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옷을 의뢰하시겠습니까?
어떤 시간에서, 당신에게.
끊임없이 후회하는 날이 있다.
이 기차에 올라타서 떠돌아다니는 긴 시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후회한 시간이 있다.
그날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그날 내가 너에게 부탁하지 않았다면
내가 조금 더 주변을 살피고 사람을 살폈다면
내가,
내가...
'...대신 죽었어야 했는데.'
"벌을 내려주십시오."
이것은 과거의 기억, 조각난 시간들의 모임이다.
비서의 그 사건이 있고 며칠 후, 여왕께 알현을 청한 날이었다. 잠뜰은 왕좌 밑에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렸다. 여왕은 왕좌에 앉아 눈을 조금 크게 뜨고 잠뜰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옆에는 각별 백작이 놀란 표정으로 잠뜰을 바라보았다.
"로열 워런트를 받은 입장으로서 폐하의 옷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바치는 것이 원칙인데, 제가 주변을 살피지 못하여 조항을 어겼습니다. 폐하의 뜻을 받들지 못한 저를 벌하여주십시오."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잠뜰은 미리 준비해온 말들을 꺼냈다. 변명이나 용서같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벌을 청하는 잠뜰의 모습은 담담하면서도 처절했다. 여왕의 집사 각별 백작은 당황해하며 그녀를 말렸다.
"잠뜰 씨, 이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일전의 일은 잠뜰 씨 탓이 아니라고. 만약 그것 때문에 이러는 것이라면-"
"제가 제 사람들을 끝까지 살피지 못하고, 제 일을 남에게 미루어 생긴 일입니다. 제 사람을 하나 잃은 것만으로도 흔들려서 폐하의 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제가 어찌 용서를 바라겠습니까. 아랫사람을 돌보지 못하고, 일을 끝까지 마무리 짓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주십시오."
각별이 아무리 말려도 잠뜰은 인형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벌을 내려주십시오, 제 죄를 벌하여주십시오. 각별은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안타까웠다. 일전의 그 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이미 다 이루어졌고, 유족에 대한 여왕의 위로까지 다 전하였다. 사건은 이미 마무리되었는데도 잠뜰은 막무가내였다.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기에 잠뜰이 어떤 심정일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렇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아물 상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왕의 앞에서 벌을 청하는 그녀의 모습은, 태엽이 빠진 인형과도 같이 생기가 없었다. 흡사 죽은 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창백한 피부와 메마른 손끝이, 지난 며칠 동안 어떤 심정이었을지 짐작하게 해주었다.
"네 뜻을 알겠다."
"!? 폐하!"
여왕의 대답이 나왔고, 그와 동시에 각별이 여왕을 돌아보았다. 감히 폐하의 말에 토를 달았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만큼 놀랐고 당황스러웠다. 여왕은 언제나 잠뜰이 보내준 옷에 만족하였고, 따로 상을 줄 만큼 잠뜰을 아꼈다. 그런데 벌을 달라는 그녀의 청을 이리 간단히 들어주다니. 각별이 무언가 주청을 드리려 할 때, 여왕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로열 워런트라 함은 무릇 왕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약속한 것인데, 감당할 수 없다고 너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는 무게가 아니다. 옥에 가둬두기만 하기에는 그 재주가 아까우니, 이렇게 하지."
여왕은 그날 잠뜰에게, 출장 디자이너가 되어 사람들의 옷을 만들고 다니라고 명하였다. 그러고는 잠뜰에게 티켓 다섯 장을 내주었다. 검은색 종이에 금색 문양이 새겨져 있고, 의뢰자와 목적지밖에 적혀 있지 않은 이상한 기차표. 여왕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곳이라고 말하였다. 처음 타면 조금 놀랄 수 있다고 웃으며 여왕이 덧붙였다.
"형벌의 기한은 그대가 진실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그날까지라네."
잠뜰은 여왕의 명이 다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이 무언가 부인하고 있다는 뜻인가? 황당한 명령이라고도 생각하였다. 하지만 벌을 청한 입장에서 여왕이 내린 명을 어길 수 없었다. 잠뜰은 티켓을 받아들고 알현실에서 물러났다. 안주머니에 티켓을 집어넣은 그녀의 표정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차라리 감옥에 갇히는 게 마음이 더 편했을 텐데.'
"-라고 생각하고 있을게 뻔하잖느냐."
