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의란 무엇인가 下
미스터리 수사반
재판이 끝났다.
별다른 반전은 없었다. 피고인은 집행유예를 받고 법정을 떠났다. 미스터리 수사반의 네 명의 형사도 재판이 끝나자 법정을 나왔다. 공룡은 재판 결과를 듣자마자 확인할 것이 있다며 급히 떠났고, 각별은 그런 공룡이 불안하다며 따라 나갔다. 남은 네 명의 형사들은 그저 조용히 그곳을 나왔다.
"오늘 수고 많았어. 다들 내일 보도록 하지."
"경위님."
잠뜰은 해산하라고 명하다가 덕개의 목소리에 고개를 그에게로 돌렸다. 언제나 밝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신입 경장의 낯빛에 어두운 구름이 끼어 있었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신가요."
"…."
가능하면 저런 표정을 짓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언젠간 마주해야 할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마주하게 한 자신은 상관으로서 부하의 목소리를 들어줄 의무가 있겠지. 그것이 질문이든, 혹은 원망이든. 잠뜰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덕 경장은 먼저 가보겠네. 조심히 들어가게."
"네, 경위님."
수현과 라더의 인사를 받으며, 잠뜰은 덕개와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 남겨진 수현과 라더는 그들과 반대편에 있는 출구 쪽으로 이동했다. 긴 복도를 걷는 동안 들리는 건 오로지 바닥에 닿는 차가운 구두 소리 뿐이었다.
"이런 일이 흔한가요?"
긴 침묵 끝에 먼저 입을 연 건 라더였다. 그 질문에 수현은 쓰게 웃었다. 이런 일, 이런 일이라. 명확한 명사는 포함되어있지 않았으나 못 알아 들을 리 없었다.
"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결코 적은 편은 아니지."
"재판 끝나고, 피고인 표정 보셨습니까."
표정? 수현은 보지 못했다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어땠냐는 물음에 대답하기 전, 라더의 주먹 쥔 손이 떨렸다.
"무표정이었어요. 이겼다는 기쁨도, 자기 죄에 대한 죄책감도 없이, 그냥 당연한 일이 일어났다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고요."
"…."
"저희가 지금까지 고생한 게 고작 저 자식에게 집행 유예 1년이라며 자기 죄를 합리화해주기 위한 거였다니, 저는 그게… 그게 정의로운 법정의 결과라는 게, 너무…."
라더는 말을 끝내지 못했지만, 수현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감. 지난 노력을 전부 부정하는 냉혹한 현실. 처음 자신이 형사 일을 시작하고 이런 일을 접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위로의 말을 해주려다가, 그것보다는 냉정하게 말해주는 것이 더 받아들이기 쉬울 것이라고 수현은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이런 일 하나하나에 신경 쓰다가는 결국 나아가지 못할 거야. 힘들겠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형사님!"
아.
수현은 그 목소리에, 더 이상 입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재판 들어가기 전에 만난 피해자의 유가족의 목소리였다.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데, 수현은 그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다.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기 전까지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그리고 마침내, 눈물로 범벅된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만다.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형사님?"
"…사모님."
"어째서, 어째서… 우리 아들은 그렇게 죽어버렸는데, 왜…! 왜 저자는…!!"
"부인, 형사님들 탓이 아니잖소. 죄송합니다, 형사님들. 최선을 다해주셨는데…. 이만 갑시다, 부인."
"그렇지만, 그렇지만…."
목소리가 떨린다. 수현의 손을 잡은 노인의 손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이내 노인은 크게 울음을 터뜨린다. 그녀의 남편 역시 더는 그녀를 말리지 못하고, 그저 그녀를 품에 안고 그 역시 눈물을 흘린다. 노인의 손이 힘없이 자신의 손을 놓았을 때, 그제야 수현은 자신의 손에 느껴지던 떨림이 노인의 것만이 아닌 것을 알아차렸다.
"…죄송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사과밖에 없는 것이 원통스러웠다.
냉정해져야 한다고 했던가.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였는지. 차갑고도 냉혹한 현실이다.
"뭐하나 했더니."
각별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수사실 안으로 들어왔다. 불 꺼진 수사실 안에서 공룡의 모니터에서만 불빛이 나오고 있었고, 그 앞에 책상에 엎드려있는 공룡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주변에는 사건 문서들로 추정되는 수많은 책이 쌓여있었다. 각별은 공룡 곁으로 다가와 그 문서들의 산에서 몇 개를 집어 올렸다.
"최근 30년간 재판 기록이잖아? 이걸 그새 다 읽었냐?"
"조금만 작게 말해주시겠어요? 능력 좀 과도하게 써서 봤더니 지금 머리가 울려요…."
