실 거냐며 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마 그는 그들 역시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길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멋쩍게 웃는 수현의 웃음뿐이었다.

"…수 경사, 분명 그 재판 맡은 판사가…."

"…경위님이 아시는, 유 판사 맞습니다."

"…하…."

잠뜰은 제 이마를 짚었다. 경장들은 그런 경위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수현이 상황을 대충이라도 설명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을 때였다.

"경장들, 그 재판은…."

"방청하는 것도 괜찮겠네. 잘 알아왔어, 덕 경장."

각별이 수현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각별의 칭찬에 덕개는 기분이 좋아진 듯 씩 웃었으나, 수현은 그처럼 밝게 웃을 수 없었다.

"각별 경사님."

"사법부의 판결을 직접 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 안 그렇습니까, 경위님?"

"…."

잠뜰은 말없이 각별을 바라보았고, 각별 역시 그녀를 마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엔 무언가의 고집이 담겨있었다. 한동안 시선을 교환하다, 먼저 눈을 피한 건 잠뜰이었다.

"…그래, 다 같이 가는 거로 하지."

"경위님!"

"내일 법정에서 만나도록 하지. 경장들은 먼저 퇴근하게. 경사들은 잠깐 남고."

미스터리 수사반의 경장들은 그들의 선배들의 알 수 없는 대화에 조금 의아해했으나, 어찌 됐든 재판에 다 같이 가는 걸 잠뜰이 허락하여 들뜬 것 같았다. 문을 나가며 내일 뵙겠습니다 라며 우렁차게 인사하며 그들이 떠났다. 닫힌 문 뒤로 누군가가 정의는 승리한다고 기쁘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그 목소리에, 수현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경위님, 진심이세요?"

경장들이 떠나자마자 수현이 잠뜰에게 물은 말이었다. 그는 아직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침묵하는 잠뜰 대신 답을 한 건 각별이었다.

"알 때도 됐어. 그리고 경장들이 어린애들도 아니고, 어느 정도 알고 있긴 하겠지."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받아들여지는 정도에 큰 차이가 있어요. 어차피 모레 정도면 재판 결과가 저희한테 서면으로 보고될 텐데, 굳이 방청하면서까지 그 장면을 직접 경장들에게 보여줘야 할까요?"

"언제까지고 정의라는 꽃밭에서만 놀게 할 수는 없잖아. 우리가 해결하는 문제들은 전부 현실에 있고, 우리가 싸우는 곳도 현실이야."

"저도 경장들이 이상만 좇길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저…."

수현은 다음 말을 잇기 위해서, 잠시 숨을 골랐다. 그는 그저, 단지.

"이 일로 인해 경장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에 회의감을 느껴서, 크게 좌절할까 봐…. 그게 걱정스러운 것뿐이에요. 그도 그럴게, 유 판사는…."

이어지는 수현의 말은, 때마침 근처를 지나가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에 묻혀버렸다. 그러나 각별과 잠뜰에게는 전해지기 충분한 크기의 소리였다. 경찰차가 지나가고, 수사반 안에는 고요만이 남았다. 각별은 수현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각 경사도, 수 경사도 이 일에 제법 오래 일했지. 그 와중에 겪은 일도 많았고."

긴 침묵을 깬 건 잠뜰이었다. 그녀의 표정엔 언제나와 같은 냉정함과 침착함이 옅게 깔려 있었다.

"너희 둘은 이겨냈잖냐. 우리 경장들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만약 그들이 이겨내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겠다고 해도… 내가 막을 권한은 없겠지. 그들이 이 일과 맞지 않는다는 거니까."

"…."

"그런 거로 무너질 정도로 마음이 여린 사람이면 빨리 이 일 접고 다른 길 가는 게 더 나을 거야. 비꼬는 게 아니라, 그들이 더 상처받지 않는 걸 원해서 그런 거야."

수현은 잠뜰의 말을 잠자코 듣다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터리 수사반의 경사 둘은 각자 경위에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수사실에는 잠뜰 경위 혼자만 남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서류철에서 덕개가 말했던 재판과 관련된 법정 자료를 꺼내었다. 그녀의 눈이 담당 판사의 이름을 읽을 때, 그녀의 손에 의해 자료 종이가 구겨졌다. 


재판 당일. 수현은 개정 시간보다 조금 일찍 법원으로 왔다. 팀원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간밤에 잠을 설치느라 괜히 일찍 일어난 자기 탓을 하며, 수현은 그들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수현 형사님 아니십니까?"

