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지금부터 마법을 믿게 해줄게
마법은 기적이 아니다
“다 왔다, 내려갈게요.”
고요한 밤거리에 마법사는 소리도 없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는 손을 맞잡은 잠뜰이 다치지 않게 내려오도록 조심히 받아주었다. 덕분에 무사히 내려온 잠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건축양식이 다른 나라로 건너온 것 같았다. 사람이 없는 조용한 밤거리는 가로등 불빛만 듬성듬성 켜져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래서, 여긴 어딘데?”
“내가 오늘 게임에서 했던 말 기억해요?”
“오늘 게임? 거기서 플레이하던 거 네 대역이었다며. 진짜 네가 말한 건 엔딩룸에서 네가 이기겠다고 하고 냅다 총 쏜 것밖에 더 있나?”
“하지만 중간중간에 상황도 직접 체크할 겸 관리자 권한으로 그 플레이어 계정에도 간섭했었죠. 당신도 눈치챘으면서 왜 이래요?”
“아…중간에 묘하게 더 재수 없어진 느낌이 들긴 했지. 근데 그 사람이랑 뭐 한두마디를 했어야지, 어떤 걸 말하는 건데?”
공룡은 ‘재수가 없다’는 부분에서 언짢다는 듯 표정을 구겼다. 잠뜰은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며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저를 째려보는 눈을 흘려넘겼다. 공룡은 하아-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신을 집으로 데려다 줄 마법사라고 했잖아요.”
공룡의 말에 잠뜰은 잠시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내 집은 방금 하늘을 날아서 떠나왔잖아? 이의를 제기하는 잠뜰의 표정에도 공룡의 표정은 변화가 없어, 잠뜰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옛날에 살았던 집 말하는 거야? 네가 그 집은 무너졌다고 그랬잖아. 애초에 그 길목인 것도 아닌 것 같고.”
“집이 살던 공간을 의미하는 것도 맞지만, 그 의미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럼 또 뭐가 있는-”
“…아가씨?”
그것은, 실로 몇 년 만에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어린 시절 매일 듣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하고 다정하여, 그 목소리가 아닐 거라고 부정하지도 못했다. 그 목소리는, 공룡에게도 날카롭게 경계를 세우고 있던 잠뜰의 마음의 벽을 단번에 허물어버렸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드문드문 가로등이 켜져 있는 낯선 거리 위, 모든 것이 낯설던 그 공간에서, 단 둘뿐인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가씨…!”
너무나도 소중하고 그리워했기에 꿈에서도 조금씩 아껴서 보던 두 사람, 덕개와 라더가 서 있었다.
마법은 기적이 아니다
4. 지금부터 마법을 믿게 해줄게
*음악을 틀어주세요!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덕개와 라더를 발견한 잠뜰이 첫 번째로 취한 행동은, 공룡의 몸 뒤로 숨는 것이었다. 생각을 하고 행동했다기보단 본능적인 움직임에 가까웠다. 오른손으로 공룡의 오른쪽 어깨를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예상치 못한 사람의 등장에 심장 박동이 조금 빨라졌다. 왜? 어떻게? 어째서? 어떻게 해야 하지? 의문이 머리를 가득 채우기도 전에, 공룡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뭐해요?”
“너야말로 뭐하는 거야?? 네가 데려온 거야?”
“정답. 당신 찾아내는 것보단 쉽더라고요.”
“내가 만날 생각 없다고 했잖아!”
“정말요?”
바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나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말로, 앞으로 어떻게 되든, 정말 단 한 번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다시 보고 싶은 거랑, 봐도 되는 거랑은 다른 거라고!”
“아니요, 그런 이야기가 맞아요.”
“말장난할 생각 없어! 그냥 돌아-”
“잠뜰, 나 봐봐요.”
