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옷을 의뢰하시겠습니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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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편의 시작

이제서야 말하는데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드레스의 주인 잠뜰님이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이니, 다른 상황극 인물들의 옷을 만들어주면 재밌겠다 라고 생각해서 이야기를 처음 기획했습니다. 초기의 콘티는 잠뜰님이 다양한 세계의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작은 위로를 전달하는, 소소한 일상 느낌의 옵니버스 형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콘티를 다 작성했는데...

그런 이유로 이야기 스케일이 커졌습니다. (스불재의 시작)

잠뜰님이 의뢰를 하러 다니며 위로를 전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를 받기도 하며 나아가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결국 초기 콘티의 많은 부분이 수정되면서, 잠뜰님의 서사와 의뢰인들의 서사가 모두 연결되는 지금의 이야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과정은 조금 복잡했지만 그래도 더 재밌는 이야기를 만든 것 같아 기쁩니다. 

2. 어떤 옷을 의뢰하시겠습니까?

프롤로그와 마지막화 제목 모두 "어떤 옷을 의뢰하시겠습니까?" 인 건 이유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며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처음 하는 질문은 당신이 그들에게 건네는 위로, 마지막에 하는 질문은 그들이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아픔을 이겨내는 이야기. -#???

여기서 '처음 하는 질문'은 프롤로그의 제목이고, '마지막에 하는 질문'은 마지막화의 질문입니다.

프롤로그는 잠뜰님이 이번 회차의 여정을 시작할 때 입니다. 그때의 잠뜰님은 아직 자신에게 확신이 없고 여전히 죄책감이 심한 상태였지요. 프롤로그의 제목은 잠뜰님이 의뢰인들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의뢰인들의 요청을 받아 옷을 만들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그마한 위로를 전하기 위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마지막화의 제목은 잠뜰님이 하는 질문이 아니라, 잠뜰님이 듣는 질문입니다. 이야기에서는 드레스의 주인 각별 백작이 직접 말해주었지만, 잠뜰님이 그동안 도와주고 이번 회차에서 만난 이들이 함께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등장인물들을 설명하는 부제목란에 #??? 에서는 '어느 시간에서, 누구에게'라고 적혀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잠뜰님이 죄책감을 덜고 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니까요. 

위로를 전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함께 아픔을 이겨나가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3. 마지막화가 #??? 인 이유

「어떤 옷을 의뢰하시겠습니까?」는 열린 결말로 끝이 났습니다. 잠뜰 님은 마지막 티켓의 공란에 무엇이든 채워넣을 수 있겠지요.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여전히 이 기차를 타고 세상을 돌아다닐 수도 있습니다.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테니 마지막화라고 쉽게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 이야기들을 엮어 2기로 나올 수도 있겠지요...어쩌면...) 

다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잠뜰님은 더이상 속죄를 위해서 세상을 돌아다니지 않을 겁니다. 죄책감과 슬픈 마음을 이제는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잠뜰 님이 세상을 계속 여행하겠다고 결정한다면, 그건 속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하는, 선한 마음에서 기인한 것일 겁니다. 어떤 선택을 하던 멋진 여정이 되겠지요. 

4. 이야기의 떡밥들

0) prologue

전반적인 마법분위기를 잡아주는 프롤로그. 하늘을 나는 기차나 기차표를 스스로 확인하는 마법촛불이나 신비롭고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잡아주는 글이었죠. 

여기서 나온 떡밥은 단연 5화 마지막에 정체가 드러났던 편지 배달부입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그녀의 회색 눈동자가 느리게 깜빡인다. 기다리기가 무료한 것인지 아니면 무엇을 확인하려는 것인지, 그녀는 자신의 겉옷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든다. 금박으로 글씨가 찍혀 있는 검은색 종이들이었다. -prologue

잠뜰이 다섯 번째 의뢰인의 의뢰를 해결하고 나면, 어느새 자신의 안주머니에 티켓 다섯 장이 새로 들어와 있었다. -#005

잠뜰님이 이번 회차의 의뢰인들의 기차표를 확인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기차표를 확인하기 위해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빈 공간이었던 곳엔 어느새 종이의 감촉이 느껴졌습니다. 꺼내서 확인해보려 한 순간, 편지 배달부(각별 백작)가 부딪혀서 종이가 전부 떨어지며, 썸네일의 이미지가 나왔죠. 여러분께 어떤 곳을 들를지 슬쩍 보여주기 위한 장치이자, 각별님이 잠뜰님의 표에 여왕폐하가 보낸 티켓을 슬쩍 섞어놓기 위한 장면이었습니다. 각별님은 이때 마법 모자를 쓰고 있어서 외관이나 목소리나 조금 달랐기에 잠뜰님이 못알아봤던 것이고요. 

