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봄은 그저 신이었을 뿐이다

겨울신화

인간에게 너무 정을 주지 마십시오. 사람은, 쉽게 죽으니까요.

날이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봄은 계절신의 전당에 앉아 지나가는 계절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붙잡으려 하지도 않고, 소중히 추억하려 하지도 않은 채, 단지 흘러가게 두었을 뿐이다.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려보니 겨울이 급히 전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품속엔 한 어린아이가 안겨 있었다. 

"봄이시여." 

절박한 표정으로 봄을 바라보는 겨울의 표정은, 그가 내리는 눈보다 창백했다.

"왜 그러십니까, 겨울" 

"아이가.... 이 아이를 구해주십시오. 봄 당신은 생명의 시작이며, 그대가 지닌 춘분초는 명약 중의 명약 아닙니까. 부디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봄은 겨울을 한 번 바라보고, 그의 품 안에 안긴 인간 아이를 바라보았다. 연민 같은 건 실려있지 않는, 무심한 눈빛이었다.

춘분초는 신을 위한 약초다. 영원히 순환하는 계절을 주관하는 신이라 할지라도 불멸의 존재가 아니기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봄이 만든 것이 춘분초이다. 그런 것을 인간 아이에게 사용해달라는 것이, 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신이었지만, 신이었기에.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었기에. 애초에 인간이 아니기에 이해할 수도 이해할 필요도 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겨울은 모르는 것 같았다. 

봄은 그런 겨울이 어리석다 생각하였다. 하지만 겨울의 표정이 너무나도 절박해 보였기에, 봄은 낮게 한숨을 쉬며 손을 가볍게 휘둘러 허공에 춘분초를 피워냈다. 그러곤 아이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겨울에게 다가갔다. 

"..." 

"봄, 왜 그러십니까." 

"늦었군요." 

봄은 손을 거두었다. 춘분초가 덧없게 흩날리며 떨어졌다.

"이미 숨을 거두었습니다."

춘분초는 명약 중의 명약. 아무리 병들고 쇠약한 몸이더라도 다시 건강하게 해줄 수 있다. 숨만 붙어있다면, 말이다. 

"춘분초로는 죽은 이는 살릴 수 없습니다." 

"...." 

"아이는 흙으로 돌아갈 겁니다. 올봄에 어여쁜 꽃으로 피어나겠지요. 생명은 우리 계절처럼 그리 순환하는 것이니, 너무 슬퍼 마시지요."

"....어찌 그리 무심한 말을 하십니까." 

아이를 안고 있는 겨울의 팔이 떨렸다. 

"봄께는 이 아이가 그저 생명으로밖에 보이지 않으시는 겁니까. 이 아이는 이름이 있었고, 좋아하는 것에 웃고, 내일을 기대하는 아이였습니다. 단지 생명 순환의 일환이라니, 그리 잔인한 말이 어딨습니까."

봄은 그런 겨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에도 봄은 죽은 아이에 대한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가 특별히 악독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이해하지 못해서였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겨울, 그대는 이 아이가 왜 죽었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오늘 아침에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쓰러져 있어 데려왔습니다." 

"아이의 몸엔 어떤 외상도 질병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푸른 그 시신으로 짐작하건대, 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죽은 것입니다."

 "...그 말씀은..."

 "그대의 추운 계절이, 그 아이를 죽였다는 말입니다."

겨울의 눈이 절망으로 흔들렸다. 봄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자책하라고 드린 말이 아닙니다. 그저 사람은 그대의 존재만으로도 죽을 수 있으니, 스러지는 것들에게 일일이 정을 주지 말라는 겁니다."

봄은 여전히 고개를 떨구고 있는 겨울에게 다가갔다. 그가 걷는 걸음마다 작은 싹들이 생명의 기운을 뿜으며 피어났다. 겨울의 품 안에 안긴 죽음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아이의 시신 위로 봄이 손을 뻗었다. 노란빛이 나더니, 아이의 시신이 빛의 가루가 되어 천공으로 흩어졌다. 

생명의 끝이라고 표현하기엔 잔인하게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겨울은 허망한 표정으로 자신의 양팔을 내려다보았다. 떠난 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겨울, 지금 눈물을 흘리시는 겁니까." 

"아...." 

반짝이는 물이 겨울의 눈에서 떨어졌다. 

"인간들의 마을에 너무 오랫동안 머무르셨군요. 계절을 주관하는 우리는 사사로이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감정으로 계절의 균형이 어긋날 수도 있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 " 

"사람의 감정에 너무 많이 동화되신 것 같군요. 앞으론 인간들의 마을에 가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 말하곤, 봄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 걸음을 옮겼다.

"전...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겨울의 목소리였다. 그의 눈은 슬픈 빛을 띠었으나 절망적이진 않았다. 

"우리는 계절을 주관하는 신이기에, 우리의 계절 속에 살아가는 생명들의 감정을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과 소통하고 공감함으로써 우리의 계절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생각합니다. 우리가 단지 존재함으로써 그 목적을 다한다면, 계절을 굳이 주관해야 하는 이들이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생명들을 보는 존재가 필요하기에, 순환의 흐름에 우리와 같은 주관자들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봄은 겨울을 바라보았다. 말로 더 이상 회유할 수 없으리란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지나치게 인간과 닮아진 겨울을, 봄은 굳이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신이었기에. 흘러가지만 다시 돌아오기에 변할 것이 없는 계절의 주관자이기에, 그는 변해버린 겨울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대의 감정이 반드시 그대를 망칠 것입니다." 

결국 봄이 할 수 있는 건 이해될 수 없는 충고뿐이었다. 

"혹독한 계절의 주관자이기에 누구보다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되는 겨울 당신은, 그 감정으로 인해 다른 계절들과 부딪힐 겁니다."

"그러지 않도록 주의할 것입니다." 

"아뇨, 그대는 반드시 그럴 겁니다. 그대가 그럴 자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나에게 인간을 살려달라고 데려오지도 않았겠죠." 

봄의 말은 매서웠다. 그의 허리춤에 달린 단검이 빛을 받아 날카로운 빛을 냈다.

"그런 때가 온다면, 난 겨울 그대를 막을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봄은 계절의 전당을 떠났다. 분노는 느껴지지 않았다. 봄은 그저 이해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이해하는 것을 시도조차 하지 않은 신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겨울의 분노가 세상을 하얗게 뒤덮고, 봄이 한낱 생명이라 여기던 인간을 찾아가 부탁하게 된 것은,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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