"아, 사장님…. 재판 방청하러 오신 건가요?"

"하하, 예. 부인과 함께 왔습니다."

수현에게 인사를 건넨 그는 이번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였다. 예순이 훌쩍 넘어 흰머리가 성성한 그들 부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목이 쉬어 더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만큼 울고 있었다. 노부부 둘이 그 먼 산장에서 법원까지 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오로지 당신들의 아들을 해친 자의 끝을 보기 위해 이 먼 길을 왔을 거라는 생각이 수현의 마음을 미어지게 했다. 피해자의 아버지가 그의 부인에게 손짓하자, 그녀는 반가운 얼굴을 하며 다가와 수현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형사님, 감사합니다…."

"사모님?"

"형사님 덕분에, 우리 아들을 죽인 자가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형사님들이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 죽을 때까지 편히 눈감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 아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수현의 손을 잡은 노인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그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수현은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평범한 재판이었다면 걱정하지 말라고, 정의는 승리할 거라며 그들의 감사에 웃으며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재판을 맡은 판사는.

"…별말씀을요,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수현은 법정 안으로 들어가는 노부부를 웃으며 배웅했다. 그들의 대화를 분석했을 때, 그 대답이 가장 그들에게 이상적이고 좋은 방법이었을 테니.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진실을 말해주는 것은 적절한 반응이 아니었을 테니.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잖아. 이번엔 다를 수도 있고, 그러니까….'

수현은 그 노부부에게 시선을 돌렸다. 애써 핑계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번엔 다를 거라는 희망찬 생각을 믿고 싶었다. 복도 끝에서 저를 보며 밝은 표정으로 달려오는 경장들을 봐서라도, 이번에는 다른 결말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랐다. 수현은 슬쩍 웃으며 그들과 함께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검거한 범죄자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릴 재판이, 시작된다.


"각별 경사님, 경사님!"

"아…. 내가 졸았나."

"아무리 재판이 지루하다 해도 졸면 어떡해요! 이제 곧 판결 나온대요."

덕개가 옆자리에 앉은 각별에게 작은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생각보다 길어진 재판 때문인지 아니면 전날 일이 많았던 건지, 각별은 재판 중반부터 졸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각별은 작은 목소리로 덕개에게 되물었다.

"너는 처음부터 계속 다 듣고 있었냐?"

"그럼요! 법률 용어가 어려워서 이해는 다 못했지만…."

"그러냐."

각별은 작게 하품을 하더니 옆의 덕개를 바라보았다. 덕개는 곧 최종 판결을 내릴 판사를 기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각별은, 곧 조용한 목소리로 덕개를 불렀다.

"덕 경장."

"네, 각별 경사님."

"이번 재판… 너무 기대하지는 마."

"예? 왜요? 증거도 확실하고 죄도 무겁잖아요. 당연히 십 년형은 나오지 않겠어요?"

"…세상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일만 일어나는 게 아니니까."

"그게 무슨…."

그러나 곧 최종 판결을 내리겠다는 소리에 덕개는 물음을 끝내지 못했다. 각별의 말에도 덕개는 그저 약간 의아했을 뿐, 이 재판의 결과에 대해선 중형이 나올 것이라고 한 치 의심도 없이 믿고 있었다. 이번 사건은 그들 수사반이 모든 증거를 모았고 살인 사건인 데다 범인이 도주까지 시도했기에, 법상으로는 꽤 중형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판결문을 끝까지 들었을 때, 덕개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부터 1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땅, 땅, 땅. 판사의 손에 들린 재판봉이 느리게 움직여, 법원 내에 차가운 소리를 울리며, 재판의 결과를 선고하였다. 재판 결과에 어안이 벙벙한 자들에게 마치 그들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듯, 판사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재판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며 떠났다.

"…왜? 어째서…?"

떨리는 목소리. 덕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방금까지 판사가 앉아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라더와 공룡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형벌이 가볍게 나온다 하더라도 집행유예가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경장들과 달리, 미스터리 수사반의 다른 셋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저 어둡고, 체념을 아는 자들의 표정이었다. 마치,

"…결국, 이번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알았다는 듯이.

"이 일로 인해 경장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에 회의감을 느껴서, 크게 좌절할까 봐…. 그게 걱정스러운 것뿐이에요. 그도 그럴게, 유 판사는…."

"돈만 갖다 바치면 어떻게든 집행유예 내려주는 거로 이 바닥에서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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