이것은 잠뜰이 모르는 시간의 과거다. 잠뜰이 알현실에서 물러간 후, 설명을 요청한 각별에게 여왕이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치고 감옥에서 오래 버티는 사람은 못 봤네. 그렇다고 아무런 조치도 없이 그냥 쉬라고 하면 또 헛물켤 게 뻔하고."
나는 가까운 사람의 상실에서 오는 구렁텅이에 빠져본 적이 있지 않느냐, 여왕이 자신의 검은 드레스 자락을 매만지며 말하였다. 순간의 그리움이 그 손짓에서 느껴져 온다.
"그때, 유능한 집사였던 네가 있기에 잘 이겨낼 수 있었지."
"...폐하."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저대로 홀로 내버려 두어선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네."
여왕은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잠뜰의 상태는 지금 누군가 그녀에게 무어라 한들 그녀에게 닿지 않을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스로 이겨내야 하지만 혼자 내버려두어서도 안 되었다. 그걸 잘 알았기에 여왕은 그녀를 그 기차에 타게 한 것이다.
"그 기차는 무엇입니까?"
여왕을 곁에서 오래도록 모셨지만, 각별 자신에게조차 한 번도 말해준 적 없는 것이었다. 각별의 물음에 여왕이 작게 웃었다. 자신의 집사를 바라보는 여왕의 눈이 작은 별빛처럼 빛난다.
"마법을 믿는가, 각별?"
잠뜰이 자신이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예의 그 기차에 탄지 4년쯤 되었을 때였다. 마법이라는 것에 놀라서 기차에 올라타는 것조차 망설였던 어리숙하던 그 시절에서 4년이나 지나, 마법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어느 날이었다.
'내가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후회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기차를 둘러싼 마법이 내 시간을 고정한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잠깐 해봤었다. 마법은 사람의 마음을 가장 많이 반영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날 자신의 죄를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 그날로부터 변화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의뢰를 마치고 나면 계속해서 새로운 티켓 다섯 장이 생기는 것은, 아직 내가 내 죄를 다 마주 보지 않았다는 뜻일 테니까. 영원히 끝나지 않고 계속 고정되어 있다 한들, 잠뜰은 그것에 대해 자신이 불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번 회차는 시작부터 무언가 달랐다. 버려진 어느 역참에서 한숨을 돌리며, 새로 생겼을 기차표를 꺼내기 위해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빈 공간에 들어간 자신의 손끝에 종이의 감촉이 느껴졌다. 이번 의뢰인들을 확인하기 위해 잠뜰이 기차표를 꺼냈을 때, 누군가 달려와 그녀와 부딪쳤다. 남성은 사과하며 기차표들을 주워 잠뜰에게 건네주었다.
'...어?'
건네받은 종이는 평소와 달리 여섯 장이었다. 의뢰인도 목적지도 적혀 있지 않고 번호도 쓰여있지 않은 이상한 기차표가 한 장 추가되어있었다. 긴 시간 동안 반복되던 똑같은 나날에 생긴 작은 이변이었다. 마법에 무언가 변화가 생긴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작은 의문들을 삼키며, 잠뜰은 이번 회차의 의뢰인들을 만나러 갔다.
'어떤 결말을 맞게 되든, 나는 끝까지 이곳을 지킬 것이네.'
자신의 책임에서 도망치지 않으려는 그를 보며 나 역시 도망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전 그 아이들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달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큰 죄를요.'
진정 죄책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이는 나 같은 사람인데, 왜 그가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나는, 내 최선을 다해서 나아갈 거에요. 우리의 과거가 너무 괴로운 시간으로만 남지 않게끔 말이에요.'
피해자에게 당당히 걸어갈 수 있는 그를 동경했다. 자신이 걷는 길에 확신을 가지고 피해자를 마주 볼 수 있는 그 용기가 부러웠다.
'그런데도, 나는 이 밑바닥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대신 복수해줄 자가 없었다면, 나 역시 저자와 비슷한 밑바닥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내가 그의 일을 막으려 하는 것이 기만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잠뜰 님도 다시 그 평범한 나날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먼저 그날을 맞이한 선배로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감히 내가 응원을 받을 자격이 있나?
"폐하의 전언이라뇨."
잠뜰은 각별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각별은 말없이 잠뜰의 손끝을 가리켰다. 목적지와 의뢰자가 물음표로 채워져 있는 이상한 기차표가 들려 있었다.