공룡은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잠뜰의 손을 왼손으로 조심히 붙잡으며, 몸을 돌려 잠뜰을 바라보았다. 손목의 맥박으로 잠뜰의 빨라진 고동과 함께, 도망쳐버리고 싶은 잠뜰의 감정이 전해져왔다. 공룡은 손에 부드럽게 힘을 주어 그 감정과 고동소리가 더 커지는 것을 막았다.
“나는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고, 그걸 내가 결정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게 정말 당신의 마지막이라면, 후회할 일을 남기지 않는 게 나아요. 경험담이니까 들어요. 나는 그날 당신을 그렇게 보내고 정말, 아주 많이 후회했거든요. 그리고 아마 당신도, 그날 그냥 그렇게 나와서 전혀 후회하지 않았을 거라곤 생각 안 해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빈 공간을 만들어낸 여백이 공룡의 말에 대한 긍정을 나타내었다. 공룡은 잠뜰이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기다리듯 가만히 있다, 그녀의 눈치를 조심히 살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만약에… 정말 만약에 말이에요. 당신이 이게 마지막이 아니게 선택한다면…지금 말하지 않으면, 그땐 너무 늦잖아요.”
머뭇거리며 흘러나오는 공룡의 문장엔, 잠뜰의 선택에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밤하늘 같은 눈이 진중한 빛을 띠며 잠뜰을 향했다.
“어떤 길을 걸어가든, 어떤 선택을 하든. 과거 그날의 일은 마무리 짓고 가요. 그렇지 않으면 어떤 걸 선택하든 후회하게 될 거예요. 우리 이미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후회했잖아요. 더는 후회를 남기지 말아요.”
그 말과 함께, 공룡은 잠뜰의 등 뒤로 이동하여 그녀의 등을 살짝 밀어주었다. 그에 밀려 몇발짝 앞으로 나와버린 잠뜰 당황하며 뒤돌아보았다. 조금 떨어지게 된 공룡은 싱긋 웃으며 한 손을 흔들어 보였다.
“다녀와요.”
눈과 입을 모두 사용하여 진심을 담은 웃음. 밤하늘과 옅은 가로등 불빛 아래 그 표정을, 잠뜰은 잠시 눈에 담았다. 다정한 믿음이 전해져왔다. 그 마음은 망설이던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고개를 돌아볼 용기를 주었다.
한 발자국씩 조심히 걸음을 옮겼다. 별빛 가득한 밤하늘, 그 아래 듬성듬성 켜진 가로등 불빛. 하나의 가로등이 마치 징검다리 같다. 불안하고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어둠 속으로 빠져버릴 것만 같아서, 건너기가 차마 두려워 차라리 머무르는 게 나을 것 같은 길이었다. 그러나 잠뜰은 그 옅은 불빛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한 발자국 떼어낼 때마다 점점 더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홀로 남은 방 안에서 망연자실하던 날, 세 번째로 옮긴 나라에서 숨죽여 울던 날, 과거 저택을 처음으로 박차고 나왔던 날, 침대에 쓰러져 있던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려봐 주던 다정한 얼굴. 따뜻한 차를 가져다주던 얼굴. 잘 자라며 인사해 주던 얼굴…
“아가씨, 정말, 아가씨군요....”
마지막 걸음을 옮겨 두 사람 코앞에 서게 되었을 땐, 그 사랑과 다정이 가득한 얼굴의 기억만이 가득 떠올랐을 뿐이었다. 그 다정함에 푹 빠져 행복함을 가득히도 느낄 수 있던,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과 똑같은 표정 말이다.
