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에커뮤

[내품커] 아수라 쪽쪽 1

네가 먼저 선언한거야

*참고 타래

천신만고 끝에 귀환한 조사팀은 일단 하늘보루에 몸을 뉘였다. 보고를 위해 자리를 떠야했던 아쉬아드를 제외하고, 나머지 조사팀은 몸만 겨우 씻고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마셸이 아수라의 문을 두들긴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여, 아수라. 이제 깼나보네?”

“그렇지요. 마셸은 잘 주무셨습니까?”

“나야 언제나 잘 잤지!”

아침 운동도 하고, 샤워도 마쳤다. 아수라를 찾은 건, 이제는 떠날 하늘보루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아수라의 방에서 인기척이 들리길래 문을 두들겨본 것 뿐이었다. 마침 얘기할 거리가 있기도 했고.

“그나저나, 무슨 일이십니까? 급한 용건이라도 있어요?”

“물론! 날 책임져야지, 아수라!”

“네?”

못 들은 척 할까봐 일부러 크게 말했다. 정확하게 그 문장을 알아들은 아수라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마셸의 자안을 마주친 붉은 눈이 의도를 담아 물었다. 제정신이세요? 당연하지!

“제가 좀 피곤했나봅니다. 잘 자요, 마셸.”

“응, 꿈 아니고, 현실이야.”

“아니, 책임이라니, 그건 또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랍니까? 설마…, 우리 잤어요?”

안티바 애들은 책임 하면 생각이 그 쪽으로만 흐르나? 마셸은 고개를 저어 산으로 흘러가는 아수라의 생각을 차단시켰다.

“그럴리가! 내 용건은 하나야. 네 말에 책임을 지란 얘기지.”

“제가…, 무슨 말을 했죠? 지껄인 말이 너무 많아서 기억이 안 나네.”

그럴 줄 알았다. 마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애들은 기껏 말해놓고서는 기억이 안난다는 말로 후퇴하기가 일수였다. 마셸은 인내심과 친절함을 베풀기로 했다.

“나이도 젊은 게 벌써부터 기억력이 나쁘면 어떡해. 특별히 알려준다. 나보고 네 가족이라며.”

그제야 그 단어가 떠올랐는지, 아수라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선명한 적안이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고 있었다. 대충 해석하자면, ‘안드라스테, 맙소사' 정도려나.

“아니, 제가 그런말을, 네, 하긴 했었죠. 근데 그 말을 믿는다고요?”

“왜, 아냐?”

아니면 말고. 마셸도 어차피 크게 기대하고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다만, 네가 살아남으면 관심을 주겠다는 약속을 했기에, 그 약속을 지키러 찾아온 것이었다. 그의 관심은 늘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으므로.

한참을 방황하고, 제자리에 주저앉고, 벽에 머리를 박고, 여러 행동을 하던 아수라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가장 처음 꺼낸 문장은 아수라답지 않게 아주 정석적이었다.

“아니, 그 말을 믿어요? 그래, 내가 당신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죠. 나는.”

“응, 네 가정사정 불행하고, 보호자를 믿지 않고, 가족 잘 모른다고?”

그냥 놔두면 한도끝도 없이 땅을 팔 게 뻔해서, 마셸은 짤막한 문장 세 개로 아수라의 삶을 요약했다. 자질구레한 신상털이는 아수라가 준비되었을 떄 들어도 무방했다.

“어, 아니, 그니까, 네. 어떻게 아신거죠?”

많이 당황하긴 했나보지? 아니면 경륜있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던가. 그러고보니 아수라도 많이 어렸다. 까마귀단과 사교계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으니, 경륜있는 사람과 진지하고 친근하게 대화할 기회는 적었을지도 모른다.

“너 같은 놈 하루이틀 봤나. 척하면 척이지.”

용병 짓을 하다 보면,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된다. 고작 보호자 좀 싫어하는 것 가지고는 큰 흠도 되지 않았다. 존속살해범 따위는 코웃음치고 넘어가는 게 이 업계였다.

마셸은 내심 걱정스럽게 아수라를 살폈다. 얘가 이렇게 순해서야 사회생활 어떻게 하니…. 아수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면 제 말씀도 아시겠군요? 그거 거짓말이에요. 저는 가족이 뭔지 모르니까.”

흠, 그럴 것 같긴 했지. 마셸은 속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하지만 아수라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제 고백을 듣고도 자신을 가족이라 칭했다는 점이었다. 내 손에 죽을 준비가 된 거야!

설득은 어렵지 않았다. 마셸의 기억속에는 혀 하나는 끝내주게 잘 돌아가는 여인이 있었으므로.

“옛 단장이 그랬거든? 가족의 시작은 일반적인 선언이라고.”

누구나 태어날 때에는 의사를 표현할 수 없다. 그는 타인에 의해서 강제로 어떤 가족에 편입당한다. 진실을 알고 고민하게 되는 것은 이미 가족이 되어버린 후다.

“너는 네가 원해서 그 자의 가족이 됐어? 아니잖아. 그들이 널 가족이라고 지정했으니까 가족이 된 거지."

"그렇죠. 태어난 순간 도슨이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으니까요."

"너도 똑같네. 날 가족이라고 선언했어."

"하지만!"

지금까지 마셸은 그렇게 해왔다. 먼저 용병단원을 뽑고, 내 새끼라 이름붙인 다음, 최선을 다해 키웠다. 사이가 좋아지는 것은 한참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선언 다음은 맞춰가는 거래. 맞나, 안 맞나 거리를 재보면서 우리가 친밀해질 수 있는지 확인하는 거야. 그리고 안 맞으면 헤어지는 거지."

"그게 가족이라고요?"

마셸이 아는 가족은 그랬다. 옛 단장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싸가지없는 말투로 그의 가족론을 떠들고는 했다. 마셸은 그의 의견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가족도 관계래. 친구도 맞아가는 데 시간이 걸리듯, 가족도 맞아가는 데 시간이 걸릴 거래. 우리도 이제 가족이라는 관계를 시작해보는 거지. 어때? 간단하지?"

자, 선택은 네 몫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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