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어둠 속의 기억

밤을 보는 눈

검정으로 도시를 물들이는 어두운 밤이 찾아왔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생자들에게 안락한 잠을 선사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망자들에겐 밤이란 활동할 시간, 그들만을 위해 마련된 무대이다. 해광시의 소극장에 모여 사는 야괴들에게도 역시 그렇다.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건물 옥상에, 피리를 들고 있는 붉은 야괴가 서 있었다. 근심 어린 표정으로 그는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였다. 걸음 소리가 이어 들리고, 보랏빛 야괴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형님, 이번에 바칠 아우들을 다 모아두고 왔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곧 그놈이 올 테니, 그때까지 쉬어라."

몽마는 피리를 들고 있는 야괴 곁으로 다가가 섰다. 그들이 밟고 있는 바닥 아래엔 커다란 무대가 있는 극장이 있었다. 지금 그곳에는 '그놈'에게 바칠, 그들의 동료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모여 있었다. 죄책감이 다시 일어 피리 야괴 하민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형님."

"너라면 좋겠느냐. 지금껏 바친 아우가 몇인데…. 대항 한번 할 힘도 없다는 것이 원통하구나."

몽마와 하민우 둘이 이 극장에서 같이 지낸 지도 벌써 몇 년이다. 그동안 그들은 서로를 형 동생이라 여기며 평화롭게 지내왔었다. 검정 일색의 야괴가 찾아오기 전까지 말이다.

그는 처음엔 흰 정장을 차려입은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간치고 꽤 괜찮은 영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단지 그뿐이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짐승 하나 해치지 못할 것 같은 사람 좋은 표정을 가지고, 그는 느긋한 걸음으로 강당으로 들어왔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몽마와 하민우는 그가 인간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극장에 발을 들여 길거리의 사람들에게 완전히 모습을 감춘 순간, 그는 새까만 검정으로 물든 야괴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먹잇감을 찾듯 번들거리는 붉은 눈이 저들에게 닿았을 때, 그 자리에 얼어붙듯 꼼짝할 수 없었다. 지금껏 누구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강한 영기였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숨쉬기 어려운 무거운 영기가 둘을 짓눌렀다. 대항하려는 순간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겨 소멸당할 것을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이었다. 

야괴는 야괴를 흡수함으로써 강해진다. 그가 무엇을 위해 이곳에 들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저희 둘을 사냥하는 것 보다, 가만히 서 있는 채로 야괴들을 흡수할 수 있는 것이 더 편하지 않겠습니까?'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하민우가 입을 열었다.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동료들을 팔아넘겼다. 말리려는 몽마의 고개를 억지로 숙이게 하여 빌었다. 자신에게는 하급 야괴들을 조정할 수 있는 힘이 있으니, 자신들을 살려주면 그들을 모아 당신 앞에 대령하겠다고 넙죽 엎드려 말했다. 

하민우의 제안에 검정 일색의 야괴가 웃었다. 마치 그걸 노리고 온 것만 같은 웃음이었다. 함정에 빠졌다고 느끼기엔 너무 늦었었다.

"후회되는구나. 그런 약속을 해서는 안 됐던 건데…."

"…형님, 제게 이 상황을 바꿀 묘책이 있습니다."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데도 괜히 한탄을 해보는 그에게, 몽마가 작게 속삭였다. 행여나 듣는 자가 있을까 싶은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하민우는 깜짝 놀라며 몽마를 돌아보았다. 

"뭐라고? 그, 그게 무엇이냐?"

"제가 예전에 형님의 꿈에 들어가 생전에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확인했던 일, 기억나십니까."

하민우는 기억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괴로 변질되기 전에 한때 해광시의 범혼이었던 그들은 생전의 기억 따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몽마는, 극히 일부이긴 했지만, 하민우의 기억을 되찾아주는 것에 성공했다. 해광시의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일인데, 어떻게 몽마는 그것이 가능했을지 줄곧 궁금했었다.