“…그동안, 잘…아, 아니…”
어색한 인사를 건네려다, 잠뜰은 그대로 말을 얼버무렸다. 그렇게 도망치듯 나온 주제에, 일방적으로 자신으로부터 둘을 쫓아낸 주제에, 이제 와서 잘 지냈냐고 묻는 건 너무 뻔뻔하지 않을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우물쭈물하던 그때, 그 맘을 아는 듯 라더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는 그간 잘 지냈습니다. 다른 가문으로는 이동하지 못했어요. 이 정도 베테랑 경력이면 사실 어디서든 받아주겠지만, 아직 아가씨 말고 다른 분을 섬기고 싶진 않았거든요. 덕개 이 녀석이랑 같이 다른 나라로 이동해서 나름 잘 지내고 있었어요. 노후 걱정하진 않아도 될 정도로. 뭐 저희가 그래도 꽤 유능하잖아요, 아가씨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분위기를 조금 풀어보려는 듯 농담이 섞여 있었다. 어느새 저도 모르게 작게 웃음이 터져 나와, 확실히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이어진 근황은 덕개의 입에서 나왔다.
“아가씨 없이 저희끼리도 잘 지내고 꽤 익숙해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그때 저택에서 함께 지냈던 시간을 잊기 어렵더라고요. 돌봐 드려야 할 분이 안 계시니 예측 불가능한 변수도 거의 없어 나름대로 생활을 잘 꾸려가긴 했지만, 그 생활이 저택 때보다 마음에 들었냐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아쉬운 소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지내고 있었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덕개는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잠뜰을 바라보았다. 괜찮다는 그들의 말에 잠뜰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걱정하던 물음이 해결되니 자신이 직면한 상황이 조금 더 뚜렷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잠뜰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떼었다.
“…공룡이 뭐라고 하면서 아저씨들을 불러냈는지 모르겠지만, 저 여기 자의로 온 거 아니에요. 두 사람이 여기 있다는 거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거예요.”
“네, 알아요. 저희 아가씬데, 모를 리가요. 하지만 지금 여기서, 저희랑 이야기하겠다고 결정해 주신 건 아가씨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어요.”
“….”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이 말해줄 수 있지? 시선을 피하고자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렇게 말을 내뱉고 연락도 없이 사라진 지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 어떻게 여전히 자신의 기억과 똑같은 표정으로 말을 해줄 수 있는 거지? 이런 사람들을 앞에 두고, 나는 또다시 도망칠 수 있을까?
“저…하고 싶은 말 있어요.”
현실로부터 더 이상 눈을 돌릴 수 없다. 10년, 길었다. 돌아갈 곳은 없다고 생각하며 나아가고 도망치기만 하였던 시간. 절망에 파도처럼 휩쓸려 잠겨버린 시간. 내가 10년 동안 도망쳐온 시간은 옳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혼란스럽고, 확신도 없는 상태에, 무엇이 옳은지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도 없다. 그대로 나아가고 싶다가도 이대로 가라앉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저택에서 나올 때 한 말… 진심이 아니었어요. 아니, 진심은 맞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그래서 뚜렷한 걸 하나 하기로 했다. 이미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더 도망칠 곳도 없는 곳에서, 남은 미련을 하나 해치우기로 하였다.
“정말 힘들었었어요. 새로운 약을 시험하는 것도 힘들었고, 매번 기대한 마음이 부서져 내리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고, 또다시 실패한 거로 인해서 아저씨들이 안쓰러워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렇지만…힘들어도, 열 살이 된 이후로 십년 동안 그래도 계속해서 웃으면서 성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힘든 일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그 집에서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전부 그 집안사람들, 내 가족들 덕분이었어요. 내가 어떻게 되었든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사람들과, 지나치게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막아줄 수 있는 애정어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요.”
잠뜰은 알았다. 그 저택 안에서 지낸 모든 이들은 자신의 가족이었다. 피가 이어지지 않았어도 오랜 시간 애정을 가지고 애정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아껴주었던 사람들뿐이었다. 그런 가족들 덕분에 고통이 찾아와도 절망에 가라앉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랬기에…그 저택에 더 있기 두려웠어요. 그곳에서 나는 무척 사랑받았고 행복했지만, 그렇지만…”
그랬기에 더욱 두려웠다. 이처럼 다정한 사람들만 가득한 집이니까, 서로를 아끼는 좋은 사람들만 가득한 곳이니까. 그렇다면.
“그 저택에 내가 없다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너무 두려웠어요.”