이제 하늘을 날아 시공간을 건너다니는 기차를 타고 첫번째 의뢰인을 만났던 순간을 찾아가봅시다.

1) 대관식 의복

혁명 라더님의 초상화에 그려진 옷을 디자인하는 1화입니다. 

1화는 잠뜰님의 의뢰가 어떻게 이뤄지는 지 설명해주는 편이었습니다. 도저히 가방 안에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커다란 물건들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잠뜰님의 수트케이스나, 옷을 반나절안에 만들어버리는 실력 등 비현실적이고 마법적인 이야기. 그리고 편지로 의뢰를 하면 눈깜짝할새에 돈이 자동으로 사라져 선불로 결제하는 이야기 등이 담겨 있었어요.

1화의 주인공은 에투알 국왕, 혁명 라더님이죠. 자신의 책임감을 외면하지 않고 남아서, 혹은 책임감 때문에 도망칠 수 없어서 왕좌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비극적인 왕입니다. 이 날은 나라의 혼란이 최고조에 달하고 주변인들도 도망가거나 자신에게 도망가라고 하고 있어 점점 지쳐가던 날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아직 이겨내고 있는 날이기도 했고요.

"때로는 입 밖으로 내뱉는 것만으로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001

"그럼 그저 이야기만 해보십시오. 때로는 입 밖으로 내뱉는 것만으로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005

잠뜰님이 라더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 했던 말이죠. 이 말은 5화에서 고스란히 잠뜰님께 돌아옵니다. 잠뜰님이 의뢰인에게서 이야기를 이끌어낸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밖으로 내뱉고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죠. 

잠뜰님은 첫번째 의뢰인에게 위로를 전하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결국 에투알 국왕의 결말은 모르고 떠났어요. 이런 슬픈 비극을 굳이 알 필요는 없겠지요. 이 이야기를 읽는 여러분과 저만 알고 있어도 충분합니다.

2) 불에 타지 않는 옷

초능력 세계 여행 수현님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보라색 가디건을 만드는 2화입니다. 

2화는 연구소에서 탈출하고 1년정도 되었을 때의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막내인 라더님이 아직 제 능력을 다스리지 못하고 불안해하던 시절에, 아이들을 위해 의뢰한 수현님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중 수현님은 아이들에 대한 정과 과거에 자신이 연구자였던 것에서 오는 죄책감을 혼동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부분에선 잠뜰 님과 닮은 부분이 있지요. 자신의 비서가 죽은 것이 자신 때문이라 자책하고 있는 잠뜰님과, 정과 죄책감을 혼동하는 수현님의 서사를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정과 죄책감을 착각하지 말아주십시오." -#002

잠뜰 님이 이런 말을 해주지요. 제 3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땐 수현님이 죄책감과 정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 명확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잠뜰님조차 죄책감과 상실의 아픔을 혼동하고 있지요. 잠뜰님은 마지막에 혼잣말로 진정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이는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사실은 아닌데 말이에요. 남이 죄책감을 혼동하지 않게 해주면서 정작 자신의 죄책감은 안고 가는 잠뜰님의 모순적인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사실 이야기에서 잠뜰님과 가장 가까운 상황에 놓인 사람이었지만, 잠뜰님은 자신과 이 자는 다른 상황이라고 선을 그어버리고 스스로 어둠속으로 들어가지요.

3) 물빛 작업복

워터플래그에서 각별님이 입고 다니는 옷을 만드는 3화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일 쓰기 어려운 에피소드였습니다. 정말 고민을 많이 하면서 글을 썼는데 그 이유를 다 말하면 지루해질테니 각설하고 세번째 의뢰에 대해 알아봅시다.