"이 기차표, 폐하께서 보내주신 겁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요. 폐하께서 제게 그 기차표를 전해달라고 하신 건 맞습니다. 하지만 이 기차의 승객이 당신이 된 순간부터, 기차의 마법은 당신의 마음에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되었거든요. 쉽게 말해 당신이 이 표를 받아들일 마음이 조금도 없다면, 이 기차표는 당신이 다섯 번째 의뢰를 마칠 때쯤엔 자연스럽게 사라졌어야 했답니다."
자신이 무의식중에 이 기차표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뜻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기차표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길래? 이것이 무엇이기에 폐하께서 각별 백작의 손을 빌려 자신에게 전달하고, 자신은 무의식중에 그것을 받아들인 것인가?
"기차표가 아직 남아있으니, 당신이 폐하께서 보내주신 선물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군요. 잠뜰 씨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서 다행입니다."
"어떤 준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속죄를 끝낼 준비, 아니, 속죄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에 짓눌린 시기를 끝낼 준비 말입니다."
움찔, 기차표를 들고 있던 잠뜰의 손이 순간 떨렸다. 그것이 왜 잠뜰 님 잘못입니까? 조금 전 만난 의뢰인이 해주었던 이야기가 잠깐 떠올랐다. 그러나 잠뜰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저는 그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글쎄요, 그 기차표는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에겐 닿지 않는다 하셨거든요."
각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잠뜰은 각별의 시선을 피하며, 그럴 리 없다고 중얼거렸다.
"잠뜰 씨, 영원히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거나, 그 일을 이겨내지 못하고 계속 회피하는 것은, 떠난 이에게 썩 좋은 도리는 아닙니다."
"..."
"당신이 걸어온 길에서 만나지 않았습니까? 자신의 책임에서 도망치지 않으려 한 사람, 과거의 죄책감을 정과 혼동하던 사람, 죄를 피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다가가려던 사람, 상실의 아픔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의 말로, 그리고 형벌을 끝내 이겨내고 다시 일어난 사람의 후련한 모습을요."
이번에 만난 의뢰인들이다. 폐하와 각별 백작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이것도 그 마법이라는 것의 일종인가.
"옛날의 당신이라면 그 기차표는 당신에게 닿지 않았겠지요. 변화의 계기가 있다면 당신이 만난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잠뜰 씨가 만든 옷이 그들에게 변화의 계기가 되고 응원이 되었던 것처럼요."
잠뜰은 그 말에도 망설였다. 정말 자신이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 건가? 정말 이 상황에서 벗어나서, 나아가도 괜찮은 건가? 누군가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도 괜찮다고 해주었던 말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일까? 이토록 오랜 기간동안, 단 한 가지 사실만을 생각하며 떠돌아다녔는데, 정말로 그 긴 시간들을 과거로 만들어버리고 나아가도 되는 것일까?
"피해자의 부모님이 잠뜰 씨께 전해달라고 부탁한 말이 있습니다."
그 말에 잠뜰의 몸이 움찔 떨렸다. 시선이 땅에 고정된 채 제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기만 하였다. 심장이 무겁고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원망으로 가득 찼던 그 눈초리와 목소리가 마지막 기억이었다. 죄책감으로 짓눌린 그날의 기억, 그분들의 말을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랬기에 이어지는 각별의 말은, 잠뜰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땐 자신이 정신이 없어서 그만 당신에게 심한 말을 했다고, 당신 탓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다고요. 그땐 그저 원망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당신을 너무 크게 상처입힌 것 같아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뭐라고..."
"직접 얼굴 보고 말하고 싶어하셨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당신이 떠난 뒤여서, 더 빨리 전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잠뜰의 손이 떨렸다. 왜 당신들께서 내게 사과하는 겁니까. 아들을 잃은 자도 당신들이고, 그 원인을 제공한 것도 나인데. 내가 죄를 청하며 떠나버린 탓에, 당신들은 두 배로 상처 입은 것이었습니까.
"잠뜰 씨, 피해자가 죽은 것은 모두 가해자의 탓입니다. 피해자들끼리 서로 자책할 일이 아니에요. 그대 역시 소중한 동료를 잃은 피해자입니다. 그대가 슬퍼하는 것은 소중한 이의 상실에서 온 것이어야지, 자책에서 온 것이어선 안됩니다."