자신이 불청객인 게 아닐까. 그 짧은 문장 하나가, 마음속에서 계속 떠올랐다.
“저택에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할 때, 무척 행복했어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고, 무슨 일이 있든 내 편이 되어주었으니까. 한 명밖에 없지만 부르면 만일 제쳐두고 언제든 달려와 주는 소중한 친구도 있었으니까. 내가 하루라도 약이 없으면 안 되는 몸으로 태어났는데도, 그 저택에서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잖아요. 그래서 책에서나 볼법한 그런 몸이었는데도, 저는 늘 웃으면서 지낼 수 있었어요. 하지만… 하지만, 깊은 밤 혼자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있으면, 늘 불안했어요. 약을 바꿔도 차도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내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있었지만, 그런 것보다도… 내가 여러분의 짐만 되는 것 같아 싫었어요.”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잠뜰의 진심이었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었다. 말하는 순간 그나마 웃음으로 지키고 있던 자존심이 모두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몸은 약해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 많아도, 그래도 씩씩하고 강한 사람이라 불리고 싶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따위 스스로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나도 내가 나을 수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어요. 주변에서 다들 그렇게 나를 믿어주고 도와주니까 불안한 생각 따위 다 달아나는 것 같았어요. 내가 행복하게 웃고 떠들며 돌아다닐 미래를 꿈꾸는 날이 많아져서, 치료를 계속 받아도 불안하지 않았었어요. 증상이 악화되어 결국 남은 삶을 침대에만 지내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래도 최악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나를 이렇게 바라봐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살아도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병을 극복하는 데 실패하고 몸이 다 망가져도, 여러분은 날 배신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다정한 사람들, 다정한 나의 가족들.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줄 거라는 걸 온몸으로 알려주는 사람들. 자신이 받아도 될지 의문이 생길 만큼 커다란 애정을 받았다. 그 애정으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안도하기만 하니까 내가 더 싫어졌어요.”
그러나 그 커다란 애정과 다정한 사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나아지지 않는 자신의 상황 때문에, 그 커다란 애정을 받기가 두려워졌다.
“내가 좀 더 노력했다면, 좀 더 건강해졌다면, 이런 몸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면, 마법 같은 걸 배워서 쓸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가족들한테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면…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싫어져서 참을 수 없었어요. 내가 이런 몸이어도 나를 위해 한없이 희생해 주는 가족들을 보고 있기가 괴로웠어요. 날 사랑해 준다는 걸 잘 아니까, 늘 내 편이 되어줄 걸 아니까… 그 안락함에 내가 나아가길 포기해 버릴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렇게 안락함에 빠져 가족들을 지금보다도 더 힘들게 해도 그 힘듦에 의도적으로 눈을 돌리게 되기라도 한다면, 그땐 정말 내가 너무 싫어질 것 같았어요. ”
죽는 건 두렵다.
그것보다 두려운 건 가족들에게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눈초리 받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자신이 정말로 쓸모없는 사람이 맞아서 평생 가족들에게 기대기만 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저는,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가족들이 자신을 버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고, 그걸 이용해서 이대로 스스로의 절망에 머물러 버릴까 두려웠다. 결국 자신이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고, 양심 없이 다른 사람한테 평생 들러붙어 살아야 할까 봐 두려웠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안겨주는 것이 죽는 것보다 두려웠다.
“여러분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아저씨들이 날 보살펴야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랐어요. 내가 내 힘으로 나를 지키고, 아저씨들한테 떳떳하고 싶었어요. 나는…나는 그래서, 아저씨들이 보고 싶고, 그 품이 그립고, 거기에 머무르고 싶었음에도. 그곳이 정말 소중했고,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었음에도… 계속 그곳에 머무르면 몸을 영영 침대에서 일으킬 생각도 않고,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의지만 하고 살까 봐 두려웠어요. 그래서 그날 저택을 떠난 거예요,”
그래서 도망쳤다.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뛰쳐나왔다. 괜히 마음이 약해질까 봐 모진 말로 사람을 다 떼어놓고 나왔다. 자신의 서툰 거짓말에 속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는데도 그저 뛰쳐나왔다. 남들이 들으면 고작 그런 거로 도망쳐나오냐는 소리를 듣는다 하더라도 상관 없었다. 그 누구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 홀로 남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남겨진 가족들은? 정말 이거로 괜찮은 게 맞을까? 정말, 공룡 말대로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던가?
