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레부
입김이 새하얗게 나오는 겨울,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겨울 하늘 아래로 아스팔트 도로가 길게 뻗어 있다. 가는 길은 하나, 오는 길도 하나.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직선의 두 도로가 서로 옆에 붙어 만들어진 이차선 도로. 도로 위 자동차에서 창문을 내리면, 시선 저 끝 멀리 바다가 보이는 도로다. 길게 뻗은 길 위로 하얀 차 한 대가 달려가고 있다
빗방울이 우산에 투둑 떨어진다. 각별은 검은 우산을 펴고 버스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작은 골목에 있는 곳이라 비가림막도 없었다. 전광판에 적혀있는 버스 예상 도착 시간은 십 사 분. 걸어서 십 오 분 거리인 곳이긴 하다만, 비가 많이 오니 각별은 버스를 기다리는 것을 택했다. 십 사 분 동안 각별은 빗방울이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에 귀를 기
검정으로 도시를 물들이는 어두운 밤이 찾아왔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생자들에게 안락한 잠을 선사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망자들에겐 밤이란 활동할 시간, 그들만을 위해 마련된 무대이다. 해광시의 소극장에 모여 사는 야괴들에게도 역시 그렇다.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건물 옥상에, 피리를 들고 있는 붉은 야괴가 서 있었다. 근심 어린 표정으로 그는 멍하게 허
엘레나, 나의 기억은 여전히 그 계절 속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당신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오전 회의를 마치고 그대를 만나고 싶었는데, 방에 없기에 궁인들에게 물었었어요. 그대가 몇 시간 전부터 도서관에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나는 그대에게 책갈피로 선물해주기 위해 만들어두었던 압화를 종이에 감싸 그대를 만나러 갔지요. 그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조건: 외국어와 외래어 없이, 잠뜰과 각별이 등장하는 조직물 작성하기 비가 내리는 차가운 밤이다.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들 하루의 불을 끄고 이제는 어둠에 들어가 휴식을 취할 시간이다. 주택가의 불이 하나둘씩 꺼지고, 밝게 빛나던 도시의 불빛은 다음날을 약속하며 사라진다. 모두 불을 끄고 쉬러 들어간 거리, 어느 가게만이 그
재판이 끝났다. 별다른 반전은 없었다. 피고인은 집행유예를 받고 법정을 떠났다. 미스터리 수사반의 네 명의 형사도 재판이 끝나자 법정을 나왔다. 공룡은 재판 결과를 듣자마자 확인할 것이 있다며 급히 떠났고, 각별은 그런 공룡이 불안하다며 따라 나갔다. 남은 네 명의 형사들은 그저 조용히 그곳을 나왔다. "오늘 수고 많았어. 다들 내일 보도록 하지."
"보고서 올리고 왔어요!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다." "으아아~이게 얼마만의 정시 퇴근이냐!" 공룡의 기지개를 피는 소리가 들리는 곳, 이곳은 어느 평일 오후의 미스터리 수사반이다. 며칠 동안 연이어 일어난 사건들을 전부 해결하고 보고서까지 마무리한 지금, 그들에겐 정말 간만에 휴일이 찾아온 것이다. 다들 서로에게 수고했다며 퇴근을 준비하고 있
누눙님 AU <DIE ALMOND > 3차 창작 https://nunungflo.postype.com/series/637897/die-almond 사람을 속이는 건 쉽다. 진심이라는 것은 웃음이라는 가면만으로도 손쉽게 가려지는 얄팍하고 보잘것없는 것이다. 속이는 상대가 어린 나이일수록 더욱 쉽다. 별거 아닌 조잡한 가면을 쓰더라도 상대는 고맙다며
여우 카페. 구미호 필립이 삼왕모의 명으로 인간계에 와서 차린 카페의 이름이었다. 이른 오전이었기에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잠뜰 씨는 조금 전에 나갔으니, 혼자 가게 준비나 할까. 오늘은 어떤 케이크를 먼저 구울지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바깥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가게 문 도어벨의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의뢰물품을 사무실에
인간에게 너무 정을 주지 마십시오. 사람은, 쉽게 죽으니까요. 날이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봄은 계절신의 전당에 앉아 지나가는 계절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붙잡으려 하지도 않고, 소중히 추억하려 하지도 않은 채, 단지 흘러가게 두었을 뿐이다.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려보니 겨울이 급히 전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품속엔 한 어린
흑색 발걸음이 백색 계단을 밟았다. 흑색 퀸의 검은 머리칼이 그가 계단을 밟을 때마다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의 호박색 눈은, 오직 단 한 사람을 찾고 있는 듯 집요한 빛을 띠었다. 그는 지금 백색 킹을 찾고 있었다. 왕국에서 지내던 이들을, 언젠가부터 내다 버릴 장기말 정도로만 여기는 왕을 죽이러 가고 있던 것이다. 스러져가는 왕국을 과거의 행복했던 그
"됐다! 다 죽였어!" "지긋지긋한 것들, 이제야 숨 좀 돌리겠네." 좀비들로부터 도망치던 잠뜰과 공룡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재정비를 하자며 길거리에 주저 앉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이 곳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의 소소한 삶을 살던 작은 도시였다. 그러나 이제는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살아있는 것은 잠뜰과 공룡 뿐, 그 외에는 분명 죽었
밤상어로 인해 동료들이 공격 받았던 그 날 밤, 달이 높이 뜬 바다에는 이제껏 본 적 없는 한 척의 배가 떠 있었다. 가벼운 탐사를 위해 가보았던 배에는, 사람이 아닌 초록색 괴물들만 가득했었다. 재빨리 배에서 내린 잠뜰은 낮에 탐사해야겠다고 생각했고, 태양이 머리 위에 뜬 지금 다시 그 배에 왔다. 잠뜰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배 위에 올라탔다. 어젯밤 갑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