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차
조사
친애하는 막내에게
아수라가 나보고 가족이라는데? 이거 그린 라이트냐?
너무 그런 시선으로 보지 마. 안 봐도 훤히 보여. 너 놔두고 다른 녀석에게 간다고 삐질 거잖아. 근데 어쩌겠냐. 나는 너희가 너무 소중한데. 눈 앞에 있으면 죽여버릴 것 같단 말야. (이 문제로도 랄카라카와 싸우긴 했지. 걔는 왜 별것도 아닌 일에 그렇게 열불을 낸대?)
아수라가 지가 연약한 척 했다는데, 내 눈에는 똑같이 연약해보여서 잘 모르겠다. 그 근육으로 뭘… 할 수 있다고…? 단검은 잘 날리더만.
호기심에 뻥 터져 죽을 것 같다길래 궁금한 거 물어보라고 했더니, 진짜 우다다다 물어보대? 네 선배 중에 촌장 아들 꼬셔서 경비대장 된 애 있지? 걔 이야기 좀 해줬어. 내가 성기사 후보생이었다는 말도.
그러니까 묻더라고. 자기에게 궁금한 거 없냐고. 대답 알지? 당연히 없다고 했지. 당장 내일이면 죽을지도 모르는 애에게 어떻게 관심을 줘?
지금까지 살면서 너무 많은 사람이 스쳐지나갔더니, 이젠 사람 기억하는 것도 가물가물해. 이놈이 저놈같고, 저놈이 이놈같고. 이름이나 겨우 외우지, 무슨 일 있었는지는 잘 기억도 안나. 너희들도 이렇게 잊혀지길 바라.
어쨌든 귀엽긴 하더라. stai attento, la mia famiglia조심해, 내 가족들, 이라던가? 너무 귀여워서 꼭 끌어안아줬지 뭐야. 질투난다고? 그러게 너희가 적당히 사랑스러웠어야지.
조사는 좀 파란만장했다. 엘프식 자기희생장치니, 드워프식 자기희생장치니 하는 게 툭툭 튀어나오는데, 웬 애송이들이 지들이 쓰겠다고 달려들지 뭐냐. 회색 감시자는 다 이래? 내가 본 놈들은 왜 죄다 이모양이지?
내가 희생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 의지에는 감사하고. 여하튼 내용을 짜맞춰보면, 드워프식 희생장치로 저 용을 봉인하든가, 의식과 기도로 용을 묶은 다음 때려부수면 된다는 것 같은데, 역시 후자가 화끈하니 좋지. 전자는 좀 찜찜하잖아?
물론 자원자가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을거야. 한명으로 천년을 벌 수 있다는데 뭐, 개이득이지. 적어도 니네 죽을 때까지는 세상 멀쩡하게 돌아갈 거 아냐. 그거면 됐어.
물론 내가 희생하겠다는 건 아니고.
마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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