"죽은 이후 해광시의 주민이 된다면 생전의 기억이 지워지죠. 하지만 그 범혼의 무의식에 남아있는 것이 있을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해광의 주민이 된다 한들 말하는 법이나 걷는 법을 잊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것 또한 살면서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어느 시기에 배웠던 것인데 말이죠. 이는 해광의 관리자들이 사람이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들만을 의도적으로 지운다는 것입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기억을 잃는다면 모든 것을 잊는 게 맞을 텐데, 지금도 이렇게 우리는 말을 하고 손발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지 않은가. 부드러운 미성으로 몽마는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나 말하는 것과 걷는 법이 남아 있듯, 사람의 무의식에 여전히 남아있는 기억도 있을 겁니다. 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 혹은 죽어서도 지울 수 없는 마음속 응어리죠. 형님도 피리 부는 법을 망각하지 않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이 형님께서 죽기 직전에 맡은, 형님의 소중한 배역이자, 끝내 오르지 못한 무대에 대한 마음속 한이었기 때문입니다. 죽을 당시에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미련이 되어, 죽은 자로 하여금 쉽게 놓지 못하게 만들지요. 죽어서도 잊지 못하는 것, 오로지 꿈에서만 볼 수 있는 것,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망각되는 것. 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동시에 그 사람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그의 무의식에 잠들어 있고, 꿈의 귀신인 저는 꿈을 통해서 그걸 볼 수 있습니다.”

 

하민우가 죽을 당시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상대의 꿈에 들어갈 수 있는 그의 능력 덕분이었다. 해광의 최고위 관리자들에 의해 지워졌을 기억을, 몽마인 자신은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위험한 일이긴 했지만 몽마는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고, 무엇보다 공룡의 농락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더한 것도 할 수 있었다.

"제가 놈의 꿈에 들어가서 기억을 엿보고 오겠습니다. 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찾아내어 그것으로 놈을 협박하는 겁니다. 더는 우리의 아우들을 놈에게 바치지 않아도 됩니다. 형님, 저라면 할 수 있습니다."

하민우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너만 믿는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달도 뜨지 않은 어두운 밤 아래로 두 아괴의 눈이 빛났다.


몽마와 하민우는 극장 1열의 의자에 앉아 있는 공룡을 내려다보았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인채로, 그는 자고 있었다. 하급야괴들을 흡수한 후, 그들의 힘에 적응하기 위해 공룡은 이곳에서 약 한 시간 정도 잠을 자고 갔다. 평소에는 감히 쳐다볼 엄두조차 내지 않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것 같으면 바로 돌아와야 한다."

"네 형님, 다녀오겠습니다."

결의에 찬 몽마의 목소리가 극장 안에 작게 울렸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한 시간 뿐, 이 안에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 몽마의 몸이 보라색 안개로 흩어져 공룡의 영체로 스며들었다. 하민우는 초조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부디 이걸로, 녀석의 농간에 시달리는 것이 오늘로 끝이기를, 단지 간절히 그렇게 빌었다.


깜빡.

끝을 알 수 없이 넓은 공간 속에서, 몽마는 눈을 떴다. 옅은 보라색 안개로 흩어져 있던 그의 영기는 다시 모여 사람과 닮은 영체를 만들어냈다. 손끝 발끝에 감각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꿈속에 성공적으로 들어온 것을 확인한 몽마는, 몸을 가볍게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야, 이거."

몽마가 들어온 곳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꿈속, 가장 소중한 기억이나 끝내 이루지 못했던 소원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보통은 밝고 활기찬 것들이 형상화되어 조각난 파편으로 떠다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은 눈에 닿는 모든 것이 끝을 알 수 없는 검은색 어둠뿐이었다. 작은 형체조차도 없이 그저 무겁고 갑갑한 어둠에 질식될 것만 같았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이 어둠 속에 의식을 놓아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몽마는 정신을 잃지 않도록 집중하며 공룡의 꿈속을 돌아다녀 보았다. 무의식에 자리 잡는 것엔 생전의 소중한 기억과 미련도 있으나, 그만큼 가장 강렬하게 남는 것은 죽을 당시 가지고 있던 감정들이다. 갑갑하고 숨쉬기 어렵게 만드는 이 농도 짙은 어둠이,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그래도 이렇게까지 생전의 밝은 기억도 소망도 아무것도 없는 경우는 드물었다. 해광시에서 기억을 제거하는 방법이 바뀐 것인가? 아니면-

"-이놈에게 소중한 건 아무것도 없었던 건가?"

