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뮤지컬

파란 끝, 빨간 시작, 빨간 시작, 파란 끝.

2023.11.25. 범초&윧해&청아홍


나는 더 깊은 거울에 내 고통을 떼어내 가둔다.

너의 위조가 등장하지 않는 깊은 거울. 허위의 바다가 끝없이 출렁이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추락이 이어지는 곳. 빨간 끝, 파란 시작, 파란 끝, 빨간 시작. 아무리 추워도 얼지 않는 것, 그 아래에 든 것이 칠흑같은 암흑이든, 무한한 생명이든 바다는 흐른다, 멈추지 않고 흐른다. 그리하여 거울 안의 거울 안의 거울에 갇힌 붉은 것은 자신의 바다를 찾아 헤매인다. 그 어떤 온도도, 소리도 허용되지 않는 공간에서 그는 다시 바다를 세운다. 그리하여 외친다, 나, 살아있노라.

붉은 것은 깊은 거울 속에서 꿈을 꾼다. 그것은 멈추지 않는 바다이며, 멈추지 않는 후회이다.

너는 매번 다른 낯으로, 다른 방법으로 나를 찾아온다. 한번은 옥중에서, 또 한 번은 일본 순사의 낯으로, 조선총독부 건축기사의 낯으로, 다방의 주인으로...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또렷하다. 왜냐하면 소리 없는 세상에서 목소리란 자신의 기억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같을 지언정, 그의 낯은 언제나 부분부분 조각나 있다. 내가 알던 그 낯인가? 아니, 아니야, 내 아이가 아니야. 그러나 그 조각 하나조차 버릴 수 없는 것이 붉은 것의 마음이다. 너는 언제나 후회와 고뇌, 절망에 가득 차 있다. 아무리 뒤틀린 낯이라 할 지라도 그런 아이를 떠날 수 있는 붉은 것이 과연 존재할까? 차마 너를 떠날 수 없는 깊은 바다가, 허위의 나를 감싼다.

... 그 때에 나는 어찌해야 했을까, 나는 너에게 더 많은 사랑을 보여주었어야 했을까, 너와 춤을 추어볼까, 너에게 다른 안온을 줄까. 허위로 된 나, 거짓된 너, 거울 속 조각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나에게 남은 마지막 양심일지도 모른다. 내가 다치게 한 너에게 약을 발라주고, 노래를 듣고, 춤을 추고, 사랑을 속닥여도, 너는 차마 사랑을 입에 담지 않는다.

종종 나는 너에 의하여 죽는다. 나는 생각한다, 네가 나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통이 이런 것이었을까? 이보다 심한 고통, 절망, 아픔이었을까? 아, 그랬다면 나는 정말이지 네게 크나큰 고통이었구나. 하지만 나는 또 생각한다, 네가 겪었던 사랑, 희망이, 지금 허위의 너와 겪는 이 기쁨과 같을까? 아, 그랬더라면...

이 꿈의 결론은 언제나 동일하다. 나는 너와 함께 다시 날아본다. 너는 다시 밝게 웃으며, 다시 꿈을 꾼다. 시와 소설을 다시 써보겠노라 말한다. 거울에 비친 검은 그림자조차 웃고 있다.

그리고 다시,

붉은 것은 깊은 거울 속에서 꿈을 꾼다.

그것은 멈추지 않는 후회이며, 이루어질 수 없는 자신의 희망이다.

그러나 붉은 것은 허위로 된 희망일지라도, 그 희망이 거짓되었을 지라도, 그것에 절망하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 없는 시간을 보낸다. 소리도, 악수도, 온기도 없는 깊은 거울 속에서.

더 이상 내 위조가 등장하지 않는 거울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을 거다.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검은 그림자는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한다. 깊은 거울에 갇혀버린 그의 그리움, 사랑, 열망, 증오. 검은 그림자는 그 중 어떤 것도 허용되지 못한 채다. 온기도 소리도 없던 거울 안에서 쫓겨나 이제는 그 모든 무게를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처지다. 그에게 허용된 붉은 보따리 따위는 없다. 그런 이야기는 검은 그림자에게는 사치일 뿐이다.

그리하여 거울에 상이 비치지 않는 그림자는, 자신의 허위가 등장치 않는 거울에 희망을 조각한다. 그것은 태초부터 거짓된 희망이요, 그 자신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텅 빈 껍데기다. 나에게 방법이 있어. 쓰자, 써보는 거야. 다시 시작해 보자, 그럼 살다간 흔적은 남지 않겠니... 마음 없는 텅 빈 단어들을 끊임없이 늘어두는 거짓된 희망에 넌더리가 난다. 그러나 기꺼이 그것에 손을 뻗어본다. 희망을 좇아본다. 그 끝에는 언제나 견고한 절망이 자리한다. 절망을 이기기 위해 다시 희망을 빚어내고, 다시 글을 쓰고, 다시금 견고한 절망이다. 더 깊어지고 더 단단해진 절망이다. 희망의 단어를 쏟아내는 자신의 허위가 증오스럽다. 아, 그제야 검은 것은 자신을 쫓아낸 그를 진정 이해한다. 허나 검은 그림자는 거울에 비치는 상이 없다. 자신 대신 거울에서 쫓아낼 허위의 자신이 없다.

너는 나를 초월해서 살아봐.

초월이라! 그래, 그를 초월하는 깊은 절망을 맛보기는 했다.

검은 것은 꼭꼭 숨어버린 자신을 찾아 나선다.

읽어주곤 하거든요, 그런데 얘 시는 들을 때마다 막... 슬퍼져요.

힘들게 찾아낸 그는 모든 기억을 잃은 채다. 너, 정말로 모든 걸 떠넘겼구나. 아니, 어쩌면 자신이 그를 진정 이해했기에 그는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해"는 "초"를 보면서 말갛게 웃는다. 나의 친구, 정말로 멋진 나의 친구.

"초"는 "해"에게 자신의 시를 들려준다.

나는 거울 속에 있는 실내로 몰래 들어간다.
나를 거울에서 해방하려고, 그러나 거울 속의 나는
침울한 얼굴로 동시에 꼭 들어온다.
거울 속의 나는 내게 미안한 뜻을 전한다...

네 시가 좋아, 천진한 얼굴로 그 애는 말한다.

내가 그 때문에 갇혀있듯
그도 나 때문에 갇혀 떨고 있다
내가 너 때문에 갇힌 듯
너도 나 때문에 갇혀
우리의 생은, 그저 감옥이구나

생이 감옥이라는 표현이 정말 슬퍼, 침울한 얼굴로 그렇게 말한다.

"해"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초"는 생각한다, 너 정말로 어린 아해가 되어버렸구나.

하지만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아, 바다를 가고 싶다고 한다. 바다, 그곳은 따듯한 바람이 불고, 따사로운 햇살이 있겠지. 거울 속에도 뼛속 깊이 박혀버린 가난은 떨쳐지지가 않았나 보다. 이 지하는 너무도 춥다. 거울 내부는 온기를 허용치 않는 주제에, 가난은 허용하였는가.

초는 해의 바다가 무엇인지 안다. 자신이 허위로 빚어낸 바다가 아닌, 진정으로 끝없이 흐를 그 바다는 깊은 거울에서도 죽지 않았겠지. 초는 해에게 약속한다, 우리, 바다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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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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