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에커뮤

[내품커] 아쉬아드 퍽퍽3

엔딩B. 죽음에 앞서 희생을

* 참고 타래

시간은 흘러갔다. 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자료들은 그 기괴막측함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사방이 돌아버린 놈들 투성이었다. 마셸은 그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 마냥 웃었다.

오늘 저녁을 함께할 상대는 아쉬아드였다. 처음에는 그의 접근을 꺼려하던 사람들도, 마셸의 천연덕스러운 행동을 보고 난 후에는 긴장을 풀어버리고 말았다.

아쉬아드는 단장의 위엄을 지워버리고 지친 얼굴로 맞은 편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는 이 곳에서 배는 늙은 것 같았다. 마셸이 물었다.

“오늘은 소득이 어때?”

“전혀. 그 용머리를 부수는 방법 밖에는.”

“그 회색 감시단의 희생 말이지.”

용이 나타난 후, 조사단은 유적을 미친듯이 찾아헤멨다. 저 용이 지상으로 풀려나면 안된다는 명제에 모두 동의한 것이다. 그러나, 단서는 쉽사리 발견되지 않았고, 그나마 찾은 것이라고는 멜라바가 들고 온 회색 감시단의 흔적 뿐이었다.

[우리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 하나를 찾아냈다. 저 요사스러운 용의 머리를 부수는 것이다. 쉽게 손을 댈 수는 없으나, 우리 회색 감시자들이라면 가능하다.]

이 문구 하나로 많은 설전이 오갔다. 회색 감시단은 아주 태연스럽게 희생을 자청했으며, 심문회는 그들을 말릴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냈다. 헬라텐은 무심한 눈으로 그들의 다툼을 방관할 뿐이었다.

논쟁은 결국 회색 감시단의 승리로 끝났다. 심문회가 대안을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잘됐네. 일단 방법 하나는 나왔으니까 말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사하면 더 나은 방법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 말이 저 치들에게 통하냐고.”

회색 감시단은 이미 희생할 각오를 마쳤다. 누군가는 제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고, 누군가는 바깥 세계의 인연에게 쓸 말을 남긴다. 그 과정에서 타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방관뿐이었다.

“아직 붉은 리륨이 뭔지, 헬라텐이 왜 필요했는지 알아내지도 못했는데!”

아쉬아드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마셸을 바라보았다. 그가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장소는 이곳밖에 없었다. 질끈 깨물은 입술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감출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는 중얼거렸다.

“며칠만, 며칠만 더 유예를 준다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며칠 때문에 세상이 멸망하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다는 거겠지.”

이는 마셸에게 펼친 아쉬아드의 논리와 정확히 일치했다. 적은 희생으로 빠른 길을 갈 수 있는데, 왜 이를 부정하고 걸음을 늦추냐는 의문이다.

아쉬아드는 눈을 부릅뜬 채 손을 움켜쥐었다. 그 뿐이었다.

“그냥 받아들여. 희생해준다잖아. 내가 아닌 것만 해도 어디야.”

“그럴 수는 없다. 그럴 수는 없어….”

이 가련한 쿠나리는 이 상황에 처해서도 더 나은 답안을 찾으려고 애쓰는 모양이지만, 그게 쉬울까? 당장 내일 회색 감시단이 출정을 나갈 예정인데?

그러나, 알면서도 시도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 마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숙인 이를 끌어안았다.

“그래, 좀 더 고민해봐.”

아마 어렵겠지만.

날이 밝지는 않았다. 그들은 유적 안에 있었고,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회색 감시단은, 그들이 ‘아침’이라 정한 시각에 용을 토벌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결의에는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 단호한 꾸중도, 애달픈 애원도, 소리죽인 오열도 그들의 발걸음을 늦추지 못했다. 남은 이들은 그저, 뒤를 쫒을 뿐이었다.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모든 회색 감시자가 동시에 용머리를 친다. 장검이, 단검이, 대검이, 철퇴가, 마법이, 화살이 날아들었다. 용의 조각상은 순식간에 부숴져내렸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그 때였다.

“전원 전투 준비!”