"뭘 찾고 있었는데?"
작게 말하라는 말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각별은 문서를 다시 내려놓았다. 공룡은 여전히 머리를 책상에 박고 엎드려 있어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중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는데도 집행유예 받은 사건들을 찾아보고 있었어요."
"…."
"흔한 건 아니지만, 결코 적은 건 아니더군요."
잠깐의 침묵이 수사실을 채웠다. 창밖에서 들리는 빗소리가 그 침묵의 공간에 소리를 집어넣었다. 일기예보에 비 소식은 없었는데 소나기인가. 각별은 잠시 그 생각을 하며 창밖을 보다 다시 시선을 공룡에게로 돌렸다.
"경사님은 오늘 같은 일을 많이 봐오셨나요?"
"…그래."
공룡의 책상에 쌓인 문서들에서 유독 오늘 재판을 맡은 유 판사의 이름이 거슬렸다. 여느 때와 같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나가는 그의 모습과, 그에 놀라움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덕개의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어. 이 바닥에서 나도 제법 있었고, 항상 정의로운 결과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도 너희가 방청 가겠다고 말리지 않은 건, 이런 걸 보여줄 때가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결과가 안 나오길 바랐어. 너희가 일할 땐 이런 일이 일어나질 않길 바랐어.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질리도록 봐온 것들을, 후배에게 보여주고 싶을 리 없었다. 각별은 여전히 시선을 문서 위의 유 판사의 이름에 고정한 채로, 낮게 한숨을 쉬곤 말했다.
"현실은 쉽게 안 변하네."
"…화나요."
공룡이 고개를 들었다. 머리가 여전히 울리는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각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통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 그는 표정을 한껏 찡그리고 있었다.
"이걸 그냥 '어쩔 수 없다'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게 당연한 거로 여겨지는 게 싫어요. 제가 지금껏 읽은 수많은 책들은 전부 불의에 맞서 싸우고 약자의 편을 들어야 한다고 했어요. 이런 불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라고 하지 않았단 말이에요."
"..."
"다음 사건도 이렇게 끝날까 봐 걱정돼요. 내가 하는 일들이 결국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될까 봐 두려워요. 그리고…."
각별은 공룡의 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는 그런 눈을 잘 알고 있었다. 한때 수현이 지었던, 그리고 한때 자신이 지었던, 그 눈빛.
"내가 앞으로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 무서워요."
지독한 회의감을 담고 있는 눈이었다.
경장들에게 현실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건 각별 자신이었으나, 막상 현실을 마주한 후배들을 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토록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지금껏 노력한 게 아니었는데. 더 나아질 거라고 막연하게 말해줄 수 없는 것이 못내 미안했다.
"그럴 수 있어. 나도 그랬으니까. 체념을 배우고, 익숙해져서, 이런 게 일상이 되기까지 그런 불안으로 밤을 새울 때도 많았지. 경위님이 붙잡아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때려치웠을 거야."
"경위님이 뭐라고 해주셨는데요?"
각별은 웃음을 지었다. 그걸 물어보는 건 역시 포기하고 싶지 않고 싶기 때문이겠지. 회의감에 가득 차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겠다는 눈을 가진 후배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며, 각별은 잠뜰이 제게 해주었던 말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이야기가 흘러가는 수사실 안, 그 창밖으로는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다.
쏴아아아-
법원 뒤쪽 주차장, 미스터리 수사반의 두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다. 비가 제법 내리는 데도 어느 쪽도 실내로 들어갈 생각을 도무지 하질 않았다.
"경위님은 알고 계셨어요?"
차가운 빗소리를 뚫고 덕개의 목소리가 들린다. 낮고, 차갑고, 약간 떨린다고 느껴지기까지 하는 목소리였다.
"알고 계셔서, 제가 재판 방청하자고 했을 때… 그런 표정 지으신 거예요?"
"덕 경장."
"하하, 굉장히 웃기셨겠네요. 경장 된 지 얼마 안 된 애송이가, 이런 결과일 줄 모르고 밝게 웃으며 기대하는 모습이요."
아니, 그저 안타까웠을 뿐이야. 잠뜰은 그렇게 답하려다가 침묵하는 쪽을 선택했다. 비는 계속 내려 잠뜰의 머리카락과 옷깃을 흠뻑 적셨다. 체온이 낮아지는 것이 느껴지는데도 잠뜰은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한동안 빗소리만이 들리다가, 다시 입을 연 건 덕개였다.
"저는 지금껏 법을 따라왔어요. 법을 어긴 사람들을 잡고, 그들을 진압할 때도 법을 지키며 잡았어요. 그게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법과 정의란 모두에게 옳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늘 보니까…. 정의란 그저 돈 몇 푼으로도 살 수 있는 무가치한 거였고, 법을 지키는 자는 멍청한 놈이었네요."
