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비 오는 밤

레부 책갈피 by 레부
19
0
0

조건: 외국어와 외래어 없이, 잠뜰과 각별이 등장하는 조직물 작성하기

비가 내리는 차가운 밤이다.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들 하루의 불을 끄고 이제는 어둠에 들어가 휴식을 취할 시간이다. 주택가의 불이 하나둘씩 꺼지고, 밝게 빛나던 도시의 불빛은 다음날을 약속하며 사라진다.

모두 불을 끄고 쉬러 들어간 거리, 어느 가게만이 그 불빛을 유지하고 있다. 검은 정장 차림의 여성이 우산을 들고 그 가게의 불빛을 응시한다. 그녀의 회색 눈동자에 가게의 빛이 담긴다. 이내 여성의 구두소리가 어두운 길거리를 밟으며 가게로 들어간다.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이 그녀가 걸을 때마다 부드럽게 흔들렸다. 가게 문에 달린 작은 종이 딸랑이는 소리를 내었다. 은은한 조명이 켜진 내부의 벽면에는 한눈에 봐도 가격이 꽤 나가는 양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늦었잖아, 잠뜰."

창가 쪽의 자리에서 난 소리였다. 잠뜰은 고개를 돌렸다. 백색 정장을 입고 있는 검은 머리카락의 남성이 그녀를 보며 웃고 있었다. 자리에는 그가 주문해놓은 양주 한 병과 유리잔 두 개가 놓여있었다. 잠뜰은 한숨을 쉬며 그 남성의 호박색 눈을 응시했다.

"밖에서 함부로 이름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뭐 어때, 이 가게 안에 우리 둘밖에 없잖아?"

"이 양주 가져다준 점원은?"

"잠깐 수면제 먹고 주무시는 중. 사장이 아직 비밀 유지 같은 기초적인 교육도 안 시켜뒀다길래."

잠뜰은 가게 안쪽을 흘끗 쳐다보니 점원 복장의 남성이 탁자에 코를 박고 잠을 자고 있었다. 잠뜰은 창가 쪽으로 걸음을 옮겨 각별 앞의 의자를 끌어내어 앉았다. 제 앞의 유리잔을 손가락으로 두 번 톡톡 두드리자, 각별이 웃으며 술병을 들어 올렸다.

"늦은 건 미안하게 됐어. 쥐새끼들이 쫓아와서."

"죽였어?"

"잔챙이일 뿐인데 뭘 그렇게까지 하겠니. 그냥…."

잠뜰은 자신의 잔에 따라지는 술을 바라보았다. 색이 붉은 것이 무언가 떠오르게 했다. 그녀는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쥐새끼가 이빨 갈 곳을 잘못 찾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줬지."

잠뜰의 안주머니가 불룩한 것이 권총이 있다는 걸 말해주었다. 8발이 전부 채워져 있던 탄창의 몇 발이 비어있는지는 잠뜰만이 알리라. 각별은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르며 물었다.

"핏자국은?"

"오늘 비 많이 왔잖아. 봐, 내 우산도 깨끗하지?"

"뭘 어떻게 알려줬길래 우산까지 피가 튀는데."

각별이 술병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피식 웃었다. 잠뜰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였다. 유리잔을 한번 빙글 돌려 술의 빛깔을 확인하더니, 잠뜰은 시선을 다시 각별에게 돌렸다.

"그래서, 물건은?"

"물론 가져왔지. 네가 조금만 늦게 왔으면 그대로 이 양주로 목욕시켜주려고 했는데 말야."

각별은 자신의 가방을 열더니, 어떤 물건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잠뜰은 각별이 꺼낸 물건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건 하얀 털이 보송보송한 곰 인형이었다. 

"지금 장난해?"

"포장은 어떻게 되어있든 상관 없잖아?"

각별이 안주머니에서 작은 칼을 꺼냈다. 그러고는 싱긋 웃으며, 곰 인형의 목 부분에 칼을 찔러 넣었다. 날카로운 검에 의해 곰 인형의 몸과 몸통을 연결하고 있던 실밥들이 모두 끊어져, 솜과 함께 안에 들어 있던 작은 보석이 튀어나왔다.

"중요한 건 안에 있는 거니까."

잠뜰이 보석을 한 손으로 들어 올려, 가게의 불빛에 비춰보았다. 그 보석이 빛을 반사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더니, 이내 그녀는 보석을 다시 내려놓았다.

"진품이네."

"당연하지, 누가 구한 건데. 이걸로 상어 놈들이랑 거래한댔나?"

"거래라니? 그런 물러터진 대처는 진작에 버렸어."

잠뜰이 술이 담긴 유리잔을 올렸다. 미소 짓는 그녀의 표정은 잔혹하리만큼 차가웠다. 

"부대장 머리에 바람구멍 정도는 내야, 쥐새끼 같은 걸 붙일 시도도 안 할 거 아냐?"

각별도 작게 웃으며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다. 짠, 가벼운 소리가 나더니, 잠뜰은 술잔을 입가에 대고 한 모금 마셨다. 씁쓸한 향이 그녀의 코끝을 맴돈다.

"이걸로 거래 장소로 꿰어내서, 다 같이 손잡고 천국구경 시켜줘야지."

"뭐야, 그 녀석들 천국이나 보내주게?"

"죽은 후에도 그 녀석들 보고 싶냐? 너랑 나는 지옥 행일 텐데."

술잔을 든 각별의 손이 공중에서 움찔 떨렸다. 어떤 감정이 실려있는지 알 수 없는 호박색 눈이 비슷한 눈을 한 회색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잠시 후, 각별이 먼저 웃으며 시선을 술잔으로 돌렸다.

"너는 과거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

"너는 너무 미래만 바라보고 있고."

"그렇게 차갑게 말하지 마. 기껏 네가 좋아하는 술을 준비해둔 보람이 없잖아?"

"내 취향 바뀐 거, 내가 안 말했나?"

"그랬나?"

"그랬어. 이 조직 들어온 이후부터."

잠뜰은 남은 술을 전부 입안에 털어 넣곤, 탁 소리가 나게 유리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각별이 준 물건을 안주머니에 넣은 잠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다. 다시 연락할게."

우산을 든 검은 정장 차림의 여성이 가게를 나가 비가 내리는 거리 속으로 사라진다. 각별은 창밖으로 그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자신의 빈 유리잔에 술을 다시 따랐다. 붉은 빛깔이 가게의 불빛을 받아 오묘한 색을 낸다.

"그래, 변했지. 너도, 나도. 네 말대로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지옥에 떨어질 거야."

각별은 술잔을 기울였다. 차갑고 씁쓸한 맛이 혀끝에서 느껴진다. 비는 여전히 그칠 줄 모르고 내린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Non-CP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