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살아남은 자

좀비 아포칼립스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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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다 죽였어!"

"지긋지긋한 것들, 이제야 숨 좀 돌리겠네."

좀비들로부터 도망치던 잠뜰과 공룡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재정비를 하자며 길거리에 주저 앉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이 곳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의 소소한 삶을 살던 작은 도시였다. 그러나 이제는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살아있는 것은 잠뜰과 공룡 뿐, 그 외에는 분명 죽었는데도 어떻게 움직이는 것인지 알 길이 없는 시체들 뿐이었다.

공룡은 목을 축이고는 빈 물병을 던져버렸다. 이제 이 아수라장에서의 생활도 끝이다. 저 관람차에 오르기만 하면 구조 헬기가 온다고 하였다. 그럼 곧 벗어날 수 있으리라. 옆을 보니 이 곳에서 동고동락한 잠뜰이 자신의 무기들을 손보고 있었다.

"총알 다 썼어. 그나마 쓸만한 건 이 칼밖에 없네. 공룡, 너는?"

"난...."

공룡은 자신의 권총의 탄창을 확인했다. 조금 시간을 둔 후, 공룡이 답했다.

"나도 총알 다 썼네."

"뭐? 너 그럼 무기가 하나도 없는 거야?"

"응, 그렇네."

"하아... 어쩔 수 없지. 일단은 올라가 보자."

잠뜰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관람차까지 남은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공룡도 그런 잠뜰을 따라 일어나 관람차 쪽으로 이동했다.

'미안, 잠뜰.'

총알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공룡의 주머니에 있는 총에는 사실 총알이 딱 한 발 남아있었다. 조금 전 좀비들과 대적할 때, 자신을 위해 일부러 한 발 남겨놓은 것이다. 그야 그럴 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니까. 누구든지 남을 희생시킬 지언정 자신이 죽고 싶진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할 총알이니, 잠뜰에겐 비밀인 것이다. 


"공룡, 잠시만."

"왜 그러... 우악!"

잠뜰은 위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있던 공룡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덕분에 공룡은 관람차의 고정장치 위로 떨어졌다. 그리 높은 높이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라 별로 아프진 않았다. 무슨 짓이냐고 따지려고 했는데 잠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좀비 냄새 나. 너 이제 무기 없잖아. 난 칼이라도 있으니 내가 올라가서 없애고 올게."

자신이 신호를 보낼 때까지 기다리라며 잠뜰은 사다리를 타고 관람차의 가장 위로 올랐다. 그제야 공룡도 무언가 썩어들어가는 악취를 맡을 수 있었다. 

'너는 대단하구나.'

공룡은 주머니에 있는 총을 만지며 생각했다. 위에 있는 좀비가 몇 명인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 무기 없는 자신을 지키겠다고 혼자 올라가다니. 나는 나 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은데, 너는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남을 먼저 지키겠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칼이 무언가를 베는 소리와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신발 굽으로 관람차를 가볍게 두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뜰이 보낸 신호라는 걸 알아들은 공룡은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날이 많이 상한 칼을 든 채로 약간 지친 잠뜰이 보였다.

그리고 잠뜰의 뒤쪽으로 꿈틀거리는 무언가도 보였다.

"잠뜰, 뒤!!"

"....!"

공룡의 외침에 잠뜰은 재빨리 몸을 돌려, 양팔로 칼의 끝을 잡고 자신을 덮치려는 괴물의 두 팔을 막아냈다.

'꽃좀비가 여기에 있었다니...!'

평범한 좀비보다 훨씬 강력한 꽃좀비는, 조금 전에 잠뜰이 상대한 좀비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강한 힘으로 잠뜰의 칼을 눌렀다. 어찌어찌 버티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가는 건 잠뜰 쪽이었다. 점점 칼이 잠뜰 쪽으로 기울어졌다.

'젠장, 어쩌지?'

공룡은 초조했다. 힘의 우위는 꽃좀비에게 있었고 잠뜰이 하는 건 단지 시간만 버는 것이었다. 잠뜰이 일순간 힘을 빼서 꽃좀비를 넘어뜨리고 좀비의 뒤에서 찌르면 승산이 있겠으나, 잠뜰의 뒤에 있는 자신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란 걸 공룡은 알고 있었다. 

주머니에 있는 총 생각이 났다. 단 한발, 자신을 위해 쓰겠다고 남겨둔 총알이 하나 들어있는 총이다. 그러나 공룡은 지금 관람차의 끝부분에, 그것도 앞에 있는 잠뜰과 꽃좀비 때문에 매우 좁은 공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여기서 총으로 꽃좀비를 쏘면 그 반동으로 자신은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꽃좀비가 잠뜰을 넘어뜨리는 순간 좀비의 뒤쪽으로 움직여 쏘면, 자신은 살 수 있을 것이다.

공룡은 총을 꺼내 손에 쥐었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나 자신이고, 이건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남겨둔 총알이야. 스스로 죽으면서까지 남을 구할 생각은 없단 말이야.

분명히 없었는데.

"잠뜰."

잠뜰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만 돌려 공룡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총알이 없다고 했던 공룡이, 총구를 꽃좀비에게 겨누고 있었다. 

"하지... 마..! 야, 공룡!"

꽃좀비의 힘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잠뜰은 외쳤다. 그 총이 특히 반동이 심하다는 것도, 공룡이 서 있는 곳이 총의 반동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위치라는 것도 잠뜰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공룡이 그 사실을 알면서도 겨누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몰랐으면, 저렇게 모든 걸 포기한 표정일 리가 없다. 

공룡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내가 살아남는 게 제일 중요하고, 그걸 위해서 남의 목숨을 희생시키든 말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내 앞에서 친구인 나 살리겠다고, 있는 힘껏 괴물에게 맞서고 있는 너를 그냥 내버려 둘 순 없잖아. 

"행복해라."

꽃좀비를 막던 잠뜰의 칼이 부러지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짧은 총성 후, 좀비가 괴성을 내질렀다. 총에 맞고 괴로워하던 꽃좀비의 움직임이 이내 멈췄다.

 

그리고 바람이 불었다.

땅에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잠뜰은 관람차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무엇이, 아니, 누가 떨어졌는지는 돌아보지 않아도 알았다. 잠뜰은 칼을 으스러질 정도로 쥐었다.

"왜 거짓말 했어."

원망의 대상은 이제 그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아는데도 잠뜰은 중얼거렸다. 흙먼지와 핏자국으로 얼룩진 소매에 어디선가 흐른 물이 자국을 내며 떨어졌다. 비는 내리고 있지 않았다.

"총알, 없다고 했잖아...."

해 질 녘이다. 하루의 끝을 알리며 붉은 노을이 타올랐다. 피처럼 붉은 태양 빛이 하얀 관람차를 비추어 온통 핏빛으로 물들였다.


누군가 잠뜰의 어깨를 두드렸다. 구조대원이었다. 그는 잠뜰을 살펴보곤, 부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생존자는 당신 혼자입니까?"

"...예."

갈라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구조대원은 잠시 잠뜰을 바라보더니 알겠다며 헬기에 타라고 했다.

잠뜰이 탄 헬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바람이 잠뜰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무언가 타고 썩은 냄새가 뒤엉킨 악취가 났지만 잠뜰의 표정은 일절 변화가 없었다. 이미 그 냄새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리라. 총알이 없는 빈 총을 두 손으로 꾹 쥔 채, 잠뜰은 머리 위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차마 아래를 볼 용기가 없었다. 노을의 마지막 붉은 빛이 사라지고, 도시는 곧 어둠에 잠겼다. 

그렇게 잠뜰은 살아남았다.

혼자,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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