그럴 리가.
“이미 많이 늦었지만, 공룡 말대로 더 늦어버리면 안되니까…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싶어요.”
정답은 진작 알고 있었다. 망설이고 고민하는 와중에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인정하기에 두려웠다.
마법 같은 밤하늘 아래 마법사가 손을 잡고 이끌어줘서야, 겨우 솔직하게 마주 볼 용기가 생겼다.
“그날 상처 주는 말을 해서 죄송해요. 이렇게 하나하나 다 말하는 것도 겁이 났고, 속마음을 다 말한 후 아저씨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두려워서, 쓸데없이 자존심을 부리고 최소한의 진실만 말해버렸어요. 그 말로 상처받으실 걸 알았는데도, 이런 말 하고 나오기엔 너무 부끄러워서 그렇게 말해버렸어요. 죄송해요. 많이 실망하셨죠.”
이것으로 모든 진심을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나. 잠뜰은 긴장된 채 주먹을 쥐었다. 내 말대로 실망했다던가. 아니면 한 번도 실망한 적 없다는 듣기 좋은 거짓말이라도 해줄까. 그게 실제로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자신에게 그 말이 얼마나 와닿을까.
무슨 말을 할까. 그리고 무슨 반응을 해야 할까. 한참을 덕개와 라더의 입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덕개의 입이 열렸다.
“아가씨, 혼자서 정말 고생 많으셨네요.”
아.
그렇지. 이 사람들은, 내 가족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기 전에, 내 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들이었다.
“고…생은요, 그냥, 제가 선택한 거니까, 제가…책임졌어야 했으니까…”
“그걸 다 포함해서 고생 많으셨다는 겁니다. 혼자서 생각하신 거, 혼자서 결정해서 움직이신 거, 그 결과에 책임지신 거. 후회하신 시간 전부를 다 포함해서. 정말, 잘 버텨주셨어요.”
“….”
입을 꾹 다물었다. 꾹 눌러서 울컥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을 막았다. 필사적으로 막아 버텼다. 그렇지 않으면 서 있는 것조차 힘들 것 같아서. 그런 잠뜰을 바라보던 덕개는, 부드러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가씨, 저희가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십니까? 비 오는 그날, 전 그저 길거리에 아무런 의지 없이 앉아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더 이상 하고 싶은 것도, 해야만 할 일도 없는 채로, 그저 주저앉아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의지 있게 움직이는 것으로 가치가 정해지고, 남에게 쓸모를 증명해야만 의미가 있다면, 왜 그날 저를 그 길거리에서 거둬주셨습니까? 왜 아무것도 모르던 절 저택으로 들여서 글을 가르치시고 무술을 알려주셨습니까? 그 과정에서 제가 잘 못하는 날이 있었을 때도, 왜 절 내치지 않으셨습니까?”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날이었다.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생각하였다가 그것마저도 의미 없다고 생각하던 날에,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온갖 일을 하느라 투박하고 거칠어진 커다란 손을, 다섯살도 안 된 작은 손이 붙잡아주었다. 온종일 내린 비로 차가워진 몸을, 그 작은 손의 온기가 데워주었다.
“의지하는 게 뭐가 어때서요? 저도 아가씨께 잔뜩 의지하면서 그 저택에서 자랐답니다. 길거리에서 한순간에 번듯한 저택으로 온 저에게, 아는 이도 없고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제가 믿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날 비 내리던 길거리에서 제 손을 잡아주신 아가씨뿐이었거든요. 그리고 아가씨의 그 작은 웃음이, 제가 버틸 수 있게 해주었어요. 이런 제가 한참이나 어린아이한테 의지했다고 비웃으실 건가요?”