'원인을 피해자분과 잠뜰 님 안에서 찾지 마십시오. 아마 그분들도 진정 원망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 겁니다.'
잠뜰은 각별의 말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가 해준 말이 의뢰인이 해주었던 말과 겹쳐 들렸다. 정말로, 정말로 그랬던 것일까. 정말 내가 용서받아도 되고, 이 길을 끝내도 되는 것인가. 정녕 그들의 원망이 나를 향하지 않았던 것일까. 각별은 잠뜰의 얼굴을 보더니 부드럽게 웃었다.
"이전에 이런 말을 했었는데, 그때는 정신이 다른 곳에 있는 듯 제 말을 듣지 않으셨죠. 이제는 이쪽을 봐주시는군요."
"...저는..."
"당신이 만난 사람들이 그대를 변화시켜주었나 봅니다. 폐하의 눈은 정확했군요."
잠뜰은 말없이 각별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벅찬 감정이 턱 끝까지 차올라 그녀의 입을 막았다. 각별은 조용히 웃음을 짓더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이제는 이 긴 여행을 끝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따악- 각별이 손가락을 튕겼다.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었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풀은 흔들리지 않고 오직 잠뜰과 각별의 머리카락과 옷자락만을 흔드는 이상한 바람이 불었다. 멀리서 기차의 경적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바람 때문에 눈을 감았다가 뜨자, 각별의 뒤편으로 자신이 타고 다녔던 기차가 보였다. 황금빛 가루로 조금씩 바람에 날리고 하늘에 그어진 선로를 다니는, 긴 시간 동안 함께했던 그 기차였다.
조금씩 잠잠해지는 바람은 어느새 잠뜰의 손에 있던 기차표를 공중으로 둥실 떠올렸다. 잠뜰이 놀라 바라보니, 기차표 위의 물음표들이 금빛 가루로 부서져 종이에서 떨어져 나왔다. 공중을 잠시 맴돌던 금빛가루는 다시 선의 형태가 되어 종이 위로 떨어졌다.
잠뜰의 눈에, 이내 변화된 기차표의 글씨가 비쳐졌다.
물음표들은 지워지고, 의뢰인란에 잠뜰의 이름이 적힌 기차표가 잠뜰의 눈앞에 둥실 떠있었다. 목적지를 채웠던 물음표는 사라지고 무언가 적어넣을 수 있게끔 공란으로 남아 있었다. 티켓과 잠뜰 주위로 금빛 빛무리가 생겨났다. 밝은색으로 공간을 채우는 그 빛무리에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티켓 옆에는 어느새 황금색 깃펜이 나타나 공중에 가만히 떠있었다. 마치 잠뜰이 잡아주길 기다리는 듯, 깃펜의 금빛이 반짝였다.
“자, 마지막 의뢰인이 결정되었네요. 당신은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골든 살롱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도,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 휴식을 취할 수도, 아니면 계속해서 이 기차를 타고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러 다닐 수도 있겠죠. 당신이 원하는 길에 맞는 옷을 선택하세요.”
각별은 잠뜰을 향해 밝게 웃어 보였다. 잠뜰은 금빛으로 빛나는 마법의 한가운데에 서서, 기차표를 바라보았다. 살랑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티켓은 오직 잠뜰 그녀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였다. 따뜻한 기운이 그녀를 감싼다. 나아가도 된다, 나아가도 괜찮다. 그리 응원해주는 것만 같다.
“잠뜰 씨, 당신의 차례입니다. 어떤 옷을 의뢰하시겠습니까?”
잠뜰의 회색 눈에 푸른 하늘과 금빛 빛무리가 담긴다. 기나긴 시간 동안 무채색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눈이 반짝인다. 잠뜰은 손을 뻗어 깃펜을 쥐었다. 부드러운 감촉과 쉽게 꺾이지 않을 단단함이 전해져온다. 처음에 망설이던 손은, 이내 놓지 않겠다는 듯 부드러운 힘이 실려있다.
깃펜을 쥔 잠뜰의 손이 움직인다. 공란으로 남아있던 기차표의 목적지가, 그녀의 필체로 서서히 채워져 갔다. 이제까지의 고민은 과거에 내버려두고, 비상할 준비를 마친 디자이너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처음 하는 질문은 당신이 그들에게 건네는 위로,
마지막에 하는 질문은 그들이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아픔을 이겨내는 이야기.
「어떤 옷을 의뢰하시겠습니까?」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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