그때, 몽마의 눈에 무언가 띄었다. 온통 텅 빈 어둠뿐이었던 곳에서, 형체를 가진 유일한 것이었다. 적어도 소중하게 여기던 게 하나는 있나 보군,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몽마는 그 형체에 한 발짝 다가갔다. 그 순간, 발아래가 갑자기 검은 수렁으로 변하여 몽마를 끌어당겼다.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나자 수렁은 사라져있었다. 저 형체에 다가가려고 할 때만 생기는 것 같았다. 소중한 것을 보호하려는 무의식적인 반응인가? 하지만 그런 느낌과는 달랐다. 보호하려는 것보다는, 그 형체의 무언가를 생각하는 순간 무거운 감정에 짓눌려 저 아래로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경우는 자책이나 우울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여러 꿈을 들여다보았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꿈속에서 찾은 유일한 것이 이런 거라니, 협박할 거리가 될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거에 대한 정보라도 챙겨가야지 어쩌겠는가.

몽마는 수렁에 걸리지 않을 거리에서 실눈을 뜨고 형체 쪽을 바라보았다. 어둠에 눈이 익자 형체의 자세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것은, 저 모습은 분명…

"아우야!!"

콰앙!!!

몽마를 부르는 하민우의 목소리와 커다란 굉음이 거의 동시에 났다. 극장 전체를 흔들만큼 방대한 영기가 요동쳤다. 꿈의 공간이 무너져 내리며 몽마가 공룡의 무의식에서 강제로 튕겨 나왔다. 현세로 넘어온 몽마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파악도 못 할 만큼의 짧은 시간 사이에, 그의 몸이 강한 힘에 의해 허공으로 내던져져 극장의 벽에 내리쳐졌다.

"크헉!"

고통에 몽마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영체의 뼈가 여러 군데 부러진 것 같았다. 저를 부르는 하민우의 목소리도 귓가를 가득 메운 이명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간신히 숨을 몰아 내쉬며 뜬 눈앞에 보인 것은, 저의 목을 향해 내뻗는 손이었다.

"컥, 커허헉!"

"내 꿈속은 잘 즐겼나요?"

생긋, 달콤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공룡이 묻는다. 사람 좋게 웃고 있는 표정과 달리 그의 눈은 검붉은 빛으로 빛난다. 대답 따위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몽마의 목을 짓누르는 힘이 강해졌다. 도저히 몽마가 떨쳐낼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의 다듬어지지 않고 멋대로 발산되는 영기에서 그의 분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목을 짓누르는 손이 아니라, 그가 내뿜는 짙은 영기에 질식될 것 같았다.

"남의 머릿속을 멋대로 휘젓고 다니다니, 악취미네요."

"아우에게서 떨어져라!"

하민우가 공룡을 몽마에게서 떼어내려 달려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붉은 무언가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알 수 없는 것에 무참히 뜯겨 나간 하민우의 오른다리였다. 몽마의 목을 짓누르던 공룡의 오른손이 야괴화되어, 그의 검은 발톱이 하민우의 살갗을 뚫고 지나갔다. 경악으로 굳어버린 몽마의 표정과 달리, 공룡은 그저 차가운 무표정으로 그것을 무심히 바라볼 뿐이었다.

"끄아아아아악!"

"혀, 형님!!"

영체이기에 피 같은 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은 영체 전체의 영기의 균형을 흩트려 놓는다. 당장 안정화시키지 않으면 그대로 소멸할지도 모른다. 공룡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몽마는 곧장 하민우에게 달려가려 했으나, 공룡의 구두가 그의 등을 밟아 바닥에 무자비하게 내리꽂았다. 뼈가 두어 개 더 부러지는 소리를 뚫고, 분노 서린 그의 낮은 한숨 소리가 들린다. 그의 인간 모습이 일그러지고, 검은색 야괴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런, 꼴에 영체는 유지하고 싶나 봐요? 어차피 이미 죽었는데. 나한테 손댈 생각을 했으면, 그 정도 각오는 하셨어야지."

야괴화된 공룡의 목소리는 괴이한 울림을 내었다. 그 울림과, 한층 짙어진 그의 영기가 몽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흔들어 놓았다. 두려움에 몸을 떨며 몽마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공룡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첫날 마주했던, 붉은 눈의 검정 일색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것도 그때보다 몇 배나 더 위협적인 영기를 지닌.

"잔재주도 상대를 봐가면서 하는 거야, 벌레들아."

