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같은 장난, 장난같은 운명
2023.11.23. 작초&윧해&람홍
생이 죽음을 통하여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오로지 생을 통하여 정의된다.
그리하여 태양은 생이 존재하도록 하지만, 생을 좇는 붉은 빛은 결코 그것에 닿지 못한다. 때때로 생을 좇아 저 수평선 너머로 나아가는 몸짓 그 자체가 생을 죽여버린다. 그러나 붉은 것은 알지 못한다, 죽음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삶이란 어떠한 것인지. 왜냐하면 그에게 죽음이란 가장 악독한 것, 가장 두려운 것, 가장 적막하며 텅 빈 곳이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온기도, 한기도, 기쁨도 슬픔도 고양감도 무기력도 머리를 들이밀 수 없는 완벽한 적막, 적막조차 차마 기척을 낼 수 없는 것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알아? 그들처럼 죽지 못해 안달하는 것, 그렇게 죽음만을 좇아 끝내 파멸하는 것...
그것을 들은 흰 아해가 답한다.
너, 정말로 무서운 게 뭔지 아니?
죽음은 생의 대척점으로, 생은 삶을 기반하여 존재한다.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두 다리를 땅에 딛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흰 아해에겐 그럴 터다. 길거리를 보라, 자신의 무게를 옮기기 위해 두 다리를 움직이고, 두 팔을 움직이고, 누군가를 다리 삼아 서로를 지나치는 이들을. 저마다의 단단한 다리로, 서로를 지나간다. 아해도 그곳에 있을 수 있다. 그들과 똑같이 단정한 옷을 입고,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은 다리와 도구로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러나 허울 뿐, 그리 말짱해 보이는 것은 다 망가진 껍데기 뿐이다. 실상 짧은 것, 긴 것, 비틀비틀 교차하여 이미 수많은 자들이 말짱히 걸어가는 길을 기댈 곳 하나 없이 걸어야 하는 절름발이 신세다.
눈동자, 날 다 안다는 듯 보는.
자신은 어떠한가, 연기란 두 다리가 없는 존재다. 허위로 존재하여 바람이 불면 훅 꺼질 아련한 가락이다. 그러므로 실체 없는 몸뚱어리에게 삶을 살 기회란 없을 따름이다. 다만 붉은 것과 검은 것은 흰 아해의 삶을 거울 속에서 지켜보거나 답습한다.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동자, 나를 모르는 해의 눈동자.
삶이 주어지지 않은 자신에게 이런 육신이 그려진 것은 또 얼마나 가련한지. 그리운 어머니, 아름다운 누이, 깨어진 첫사랑. 그것들의 낯을 하고 붉고 푸른 천으로 몸을 감싼다. 그리고 감히 생을 입에 담는다. 차마 삶을 노래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았으므로. 그러나 죽음은 생의 아름다움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아름다움과 기쁨이 모르는 가련한 최후를 알고 있으며, 추악함과 슬픔이 모르는 찬란한 순간을, 죽음만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에게 삶이란 유일한 반려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죽음, 숨 잃은 색소폰, 붉게 말라붙은 껍데기인 그것은 차운 심장과 숨으로 생의 찬란함을 바란다. 평생토록 닿지 못할 생을 사랑하고, 열망하고, 그리워한다.
... 아이는 보따리를 하나 만들어요. 거기에 사랑, 열망, 그리움, 증오를 모두 넣어요...
또 다른 연기는 어떠한가. 초. 해가 그리 부르더라. 초월한 자신, 거울 속에서 깎아내고 빚어낸 그의 상像. 붓으로 그를 칠하고 글자로 그의 감옥을 지었더랬지. 허면 그의 검은 육신은 어디에서 난 것일까? 절름발이 일생의 암흑 속? 거울이 비춘 희미한 상? 그의 영혼은 어쩌면 アホウドリ 일지도 모른다. 갑판 위에서 이 창공의 왕자는 서툴고 수줍어, 그 크고 흰 날개를 노처럼 가련하게 끌고 가누나! À peine les ont-ils déposés sur les planches, Que ces rois de l'azur, maladroits et honteux, Laissent piteusement leurs grandes ailes blanches Comme des avirons traîner à côté d'eux. (Charles Baudelaire, L'Albatros)
너 두렵지? 해가 널 고통으로 기억하는 게.
너 또한 침울할까, 너 또한 슬플까, 거울 속에서 그는 고요히 아해를 바라본다. 거울이 없는 방에도 마찬가지로 늘 그가 있다. 거울 뒤로 그를 비추어 보는 것인지, 자신의 영혼을 꿰뚫는 것일지 알지 못한다. 인생이란 휘청휘청 걸어가는 하나의 그림자이기에, 그의 인생은 단지 그림자에 불과했을까? 하여 거울의 상 또한 검은 그림자와 같이 절름발이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일까? 그 검은 이는 탄생부터 두 다리를 가졌으니, 붉은 것과는 달리 소리 없이 말을 하였고 손이 있어도 악수를 알지 못했으며, 실체 없는 글로부터 자신의 본질을 완성하였다.
날개 달린 유랑자여, 어찌 그토록 서툴고 어색한가. 한때 아름답던 그가 얼마나 우습고 추한가! 누군가는 파이프로 부리를 건드리고 또 누군가는 절뚝절뚝, 하늘을 날던 불구자 흉내를 내누나. Ce voyageur ailé, comme il est gauche et veule! Lui, naguère si beau, qu'il est comique et laid! L'un agace son bec avec un brûle-gueule, L'autre mime, en boitant, l'infirme qui volait!
유서, 유서, 또 유서. 죽고 싶다. 죽고만 싶어. 더는 버틸 수가 없다. 이제는 한계다... 그의 비명과도 같은 말들은 곧 그의 언어가 되었고 그의 언어는 곧 그의 글이었다. 하여 자신의 감옥으로 자신의 본질을 기워낸 검은 것이란, 얼마나 그와 다를 수 있었던가? 그럼에도 붉은 것은 검은 것을 사랑하지 아니할 수 없었으니, 죽음으로부터 고개를 쳐들어 써내고 써낸 글자들이기 때문이리라. 그 검은 글자들이 누런 종이를 박차고 날아오르기를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다. 아해가 빚어낸 초월, 이상이라면 글자를 날개삼아 훨훨 날을지도 모른다, 다른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내가 모르던 다른 길을...
지구가내무게에바스라진다.最後.여하한정신도발아하지아니한다.
거울로부터 쫓겨난 글자는 숨을 들이킨다. 뜨거운 숨은 생명의 증명이겠다. 그리고 곧장 곪은 폐에서 터져나오는 각혈. 생명의 반증이다. 차가운 공기가, 모든 소음들이 처음으로 상像이 아니게 된 상箱에게 무게를 견디도록 요구했으므로, 그는 곧 검붉은 껍데기를 찾아 입는다. 각혈, 각혈이오. 탄생으로부터 멀지 않은 아해에게는 없어야 할, 그러나 날 때부터 아해가 아니었던 이에게는 그 무게와 함께 피어나는 검붉은 탄생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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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아해가 아니게 된 해 卿이 거울을 부순다. 죽음은 오로지 생을 통하여 정의되나, 생은 죽음을 통하여 정의되는 것이 아니기에, 붉은 것은 검은 그림자를 따라 거울 뒤로 숨는다. 긴 그림자가 그에게 달라붙으니 마치 휘청이는 생과도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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