잠뜰은 세차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어떤 사람이 감히 자신의 가족을 고작 그런 이유로 비웃는다는 것인가. 남도 비웃게 못 할 텐데 하물며 자신이 웃겠는가. 즉각적인 잠뜰의 반응에 덕개는 부드러이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가씨께서도 아시겠지만 저는 길거리에서 자랐죠. 그곳에서 살아야 할 명확한 이유도 없이 그저 오늘을 버티기만 급급한 나날을 보냈어요. 다음날을 생각할 여유 따위 없었죠. 그랬던 저를 아가씨께서 발견해 주셨고, 이 저택으로 데려와서,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해주셨어요. 단순히 비를 피할 곳을 주었다거나 배를 곯게 해주지 않았다는 게 아니에요. 그런 것쯤은 방식은 달라도 해결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아가씨께서 그 작은 손으로 제 손을 잡아주셨기에, 넘치도록 따스한 온정을 받았고,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할 수 있는 법을 알 수 있었어요. 제 힘만 믿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는 법을 배우고 그 방식으로 웃을 수 있게 되었어요.”
과분한 다정함을 받았다. 날을 세우지 않아도 되고, 일부러 험한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 소소한 일상에서 사람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다정함을 배웠다. 배웠기에, 이제 그 다정을 남에게도 줄 수 있게 되었다.
“그 저택에서 있었던 일이 모두 좋았다고 하면 당연히 거짓말이겠죠. 실망한 일도 있었고, 억울함을 속으로만 삭여야 했던 날도 있었어요. 그날들의 원인이 웃기게도 절 구해주셔서 제가 유일하게 의지하였던 아가씨인 적도 더러 있었답니다. 아가씨께서 친 사고를 수습하느라 하루 종일 고생하는 날도 있었고, 아가씨가 아프신 날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를 원망한 날도 많았거든요. 하지만 아가씨.”
많은 일이 있었다. 긴 시간 동안 좋은 감정만 남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가족이어도, 가족이기 때문에 작은 원망 정도는 남아있다. 하지만 그 원망을 포함해서 결국 행복한 기억이 가장 크게 남은 것이, 그 저택에서의 그들의 삶이었다.
“저는 아가씨를 만난 적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아가씨를 만나서 의지할 수 있고, 아가씨께서 저를 의지하고, 이것저것 부딪치면서 함께 여기까지 온 시간들이 제게 무척 귀중하였습니다. 저를 거두셨을 때 큰 이유가 없으셨을 수도 있고 그래도 괜찮습니다. 작은 계기로 저희가 만나서, 감히 가족같이 여긴다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 저택에 들어갈 수 있어서,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한 때 길을 잃어 방황하다 배운 따스함이었기에, 이제는 그 따스함을 알려준 후 방황하는 당신에게 다시 알려주고 싶다. 그랬기에 아가씨를 찾아오겠다는 마법사의 말에, 그의 마법에 동참하였다.
“아가씨, 저는 이 녀석과 다르게 아가씨께서 선택해서 이 가문 사람이 되지 않았죠.”
라더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며 입을 열었다. 꼿꼿한 그의 자세에서, 오랫동안 집사장으로 일해왔던 세월이 보였다.
“저는 아가씨께서 태어나기 전부터 이 가문에서 일했고, 아가씨께서 태어나셔서 자라는 모든 순간을 가까이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제가 선택을 하면 이 가문을 떠나고 다른 가문으로 갔을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애초에 제가 처음 이 가문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그저 좋은 근무 환경을 찾아 왔을 뿐이니까요. 그런데도 제가 아가씨께서 성년이 되실 때까지 이 가문을 떠나지 않은 것은, 이 가문과 아가씨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첫만남은 마님의 품에 안겨있던 포대기였다. 그랬던 아이는 포대기에서 벗어나 꼬마 아가씨들을 위한 드레스를 입었고, 아카데미 교복을 입고, 입원용 환자복을 입기도 하고, 상복을 입고, 마지막으로 가주의 망토를 입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라더의 옷은, 잠뜰 가문 집사장의 옷 단 하나였다.