아쉬아드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경륜 많은 용병출신 답게 회색 감시단의 이상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이다. 뒤이어 멜라바의 지시를 받은 헬라텐도 전투태세를 갖췄다.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저들은 사람이 아니다. 우리와 같은 몸을 하고, 같은 숨을 내쉬지만 전혀 다른 존재였다. 그건 현장에서 열외되어 멀리 떨어져있던 마셸조차 느낄 수 있을 만큼 괴이쩍은 무언가였다.

“전부 공격!”

단호하게 떨어진 명령. 심문회 단원들은 반사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마법이 떨어지고, 창칼이 부딪힌다. 그들은 생전의 기량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구사했다.

“야, 정신 차려!”

“이미 늦었어. 일단 죽여야 해!”

“하지만!”

짧은 망설임은 생사를 가른다. 비록 서로 경계하였으나, 함께 보낸 지난 시간이 사라지는 않았다. 잠시 품은 연민, 살짝 늦은 손짓. 그 틈을 타고 죽음이 쏟아졌다.

“정신차려!”

“치료사!”

“아파, 아….”

목을 베고, 심장을 찌르면 죽는 것은 동일했다. 그 과정을 아무나 할 수 없었을 뿐. 마셸은 순식간에 죽어나가는 심문회와 데일스 엘프를 보며 한탄했다.

“저거 저렇게 싸우는 거 아닌데….”

내가 저기 있었으면 좀 나았으려나? 다들 갑작스러운 사태에 정신을 놓고 있었다. 그나마 아쉬아드가 대장답게 주변을 제어하려고 애쓰는 것 같지만, 그의 직업은 혈전사. 피를 보면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직종이다.

아, 정신줄 또 놨네. 마이크와 겨루던 아쉬아드는, 제 몸에 난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표효했다. 그대로 도끼를 빙글 돌린 아쉬아드는, 있는 힘을 다해 마이크를 내리찍었다. 양옆에서 쏟아지는 공격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호쾌한 일격이다.

옆구리에 두 방. 개의치 않고 도끼를 든다. 입가에는 미소가 역력하다. 아쉬아드는 기쁘게 웃으며 적의 몸에 도끼를 내던졌다.

“휘유.”

마셸은 여유롭게 로완이 만들어준 물을 홀짝였다. 애초에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인원수부터 달랐는 걸. 얼마나 정신을 빨리 차리냐에 따라 피해량이 달라질 뿐, 크게 불리할 부분은 없는 전투였다.

하나, 둘, 셋, 넷, …. 생각보다 좀 죽었네. 대장 염려가 좀 크겠는데? 이번 탐사에 많은 기대를 걸었던 것 같았는데.

그 대장은 마침 마지막 두 적을 상대로 신나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마셸은 생존자들에게 조심스럽기 다가갔다.

“야, 뒤로 물러나. 대장 눈깔 돌아갔다.”

“마셸, 지금….”

“쉿. 조용히 뒤로.”

정신 못차린 놈들은 정신 좀 있는 애들을 붙여주고, 치료사는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그러다보면 적은 이미 박살났다.

마셸은 조심스럽게 걸음을 뒤로 물렸다. 저 맹수를 자극해서 좋을 게 없다. 광기에 젖은 맹수는 그대로 허공을 향해 표효를 내질렀고, 그리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 대장. 정신 들어?”

“…. 마셸.”

“오케이. 정신 들었네. 나 그쪽으로는 못간다. 대답이나 잘 해.”

“…. 그래.”

치료에 여념이 없는 생존자들을 뒤로 하고, 마셸은 끊임없이 말을 건넸다. 혈전사가 정신을 차리도록 돕는 절차였다.

“자. 임무 끝. 이제 우린 나갈거야.”

“그래. 보고서를 써야겠군.”

“으, 싫어. 난 보고서가 제일 싫더라. 그냥 대충 갈기면 되는 거 아냐?”

“다 정성을 들여야 하는 거다.”

“몰라. 난 보고서 잘 쓰는 애 한 놈을 꼭 데리고 다녔어. 용병이 싸움만 잘 하면 됐지.”

“그렇긴 해.”

꿈틀거림이 이어졌다. 마셸은 자신을 바라보는 붉은 시선을 느꼈다. 그 시선에는 마셸은 공감할 수 없는 감정이 지독하게 얽혀있었다.

“이게 최선인가?”

“글쎄.”

그건 마셸이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는 신이 아니었으므로. 하지만, 마셸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도 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걸 최선으로 만들어야지. 안 그래?”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그 외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