잠뜰은 대답할 수 없었다. 이전에 각별이 아직 경장이었을 때 비슷한 질문을 했었다. 검게 죽은 눈을 하고서는 이곳에 정의가 남아있느냐고 물었었다. 그리고 이제 똑같은 눈으로, 경장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입이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경위님, 경위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우린 정의의 편이라고. 우리가 버티지 못하면 정의가 무너지는 거라고. 우리가 약자들의 편이 되어 정의를 보여줄 거라고."
잠뜰에게 들리는 목소리에 물기가 젖어 있었다. 덕개의 뺨에 빗물인지 모를 액체가 차갑게 흘러내려 갔다.
"이게, 우리가 추구하던 정의에요?"
빗줄기가 굵어진다.
차가운 빗물이, 차가운 현실처럼 내려와 어깨를 강하게 짓누른다. 추위에 몸이 떨리는 것인지 아니면 제 안의 감정 때문인지, 덕개의 어깨가 들썩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지금껏 해온 노력의 무의미함, 그 감정들이 전부 빗물에 뒤섞인다. 차갑고, 슬프고, 단지 차가운 곳이다.
"그만두고 싶다면 지금 그만두는 게 좋을 거다."
잠뜰의 목소리였다. 덕개는 예상하지 못한 답이었다는 듯 고개를 들어 잠뜰을 바라보았다. 비 때문에 시야가 흐려 표정을 읽기가 힘들었다.
"빈말로라도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는 말해줄 수 없어. 네가 이 일을 계속하다 보면 이것보다 훨씬 더 안 좋은 경험들을 하게 될 거다. 정의가 패배하는 장면들을 끝도 없이 보게 되겠지."
"…경위님은 참 강하시네요. 어떻게 이런 곳에서 버티시고 계신 건가요?"
저는 그렇게 강하지 못할 것 같은데. 자조가 섞인 말은 목 뒤로 삼켰다. 경위님은 뭐라고 대답할까. 자신이 정의라고 생각해서? 자신이 나아가는 길에 확신이 있어서? 경위님은 강하고 올곧은 분이니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실지도 모르지.
그러나 잠뜰의 대답은 덕개의 예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내가 버티지 않는다면, 지금 지키고 있는 것도 지킬 수 없으니까."
과거에 각별에게 받았던 질문. 그때로부터 잠뜰의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현실에 부딪히더라도, 이것마저 사라지면 지금 지킬 수 있는 것도 전부 사라지니까.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급급하다 보니 이렇게 질기게 버틸 수 있는 거야."
"…."
"감히 내가 정의라는 오만한 생각은 하지 않아. 다만 나는 그저 이 자리에서 나의 최선을,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정의라도 지키고 싶은 거야. 아무리 여러 번 패배하고 여러 번 무너진다 하더라도, 우리가 지키고 있는 작은 정의 아래서 웃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그건 폭풍 속에서 조각배를 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어디로 나아가는 지도 확실하지도 못하고, 그저 물 새는 곳을 막기 급급한 거잖아요. 이런 위태한 싸움을 그런 생각만으로 계속하실 수 있는 거예요?"
"너희가 있잖아."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다. 잠뜰은 밝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빗줄기가 조금씩 가늘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이 작은 조각배를 어떻게든 지키고 싶다고 할 때, 어떻게든 지켜주는 너희가 나를 돕고 있잖아. 너희를 믿고 있기에 무모한 싸움도 계속할 수 있는 거야."
아, 경위님. 당신은 정말 올곧은 사람이라, 망설이고 좌절하는 나를 이렇게나 쉽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시네요.
덕개는 눈가를 거칠게 닦았다. 비가 그친다. 구름 사이로 햇빛이 난다. 잠뜰은 웃으며 이만 가자고 말하고, 덕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뜰을 따라 나섰다. 비가 그쳐 이제는 그녀의 표정이 뚜렷하게 보인다. 밝고, 당당하고, 올곧은, 언제나와 같은 경위님의 표정이다.
우리의 정의는, 이렇게나 작고 보잘것없다. 거대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 부서지고도 하고,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기도 한다. 우리가 지키지 못한 피해자 유가족의 눈물에 흔들리고, 법의 철조망을 피해간 범죄자의 웃음에 일그러지고, 그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나아간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이 올 거라고, 우리가 지키는 정의가 내일은 조금 더 넓어질 거라며, 몇 번을 넘어져도 팀원의 등에 기대어 일어나서 다시 달려간다.
우리의 정의는, 그저 그런 평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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