“다른 곳을 찾아가려고 하기엔 이미 이 가문에 정이 너무 많이 들어버렸어요. 그것은 단순히 일이 많아졌다던가 그런 것 정도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아가씨께서 아프시지 않은 채로 태어나셨다면 조금 더 일이 쉬웠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면 또 다른 어려움은 있었을 거고, 또 아가씨와 갈등할 일은 따로 있었을 거예요. 물론 아가씨의 상황은 그런 일반적인 가정집 갈등보다는 더 힘든 일이겠지요.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겨우 그 정도 힘든 일 때문에 제가 가문과 아가씨를 포기할 일도 없고, 저는 그런 일에 짓눌려 무너질 만한 사람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걸 이겨낼 방법을 아가씨를 돌보면서 키워냈거든요.”
조금 더 빨리 이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가씨는 자신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토록 작았고, 그랬기에 제멋대로 달려가고 그만큼 강했던 아가씨는, 침대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속을 알 수 없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은 부러 밝은 척을 하곤, 어떤 날은 무기력하게 누워있기만 하였다. 제 딴에는 속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한평생을 돌본 집사의 눈을 어떻게 속이겠는가. 그래도 믿고 기다려주려고 따로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네게 잘 전달되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 더 빨리 네게 말해줬어야 했다.
“이 가문 말고 다른 가문을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가끔 해봤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가문에서 아가씨를 돌본 그 시간도 저이고, 그 과정에서 변화하고 성장한 모습도 모두 제것입니다. 아가씨께서 한순간에 포기하라고 해서 내려놓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래봐도 저는 ‘집’을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집사장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금 다시 아가씨를 만나러 온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네 말처럼 그리고 저쪽 도련님의 말처럼, 여기서 더 늦어지기 전에 말하러 왔다. 반짝반짝 빛나다가도, 때로는 약해지고, 어떤 길을 선택할지 망설이는 네게, 어느 쪽이든 괜찮다고.
“아가씨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셔도 괜찮습니다. 끝까지 나아가보고 싶으시다면 계속 나아가세요. 중간에 벽에 부딪혀 주저앉아도 그건 꼴사납거나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나아간 걸 후회하고 다시 돌아와도 그것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가 봐온 아가씨께선 그 과정에서조차도 배우는 분이셨으니까요. 아가씨를 잘 모르는 이들의 의미 없는 평가질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가씨께서 걸어가는 길을 그 누구도 평가할 자격 따위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헛소리따위 잊을 수 있게 저희가 더 크게 소리내어드릴 게요.”
괜찮아.
네가 어떻게 자라왔는지 아는 우리는, 어쩌면 네가 모르는 네 모습까지도 전부 알고 있어. 스스로 갈 길을 고민하고, 힘들었던 길을 걸어오면서, 계속 고민하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여온 너는, 정말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아.
“힘드시다면 그만 나아가셔도 됩니다. 치료받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건 나태하거나 비겁한 게 아닙니다. 아가씨께서 얼마나 열심히 싸워오셨는지 저희는 전부 봤으니까요. 그럴 땐 그냥 저희에게 기대셔도 돼요. 아가씨라는 존재가 저희에게 짐이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아가씨가 없어서 저희가 더 행복해질 일 따위는 없어요. 한 가문 아래에서 지내온 저희라면, 가족이라면, 당연한 겁니다.”
잠뜰의 손 끝이 떨렸다. 감정이 흘러넘치지 않게 꾹꾹 눌러 담아서 대신 손끝이 떨렸다. 정말로? 정말 괜찮은 걸까? 이런 한심한 모습으로, 더 이상 나아질 수 있는지 확신도 없는 몸을 가지고, 포기할 결단도 못 내리고 있는 애매한 사람인데도, 정말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걸까?
