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 플레이타래

[DAO] Maker help us all 5

오스타가-회색 감시자의 보관함

※ DAO 전체 스포일러 포함

※ 엘프 마법사 / 제브란맨스

조리 경의 단호한 칼질을 마지막으로, 첫 번째 어둠 피조물과의 전투가 끝났다. 네리아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네리아, 괜찮아?”

알리스터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푸른 포션 한 병이 들려있었다. 네리아는 희게 질린 손을 내저으며 그 도움을 거절했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놀라서.”

“놀라서 그런 마법을 던졌단 말야? 아가씨, 대단한 걸?”

대버스가 킬킬거렸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시커멓게 타죽은 헐록 시체가 놓여있었다. 어찌나 화력이 좋았는지, 원래 몰골은 알아보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전투 처음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난리지? 늑대랑 별 다를 것도 없다.”

“처음, 맞는데요....”

늑대는 괜찮았다. 세 사람이 시선을 끄는 동안, 비전화살로 적당히 빈 곳을 두들겨주면 충분했으니까. 그런데 어둠피조물은.

어둠피조물 하나가 그를 바라봤을 때 느껴진 오싹함. 반드시 너를 죽여버리겠다는 각오. 억지로 평정심을 우겨잡으려고 했지만, 그것도 잠시. 알리스터가 젠록의 화살을 피하려 몸을 기울인 틈을 타, 헐록 하나가 네리아에게 주의를 돌려버린 것이다. 

끼에엑. 네리아를 향해 달려드는 살의. 번뜩이는 두 눈. 일그러진 눈동자. 네리아는 참을 수 없었다. 저것을 치워버리고 싶었다. 

그 결과가 이 참사였다. 잠깐의 흔들림. 그 틈으로 빠져나온 마법은 헐록 하나를 산 채로 태워버렸다. 완전히, 바삭하게.

그 불꽃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싸우던 어둠피조물들의 시선마저 빼앗아버렸다. 먼저 정신을 차린 알리스터와 조이가 순식간에 헐록 둘을 해치워냈다. 네리아는 날뛰는 마력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파직. 화륵. 꽈광. 갖은 마법이 네리아 주변에서 터졌다. 섬뜩한 기운이 네리아의 피부 위를 넘실거렸다. 그 난장은 싸움이 끝났을 쯤에야 마무리되었다. 

네리아 주변에는 타고 얼고 조각난 파편들이 널부러져있었다. 이런 폭주는 어릴 때 이후 처음이었다. 네리아는 애써 숨을 골랐다. 

“너무 힘들면 좀 쉬었다갈래? 급한 일정은 아니니까.”

“아니요, 괜찮아요.”

네리아는 잔뜩 지친 얼굴로 스태프를 짚고 일어섰다. 고작 이런 일로 임무를 미룰 수는 없었다. 네리아는 단호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빨리 가죠.”

코카리 늪지대에는 어둠피조물이 많았다. 그 많은 어둠피조물을 처리하는 것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리아는 손쉽게 어둠피조물을 피해다니는 모리안의 솜씨에 놀랐다. 

“너도 회색 감시자였어?”

“네 머리 속에 든 건 장식이니?”

괜히 말했다가 구박을 들은 알리스터는, 그 후에도 종종 모리건에게 말을 걸었다. 숲에 사는 비인가 마법사라는 점이 그의 관심을 끈 것 같았다. 

모리건은 유창한 언변으로 알리스터의 말을 전부 걷어냈다. 조리 경과 대버스가 껄껄 웃음을 터트릴 정도로 맹렬한 공격이었다. 

“자네, 혹시?”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그렇기에는 너무 애뜻하게 말을 거는데요?”

“아니라니까!”

남자들이 신명나게 알리스터 두들기기에 동참하는 동안, 모리건은 능숙하게 알리스터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네리아는 그 태도가 신기했다. 

“넌 또 왜.”

“별 거 아니에요.”

“그러면 시선 치워. 얼굴에 구멍날 것 같으니까.”

네리아는 순순히 시선을 돌렸다. 모리건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은 매력적이었다. 오늘 본 늑대가 저러했을까. 아니면, 마바리라는 생명체가 저랬던 것 같기도. 

날뛰는 맹수같으면서도, 우아한 고양이같다. 마력이 거침없이 요동치는데, 그게 전부 시전자의 통제 하에 있는 것 같다. 언제나 잔잔하게 통제된 마탑의 마법사만 봐왔던 네리아에게, 자유분방한 모리건의 마력은 충격적이었다. 

나중에 또 만날 일이 있을까. 네리아는 고개를 저어 잡념을 털어냈다. 

 

 

어둠피조물의 피를 마셔라. 귀환한 네리아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네리아는 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의문조차 품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이는 달랐던 모양이다. 대버스가 쓰러지는 꼴을 본 조리 경이 난동을 부렸지만, 던컨은 날렵한 솜씨로 그를 죽였다. 시체는 자주 봐왔으나, 사람이 죽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흘러내리는 피, 빛을 잃은 동공, 힘없이 쓰러지는 육체. 네리아는 그 모습이 생각보다 충격적이라는 점을 인지했다. 파지직, 손끝에서 전기가 번뜩였다. 

“마셔라, 네리아.”

회색 감시단은 어둠피조물을 상대한다. 네리아가 회색 감시단에 대해 아는 사실은 그 정도뿐이었다. 애초에 바깥세계의 지식들은 수련생에게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혹시 모를 탈주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탑을 떠난 것도,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전투에 참여하는 것도, 전부 처음 겪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이 죽는 걸 보게 되다니. 

“네리아, 마셔야 해.”

네리아는 반쯤 넋을 놓은 상태로 잔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던컨이 기울이는 대로 피를 삼켰다. 익숙한 비린내가 입안에 맴돌았다. 치유마법을 익히는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맡은 냄새였다. 

나는 왜? 왜 마법을 쓰지 말아야 했지? 

낯선 의문과 함께, 시야가 기울어졌다. 암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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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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