몸이 오싹 떨렸다. 소멸당할 거다. 이번에야말로 한 줌도 남기지 않고 소멸당할 것이다. 두려움이 몽마의 입을 막았다. 꿈속에 갇혀 있을 때보다도 호흡하기가 어려웠다. 무언가라도 해야 하는데 몸이 굳은 듯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때, 다리가 절단된 고통에서 정신을 차린 하민우가 공룡이 있는 쪽으로 기어왔다. 그러곤 덜덜 떨리는 몸으로 그의 발밑에 머리를 조아린다.

"살,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십시오!!"

"이미 죽었다니깐, 뭘 자꾸 살려 달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저희가, 저희가 주제넘게 굴었습니다. 그러니 제발…!"

붉은 두 눈이 몽마와 하민우를 내려다본다. 사냥감을 앞에 두고 어떻게 처리할지를 고민하는 듯한 눈이다. 혹은 아무 이유도 붙이지 않고 그저 짓밟을 수 있는 벌레를 내려다보는 눈이다. 그저 붉음, 지독하게도 새빨간 붉음이 가득하다. 

"내일부턴 바치는 야귀들 수를 두 배로 늘려놔. 그리고…"

한참의 침묵 후에, 공룡이 입을 열었다. 상황파악을 하고 조금은 진정했는지, 그는 야괴 모습을 거두고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영기는 확실히 이전보다 갈무리되어있었다. 하지만 눈빛엔 여전히 분노가 서려 있었다. 

"남은 한 다리라도 보존하고 싶으면, 처신 잘해."

하민우는 그렇게 하겠다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아직까진 그들이 공룡에게 쓸모가 있었나 보다. 이것에 감사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소멸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공룡은 더러운 것이 묻었다는 듯 오른손을 허공에 한 번 털고선 극장을 나섰다. 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 하민우는 다급하게 몽마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우야, 괜찮느냐!"

"형님, 다리가…."

"내 다리가 문제냐! 넌, 넌 방금 진짜로 소멸할 수도 있었단 말이다!"

하민우 못지않게 몽마 역시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아무리 야괴의 영체가 회복력이 빠르다 하더라도 뼈 여러 군데가 부러진 상황까지 한 번에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가뜩이나 꿈에서 억지로 내던져졌기에 영체가 불안정할 텐데 물리적 공격까지 당했으니, 하민우가 막지 않았다면 공룡의 영기에 이미 소멸하여 버렸을지도 모른다. 움직일 수 있게 도와줄 야귀 몇 명을 불러오겠다고 하민우가 피리를 들었을 때였다.

"형님, 저…봤어요. 저 자식의 약점… 가장 깊은 무의식에서 갈망하는 것을 봤어요."

하민우의 손이 멈췄다. 몽마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자신이 공룡의 꿈속에서 본 것에 대해 입을 열었다.

"어린…아이였어요. 얼굴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검은색 머리카락에 녹색 눈을 가진…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맹이였어요. 그것 말고는 온통 새까맣고, 불에 타듯… 매캐한 냄새가 났어요."

"…."

"만나면, 분명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형님, 이 녀석을 찾아서…."

"그만하자, 이제."

탄식과도 같이 내뱉어진 하민우의 목소리였다. 몽마는 놀란 눈을 크게 뜨고 하민우를 바라봤다. 이 고생을 한 이유가 뭔데 여기서 그만두자니?

"그렇지만 형님…!"

"방금 그 일을 겪고도 녀석을 상대하자는 말이 나오더냐! 너도 나도 소멸할 뻔했다. 겨우 살아났어. 이 이상은 안 된다. 우린 저자를 이길 수 없어."

몽마는 무어라 항변하려 했으나 이내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하민우의 말이 맞았다. 오늘만 해도 이리 짓밟혔는데, 그의 약점을 쥐었다고 말하자마자 바로 소멸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단지 원통할 뿐이었다. 힘이 없어 이런 식으로 그에게 고개 숙이고 동생들을 제물로 바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원통했다. 상황을 바꾸려는 시도가 무의미한 것이었고 오히려 악화시켰다는 것이 원통하고 또 원통했다. 침묵하는 몽마더러 쉬라며 등을 두드려주는 하민우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달도 뜨지 않아 어둠 속을 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 어느 흔한 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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