이번 편에선 클라데스 항구에 대한 조금 어두운 부분이 나왔지요. 시장이 어인들을 지원해주겠다고 했을 때, 클라데스 주민들이 그것이 윤리적이지 않은 일이라고 짐작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에서 나왔듯이, 남을 위한 무조건적인 노동이 강요 없이 생겼을 리 없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최선을 다해 나아가는 공룡님의 선하고 따뜻한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이 모습은 잠뜰님께 큰 변화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적어도 잠뜰님이 생각했을 때, 공룡님의 상황은 자신과 비슷했으니까요. 그런데도 자신이 걷는 길에 확신을 가지고, 피해자를 위해 나아가겠다는 그의 모습은, 잠뜰님께 잔잔한 충격을 준 동시에 동경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손에 상처가 나는 지도 모를 만큼 과거에 함몰되어가던 잠뜰님을 붙잡아 준 것 역시 공룡님이고, 함께 힘내보자며 동지의 모습을 보여준 것도 공룡님이지요.

"그런 면에서 도움이 되었다니, 영광입니다."  -#003

잠뜰님은 자신의 옷이 그의 죄를 마주하는 공룡님께 도움이 되었다는 면에서 기뻐했습니다. 잠뜰님의 시선에선, 과거의 죄를 갚고 나아가는 그를 도움으로써, 자신 역시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나서 그리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죄책감이 짓누르고 있었기에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였죠.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에 공룡님이 보았을 때 잠뜰님의 표정이 불안해보였던 것입니다. 공룡님이 한번 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잠뜰님은 그의 목소리가 닿지 않게 기차로 돌아간, 아니, 도망간 후였죠.

4) 죽은 자들을 위한 연회복

블라인드-죽음의 왈츠 (이하 죽왈) 덕개님이 범행을 저지를 때 입었던 옷을 만드는 4화입니다. 

이번 회차에서 유일하게 잠뜰 님이 '실패'한 의뢰입니다. 네 번째 의뢰자가 처음으로 의뢰한 옷은 상복이었죠. 반은 농담, 반은 진담이었을 겁니다. 죽왈 덕개님은 초호화 크루즈에서 열린 선상파티를, 죽은 자들이 넘치는 연회로 바꿔버렸으니까요. 자신의 복수를 마치는 그 연회에 입고갈 연회용 정장이자, 자신의 손에 죽을 이들을 맞이할 상복을 의뢰한 것이죠.

작중 시각은 죽왈 사건 전날 밤입니다. 아직 장치를 다 숨기지 않았기에 여기저기 장치들이 드러나 있었고, 그것을 배에 탄 잠뜰님이 보게 되었죠. 그리고 잠뜰님은 덕개님과의 대화에서 덕개님이 꾸미고 있는 일을 어렴풋이 알아차립니다. 

"의뢰를, 물러주실 수 없겠습니까." -#004

대신 복수해줄 자가 없었다면, 나 역시 저자와 비슷한 밑바닥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내가 그의 일을 막으려 하는 것이 기만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

범죄를 저지르려는 것을 막기 위해 잠뜰님은 의뢰를 물러달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그를 말리는 것이 기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잠뜰 님의 경우 동료를 살해한 일당은 모두 여왕 폐하의 명으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잠뜰님이 동료를 잃은 것에 대한 원망을 다른 이가 차고 넘칠만큼 복수를 해주었지요. 그렇지만 덕개님의 경우, 자신의 가족을 상처 입힌 자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그 이후에 더 잘 나가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동일 선상에 서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덕개님도 그 사건이 철저하게 다뤄지고 올바른 처벌이 이루어졌다면 이런 잔인한 계획을 꾸미지 않았을 것이고, 잠뜰님도 그 사건이 묻혀버렸다면 덕개님 같은 잔인한 계획을 세웠을지도 모르죠. 결국 가깝고 소중한 이를 잃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무척 닮아있었으니까요.

잠뜰이 말릴 새도 없이, 덕개는 잠뜰의 손에서 빠르게 옷을 받아들었다. 손 사이로 천이 스쳐 빠져나가는 감촉이 느껴졌다.