그 떨리는 손끝을, 덕개가 힘껏 잡아주었다.
“다만 부탁드리고 싶어요. 어떤 선택을 내리시든, 이번엔 그 마지막 길을 저희가 함께할 수 있도록 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저희 마음의 짐이 되는 건, 아가씨께서 말없이 사라지셔서 저흴 걱정시키는 거거든요. 정 저희에게 전부를 보이기 싫으시다면, 가끔 연락이라도 주십시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시거나, 아무 일 없이 지루하게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같은 연락도 괜찮습니다. 홀로 숨죽여 우는 것을 전부 그만두라고 하진 못하겠지요, 아가씨께선 언제나 강인해지고 싶으신 분이셨으니까요. 그래도 열 번 중에 한 번이라도 저희 앞에서 우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겠습니까. 전부 혼자 짊어지려 하지 않으셔도 돼요.”
괜찮습니다, 손으로 전해져오는 온기는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여기 있어도 괜찮습니다, 망설이는 것도 괜찮아요. 과거의 일로 미안해할 필요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아가씨께서 행복하시다면 괜찮습니다.
세상에 이런 다정한 진심을 거부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안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입을 열면 울음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아서, 고개만 조용히 끄덕였다.
덕개와 라더가 천천히 다가와, 부드럽게 잠뜰을 안아주었다. 어린 시절 집에 돌아가는 아이를 안아주었을 때처럼, 아카데미 입학 첫날 잘 다녀오라며 안아주었을 때처럼, 힘든 치료를 이겨내고 정신을 차린 그녀에게 수고했다며 안아주었을 때처럼.
‘…따뜻해….’
따뜻하였다. 십여년 만에 느껴보는 다정한 온기가 전해져왔다. 꿈에서도 느끼지 못한 온기라, 피부로 직접 느껴지는데도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차라리 아까 하늘을 날아오던 것이 더 현실감이 있었다. 이대로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순간 다시 그 차가운 방에서 홀로 잠에서 깨어날 것만 같았다.
그것이 꿈이 아니라고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은, 머리 위에서 들린 덕개의 나지막한 목소리 덕분이었다.
“못 본 사이에… 정말 많이 자라셨네요.”
“….”
“혼자서, 정말, 잘 버텨주셔서… 다시 저희와 이야기하러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 보고 싶었고
돌아오고 싶었던
사랑하고 그리워하던 나의 집, 나의 가족.
“…죄송해요, 정말…”
감정이 흘러넘친다. 더 이상 눌러 담을 수 없던 마음이 눈을 통해 흘러나온다. 내 몸 상태, 내 책임, 나의 자존심. 그런 복잡한 생각이 눈물을 따라 모두 몸 바깥으로 떠내려간다. 빠져나가고 남은 빈 공간에는 품에 와닿는 따뜻한 온기로 채워진, 솔직한 진심만이 남았다. 터져나오는 울음소리에 그 진심이 실려 잠뜰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정말…정말 보고 싶었어요. 죄송해요. 돌아오고 싶었는데, 제가, 저는…”
“괜찮습니다, 아가씨. 괜찮아요.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십여년 동안 어긋나있었던 다정한 마음이, 오래오래 돌고 돌아 드디어 만났다. 십년에 가까운 시간 따위 없었단 듯이 그들은 서로를 생각하는 애틋한 다정함에 서로의 마음을 묻었다. 잠뜰은 눈에서 그리움과 애정을 쏟아내었고, 어느새 덕개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있었다. 라더는 부드러이 웃으며 자신의 가족들의 등을 천천히 토닥여주었다. 그 느릿한 울림과 부드러운 온기가, 지금 여기가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알려주었다. 다정하고 따스한 가족이 있는,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마법사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 온기로 느낄 수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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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는 주머니쥐
끝 인가요?
특별한 두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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