"그런데도, 나는 이 밑바닥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옷은 이제 완전히 덕개의 손안에 있었다. 옷을 받아든 덕개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둡게 가라앉은 표정은 이전처럼 차갑지도 냉철하지도 않았다. -#004

결국 잠뜰님은 덕개님을 말리지 못하고, 옷을 내어주고 맙니다. 의뢰를 물러달라고 요청할 때 잠뜰님이 옷을 힘주어 잡았다는 묘사가 나옵니다. 이는 이 옷이 범죄에 가담하게 될테니, 덕개님께 주지 않고 덕개님을 말리려는 잠뜰님의 의사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덕개님은 결국 억지로 잠뜰님의 손에서 옷을, 자신의 범죄를 받아들입니다. 잠뜰님이 말릴새도 없이 옷은, 덕개님을 말릴 방법은, 잠뜰님 손에서 빠져나갔고, 결국 덕개님은 자신의 손으로 처절한 복수 계획을 완성시킬 도구를 받아들지요. 

여담으로, 4화에서 덕개님은 단 한번도 잠뜰님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항상 '디자이너 님'이라고 불렀지요. 눈앞의 잠뜰이 자신의 복수의 대상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입에 그 이름조차 담기 싫어할만큼 증오하기 때문입니다.

5) 신화의 끝에 입을 옷 

이방인의 끝부분에 각별님이 역사 안내원으로 일할 때 입는 개량한복을 만드는 5화입니다. 

잠뜰님의 과거가 처음으로 밝혀지는 편이자, 잠뜰님의 마음을 돌리는 데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사람이 등장하는 편입니다. 앞서 만난 의뢰인들 모두 조금씩 잠뜰님의 생각에 영향을 미쳐왔고, 그 변화들이 조금씩 쌓여있을 때, 결정적으로 눈에 보이는 변화를 이끌어준 태양선인, 아니 각별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대는...아주 먼 곳에서 오신 분이군요." 

"낯선 곳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잠뜰 님. 저는 태- 아니, 각별이라고 합니다." -#005

각별님은 처음부터 잠뜰님을 보고 무언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눈치챕니다. 긴 시간동안 사람 보는 눈을 키워왔으니까요. 자신을 소개할 때 무의식적으로 태양선인으로 설명하려다가, 다시 각별로 설명하는 점에서 사람으로 살아가겠다는 마음가짐을 볼 수 있습니다. 태양선인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오래 불려서 조금 헷갈렸을 뿐, 각별님은 이미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고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잠뜰님께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종의 선배와도 같은 역할을 맡은 인물입니다. 

"잠뜰 님의 동료가 죽은 것은 그 날 잠뜰 님의 부탁으로 잠뜰 님 대신 마차에 탔기 때문이 아니라, 가해자가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느 순간에나 아프고 약한 순간이 있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차마 마주 보고 이겨낼 수 없어서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해버리는 것이죠." -#005

이야기에서 각별님은 잠뜰님이 스스로 과거를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도록 이끌어주고, 잠뜰님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짚어주어 과거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사고의 원인을 피해자를 잃고 남겨진 사람들에게서 찾을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죽인 가해자에게서 찾아야 하는 것, 그리고 피해자 가족에게 원망을 들은 것은 그 가족이 악한 사람이거나 잠뜰님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에서 약해진 상태였기에 아픈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는 것. 이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잔인한 사람들 아닙니까? 인류를 위해, 평범한 인간더러 신화가 되어달라니. 나는 그런 무게까지 감당하기엔 버거운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005

이방인에서의 각별님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인물입니다. 영생을 살아왔지만 그 시작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가까운 이들과의 이별을 슬퍼하고 재앙에서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했던 사람. 어쩔수 없이 신화가 되어야했던 평범한 사람이었지요. 그 하얀 옷을 입고 태양선인으로 버텨온 긴 시간은 아마 무척 무거웠을 겁니다. 잠뜰님의 의뢰를 통해서 비로서야 그 옷을 내려놓을 수 있었지요.

"후우- 이제야 다시 사람이 된 것 같네요." -#005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 것을 실감하는 장면, 쓰면서 좋아했던 장면 중 하나입니다. 앞으로는 잠뜰님이 선물해준 옷을 입고 평범하고, 조금은 오래 살아 역사를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아주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가겠지요. 

?) 어떤 옷을 의뢰하시겠습니까?

잠뜰님의 과거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와, 이 기차를 타게 된 이야기, 그리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롭게 나아가는 잠뜰님의 모습을 그린 마지막화입니다. 잠뜰님께 이 여정이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편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이런 말을 했었는데, 그때는 정신이 다른 곳에 있는 듯 제 말을 듣지 않으셨죠. 이제는 이쪽을 봐주시는군요." -#???

위처럼, 각별님은 이전에도 잠뜰님께 비슷한 말로 위로를 하려고 하였었습니다. 피해자와 피해자 동료 탓이 아니라 가해자 탓이니 당신을 자책하지 말라는 위로였지요. 하지만 그때 잠뜰님은 죄책감이 너무 심해서 각별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잠뜰님이 각별님의 말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잠뜰님이 이번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었습니다. 많은 사건과 사람들이 잠뜰님의 생각과 마음을 조금씩 변화시켰고, 마침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죠.

“잠뜰 씨, 당신의 차례입니다. 어떤 옷을 의뢰하시겠습니까?” -#???

잠뜰님이 의뢰인들에게 하던 질문이, 이제는 잠뜰님을 향하게 되며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긴 여행을 마치고, 이제 원하는 그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겠지요. 

5. 기타 설정들

1) 다른 세계 사람들이 잠뜰님을 인식할 수 있는가?

기본적으로 잠뜰님이 들른 세계에서 의뢰인을 제외하고는 잠뜰님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만지지 못하거나 안보인다는 것이 아니라, 인상이 흐릿하기에 기억에 남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의뢰인이 잠뜰님과 대화한다고 하여 '저 사람은 왜 혼자서 떠드는 거지?'라며 눈총을 받을 일은 없습니다. 2화 첫부분에서 수현님을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 알 수 있죠.

다만 이게 모든 사람들한테 그런 건 아닙니다. 마력에 민감하다는 등의 특이체질을 가지고 있다면 잠뜰님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어요. 그게 그렇게 흔하지 않은 일은 아니기에 잠뜰님이 역참에서 자신과 부딪힌 남자나 지곤성에서 자신을 부른 남자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은 것입니다. 긴 시간을 돌아다니다 보면 심심치 않게 마주쳤던 상황이니깐요.

2) 다른 세계의 잠뜰님 

잠뜰님이 돌아다니시는 세계는 기본적으로 전부 잠뜰 TV의 상황극의 세계관이기 때문에, 어느 세계를 가든 잠뜰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의뢰인들이 잠뜰님을 보고 늘 비슷하게 놀라는 반응을 보였던 거고요.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인 잠뜰님도 처음엔 그 사실에 놀랐으나, 긴 시간동안 많은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지셨습니다. 

그 세계의 잠뜰님을 마주친다고 도플갱어 이론으로 위험해진다거나 그러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기획단계에서는 평행세계의 잠뜰님 옷을 만들어주는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3) 시간 고정

잠뜰님의 시간은 잠뜰님의 죄책감 때문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과, 그 사건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지요. 이제는 그 괴로운 마음을 벗어났으니, 다시 천천히 나이를 먹어 언젠가는 본래의 나이를 따라잡겠지요. 지곤성에서 만난 누군가가 말했듯 다시 평범한 나날을 되찾을 겁니다.

4) 기차

시간과 공간을 넘어 세계를 이동하는 이 기차는 보통 사람의 눈엔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습니다. #??? 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풀은 흔들지 않고 각별님과 잠뜰님만 흔든 이유는 그 바람이 기차의 마법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마법으로 이 세계에 존재하는 잠뜰님과 각별님만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다만 기차의 경적 소리는 잠뜰님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들을 수 있습니다. 1화 끝자락에 나왔던 주민이나 4화에서 잠뜰님을 기다리던 덕개님 처럼 말이에요.

6. 마치며

간단한 중편소설로 기획했었는데 어쩌다보니 시간과 노력을 무척 많이 잡아먹은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이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면 기쁘겠습니다. 이것 저것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다 이야기하다보니 말이 길어졌네요. 두서없는 긴 후기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Non-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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